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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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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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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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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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3)

DUMMY

카니엘의 흐릿한 시야에 햇살에 반짝거려 은빛처럼 보이는 금빛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벨로나.. 단장님?”


심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이름을 불러본 카니엘은 그러나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야 넘어로 눈앞의 형태가 또렷히 보이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너는....?”


카니엘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서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핏빛 구슬과 추격군, 신체향상 부작용과 한 소녀.


그렇게 카니엘은 소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소녀는 살짝 겁에 질린듯한 표정을 짓으며 상체를 뒤로 물렸으나, 자리를 떠나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듯 무릎을 꿇은채 앉아있는 하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니엘이 머리를 감싸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토끼처럼 튀어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니엘은 그녀의 대응에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신체향상 부작용이 아직도 남아 있어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이겨내느라 이를 꽉깨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신병 시절 귀가 닳도록 들었던, ‘일주일간 꼼짝도 못할 고통’까지는 아니었고, 그것에 의아하던 찰나, 문득 소녀가 전투 때 보여줬던 마법들이 생각났다.


“신체향상 부작용...네가 치료해줬나?”


소녀가 꽤 실력있는 마법사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어 그렇게 물었고, 그러자 소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 이름이 어떻게 되지?”


“이자벨 베로에.”


벨리안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카니엘의 물음에 재빨리 답했다. 신체향상 부작용으로 쓰러진 사내를 치료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소개할 가명을 미리 생각해놨던 것이었다.


“난... 카니엘 시닉스라고 한다. 이거... 어떻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카니엘이 벨리안느를 빤히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튼..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줘서 고맙다. 어... 이자벨.”


“으..응.”


벨리안느는 카니엘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땅만 보고 그렇게 답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카니엘은 이자벨의 정체를 의심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야기를 이어갈 시간은 없음을 깨달았다.

벨로나 일행을 찾는 것은 물론, 언제 추격군이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지금 이곳에 인형뿐만 아니라 월영군도 있으니까 조심하도록.”


카니엘이 뻣뻣한 다리를 힘겹게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그렇게 말을 건넸다.


이후, 일단 렌소협곡을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첫 발을 떼었지만 그 걸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그 소녀가 머뭇거리며 카니엘 뒤를 조심히 따라왔던 것이었다.


“무슨 볼일이라도?”


“...같이.....”


벨리안느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카니엘은 그런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데 필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 같이 가고 싶다 그건가?”


카니엘의 물음에 벨리안느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카니엘은 갑작스러운 동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여정에 아무 관계도 없는 소녀를 데리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안되겠는걸. 그리 쉬운 여정이 아니라.”


그러나 벨리안느는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카니엘의 말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가 벨로나와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전혀 상상 할수 없었지만 어쨌든 벨로나가 월영시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면, 벨리안느 또한 무조건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마.. 마법사가 있으면.. 조.. 좋을 거에요.”


돌아서는 카니엘에게 벨리안느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 카니엘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만 곧 이동을 속개했다. 하지만 벨리안느는 멀어지는 카니엘을 재빨리 따라잡았고, 그렇게 카니엘이 멀어지면 벨리안느가 다시 따라잡는 이상한 이동이 10여분 동안 계속되었다.


“좋아. 네가 따라가려는 이유는 도대체 뭐지?”


처음에는 애써 무시했던 카니엘도 결국 다시 걸음을 멈추고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벨리안느가 예상하고 있었던 질문이었기에 나름 자신 있게 말했다.


“벨로나를.. 만나야 해.”


갑자기 모르는 소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벨로나의 이름에 카니엘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어떻게 벨로나 단장님을 알고 있지? 그리고.. 어떻게 벨로나 단장님이..아.”


카니엘은 이자벨이 어떻게 벨로나의 행방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문득 자신이 수도 없이 벨로나를 찾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벨리안느가 자그맣게 덧붙여 말하자 카니엘은 잠시 고개를 까딱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넌 마법사이지 않나? 월연방국에서 벨로나 단장님이 마법사를 친구로 둘 수 있는 건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질문이 나오자 벨리안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어떤 작전에서..”


생각나는대로 말하던 벨리안느는 카니엘의 표정을 살피면서 자신의 말이 먹히길 바랬다.


“그래? 흠.. 그렇다면 어디 출신이지?”


“도시연합.”


“.. 그럼 왜 벨로나를 만나려 하는 거지?”


“알려줄게 있어.”


“그게 뭐지?”


“.....벨로나에게만 말해야해.”


“중요한 일인가?”


“..엄청.”


단답형으로 재빠르게 이어지던 말속에서 카니엘은 유일하게 벨로나에게 중요한 볼일이 있다는 말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녀 혼자 렌소 협곡을 헤메진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렌소 협곡을 통해 월영시로 가려고 했단 말인가?”


“응.”


“이런 전투상황에서도 가로질러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거지?”


“응.”


카니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고민해야 했다.


일단 마법사가 함께 한다면 벨로나를 찾는데 굉장한 이점이 될 것은 분명했다.

이자벨의 마력 감지 실력은 미지수였지만, 맨 눈으로 흔적을 찾으며 이동하는 것보단 마력감지로 벨로나의 마력을 찾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정체가 마음에 걸렸고, 무슨 단서라도 있을까하여 저도 모르게 이자벨을 빤히 바라보게 된 카니엘이었다.

그때 벨리안느는 손으로 엉크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던 중이었고, 그러다 카니엘의 시선을 느껴 자연스레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카니엘의 갈색 눈동자와 벨리안느의 연녹색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그러자 무의식적으로 카니엘의 얼굴을, 아니 여지껏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던 대륙 공적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정말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인간과 나누는 대화.. 그 사실을 불현듯 인식하자 그것이 두려운 것과 동시에 기뻤던 것이었다.


“.. 왜 그러지?”


카니엘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고서야 벨리안느는 뒤늦게 자신이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흐르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아냐..”


벨리안느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치면서 동시에 어떤 해명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왜 눈물이 나왔는지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할 때였다.


“그냥.. 기뻐서..”


어떨결에 나온 반본심에 벨리안느 본인은 물론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던 카니엘마저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곧, 카니엘은 이자벨이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을 홀로 해왔으며,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린 것이라 이해해버렸다.


“좋아.. 일단 이곳을 같이 빠져나가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여전히 소녀의 정체에 대해서 그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지만 최소한 그녀에게 나쁜 의도는 없다고 믿고서, 그렇게 결론낸 카니엘이었다.

아니, 어쩌면 눈물이 떨어지던 그녀의 눈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감정들 혹은 자신과 정반대의 성질을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것일수도 있었다.


카니엘의 말에 벨리안느는 눈물을 훔치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고, 기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 미소에 카니엘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 낯선 감정에 허우적거리기 전에 카니엘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벨리안느가 졸졸 따라가면서 두 사람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7장 조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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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1) +1 20.10.15 59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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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1) +2 20.10.05 71 3 12쪽
90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3) +1 20.09.29 44 2 11쪽
89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2) +1 20.09.28 40 2 10쪽
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8 3 9쪽
»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3) +1 20.09.16 63 2 9쪽
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2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5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39 2 10쪽
78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1) +1 20.09.03 36 2 8쪽
77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3) +1 20.08.11 38 2 12쪽
76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2) +1 20.08.05 42 2 11쪽
75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1) +1 20.08.05 39 2 11쪽
74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3) +1 20.07.29 41 2 7쪽
73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2) +1 20.07.29 38 2 8쪽
72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1) +1 20.07.28 34 2 9쪽
71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5) +1 20.07.24 41 2 7쪽
70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4) +1 20.07.24 41 2 8쪽
69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3) +1 20.07.16 43 2 10쪽
68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2) +1 20.07.14 40 2 9쪽
67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1) +1 20.07.14 43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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