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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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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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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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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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DUMMY

태자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하늘의 기밀이 누설되면 좋지 아니한 까닭에 대비마마께만 아뢰고자 하오니, 사람들을 모두 물려 주시옵소서."


대비가 인현왕후에게 말했다.


"중전, 미안하지만 잠시 물러가 있으시오. 모두 물러가있게."


대비전에서 물러난 인현왕후는 한숨을 절로 나왔다.


'무당의 세치혀에 대비마마께서 농락당하지 않으실까 걱정되는구나!'


대비만 홀로 남게 되자 태자방이 점궤를 본 후 말했다.


"전하의 병환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로 말미암은 것으로 세상의 어떤 의원도 고칠 수 없고, 오직 천지신명만이 고치실 수 있사옵니다."


이 말을 듣자 대비는 양심이 찔렀다.


'내가 아버님의 원한을 갚는다고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여 천지신명께서 진노하신 모양이구나! 모든 게 내 업보이니, 주상만 살릴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좋은 방도가 있는가?"


대비가 묻자 태자방이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방도가 있기는 하오나, 참으로 황공하기 그지 없는 일이라, 감히 아뢸 수 없사옵니다."


방도가 있다는 태자방의 말에 귀가 번뜩 뜨인 대비가 재촉했다.


"전하의 안위가 달린 일이니 어서 말해보게나. 그것이 무엇이든 죄를 묻지 않겠네."


"옛부터 원귀를 쫓는데는 물벌 만한 것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대비마마께서 친히 찬물로 물벌을 받으며 하늘에 정성들여 기도하옵시면 천지신명께서 감화받으셔서 전하의 목숨을 구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사옵니다."


"그리하면 전하께서 쾌차하실 수 있단 말인가?"


"인명은 재천이니 소인이 어찌 알 수 있겠사옵니까? 청컨대 전하께서 회복되시지 못하신다 하더라도 소인을 처벌하시지 마시옵기를 청하옵니다."


"알겠네. 내 일이 잘못되어도 자네를 처벌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말고 전하를 위해 하늘에 기도나 올려주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벌을 받기로 결심한 대비는 즉시 명을 내려 후원에 단을 쌓게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주상을 보우해주시옵소서."


대비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속곳만 입은 채로 얼음처럼 찬물로 물벌을 받으며 하늘에 기도했다.


대비는 찬물이 몸에 쏟아질 때마다 파르르 떨었지만, 하나 뿐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기를 쓰고 버티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인현왕후는 체통도 돌보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와 대비를 만류했다.


"대비마마, 소첩이 대비마마를 대신하여 물벌을 받겠사오니, 부디 옥체를 보중하소서."


온몸이 흠뻑 젖은 대비는 사시나무 떨듯이 부르르 떨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괜찮으니, 중전께서는 심려를 거두시오."


대비가 고집을 부리자, 인현왕후도 속곳만 입고 물벌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허약한 체질인 인현왕후는 몇 시진이 채 안되어 심한 고뿔에 걸리고 말았다.


인현왕후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물벌을 받자, 대비는 몹시 걱정되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전, 시어미로서 명하겠소. 중전은 그만 돌아가시오. 우리가 모두 쓰러진다면, 전하는 누가 보살펴 드리겠소?"


"대비마마께서 물벌을 중단하시지 않으시오면, 소첩도 물벌을 받겠사옵니다."


대비가 상궁들을 다그쳤다.


"뭣들 하는겐가? 어서 중전을 안으로 모시게."


상궁들에게 명하여 인현왕후를 돌려보낸 대비는 밤이 새도록 물벌을 받으며 하늘에 기도했다.


다음날, 오후 무렵 마침내 숙종이 눈을 떴다.


숙종의 곁을 지키고 있던 인현왕후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하! 이제 정신이 드셨사옵니까?"


숙종은 의식이 희미한 가운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전께서 고생이 많구려. 어마마마께서는 어디 계시오?"


"소첩이 대비마마를 모실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소서."


이윽고 숙종이 눈을 떴다는 소식이 대비에게 전해졌다.


'주상! 이제서야 눈을 뜨셨군요. 이 어미가 이 차디찬 엄동설한에 물벌을 받은 보람이 있습니다.'


대비는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리며 숙종의 처소로 향했지만 기력이 다해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의식을 회복한 숙종은 빠르게 기력을 회복했지만, 대비는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하였다.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물벌을 받은 대비는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위중해졌던 것이다.


숙종은 대비가 태자방의 말을 듣고 물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대노하여 태자방을 잡아오게 하였다.


"고얀 것, 감히 요사한 말로 어마마마를 현혹시키다니, 네 죄는 패역무도하여 백번 죽어 마땅할 것이다."


얼마전 수양딸로 삼은 숙정의 부탁을 받고 대비가 물벌을 받도록 계략을 꾸민 태자방이었지만, 살고 싶은 생각에 머리를 땅에 박으며 변명하였다.


"소인은 천지신명의 뜻을 대비마마께 알려드렸을 뿐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듣기 싫다. 어마마마께서 회복되시지 못하신다면, 너 또한 살기를 바라지 말라!"


숙종은 명을 내려 태자방을 의금부에 하옥시켰다.


대비의 병세가 갈수록 위중해지자, 숙종은 답답한 나머지 한내관에게 용한 무당을 데려오라는 명을 내렸다.


한내관이 데려온 무당은 오례로 태자방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전하, 대신들에게 대비마마의 쾌유를 위해 종묘사직에 기도할 것을 명하옵시고, 죄수들을 석방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대비마마의 쾌유를 기도하게 하옵소서."


숙종은 오례의 말을 받아들여 대신들에게 종묘사직에 기도할 것을 명한 후 죄수들을 모두 석방하였다.


이때 의금부에 하옥되어 있던 태자방도 방면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왔으니, 대비와 숙종 두 모자가 모두 무당에게 농락당하고 만 것이었다.


물벌을 받는 중에 폐부가 상한 대비는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이 혼미해진 대비는 죽음을 직감하여 숙종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미의 소망은 주상이 만백성들의 존경받는 성군이 되는 것을 보고, 중전이 낳은 자식을 내 손으로 안아 보는 것입니다."


"소자, 반드시 어마마마께 아들을 안겨 드릴터이니,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허나...... 인명은 재천이니, 이 어미의 뜻대로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숙종은 애통하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마마마, 어찌 그토록 나약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소자, 어마마마께 효도하고 싶사오니, 부디 일어나소서!"


명안공주가 울먹이며 말했다.


"어마마마, 부디 소녀와 전하를 버리고 떠나지 마시옵소서."


대비가 눈물을 흘리는 명안공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온희야, 이 어미는 결코 주상과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죽어서도 혼이 되어 주상과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명안공주는 목이 메어 말없이 흐느꼈다.


숙종은 죽어서도 혼이 되어 곁에 있겠다는 대비의 말에 불길한 느낌이 들어 통곡하였다.


"어마마마, 어찌 그리 불길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부디 힘을 내시고 일어나소서."


"이 어미도 일어나고 싶으나, 정신이 몹시 혼미한 것이 얼마 살지 못할 듯 합니다. 허니, 이 어미가 떠난다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마마마......"


"주상, 이 어미는 주상이 만백성의 존경을 받는 성군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이 어미가 세상을 먼저 떠난다 해도 주상께서 성군이 되신다면, 이 어미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어마마마, 부디 소자를 두고 떠나지 마소서."


"이 어미가 육신은 죽어도 혼백은 주상의 곁을 떠나지 아니할 터이나, 어미가 떠나도 주상께서는 슬퍼하지 마시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어마마마!"


숙종은 통곡하며 눈물을 비오듯이 쏟았다.


때마침 찾아온 대왕대비는 대비의 임종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비록 자신을 홀대했던 손주 며느리였지만 죽음의 문턱에 이른 모습을 보니 모든 나쁜 기억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좋은 기억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대비, 어찌 나를 두고 떠나시려는게요. 내 비록 예전에 대비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지만, 대비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소. 대비 부디 나를 두고 떠나지 마시오."


"소첩, 대왕대비마마를 더 모시지 못할 것 같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대비, 기운을 내서 일어나셔야지요. 대비께서 일어나시면, 내 다시는 대비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을 터이니, 부디 일어나세요."


"대왕대비마마, 소첩이 떠나오면 부디 중전을 잘 보살펴 주시옵소서."


"중전을 내 친손녀처럼 잘 보살필 터이니, 심려하지 마시오."


대비가 인현왕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중전, 이리 가까이 오시오."


인현왕후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비 곁으로 다가갔다.


대비가 인현왕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중전, 중전이 아들을 낳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떠날 것 같아 참으로 애석하구려."


"대비마마, 소첩의 불효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니오, 중전...... 이는 중전의 잘못이 아니오. 모든 것이 내 명이 짧은 탓이 아니겠소? 현숙한 중전이 있기에 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오. 내가 떠나도 슬퍼하지 마시고, 왕자와 공주를 낳으시고, 전하와 행복하게 잘 사시기를 바라오."


"대비마마......"


인현왕후는 비통한 나머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대비는 문득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숙종이 옥정을 입궁시킬까봐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상, 이 어미가 떠나면, 옥정을 다시 궁으로 부를 것이오?"


숙종이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자가 어찌 감히 어마마마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사옵니까?"


"모든 것이 다 주상을 위한 것이니, 부디 이 어미의 뜻을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숙종은 그간 옥정으로 인해 대비의 근심을 끼친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소자, 어마마마의 뜻을 따를 것이오니, 심려하지 마소서."


"중전은 현숙하니 주상을 잘 보필할 것이오. 중전과 함께 나라를 잘 다스리시길 바랍니다."


"소자, 마음을 다하여 중전과 함께 나라를 잘 다스리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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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자네 뜻대로 하게나 22.12.03 45 0 11쪽
34 34화 소문 22.12.03 44 0 11쪽
33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1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9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8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0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8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8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2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7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1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59 0 10쪽
15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3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7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10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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