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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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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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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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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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3)

DUMMY

“죽음의 땅.”


카릿치오스 지역과 이어져 있음에도, 그곳과 대조적으로 완전히 메말라 버린 땅.

그 어떤 유의마한 생명체도 살지 않고, 심지어 마력조차 옅어서 저주 받은 땅이라 불리는 그곳은 그 어떤 가치도 없었지만, 월영군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복수의 화신이 태어난 곳.


벨로나가 이십인장이었던 시절, 사제의 명으로 정찰 도중 백여기의 인형과 조우했고, 그 모두를 처분했지만 벨로나의 동생, 시세느 세라트너를 포함 18명이 사망한 그 사건 때문에 그녀는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찌보면 그 곳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벨리안느를 쫓는 순간에 죽음의 땅으로 몰아 붙인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있었으리라.


“어떤 생명체나 마력조차 없는 그곳에서, 저는 그렇게 추격 23일 만에 벨리안느와 조우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벨로나는 자신의 아픈 기억은 일체 떠올리지 않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카니엘 또한 다시금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저의 가족의 원수.. 무혼반란의 주역. 수많은 이들에게 피눈물을 안긴 대륙의 공적.”


침묵 끝에서 이어진 그녀의 말은 다름 아닌 벨리안느의 또다른 이름들이었다.


“그런 악마와 필적한다고 불렸던 사람이... 너무나 가냘픈 모습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순간, 카니엘의 호흡이 멈추었다.

대륙의 공적을 제압한 대륙 최고의 검사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벨로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너무나 의외였다.


무엇보다 또한 좀처럼 감정을 실지 않는 평소 벨로나의 말과 달리 그 말에는 진심어린 감정이 담겨 있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 감정이 일종의 연김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더 말을 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카니엘. 당신 또한 인형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기에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녀가 일종의 희생량이라 느꼈습니다.

무혼 반란이라는 것이... 어짜피 일어날 사건이라 한다면 너무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아무튼 그 당시 인형을 근반으로 한 사회 체제는 무너지고 있는 시점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대륙의 공적이 했던 과오가 시발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작 8살에 불과한 나이 때 벌인 일이 과오라고 하면 과오겠지요.

하지만 카니엘. 세상에는 누구 하나의 잘못이나 누구 하나의 행동으로 벌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관계하면서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벨리안느는 이미 가득 찬 물 잔에 마지막으로 넘치게한 물방을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카니엘은 대륙의 공적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이제 막 군에 입대하여 본격적으로 인형에 대한 복수를 결심했을 때, 그녀는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벨리안느를 옹호하는 벨로나의 말에도 큰 반감은 없었고, 다만, 복수의 화신으로 불린 그녀가 연민의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군요. 아무튼... 그 죽음의 끝에서 벨리안느가 선택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23일 간의 쉴세없는 추격으로, 또한 그 이전부터 전 대륙의 연합 작전으로 그녀는 이미 만신창이였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어쩌면 저 또한 그녀를 잡는데 필요한 마지막 한 방울이었던 것 일수도 있겠군요.”


벨로나는 자신의 의견을 접고 다시 그때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뭐... 격전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그녀와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 외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충분히 설득을 하여, 그녀를 포박하는데 성공했고 그 뒤로는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뭐... 이렇게 말하고 보니 조금 시시한 이야기였군요.”


“아닙니다. 대륙의 공적을 그만큼 몰아붙였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니엘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이야기 속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벨로나를 추궁할 처지는 아니었기에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재밌는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괜히 귀하의 수면 시간만 뺏은 꼴이 된 것 같군요. 아무튼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불침번을 교대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일부러 이야기를 끝내려는 기색이 짙은 말이었기에 카니엘은 그녀의 말을 명령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거의 반강제적으로 깨어있던터라 더 이상 이야기할 체력적인 여유도 없었고, 내일 걸어야할 거리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카니엘이 그렇게 잠자리에 들자 벨로나에게 깊은 바다와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밤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풀들의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벨로나의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으며, 그 고요함 속에서 벨로나는 스치듯 지나쳤던 벨리안느와의 만남을 회상하려 했다.


그러나 잊었던 자의 목소리로 벨로나의 회상 시간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궁금한 점이 있군. 과연 그때 대륙의 공적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지?”


야영지 끝에 자리 잡아,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샤즐 노리탄의 목소리였다.


“아무도 알수 없는 대화. 그곳에 아무도 없었고, 이송 중에도 그녀와 접촉할 수 있었던 사람은 너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벨리안느와 잦은 면회를 가진 것도 벨로나 너였고, 그런데 목을 벤 것도 벨로나 바로 너였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벨로나가 차갑게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닐세. 단지 자네와 벨리안느의 관계가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했을 뿐이니까.”


“벨리안느를 통해 제가 마법 가용자임을 알았다고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일을 해결하고자 자주 찾아갔던 것뿐입니다. 게다가...”


벨로나가 잠시 뜸을 들였다.


“단지 그녀를 계속 만나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8살 때 저지른 실수로 세상에게 버려진 그 아이를 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의 목적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저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뿐이네.”


“그럼 주무십시오. 내일까지 렌소 협곡에 진입할 예정이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벨로나의 차가운 대꾸에 샤즐은 잠시 뒤척이는 듯했고, 잠시 뒤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다.


그 고요 속에서 벨로나는 샤즐이 던진 질문을 되새기며, 과연 벨리안느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전 대륙을 속여가면서 벨리안느를 구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스스로를 원칙주의자라 생각했던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위험천만한 일을 자처했는지를 떠올렸다.


“순수한 최악의 사형수... 부디 잘 살아있길.”


벨로나는 흔들리는 풀 소리같이 낮으막하게 중얼거린 뒤,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약속을 맹세한 몇 안되는 사람중 한사람인 벨리안느가 부디 그 약속을 잘 지켜주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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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8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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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2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5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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