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막 3장
지금까지 뻔뻔한 얼굴로 이류객잔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나온 홍랑은 안 어울리는 그 진지한 얼굴을 하고, 한 손에는 예쁘게 잘 포장 된 꾸러미를 들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콧잔등을 긁으며 걷고 있었는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러다가 갑자기 거리 한복판에서 멈춰서더니 쭈욱하고 기지개를 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고민한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중얼거리고는 이내 고민을 털어 낸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분타로 향했다. 그녀가 향한 곳은 복잡하게 얽힌 소주 골목에서도 꽤나 외진 곳이었는데,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곳에는 움막으로 된 작은 집들이 두어 개 붙어 있었다. 보통 개방 분타가 다리 밑에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레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도착하자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녀왔다! 인사해라!”
그녀의 밝은 목소리는 움막 안으로 울려 퍼져 갔는데, 얼마 후 움막 안에서는 약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몇 몇의 아이들이 뛰어 나와 그녀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아이들의 행색은 대체적으로 남루했는데, 다행이도 아이들의 표정만은 밝았다.
“와! 홍랑누나다! 누나!”
“언니! 언니! 나랑 놀자!”
아이들은 막 태어난 아기 새처럼 재잘재잘 거리며 홍랑의 다리에 붙어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홍랑은 실소를 짓더니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비켜라 이것들아, 지나가게.”
그러나 그녀의 말에도 아이들은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홍랑은 예상한 상황에 한숨을 푹 쉬고는 약간의 신음성과 함께 아이들을 다리에 매달고 움직였다. 그러한 상황에 아이들은 무엇이 좋은지 깔깔거렸다. 홍랑이 움막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랑랑郞朗아~ 있냐?”
그녀는 들어가면서 누군가를 불렀는데, 이름만 들어보면 귀여운 여자아이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었지만 그녀의 부름에 대답하는 것은 육척六尺 거한의 남자였다. 제법 준수한 외모를 가진 그 또한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그의 주위에도 두세 명의 아이들이 붙어 있었는데, 랑랑이란 것이 별명인지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그를 그렇게 불렀다.
“랑랑! 놀아줘!”
“랑랑!”
“이놈들아! 홍랑누나랑 랑랑형한테 그만 좀 떨어져라.
그 때 그들의 뒤에서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은 각각 홍랑과 랑랑에게 붙어있는 아이들을 끙끙거리며 떼어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곧이어 아이들은 소년을 따라 움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홍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아淸兒가 고생이 많네~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야.”
홍랑이 자리에 앉으며 하는 말에 랑랑은 입을 삐죽였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홍랑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치며 말했다.
“사내자식이 소심하기는”
홍랑의 폭력에 랑랑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홍랑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라? 한 대 치겠다.”
그녀의 말에 랑랑은 냉큼 표정을 풀었다. 잘못했다가는 한 대 더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랑랑은 한 번 더 입을 삐죽이고는 말했다.
“저도 고생했습니다 누님! 그런데 들고 계신 그건 뭡니까?”
랑랑은 입을 삐죽이다가 홍랑의 손에 들려진 꾸러미를 보며 물었다. 그런 랑랑의 물음에 홍랑은 아차하는 표정을 짓더니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씨! 청아야!”
홍랑의 부름에 안쪽에서 청아가 얼굴을 빼꼼히 내보이며 물었다.
“예? 왜 부르세요?”
그러자 홍랑은 청아에게 꾸러미를 던져 주며 말했다.
“잘 받아라!”
그러자 청아는 날랜 몸짓으로 뛰어오더니 아슬아슬하게 꾸러미를 받아냈다. 청아는 꾸러미를 품에 안고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홍랑에게 소리쳤다.
“아, 진짜! 누나 자꾸 던질거에요?
청아의 불만어린 목소리에 홍랑은 큭큭거리며 말했다.
“그럼 얼른 와서 받던가, 그거 먹을 거니까 애들이랑 나눠먹어.”
홍랑의 말에 청아의 표정은 대번에 밝아졌다. 아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청아였기에 작든 크든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그였다. 그렇기에 청아의 입장에서 먹을 것은 어떤 것보다 반가웠다. 이미 청아는 홍랑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요?”
청아의 물음에 홍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얼른 가서 먹어라.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게 하고.”
“예-!”
홍랑의 말에 청아는 신이 나서 꾸러미를 들고 아이들에게 향했다. 얼마 후, 움막 안쪽에서는 탄성과 함께 신나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아이들의 목소리에 홍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홍랑을 보며 랑랑이 말했다.
“누님이 그런 표정 지을 때마다 적응이 안 돼요.”
그의 말에 홍랑이 고개를 돌려 그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홍랑의 물음에 랑랑이 대답했다.
“아니, 강호에서 미친개라고 불리는 누님이 애들한테는 저렇게 착하게 구는 모습을 보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니까요?”
랑랑의 대답에 홍랑이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랑랑아?”
홍랑의 부름에 랑랑이 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누님.”
그런 랑랑을 보며 홍랑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을래?”
“아니요……. 잘못 했습니다.”
“그래.”
랑랑이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답하자 홍랑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런 홍랑을 보며 랑랑이 시무룩해진 표정을 풀며 물었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랑랑의 물음에 홍랑이 답했다.
“글쎄다……. 애매해서 말이야.”
“애매해요?”
홍랑의 답변에 랑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랑랑을 보며 홍랑이 말했다.
“어, 그 놈이 어디 소속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냉큼 어디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아.”
홍랑의 말에 랑랑이 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젠데요? 그냥 들어오라고 하면 되잖아요?”
랑랑의 말에 홍랑이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바보냐? 연상화 덕분에 정도맹에서도 그놈을 주시하고 있어. 그런데 내가 접촉했다는 소리라도 나와봐.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그런데 그게 들키면 정도맹에서 그놈을 가만 두겠어? 죽이던가 회유 하던가 할 거 아냐? 그러면 우린 완전 닭 쫓던 개꼴이 된다.”
홍랑의 말에 랑랑이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그러네요.”
홍랑은 그런 랑랑을 보며 말했다.
“아직은 지켜 볼 단계인 것 같아. 아직은 말이야.”
그런 홍랑을 보며 랑랑이 물었다.
“맹을 위해서요?”
랑랑의 물음에 홍랑이 답했다.
“그래, 맹을 위해서.”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
윤휘랑은 방금 전, 객잔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거기다가 한 술 더 떠 요리까지 싸간 홍랑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꽤나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는데, 현재 그의 머릿속은 꽤나 복잡했다.
‘아무래도 귀찮은 일에 연루 된 것 같군.’
홍랑은 윤휘랑에게 정도맹의 적이 될 가능성이 꽤나 농후하다고 이야기 했다. 그 말은 언제든 정도맹에서 쳐들어 와도 이상하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또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민은 거기부터 시작 되었다.
그는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툭하면 때리는 스승도 없었고, 실전 연습을 시킨다며 스승이 내몰아 토벌해야 할 산적도 없었고, 죽을 고비를 넘길 필요도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세금 걱정을 하며 손님에게 음식 대접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가 그렇게 고민에 잠겨 있을 때, 객잔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인원은 모두 세 명이었다. 세 명 모두 다부진 체격에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림인 인지 모두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 중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자리를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민에 잠겨있는 윤휘랑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곳 객주가 누군가?”
남자의 물음에 생각의 늪에서 벗어난 윤휘랑은 턱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곳 객주이오만?”
윤휘랑의 대답에 남자는 씩 웃었다. 남자의 미소에서 이유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남자의 대답에 윤휘랑이 남자에게 물었다.
“그렇소만……. 당신은 누구요?”
윤휘랑의 물음에 남자는 한 번 씨익 웃더니 대답했다.
“나는 정도맹 소속 흑검대黑劍隊 제 이 대장 오철악이라고 한다.”
남자의 정체에 윤휘랑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정도맹?”
오철악은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정도맹.”
남자의 말에 의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으려 했다.
“정도맹에서 내게 무슨 볼이……!?”
그는 그러나 오철악에게 모두 묻지 못하고 급히 뒤로 몸을 피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오철악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윤휘랑이 방금 전 까지 있던 자리에는 검신이 검은 흑검이 박혀 있었다.
윤휘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윤휘랑의 물음에 오철악은 흑검을 들어 어깨에 척 올리며 말했다.
“이곳이 마교의 지부라는 제보가 있었다.”
오철악의 말에 윤휘랑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윤휘랑의 물음에 오철악은 아까의 그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
**
흑검대黑劍隊, 정도맹에 외부에 알려진 세 개의 무력집단 중 하나로, 정도맹의 적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부분 마교와 사도련의 전투에서 활약하는 그들이었지만 간혹 가다 정도맹에서 명령이 있다면 그것을 처리하는데 주력을 다한다.
그들은 정파인 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포악하고 악랄하기로 유명했는데, 흑검대의 대원들이 모두 지랄 맞아 같은 정도맹원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입지는 꽤나 좁다고 한다. 모두 다섯 개의 부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대마다 대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장을 따르는 부대원들은 대장 한 명당 모두 열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정도맹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세 개의 무력집단 중 순수 무력만을 본다면 이위에 올라있는 집단이지만 호전성과 충성도까지 같이 본다면 당연히 최고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윤휘랑이 오철악에게 물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윤휘랑의 물음에 오철악은 방금 전까지 윤휘랑이 있던 자리에 박혀있는 흑검을 들어 어깨에 척하고 올려놓더니 말했다.
“이곳 객잔이 마교의 지부라는 정보가 있었다.”
오철악의 대답에 윤휘랑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윤휘랑의 물음에 오철악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없앤다.”
오철악의 말에 윤휘랑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윤휘랑은 말을 하고는 오철악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달려 들 줄 몰랐던 오철악은 윤휘랑에게 목을 잡혀 객잔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윤휘랑이 그를 내동댕이쳤지만 그는 안전하게 설 수 있었다. 그런 그에 뒤로 두 명의 대원들이 따라왔다.
오철악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교의 종자가 제법 하는 군.”
오철악의 말에 윤휘랑은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교랑 아무 상관이 없다만?”
윤휘랑의 이야기에 오철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마교 소교주가 여기 있던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 할 거지? 거기다가 네놈이 홍랑이란 거지 놈과 내통한다는 정보가 있다.”
오철악의 이야기에 윤휘랑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화인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 처음만난 홍랑과 무엇을 내통한다는 이야기인가? 어이없어 하는 그에게 오철악이 검을 휘둘렀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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