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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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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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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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DUMMY

숙종의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받은 지 며칠 후, 승은상궁에 봉해진 옥정은 하루하루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숙종은 매일같이 옥정의 처소를 찾아와 밤을 지샜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 역시 나날이 더해갔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옥정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온 숙종을 위해 거문고를 타던 중, 갑자기 어머니 윤씨가 사무칠 정도로 그리워져 음정과 박자가 흐트러져 버리고 말았다.


옥정은 잠시 멈칫거리다 다시 제 음정과 박자를 찾았지만, 숙종의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옥정이 거문고 연주를 마치자, 숙종이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얼굴이 어둡구나. 과인이 네 곁에 있거늘,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이냐? 허심탄회하게 말해보거라."


옥정은 숙종의 따듯한 말을 듣자, 마음이 울컥하여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옥정이 목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 분에 넘치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행복하기 그지 없사오나, 한편으로는 이 추운 엄동설한에 어머님이 어찌 지내시는지 걱정되어, 잠시 정신줄을 놓았나이다. 용서하소서."


숙종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과인은 네 지극한 효심에 마음을 빼앗겼거늘, 과연 천하에 둘도 없는 효녀로다! 과인은 혹여 네가 다른 사내를 생각하는가 하여 근심하였노라. 아니면 되었다. 하하하......"


농담 반 진심 반이었다.


숙종은 혹시라도 옥정이 입궁하기 전에 마음에 둔 사내가 있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물어본 것이다.


옥정은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전하...... 농이 지나치시옵니다."


한때 옥정이 마음에 두었던 조태구는 숙종을 처음 만난 날 마음에서 지워져 버렸다.


숙종이 옥정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구나. 청이 있다면 말해보거라. 어미를 보게 해주랴?"


"어머님을 한번 뵙게 해주시오면, 감읍하기 그지 없겠나이다."


"오냐, 내, 윤허하마. 허면, 정월에 언제 한번 친정에 다녀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숙종이 흔쾌히 윤허하자, 옥정이 큰절을 올렸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정월 초하루엔 대전에서 신년 하례가 거행될 터, 초하루가 지난 후 다녀오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옥정은 곧 어머니 윤씨를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혔다.


"주상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어느새 경신년이 가고 신유년의 정월 초하루가 왔다.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왕과 중전이 각각 대전과 내전에서 신년 하례식을 거행하여 신료들과 궁인들의 하례 인사를 받았는데, 새해에는 중전의 자리가 비어있어 대전에서만 신년 하례식을 치루었다.


신년 하례식을 마친 숙종은 대왕대비 조씨와 함께 아버지 현종의 릉인 숭릉으로 차례를 지내러 궁을 나섰다.


대비 김씨는 고뿔에 걸렸다 하여 궁에 남았는데, 숙종과 대왕대비 조씨가 궁을 비운 틈을 타서 옥정을 궁밖으로 내쫓을 작정이었다.


박내관으로부터 숙종이 일행을 이끌고 궁을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대비 김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 너에게 특별히 맡길 임무가 있으니, 내가 부를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거라."


한 시진 가량이 지나서야 대비 김씨가 박내관을 불렀다.


"내, 주상의 총기를 흐리는 상궁 하나를 출궁시킬 참이다. 믿을 수 있는 내관 네명을 데려오너라."


박내관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대전을 떠났다.


대비가 말하는 상궁은 다름 아닌 숙종이 총애하는 옥정이 틀림없었다.


대비의 명을 따른다면 숙종의 노여움을 살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대비전의 내관인 그가 호랑이같은 성미인 대비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내관은 자기 휘하의 내관 4명을 데리고 대비전으로 갔다.


대비 김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너희들이 내 명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나, 만에 하나 명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터, 각오를 단단히 하거라."


영문도 모르고 박내관을 따라온 4명의 내관은 깜짝 놀라 덜덜 떨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소인들의 목숨을 걸고 대비마마의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대비 김씨가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상궁이 요망하게도 주상의 총기를 흐리고 있어 이 나라의 화근거리가 되는 바, 장상궁을 출궁시키고자 하니, 지금 당장 장상궁을 처소에서 끌어내 출궁시키도록 하거라."


대비의 지엄한 명이 떨어지자, 박내관은 휘하의 내관들을 데리고 옥정의 처소로 향했다.


이때 옥정은 어머니 윤씨를 떠올리며 회상에 젖어 있었다.


'오늘이 정월 초하루, 드디어 내일 어머님을 뵐 수 있겠구나! 오라버니와 철영도 볼 수 있겠지.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옥정에게 철영은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곁을 지킨 철영이 없었다면 자존심을 버리고 조태구를 따라 청으로 갔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헌데, 백부님께서는 이 엄동설한에 어찌 지내고 계실지...... 고령이시라 하루 빨리 풀려나셔야 할 터인데, 좋은 방도가 없을까.'


새해 예순아홉의 나이가 되는 장현이 비록 건강하기는 하나, 고령이라 건강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대비가 보낸 내관들이 들이닥쳤다.


"대비마마께서 장상궁마마를 지금 당장 궁밖으로 모시고 나가라는 명을 내리셨사오니, 속히 짐을 꾸려 주시옵소서."


친정으로 금의환향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옥정으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옥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궁밖으로 나가라니? 주상 전하를 모시는 상궁인 내게, 대체 느닷없이 무슨 소리냐?"


"장상궁마마를 마마의 사가로 모시라는 대비마마의 분부가 내려졌사옵니다. 대비마마의 뜻을 따르소서."


"대비마마의 분부라? 허면, 대비마마께서 지금 궁에 계시단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옥정은 대비 김씨가 궁에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숙종과 대왕대비 조씨와 함께 숭릉으로 떠났어야할 대비 김씨가 자신을 출궁시키기 위해 고뿔을 빙자하여 궁에 남아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옥정은 숙종의 면전에서조차 싸늘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던 대비 김씨의 심중을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숙종이 없는 틈을 타서 자신을 출궁시키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옥정은 숙종이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티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정은 내관들이 완력으로 자신을 끌고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윽박질렀다.


"주상 전하께서 아니계시다 하여, 너희들이 어찌 감히 내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소인들은 대비마마의 명을 수행할 뿐이오니, 부디, 소인들을 책망하지 마시옵소서."


옥정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는 시영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나는 주상 전하의 승은을 입었거늘, 어디로 나가라는게냐? 주상 전하를 뵙기전에는 한발짝도 나가지 아니할 것이다."


시영은 옥정의 눈짓을 보자, 눈짓으로 답한 후 조사석에게 옥정을 부탁받은 정내관에게 달려갔다.


내관들은 옥정이 대비의 명을 완강하게 거부하자, 크게 당황하여 서로 눈치만 보다가 대비의 처소로 돌아와 아뢰었다.


"대미마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장상궁마마께서 주상 전하를 뵙기 전에는 나가지 아니하시겠다며 꼼짝도 않으시옵니다."


대비가 노발대발하여 일어섰다.


"이런 발칙한 것! 천출 주제에 감히 내 명에 따르지 아니하다니, 어찌 이리도 무엄할 수 있단 말이냐?"


대비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옥정의 처소로 가서 옥정을 끌어내라 명을 내리고 싶었지만, 채통을 생각해 분노를 억누르며 내관들에게 말했다.


"상궁 따위가 제 분수도 모르고 감히 내 명에 복종하지 아니하거든, 끌어내야 할게 아니냐? 지금 당장 장상궁을 처소에서 끌어내 궁밖으로 내치거라."


대비의 명을 받은 내관들이 돌아와, 옥정을 처소에서 끌어내려 하자 옥정이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이 손 놓지 못하겠느냐? 너희들이 감히 전하의 승은을 입은 내 몸에 손을 대고도 살아 남을 듯 싶으냐?"


이대로 궁에서 쫓겨나면, 다시는 궁에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이야 중전의 자리가 비어 숙종이 자신에게 푹 빠져 있지만, 아름답고 기품있는 여인이 중전으로 간택되면 숙종의 마음이 변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간의 숙고 끝에 옥정은 대비가 친히 올 때까지 버티기로 결심하였다.


내관들은 후환이 두려워 대비의 명을 따르지 못하고 대비전으로 돌아갔다.


대비는 격노하여 몸소 내관들을 거느리고 옥정의 처소로 한달음에 걸어갔다.


대비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호통쳤다.


"발칙한 것! 네가 주상의 총애를 받더니, 감히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뭣들 하고 있는게냐? 당장 끌어내지 못하겠느냐?"


대비가 체통을 생각해 친히 오지 않기를 바랬던 옥정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꿇고 애원하였다.


"대비마마, 소녀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궁밖으로 내치시려고 하나이까? 소녀, 전하께도 대비마마께도 죄를 지은 적이 없사오니,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가마솥이 끓어 오르듯 분노가 치솟은 대비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호통쳤다.


"네가 감히 내 명을 거역하지 아니하였느냐? 무슨 염치로 죄지은 적이 없다 말하는게냐?"


옥정은 눈물을 쏟으며 두손을 모아 사정했다.


"대비마마, 오해이시옵니다. 미천한 소녀가 어찌 대비마마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사옵니까? 소녀는 다만, 소녀의 억울함을 아뢰기 위해 대비마마께서 오시기를 기다린 것이오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소녀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소서."


옥정은 중인의 가문에서 졸지에 천인이 되어 입궁한 자신의 기구한 사정을 들으면, 혹여 대비의 노여움이 풀릴까 하여 사정했지만, 대비의 노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듣기 싫다! 내 장상궁을 끌어내라고 했거늘, 대체 뭣들 하는게냐?"


대비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내관들은 옥정을 처소에서 끌어낸 후 궁밖으로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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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소문 22.12.03 43 0 11쪽
33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0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8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7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0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27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7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8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2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6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0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59 0 10쪽
15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2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7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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