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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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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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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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기 마련

DUMMY

"숙원마마, 이 오라비가 늦게나마 왕자님의 생산을 경하드립니다."


"오라버니,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께 왕자를 보여주려 부른 것입니다."


옥정은 갓 태어난 왕자를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희재를 부른 것이지만, 실상은 희재를 통해 조사석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옥정은 희재에게 강보에 싸인 왕자를 보여준 후 곧바로 운을 뗐다.


"조대감께서 대체 무슨 의중으로 이익수를 두둔하신 것인지 짚이시는 것이 없습니까?"


"전들 어찌 알겠습니까만, 조대감께서 설마 우리와 등질 리가 있겠습니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오라버니께서 조대감과 태구 도령의 의중을 알아보세요."


"그리하겠습니다."


희재가 막 일어서려는 순간, 옥정이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치며 말했다.


"아참! 태구 도령이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동평군의 막내누이와 맺어주면 어떻겠습니까?"


한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조태구에게 좋은 혼처라도 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옥정의 마음이었다.


이러한 누이의 마음을 아는 듯 희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번 태구 도령께 의중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희재가 떠나자 옥정이 왕자를 안은 채 생각에 잠겼다.


'내가 오늘날에 이른 것은 조대감 덕분이지만, 만약 조대감께서 내 편을 들지 않고 중전마마의 편을 든다면 옛정은 잊어야할 것이다!'


이미 옥정은 지난 날의 옥정이 아니었다.


옥정은 왕자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왕자야, 어떻게 해서든 너를 왕위에 올려놓고야 말겠다!'


"조대감께 인사드립니다."


희재가 찾아와 인사를 올리자, 조사석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은 후 운을 뗐다.


"자네도 이제 왕자 아기씨의 외삼촌이 되었으니, 이젠 이런 형식 치례 인사는 그만 하게나. 헌데, 어쩐 일로 왔는가?"


"숙원마마께서 대감께 인사를 여쭈라 하여 왔사옵니다."


"숙원마마께 왕자 아기씨를 출산하신 것을 경하드린다 전해드리게."


무거운 침묵 속에 조사석이 담뱃대를 들어 피우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이란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기 마련이라네. 자네가 그 점을 명심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일세."


조사석의 말에 희재의 안색이 변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생은 우리 후궁마마께서 합당한 대접을 받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그것이 분수를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시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걸세. 내 어찌 후궁마마를 생각하는 자네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다만, 자네가 이젠 왕자의 지친이 되었으니, 자중자애하라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네."


희재는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조대감이 예전처럼 숙원마마의 뒷배를 돌봐줄 뜻이 없으시구나!'


"대감의 뜻을 잘 알았사오니, 소생은 이만 가보겠사옵니다."


그래도 예전의 은혜를 생각해서 희재가 공손히 인사를 올린 후 처소를 나서는 순간,


"여보게, 장별장, 잠시 기다려 보게."


서른 쯤 되어 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선비가 손을 들어 아는 체하며 외쳤다.


희재는 그의 얼굴을 보자,


"태구 도령이 아니십니까?"


청나라에 유학을 다녀와 장원급제한 후 얼마전 형조참의에 임명된 조태구였다.


경신년 이후 8년 만에 희재와 술상에 마주 앉은 조태구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희재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문을 열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가. 천하의 한량이던 자네가 호랑이도 겁낸다는 포도대장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가 없네. 그간 잘 지냈는가?"


희재는 급한 성격이라 본론부터 대뜸 말했다.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듣자 하니, 나리께서는 아직 혼인하지 아니하였다 하던데, 마음에 두신 여인이라도 있으신지요."


옥정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조태구로서는 뼈아픈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조태구가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내, 청에 유학을 다녀 오느라 좀 늦어진 것 뿐일세."


"실은 숭선대군의 막내 따님께서 때마침 시집갈 나이가 된지라, 제가 주선이라도 해볼까 말씀드린 것입니다."


"마음은 고맙네만, 자네가 나설 문제가 아닌 듯하네."


"도령의 뜻이 그러시다면......"


얼마 간의 침묵이 흐른 후, 조태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짐작컨데, 후궁마마께서 아버님께 서운 하신 것이 있으실걸세......"


'사실, 아버님께서 바른 말을 하셨지. 이익수의 강직한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숙원마마께선 서운하셨겠지...'


아버지의 처사를 생각하느라 한차례 뜸을 들인 조태구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께서는 자네와 후궁마마를 친자식처럼 아끼셨다네. 지금도 마찬가지일걸세. 아마도 나도 모르는 사정이 있으신 듯하네. 그러니, 이번 일을 곡해 마시게."


조사석의 집을 나서는 희재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숙원마마께는 뭐라 말씀드려야할까...'


희재는 옥정에게 뭐라 말할지 생각하느라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발걸음을 궁으로 향했다.


희재가 조사석이 자신에게 한 말을 낱낱이 고하니, 옥정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정말, 조대감께서 오라버니께 대놓고 그리 말씀하셨단 말씀입니까?"


희재는 옥정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조태구의 말을 전했다.


"태구 도령께선, 조대감께서 저와 숙원마마를 친자식처럼 아끼셨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 하시며, 자신도 모르는 사정이 있는 듯하니 이번 일을 곡해하지 말라 하더군요."


희재의 말을 듣자 옥정은 얼마간 침묵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십 년 간 우리에게 큰 은정을 베풀었던 조대감이 아닙니까. 일단 믿어보지요."


희재가 떠나자 옥정은 강보에 싸인 왕자를 안은 채 조사석이 했다는 말을 곱씹었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기 마련이라...... 말이야 맞는 말이다만, 왕자의 어미로서 어찌 욕심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모든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기필코 내 왕자를 세자로 만들어야 한다. 지존의 자리인 왕위에 오르기만 한다면 누가 감히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왕자를 낳은 옥정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고 있었다.


오매불망하던 왕자를 낳았는데다 숙종의 총애가 그 어느때보다 깊어져 옥정으로서는 이 꿈만 같은 시간이 계속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왕자의 이름을 윤이라 지을 생각인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


"저야, 전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숙종이 옥정이 낳은 왕자의 이름을 윤이라고 지은 날이었다.


옥정은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왕자 윤의 어미되는 신첩의 출신이 비천하여 차후에 중전마마께서 왕자를 생산한다면, 왕자 윤은 전하의 서자라 천대받을 것이 분명한 터라 신첩이 근심하는 바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왕자 윤을 원자에 봉하여 신첩의 근심을 덜어주소서."


숙종은 옥정의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왕자 윤은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아들이 아니던가.


숙종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과인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여인이거늘, 못 들어줄 것이 뭬 있겠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기사년(1689년) 정월 열닷새 날 열린 대전회의에서 숙종은 왕자 윤을 원자에 봉할 것을 선언하였다.


"과인이 서른이 되도록 왕자가 없어 종묘사직을 뵐 면목이 없었는데, 하늘의 뜻으로 왕자가 태어나 신민들이 기뻐마지 아니하니, 이제 왕자를 원자에 책봉하여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울까 하노라. 과인의 뜻이 이와 같으니, 감히 반대하는 자는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서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지난 경신대출척 이후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이 이어져 왔는데, 남인과 가까운 옥정의 왕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어찌 될지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이조판서 남용익이 나섰다.


"전하께서 신들이 따를 수 없는 명을 내리시고, 반대하는 자는 벼슬에서 물러나라 하시오니, 신이 어찌 물러나지 아니할 수 있겠나이까만, 충정된 마음으로 한말씀 올리고 물러날까 하옵니다. 신이 헤아리건데, 나라의 대통을 이을 원자를 정하는 일이 시급한 일이긴 하오나, 충분히 시간을 두고 정하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중전께서 아직 춘추가 한창이신데 훗날 왕자를 생산하신다면 그 망극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나이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남용익이 앞장서 원자 책봉에 이의를 제기하자, 서인들이 일제히 나서 간청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남용익을 당장 파직하라."


숙종이 즉시 명을 내려 남용익을 파직시킨데 이어 이의를 제기하는 서인들을 모두 파직시키자, 서인들은 두려워 침묵했고, 남인들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날 숙종은 왕자 윤의 정호를 종묘사직에 고한 후 옥정을 정1품인 희빈에 책봉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원자의 외가를 격상시키기 위해 옥정의 부친 장경을 영의정에, 조부 장수를 좌의정에, 증조부 장익수에 우의정에 추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옥정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내가 소망하던 바가 모두 이루어졌구나! 아버님부터 증조부까지 정승에 추증되었고, 나는 왕위에 오를 원자의 어미가 되었으니, 이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왕자 윤을 원자에 책봉한지 보름 남짓한 2월 초하루.


송시열이 송나라 신종의 사례를 들어 원자의 정함이 이르다는 상소를 올렸다.


'소신 송시열, 삼가 전하께 아뢰옵니다. 신이 노쇠하여 귀가 어굽고 정신이 혼몽한 가운데 들은 바로는, 전하께서 대명을 내리시어 왕자 아기씨를 원자에 책봉하였다 하온데, 대신들의 중론을 들어보면 시기 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사옵니다. 이는 중전마마께서 훗날 왕자 아기씨를 생산하옵시면, 나라의 국론이 분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옵니다. 옛날 송나라 신종은 28살 때 철종을 낳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정비가 아니라 후궁 주씨인지라 철종은 10살이 될때까지 번왕의 지위에 있다가 신종이 병이 들자 비로소 태자에 책봉받았다 하옵니다. 이는 나라의 종사를 잇는 결정은 신중해야만 하는 까닭이오니, 전하께서도 이러한 선례를 따라 왕자의 정호를 결정하는 것을 훗날로 미루어 주신다면, 종묘사직에 다행한 일이 될 것이옵니다.'


숙종은 송시열의 상소를 읽자 크게 진노하여 승지들을 불렀다.


"왕자의 명호가 이미 결정되었거늘, 봉조하(퇴직한 원로대신에게 내리는 벼슬) 송시열이 이제와서 이와같은 상소를 올리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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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살수를 고용해 이동현을 도모하거라 22.12.03 45 1 11쪽
» 38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기 마련 22.12.03 48 0 11쪽
37 37화 조대감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단 말인가! 22.12.03 44 0 10쪽
36 36화 소첩 태기가 있는 듯 하옵니다 22.12.03 48 1 11쪽
35 35화 자네 뜻대로 하게나 22.12.03 45 0 11쪽
34 34화 소문 22.12.03 44 0 11쪽
33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1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9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8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0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27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7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8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2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6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1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59 0 10쪽
15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2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7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10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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