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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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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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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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숙원이 된 옥정

DUMMY

인현왕후가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내가 박덕하고 부족한 몸으로 곤위에 앉아 있으니, 걱정되는 바는 전하의 깊으신 성덕을 갚지 못할까 하는 것이오. 내가 곤위에 오른지 여섯 해가 지났으나, 박복하여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니, 후궁을 간택하여 나라의 종사를 잇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오."


오태주에게 출가한지 일곱 해가 되었지만 자식이 없는 명안공주는 인현왕후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눈물을 흘리며 탄복했다.


"소녀, 중전마마의 성덕에 탄복할 따름이옵니다."


명안공주는 인현왕후가 결심을 굳힌 것을 알고 인사를 올린 후 내전을 떠났다.


명안공주가 떠나자 인현왕후는 서러움이 복받쳐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공주, 나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 어찌 내가 잊을 수 있겠소? 허나, 공주께서 내가 어찌 이토록 서두르는 것인지 그 연유는 알지 못하실게요. 실은 내 건강이 좋지 못해 왕자를 생산할 자신이 없소. 옥정 또한 몸이 좋지 아니하니 혹여라도 전하께서 왕자 없이 승하하시오면, 나라에 말할 수 없는 큰 화가 닥칠지 모르기에 더는 늦출 수 없는 것이오.'


오얏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


경덕궁의 후원에서 후궁으로 간택된 영빈 김씨와 숙종의 가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영빈 김씨는 영의정 김수항의 형인 김수증의 손녀로, 미색이 빼어나고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여 인현왕후의 간택을 받았다.


가례식이 끝나고 밤이 되자, 숙종은 김씨를 신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숙종이 김씨의 면사포를 벗겨내자 백옥처럼 하얗고 고운 김씨의 얼굴이 어두운 신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이제 열여덞의 꽃다운 나이인 김씨의 눈부신 자태에 숙종이 순간적으로 끌렸지만, 그것도 잠시, 옥정을 생각하자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숙종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김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소첩, 성심을 다해 전하를 모시겠나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꺼낸 후 수줍어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앙 다문 김씨의 자태가 몹시 사랑스러워 옥정 생각으로 요지부동했던 숙종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았다.


마치 육년 전 옥정을 처음 만났을 때의 고혹적인 자태를 연상시킨 김씨의 모습이 더욱 숙종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숙종은 앵두빛나는 김씨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이내 신방을 밝히던 등불이 꺼졌다.


한편 옥정은 숙종과 김씨의 합궁 소식에 질투심이 불같이 치솟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거문고를 탔지만 불같이 타오르는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하였다.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참지 못한 옥정은 거문고를 들어 냅다 던져버렸다.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거문고가 두조각으로 부서졌다.


옥정은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손에 닿는 물건을 마구 집어 던졌다.


시영이 안절부절하며 말했다.


"고정하소서. 오늘이 가례식이오니 전하께서도 어찌하실 수 없지 않겠사옵니까?"


옥정은 얼굴이 씨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소리를 질렀다.


"중전마마께서 어찌 나에게 이러실 수 있단 말이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구나! 어찌 전하가 다른 여인을 품게 하실 수 있냐는 말이다. 나더러는 투기하지 말라 말씀하시더니, 이것이야 말로 투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상궁마마, 말씀을 삼가하소서. 누가 들을까 두렵사옵니다."


"들으면 들으라지. 내가 겁낼 줄 아느냐?"


옥정은 큰 소리치면서도 누가 듣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밖에 누가 없는지 살펴보고 오너라."


시영이 처소를 나서자, 옥정은 질투심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인현왕후를 원망했다.


'소녀가 전하의 총애를 받는 것이 그리도 싫으셔서 다른 여인을 데려오신 것이옵니까? 하오나 소녀 결코 중전마마의 뜻대로 되도록 좌시하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두고 보소서.'


"중전, 옥정을 숙원에 책봉할까 하는데 중전의 생각은 어떻소?"


영빈 김씨가 숙의에 책봉된지 달포가 채 되지 않아 숙종이 묻자 인현왕후가 반대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후궁을 간택한지 얼마되지 않아 후궁을 새로이 간택하거나 궁인을 후궁에 책봉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오니, 이 점 숙지하여 주시기 바라나이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 옥정의 후궁 책봉을 미루었다.


옥정은 인현왕후의 반대로 자신이 숙원에 책봉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분개하였다.


'허면 중전마마께서 내가 후궁이 되지 못하게 하시려고 후궁을 들인 것이 아닌가? 중전마마께서 이리도 나를 박대하시니, 반드시 이 한을 갚고야 말겠다.'


독기를 품은 옥정은 이후 몸에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종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올 때마다 온갖 교태를 부려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하께서 오시길 학수고대하고 기다렸사오니, 오늘 만큼은 제 처소에서 침수드소서."


옥정에게 완전히 빠진 숙종은 인현왕후나 김씨의 처소에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고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가끔 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졸지에 독수공방을 하게 된 김씨가 참다 못해 옥정의 처소로 들이닥쳤다.


이때 옥정은 어지럼증으로 자리에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김씨의 출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 후궁마마께 인사 올리나이다."


옥정이 일어나 공손히 절을 인사를 올리자, 김씨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엎드려 절받기라 하더니, 내가 너의 윗전이거늘 어찌 여지껏 현신을 올리지 아니하고, 이제서야 이걸 현신이라 올리는 것이냐?"


궁궐의 법도상 김씨가 후궁에 책봉된 날 옥정이 현신을 올렸어야 했지만, 옥정이 병을 빙자해 현신을 올리지 않았기에 김씨가 이를 괘씸하게 여기고 있다가 숙종의 발걸음이 옥정의 처소로만 향하자 질투심이 치솟아 이제와서 문제를 삼은 것이다.


"소녀 방금 인사를 올렸사온데, 마마께서 어찌 그리 노하시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뭐라? 감히 윗전인 내게 어찌 그 따위로 말하는 것이냐? 장상궁, 상궁인 네가 현신을 올리러 내 처소를 찾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찌 감히 이 따위 인사치례로 현신을 하였다는 것이냐? 어서 무릎 꿇고 사죄하지 못할까!"


"소녀 궁에서 오래 살지 아니하여 후궁마마께도 현신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사오니, 부디 양해하여 주소서."


"상궁이란 자가 궁중의 예절도 모르니,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계속되는 김씨의 질타에 옥정은 화가 치밀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흥! 나도 조만간 후궁에 책봉될 텐데, 뭘 그리 쾌쾌 묵은 궁중의 법도를 따지느냐?'


옥정은 조만간 후궁에 책봉되면 김씨와 동등해질 테니 그때 응수하는 것이 나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김씨가 분노를 삭히며 말을 이었다.


"천출이라 궁중의 법도를 모르는 것이냐? 어서 무릎 꿇고 사죄하지 못할까?"


천출이라는 김씨의 말에 옥정이 발끈하여 언성을 높여 말했다.


"소녀, 사죄드려야할 이유를 모르겠사온데, 어찌 그리 노여워 하시는지요. 혹여 후궁마마께서 소첩을 투기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김씨가 격노하여 호통쳤다.


"투기라? 네가 감히 윗전도 몰라보고 감히 언성을 높여 그 따위 망발을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내 중전마마께 하극상을 벌인 네 죄를 고해바칠 터이니, 각오하고 있거라."


성난 발걸음으로 옥정의 처소를 떠난 김씨가 얼마 후.


인현왕후와 함께 옥정의 처소를 다시 찾아왔다.


인현왕후가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옥정아, 네가 소의에게 무례한 언사를 한 것이 사실이냐?"


"소녀, 후궁마마께 사실을 아뢰었을 뿐이옵니다."


"네가 소의에게 현신을 하지 아니한 것도 명백한 죄이거니와 무례한 언사까지 하였으니, 어서 소의에게 사죄하거라."


"소녀, 방금 예를 갖추어 소의마마께 인사를 올렸나이다. 또한 사실을 아뢰었을 뿐이오니, 부디 통촉하여 주소서."


부드러운 말로 타일렀음에도 옥정이 명에 불복하자 인현왕후가 마침내 노기를 드러냈다.


"내 명에 불복종하는 것이냐? 어서 사죄하지 못할까?"


"소녀, 소의마마께 말대꾸를 한 적이 없사옵니다."


"내가 보아하니, 네가 무례한 언사를 한 것이 분명하거늘 시치미를 떼는 것이냐? 안되겠구나. 여봐라. 어서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회초리가 당도하자, 인현왕후가 옥정에게 말했다.


"내, 다시 한번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지금이라도 소의에게 사죄한다면, 너의 죄를 용서하여 줄 것이니, 어서 사죄하거라."


"중전마마, 소녀, 소의마마께 무례를 범한 일이 없사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말로 해서는 아니 되겠구나, 어서 종아리를 걷거라."


옥정은 순순히 종아리를 걷었다.


인현왕후의 섬섬옥수 고운 손이 매섭게 회초리를 휘둘렀다.


인현왕후는 백옥처럼 희고 고운 옥정의 종아리에 찍힌 회초리 자국을 보자 마음이 아파 손을 멈추고 옥정에게 물었다.


"어서 소의에게 사죄하지 못하겠느냐?"


"소녀에게 죄가 있다면 자인하겠사오나 없는 죄를 어찌 있다 아뢸 수 있겠사옵니까?"


인현왕후의 손에 들린 회초리가 연신 옥정의 종아리를 휘갈겼다.


가뜩이나 어지럼증이 있는 옥정은 연이어 회초리를 맞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옥정이 쓰러지자 인현왕후도 김씨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이 한달음에 달려와 시퍼렇게 멍든 옥정의 종아리를 가리키며 인현왕후에게 호통쳤다.


"중전께서 어찌 과인이 총애하는 옥정에게 이리도 심하게 회초리질을 한 것이오?"


"전하께 심려를 끼쳐 황공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이 일이 있은 얼마 후, 숙종은 김씨의 처소에 발걸음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김씨가 투기심으로 옥정에게 시비를 건 것으로 여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현왕후 또한 투기심으로 옥정에게 회초리질을 한 것이라 여겨 한해가 다가도록 인현왕후의 처소에도 들리지 않았으니, 옥정에 대한 숙종의 총애가 지나치다는 소문이 항간에 떠돌기 시작했다.


숙종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밀리에 명을 내려 옥정을 위해 취선당이라는 별궁을 지어주었다.


상궁인 옥정에게 별궁을 지어주는 것은 지나친 총애라는 서인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숙종은 오히려 옥정을 숙원에 봉하였으니, 조정은 옥정으로 인하여 잠잠할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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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자네 뜻대로 하게나 22.12.03 45 0 11쪽
34 34화 소문 22.12.03 44 0 11쪽
»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1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9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8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0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27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7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8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2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6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0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59 0 10쪽
15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2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7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10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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