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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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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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381

작성
13.10.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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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3화

DUMMY

금요일. 혹자는 불타는 금요일이라 부르는 날. 그런 날에 수영은 민원실 책상 앞에 앉아 죽을상을 쓰고 있었다.


“하아…….”


지난 주말 멀리 속초까지 갔다 오면서 순정과의 관계에 개선을 꾀하였지만 생각만큼 안 된 것 같다는 실망감이 수영을 지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놈 얼굴이 좀 펴졌다는 것이지.’


코에 쐬어준 바람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만지면 묻어날 듯 슬픔 가득했던 그의 표정이 조금 예전 같이 돌아왔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뿐이다.


‘나쁜 놈.’


야속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순정을 욕하는 수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불금인데 오늘 뭐하냐!]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인 유리의 메시지였다.


[뭐하긴. 젠장.]

[누가 또 우리 친절한 수영씨를 불친절한 수영씨로 만들었을까.]

[무슨 일이야?]

[뭐야. 우리 사이에 무슨 일 있어야 연락하는 거야? 실망인데? 나 눈물 나.]


수영은 가뜩이나 심란한데 자꾸 말장난을 거는 유리가 귀찮았다.


[됐고. 용건만.]

[너 무슨 일 있구나? 왜? 순정씨 때문에 그래?]


수영이 종종 순정에 대한 이야기를 유리에게 했기에 유리도 대충 내막을 알고 있었다.


[그러지 뭐.]

[그럴수록 방구석에 있지 말고 만나자. 술이나 한 잔 하게.]


복잡한 심사에 만사가 귀찮았던 수영은 만나자는 말에 거절을 할 까 하다 이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렇게 한숨만 쉬고 있어봐야 바뀌는 것도 없었고, 혼자 가슴 아파해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시간이 필요한 일에 혼자 안달 낸다고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콜. 만나자. 아주 죽어보게.]



----------



“야. 요즘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어.”

“됐어. 말도 마.”


수영의 귀에 유리의 위로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눈 앞에 술잔에 집중할 뿐이다.


“그 순정씨랑은 잘 안 돼?”

“어…….”

“뭐가 제일 문제인데?”

“이 놈이 나를 여자로 안 봐.”

“이번에 둘이 여행도 다녀왔다면서. 1박 2일로.”

“그랬지.”

“별일 없었어?”

“응. 완전 건전했다. 유치원 애들 보다 더 건전했을 거야. 아마.”


유리는 수영과 순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녀 간의 우정? 유리는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수영은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순정을 보라면서. 그러나 그 주장은 수영이 순정을 사랑하게 되면서 완전히 깨진지 오래다. 젊은 남녀가 둘이 한 방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상상해보지만 역시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야. 그게 말이 되냐? 그 남자 뭐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무튼 알아.”


유리의 말에 수영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잊고 싶었던 지난 일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리도 수영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무언가 일이 있긴 있었나 보다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순정씨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면서. 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수영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걱정이야. 타이밍을 못 잡겠어.”


수영은 잔에 담긴 술을 거침없이 넘기며 말했다.


“웃긴 게 뭔지 아냐? 내가 이놈을 좋아한다고 느낀 것이 실제로는 기간이 얼마 안 됐거든? 그런데 내가 이놈을 알고 지낸 건 벌써 9년이잖아. 그래서 그런지 꼭 이놈을 내가 9년 동안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니까.”

“그건 오버 아냐?”

“오버지. 왜 전에 너한테 말했었잖아. 얘가 1학년 때 나한테 고백한 적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던 유리가 고개를 손뼉을 친다.


“그래! 기억나. 그 때 그 사람이 순정씨였어?”

“응, 그래서 더 그래. 미쳤지. 그 때 내가 ‘땡큐.’ 했으면 이 고생 안하고 지금쯤 살림을 차려서 애도 한 셋 낳았을 텐데 하고 후회도 된 다니까.”


수영의 말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미친년. 아주 상상으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네. 네가 진짜 좋아하나보다. 그 사람.”

“그러게 말이다. 내가 왜 이런지 몰라.”


어깨가 축 쳐진 채 풀이 죽어 있는 수영의 어깨를 유리가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힘들면 다른 사람을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때? 네가 아는 사람이 순정씨 밖에 없어서 착각하는 걸 수도 있잖아.”

“착각?”


수영이 긴 한숨을 내쉰다.


“그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유리와 눈을 마주치는 수영. 그 눈엔 한탄과 상처가 담겨 있다.


“선도 많이 봤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랑 있으면 순정이가 생각나. 내게 했던 말들. 내게 보이던 눈빛. 몸짓 하나, 하나. 그 아이랑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어느 새 내 입가엔 미소가 가득해.”


수영은 잔에 술을 가득 담아 마셨다.


“이놈 연애사도 다 알고. 보기 싫은 장면도 많이 봤어. 전여자친구라는 사람도 만나서 기 싸움도 하고. 알지 않아도 될 걸 너무 많이 알아서 생각하기도 싫고, 미치겠거든?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하냐. 이놈 아니면 안 되겠는데. 이순정 아니면 내가 안 되겠다고.”


술기운이 가득해 얼굴이 벌게진 수영은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연신 상모를 돌리고 있었다. 제대로 앉아 있는 것도 힘든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야! 권유리. 골뱅이 시켜.”


골뱅이를 시키라는 수영의 말에 유리의 표정이 썩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 언제 이렇게 술을 많이 먹은 거야?”


유리의 눈에 탁자 위에 놓인 소주병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영의 말을 듣는데 집중하느라 곶감 빼먹듯 술을 마시던 수영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유리만 아는 것인데 수영이 너무 많이 취했을 때 하는 행동이 있었다. 그게 바로 골뱅이를 시키는 것이다. 이 단계쯤 되면 얼마나 늘어지고 난리를 치는지 힘센 남자가 와도 부축할 수 없을 정도다.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데.”


유리가 수영의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아씨. 이런 모습 보여주면 안 되는데.”


순정에게 전화를 걸려던 유리가 잠시 망설인다. 혼자서는 집에 데리고 갈 수 없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데 순정에게 마음이 있는 수영이의 이런 모습을 그에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수영을 생각하는 마음 보단 수영을 데려가야 하는 걱정이 더 컸다. 결국 유리는 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기 순정씨.”

[누구시죠? 수영이 전화번호인데.]

“저 수영이 친구 유리인데요.”

[아~. 유리씨?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수영이가 너무 많이 취해서요. 잠시 와서 부축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딘데요?]

“근처에요. 순정씨 사는 곳이 이 근처라고 들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전화를 했네요.”

[잘 하셨어요. 제가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은 유리는 골뱅이를 작살내는 수영을 바라보며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수영아. 미안.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



유리의 전화에 한달음에 달려온 순정은 눈앞의 광경에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거 이순정이 아냐?”


눈이 풀린 수영이 골뱅이 무침에 든 소면을 한 가닥씩 먹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주절거린다. 옆에 앉은 유리는 그런 그녀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많이 먹었나보네요.”


젓가락에 꽂은 골뱅이를 사탕 빨 듯 빨고 있는 수영을 보며 순정은 한숨을 쉬었다. 그도 유리처럼 그녀의 술버릇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죄송해요. 말릴 수 없었어요.”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유리는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제가 택시 잡아서 가게 앞으로 올게요.”


순정은 수영을 부축하기 위해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수영이 풀린 눈으로 순정의 눈을 응시했다.


“야, 이순정. 너 뭐냐.”

“뭐가.”

“너 그러면 안 돼. 안 되는 거야.”


수영이 금세라도 엎어질 듯 몸을 가누지 못하자 순정이 가만히 그녀의 몸을 안아 바로 세웠다.


“뭐가.”

“이거 봐. 이거 봐. 너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순정의 품에 안긴 수영이 순정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그 눈도 미워. 이렇게 따뜻한데 날 바라봐 주지 않아서 미워. 그 입도 미워. 사랑스러운데 날 말해주지 않아서 미워.”


수영이 순정의 손을 잡는다.


“이 손도 미워. 이렇게 다정한데 내가 갖지 못해서 미워.”


수영이 순정의 품에 다시 안긴다.


“이 품도 미워. 이렇게 안기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서 미워.”


순정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수영이 웅얼거린다.


“넌 왜 몰라? 나에 대해서 다 알면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건 왜 몰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순정아. 어떻게 해야 해? 난 어떻게 해야 되냐?”


가만히 수영을 품에 안고 다독이던 순정이 말했다.


“일단 일어나자.”


그러자 안겨 있던 수영이 벌떡 몸을 세웠다.


“됐고!”


뚱한 표정으로 순정을 바라보던 수영이 묘한 웃음을 짓는다.


“야. 너 골뱅이 좋아하냐?”

“뭐?”


뜬금없는 이야기에 되물으려던 순정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갑작스레 수영이 순정의 입술을 덮친 까닭이다.

한동안 입을 대고 있던 수영이 순정에게서 얼굴을 떼고는 손으로 쓱 입술을 훔치며 말한다.


“첫 키스가 골뱅이 맛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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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61 강훈(姜勳)
    작성일
    13.10.24 14:16
    No. 1

    아하하하...첫 키스가 골뱅이 맛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24 15:39
    No. 2

    저도 참 골뱅이 좋아하는데요. 저런 골뱅이맛은 시러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3.10.24 16:21
    No. 3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수영이 귀엽네요! 주사가 골뱅이시키는 거라니 와 귀엽다 가쓰나~ 근데 이런 수영의 귀여운 모습을 다신 못 보나요?ㅠㅠ

    참 그거 아세요? 걸그룹 중에 소녀시대 라고 있어요, 아시죠? 멤버 수영 유리도 각 최씨 권씨 거든요. 최수영 권유리.
    ...뭐 그렇다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24 18:16
    No. 4

    이 글의 부 카테고리사 팬픽이이에용.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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