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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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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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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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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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DUMMY

터질듯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미 칼을 쥐어든 손은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한지 오래였지만, 그와 반대로 머리카락에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피의 미세한 움직임을 털끝 하나 하나로 느낄 수 있었다.


카니엘은 그렇게 예민해진 감각을 곤두세운채 피를 갈구하는 짐승처럼 풀숲과 나무사이를 거닐며 전투에서 낙오된 인형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때로는 인형들의 본대와 마주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몇번이나 겪었음에도 그의 검은 다음 목표물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인형.....”


또 다시 그의 확대된 눈동자 속에 방황하고 있는 한 기의 인형이 각인되었다.

그 인형은 협곡의 단층을 따라 층층이 이어지는 길을 빠져나가는데 온통 신경이 팔려 있는 듯했다.

그렇게 지나온 길보다 나아갈 길에 집중하는 인형은 무방비 상태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카니엘은 인형의 뒤측으로 재빨리 이동하여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촥....


정확히 찔러들어간 검은 인형의 목뼈를 으스러뜨리며 목을 꿰뚫었다. 그 뒤, 카니엘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목에 박혀있는 검을 비틀어서 다시 내빼었고, 그러자 어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새빨간 피가 인형의 목에서 솟구쳐나왔다.


쏟아지는 피를 뒤집어쓴 카니엘은 힘 없이 쓰러지는 인형을 바라봄과 동시에 재빨리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손 전체가 이전에 묻은 피로 뒤덮혀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묻은 피를 닦아내리란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


여러 차례 시도 끝에도 흔적이 지워지지 않자, 카니엘은 우두커니 서서 피로 물든 손을 내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귓가를 가득 메우던 심장 박동 소리가 잦아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자신의 신체 향상 마법의 효력이 다했음을 깨달았고, 이어서 벨로나와 떨어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젠장···”


카니엘만이 겪는 신체향상 부작용.


신체향상을 한채 인형과 조우하게 되면, 알수 없는 힘을 얻게 되는 것과 동시에 이성을 잃고 인형의 피를 갈구하게 되었고, 이번에도 인형처분에 정신을 팔려 정작 중요한 벨로나의 행방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형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부지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단순히 원망만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난간 일에 원망을 할 바에 어서 바삐 벨로나를 찾아 떠나는 편이 나았고, 그러기 위해 그나마 깨끗한 옷깃 부분을 찾아 눈가를 대충 닦던 순간이었다.


전방 숲속에서 금빛 실오라기 같은 무언가가 휘날리는 장면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단장님?”


자연스레 벨로나의 머리칼 색과 그것이 전투중 휘날리는 것을 떠올린 카니엘은 살짝 긴장한 채로 그렇게 외쳤다.


“벨로나 단장님?”


그러나 그 외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위험을 무릎 쓰고 좀 더 큰소리를 내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멀리서 기폭 마법의 울림만 간간히 전달될 뿐, 자신 바라보는 숲속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시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무시했다간 뒤에서 공격 당할 확률도 있었고, 때문에 이 상황에서 카니엘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였다.


카니엘은 발소리를 최대한 줄인 채, 자신이 금색 머리칼을 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금빛 형체를 보았던 나무 근처에 다다르자 그는 칼을 움켜쥔 채 나무 뒤의 가상을 적을 향해 찌를 자세를 취했다.

아직까지 나무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카니엘의 본능은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카니엘은 그에 따르기로 했다.


“흡.”


그렇게 카니엘은 짧은 숨소리와 함께 나무 뒤를 돌아서 칼을 휘둘렀다.

공격 대상의 존재가 무엇인지 채 인지하기도 전에 칼끝으로 전해지는 충격으로 우선 그 실체 여부를 확인했고, 곧바로 카니엘의 눈동자 안으로 금빛 머리칼을 지닌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형?”


여전히 공격 자세를 취한 채, 재빨리 뒤로 물러선 카니엘은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입밖으로 그대로 흘렸다. 그러나 그 생각에도 곧바로 공격하지 못한 것은 인형이라고 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로나의 머리칼로 착각했던 눈앞의 존재의 머리칼은 똑같은 금빛이긴 했으나 산발인 상태여서 착각을 했다는 것이 민망한 수준이었고, 얼굴은 몇 일간 산속을 해멘듯이 꾀죄죄하여 티끌 없이 만들어진 인형의 그것과도 달랐다.

그러나 그렇게 초라한 외견과 달리 커다란 눈과 엷은 쌍꺼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연녹색의 눈동자는 카니엘의 공격을 멈출만큼 깊었다.


“누구냐?”

카니엘이 그렇게 다시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카니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다시금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려 했지만, 인적이 드문 렌소협곡에 칼을 든 채 서 있는 여자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결국 처음 들었던 생각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인형이군.”


그 말과 함께 카니엘이 돌격하여, 그 여자가 들고 있던 검을 올려쳤다.

그러자 그 어떤 저항도 없이 그 검은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졌고, 그 이질적인 반응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품안으로 칼을 밀어 넣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카니엘이 꽉 쥔 검은 그 어떤 방해도 없이 그녀의 목을 관통하는 듯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그때 알 수 없는 힘이 카니엘을 밀쳐내었다.


뒤로 수십보 가량 날아간 카니엘은 나무에 부딪히며 칼을 놓치고 말았고, 그 순간 자신의 목숨이 끝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체 향상이 끝난 상태에서 인형의 마법을 맞았으며, 더군다나 칼마저 놓쳤으니, 다음으로 다가올 것은 죽음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니엘이 마법으로 맞은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검을 붙잡을 때까지 그 인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전과 마찬가지로 가느다란 검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방어적인 태세만 취하고 있을 뿐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시금 공격을 이어갈까 하던 카니엘은 수상한점을 두 가지나 보였기 때문에 일단은 공격을 멈추기로 했다.


“누구냐?”


그렇게 카니엘은 공격적인 자세를 고치면서 질문을 던졌으나, 여자는 침묵했다.


오직 저 먼치에서 들려오는 기폭 마법 소리와 전투 함성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로 흘렀으며, 그렇게 좀더 시간이 지나자 카니엘은 아예 칼을 든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 소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체가 무엇이냐?”


카니엘의 발걸음이 다가갈수록 금발 소녀의 연녹색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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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8 3 9쪽
87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3) +1 20.09.16 62 2 9쪽
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2 2 8쪽
»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5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39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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