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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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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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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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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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옆집의 마녀 1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그는 언제까지나 시체를 싣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시신을 어디에 둘지 그는 정할 수 없었다. 해결책은 없고 생각만 복잡해질 뿐이다. 바쁘기도 했고, 적응이 안 되었기에 어쩔 수 없다며 그는 현실을 외면하려 들었다.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다. 알지만 그는 선택할 수도 현실에서 멈춰 설 수도 없었다.


그는 일과처럼 시신을 대면한다. 속 뚜껑을 열고 만세형을 대면하면 그는 다시 자각하고 만다. 자신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고 살고 있음을.


-미친놈! 저 미친놈 눈 봐!


정말 미친 것이었을까. 그는 부정하려고 애쓰던 그 말이 어쩌면 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체를 숨기려 냉동트럭을 구입할까. 뻔뻔하게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을 시신과 함께 싣고 다닐까.


‘난 정말 미친 것인가.’


그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그것이 그의 불만족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이 행복해도 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는 만세형을 돌려보내는 선택지를 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지 않는 것은 온전히 그의 욕심 때문이다. 자수했다가 범인으로 몰릴 수 있고, 살인죄의 누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며 범인을 찾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합당해 보이는 이유라 할 수 있지만,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살던 그에겐 참혹한 시련이었다. 이미 그는 자신이 세운 원칙을 무시하며 살고 있다. 죄를 덮기 위해 계속해 죄를 짓고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만세형이라 부르는 죽은 이의 가족이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알면서도 돌려보내지 못하는 것,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죄다.


그는 이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 행복에 절어 사는 것이 못마땅해 불행해지려 시신을 마주하고 자신의 죄를 대면하는 것이다.


-오빵!


자학에 빠져들려 할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정된 알림음의 주인은 그에게 가족을 알게 해주는 소녀다. 작고 여려 보이지만, 당돌하고 인내심 강한 자신과 많이 닮은 소녀다. 때를 벗겨내듯 빈곤을 벗어난 소녀는 더는 남자아이라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이는 가까이 있는 그나 마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함께 시장이라도 나가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말을 상인들이 내뱉게 만들어 그를 기쁘게 해준다. 어린 동생의 메시지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오빠, 언제와요.]


여전히 눈을 피하고 말을 걸지 않으면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드물지만, 준서는 메시지를 보낼 때 애정과 관심을 여지없이 드러내곤 한다. 그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메시지가 쏟아지곤 했다. 그는 새로운 메시지가 오기 전, 집 앞이라고 빠르게 답장했다.


[언니랑 해물탕 끓였어요. 오빠 오면 먹으려고 기다리는 중...꼬르륵.]


“흐으... 귀엽다니까.”


하트 열 개와 함께 곧 들어간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는 만세형의 관을 닫았다.


“잊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잊겠어... 젠장.”


찾을 방도가 없다. 모은 단서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떠올리지 못했다. 어떻게 검은 표범 차주를 찾아가 그에게 진실을 들을 수 있을까. 만약 그가 아니라면..... 카센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검은 벤츠의 키 큰 남자는 관련이 있을까.


오늘도 생각만 할 뿐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그가 여실히 집이라 느끼는 온기를 더해주는 곳, 그리고 두 사람이 기다리는 곳. 무뚝뚝하지만 그를 알아보기는 하는 집돌이가 사는 곳이 그의 집이다.


*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변에 변화가 있어도 그와 상관없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겉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변화에 무감각했다. 하지만 맞은 편 집이 공사를 시작하자 남의 일로 여길 수 없었다. 철거를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들어오는 자재와 인부들이 가진 장비들은 집을 꾸미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해줬다.


‘제정신인가? 왜 이런 곳에 들어와 살려는 걸까.’


속이 답답해지는 이유는 시끄러운 소리와 날리는 먼지들 때문은 아니다. 그의 집 담장 옆에 선 차에 있는 만세형 때문이다. 혹시라도 공사장 인부들이 그 존재를 눈치챌까봐 그는 걱정했다. 큰 냉각기를 돌릴 때보다 적지만 분명한 소리가 난다. 멈춰 선 차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이상하게 보고 의문을 가지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고 마나에게 빈차에 냉각기가 돌아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 말할 것 같아 불안해졌다.


“어르신, 누가 집을 샀나 봐요.”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알려고 든다. 그 호기심으로 인류는 성장해왔다. 유전자 깊은 곳에 남은 생존본능이 그에게 정보취득을 명령했다. 그는 빠르게 정보 취득할 수 있는 존재를 가까이하고 있다.


그는 과연 폐촌이라 불리는 곳에 누가 들어와 살려할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들어와 사는 이들은 더러 있지만, 집주인들이 유지비라도 벌려고 싸게 내놓은 매물을 보고 온 가난한 이들이다. 집 주인들은 대부분 다시 땅과 집값이 오르길 기다리는 중이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동네에 있는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해 살려는 이는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다.


“철거는 아닌 것 같던데.”


언제 철거가 될지 모르는 곳인데 집주인이 아니라면 수리를 할까 싶었다.


“이쪽 집들은 그때 재개발하려고 들어왔다가 부도나서 도망간 회사에 묶인 곳들인데 말이야. 경매로 나와 있었다고 하더라고.”


동네일에서 눈을 감고 손을 떼었다지만, 이씨는 여전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재개발 소문이 퍼지며 투기꾼이 과하게 몰려왔고, 서로 사고팔며 가격은 급속히 치솟았다. 건설업체들이 어떻게든 진행해보려 돈을 빌려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이 폐촌이 된 가장 큰 이유다. 시장과 공무원에게 줄 돈을 마련하려 건설비를 아낀 것도 문제였다. 건설사 한 곳이 무너지자 도미노처럼 투자처가 우수수 무너지고 말았다. 폐촌이 된 동네의 70%가 그렇게 경매로 묶였다. 투자를 했던 시의 재정도 적자가 나버렸다. 책임질 사람은 도주해버렸고, 투기에 몸을 던진 이들은 하늘만 원망했다.


돈 벌 욕심에 끝까지 집을 내놓지 않던 이들은 도산한 업체들처럼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 집은 여전히 존재했고 변한 것은 한때 올라간 시세가 급락한 것이지만, 집주인들은 손해를 봤다고 말한다. 기존 소유주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빠르게 상승하는 시세거품을 알면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땅과 집을 구매한 것이다. 재개발 잠정 중단 이후 당연하게도 거품이 잔뜩 낀 가격에 사려는 이는 없었다. 빚까지 내 구입한 이들은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집을 은행에 줘버려야 했다. 그것이 싫어 붙잡고 있던 이들은 가진 재산을 다 잃고 난 후 폐촌에 들어와 살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달동네 아래쪽 동네. 달동네와 비교하면 부촌인 그의 집 근처는 그런 태풍에 가장 크게 휘둘린 지역이다.


“이상한 일이네요. 뭘 보고 여길 고른 것인지.”

“그러게 말이야. 경매가가 싸다고 해도 거기에 달라붙은 것들이 많아서 그거 처리하지 못하면 도로 뺏긴다고 들었는데.”


도심에 위치한 동네라 시세는 과거에도 낮지 않았다. 거품이 빠졌다고 평가받는 지금도 과거보다 높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거래가 없음에도 그렇다. 매매는 없고 전월세거래만 간간히 이뤄지는 곳이다. 집을 사는 것도 어렵다. 은행에 묶인 물건들에는 수많은 빚들이 달라붙어 있다. 그걸 감소하고 살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자신의 집만 새로 짓는다고 해도, 주변이 온통 오래된 가옥과 철거하다만 빈집인데 누가 살려고 할까.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야 해당 부지 이외의 곳들도 살만한 곳으로 여겨지게 된다.


“네에.... 그런데 누가 샀데요?”

“그게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고, 저 집하고 옆집까지 다 사버렸다는데?”

“두 채나요?”

“어, 땅까지 전부. 그래서 저렇게 담장 허물고 같이 공사하잖아.”

“재개발 물 건너간 걸 모르는 사람일까요.”


이씨는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러겠어. 거품 빠졌다고 해도 땅값도 비싼 곳이라 시가인가 뭔가, 경매가격도 높아서 아무도 안 사던 집들인데.... 통장도 누가 주인인지는 모르나봐. 뭐 아는 게 있겠어? 이 동네 주민도 아니었고, 여태 정남이 자네가 사는지도 몰랐던 여편네인데.”


이씨가 통장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낼 때, 그는 새로운 이웃이 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키우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인가....’


분위기 나쁜 곳에 들어와 살려는 이의 모습은 어딘지 음침하고 불길한 느낌을 풍길 것 같았다.


‘친해지지 말자.’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해도, 그는 숨기는 것이 있기에 친분을 다질 생각이 없었다.


‘짜증나는군.’


그는 지금 영역을 침범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골목에 사는 유일한 거주민이라는 강점이 집수리를 해서 들어오려는 이들로 사라졌다. 그는 새로운 입주민과 주차문제로 싸우게 될 것도 걱정했다. 그의 차가 서 있어 큰 차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이다. 공터에서 차를 돌려야 그도 차를 뺄 수 있다. 만약 그 장소에 새로운 입주민의 차가 선다면, 그는 매번 후진으로 들어와 서야 하거나 후진으로 비탈길을 내려가야 한다.


‘담 허물고 거기에 주차장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골치 아픈데.’


후방카메라가 있지만 곧게 뻗은 길이 아니다. 차가 길어 후진하기 어렵다. 아직 차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한 그였기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짜증은 더해져갔다. 그렇다고 공터에 차를 세우지 못하게 할 명분도 없다. 입주민이 사들인 집은 골목 좌측의 끝집과 그 아래 집이다. 공터에 붙어 있어 우선권이 높다.


“뼈대는 살리고 보강하고 뭐 그렇게 공사한다더군. 좁은 방들은 다 틔워서 크게 만들고, 층마다 방 하나정도만 남긴다는데... 그게 요즘 스탈이라더구만.”


“아... 전 층 다 개조하나 보군요.”


이씨의 말을 듣고 그는 주차난이 생각보다 심각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될까. 조용하던 삶은 이제 끝이 났구나, 그는 걱정했다.


“옆집까지 샀다는 것을 보니 나중에 새로 지을 건지.... 저쪽 집은 거의 다 허물고 있더라고. 거긴 철거하다 중단된 곳이라 새로 짓는 것이 빠르겠지...”


먼지를 막기 위해 세워둔 가벽으로 내부 현장을 볼 수 없는 그와 달리 반대쪽 높은 지대에 사는 이씨는 공사현장을 제법 볼 수 있었다. 3층의 큰 집은 내부수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고, 아래쪽 2층집은 완전히 허무는 중이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면 좋겠네...’


친해지지 않을 생각이지만, 껄끄러운 상대를 곁에 두고 싶지 않기에 그는 어느 정도의 교류는 할 생각이다. 그 선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그는 벌써 머리가 아파왔다.


*


준서가 온 후 그는 거의 매일 차를 몰고 나갔다. 냉동기를 끌 수 있게 되었기에 회사의 다른 물품들도 거부하지 않고 싣고 다닌다. 가끔 발생하는 아르바이트도 나갔다. 준서와 마나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와는 서먹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만약 돈에만 매달렸다면 계속 그런 생활을 보냈을 것이다.


그는 준서, 그리고 마나와 함께 보낼 시간을 만들기 위해 주말에는 되도록 일을 쉰다. 특송이 있을 경우에만 몇 시간 다녀오는 정도다. 가끔은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 참치 해체 쇼를 보여주고 직원 특가로 음식을 먹고 돌아오기도 한다.


‘일십백천...’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를 통장에 찍힌 숫자로 확인하고 그는 믿기 어려워했다.


“잠 줄이면 돈 버는 일이 운전일이라더니...”


뿌듯해하며 몇 번이나 통장 잔고를 확인한 그는 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나씨. 외식하죠. 제가 쏠게요. 네, 월급 나왔어요. 지금 들어가는 길이에요. 아... 그렇겠죠. 네, 열두시 넘었는데.... 죄송해요. 뭐 먹고 싶은 것도... 네, 살찌겠죠. 아, 아이스크림? 그건 살 안 쪄요? 흐으. 알았어요. 문 연 가게 있으면 사 갈게요.”


*


신경 쓰이는 공사는 그가 첫 월급을 받은 4월 초까지 이어졌다.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는지 가벽은 벗겨지고 비계라 불리는 발판들도 모두 철거되어 있었다.


‘돈이 좋긴 하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창들이다. 2층과 3층에 있던 작은 창들은 사라지고 벽 하나가 통째로 창이 된 듯 커다란 창들이 들어서 있었다. 또 3층 창 앞으로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었다. 발코니를 지탱하는 네 개의 철 기둥 안쪽에도 나무 바닥이 깔려 있다. 날씨에 따라 2층과 3층을 오가며 차를 마시는 고상한 여인의 모습을 그는 상상했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사라진 집터에 만들어진 마당과 주차장이다. 2층집을 철거한 자리에 만들어진 주차장에는 그의 차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넓은 주차장 주변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주차장과 집터와는 단차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또 흔하게 볼 수 없는 양식의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계단은 집의 현관과 이어진 지붕을 쓰고 있었다. 아치형의 계단 지붕을 보고 그는 이사 온 이가 외국인이 분명하다 여겼다. 계단 끝에 선 차양을 받치는 두 개의 기둥은 학창시절 세계사책에서 본 어느 신전을 떠올리게 했다.


주차장에서 차양이 씌워진 일곱 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현관까지 이어진 평지가 나오는데, 그 주변은 온통 잔디밭이다. 몇 걸음 걷다보면 또 계단이 나온다. 본래 반지하라 불리는 1층을 포함한 3층 주택이었는데, 현재는 1층이 사라져 있었다.


‘창고로 쓰지. 아깝게.’


일층이었던 곳은 잔디 아래 흙에 덮었을 것이라 그는 추측했다. 잔디가 깔린 둔덕위에 집을 세운 모습이 되었다.


직사각형의 집은 측면과 정면에 있는 창문의 모양과 형식이 완전히 달랐다. 테라스와 발코니가 연결된 2,3층의 측면에는 커다란 통유리 문이 달려 있다. 정면의 창문은 계단과 기둥, 아치형 차양과 어울리는 외국 건축양식이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이층의 창은 세계의 창이 붙어 있는데, 둘은 위로 올려 여는 형식이고, 가운데는 고정된 채 앞으로 툭 튀어 나와 있었다. 삼층 창은 그와 달리 여닫이문으로 보였고, 네모반듯하지 않고 위쪽에 아치형 창틀이 붙어 있었다. 2층 창 앞으로는 현관문과 단차가 없어 보이는 나무 바닥이 깔려 있다. 그곳엔 흔들 그네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외에도 나무 의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포치라 불리는 입실 전 대기하는 공간이지만, 그는 노인들이 나와 쉬기 좋은 곳이라고 여겼다.


그가 보기에도 사용한 재료들이 흔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을 많이 써 그는 유럽의 작은 궁전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중충한 분위기를 내던 단조로운 벽돌집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에 그는 놀라고 있었다.


‘외국인일까? 그렇다면 다행인데.’


외국인일지 모른다 생각하자 그는 마음이 놓였다. 영어를 잘 못하니 친해질 이유도 없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안심하며 시동을 켜던 그때, 그의 귀에 영어로 된 욕이 들려왔다. 그 환청의 주인공은 마나와 인나였다.


‘....젠장.’


외국인이 가까이 살면 마나와 급속도로 친해질 것임을 그는 예상했다. 그의 상상은 어느덧 냉각기를 왜 계속 돌리는지 묻는 외국인과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는 마나의 얼굴까지 도달했다.


“...영어를 배워야 하나.”


냉각기를 왜 돌리는지 변명을 준비하려면 영어부터 배워야 한다. 막막해졌지만 그는 시동을 켜고 차를 움직였다.


“아이... 해브 트럭. 마이 트럭이즈...베리 쿨...엔드... 섬세... 센치? 예민해서 쿨러를 계속 돌려야 한다.... 소... 벗. 노노... 냉장고로 쓸 수 없으니 이상한 부탁은 하지 마라... 돈...부탁이 영어로 뭐더라...”


알던 단어가 아니라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 비슷하면 알아들으려나. 음...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관심 끄라고, 관심이 뭐지. 음? 담장에 뭐가 붙어 있었구나.”


그는 차를 움직이다 울타리의 빈 구멍이 투명한 재질의 무언가로 채워진 것을 확인했다.


집 전체를 두른 담장도 흔히 쓰이는 형식이 아니었다. 잿빛 콘크리트 벽돌담이 흔한 동네였기에 새로 만든 담장은 눈에 잘 띄었다. 구멍이 많은 자연석을 쌓고 그 안을 붉은색 반죽으로 채운 1.5미터 높이의 담장위로 금속으로 된 장식 울타리가 올라가 있었다. 베베 꼬인 잎과 가지, 꽃잎들이 뒤엉켜 있지만 틈이 많아 안이 보인다. 그 구멍들로 누가 담배꽁초라도 버리면 어쩌나, 쓰레기를 던지면 어쩌나 걱정하던 그였다. 외국인에게 불쾌감을 주어 한국인 전체가 욕먹을 것을 걱정한 것이다. 혹은 가까이 사는 자신들을 오해할까봐.


“담장은... 우리집이 제일 높았는데....”


새로 만든 집의 담장높이는 2미터가 훌쩍 넘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담장을 만들었던 그는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


-모텔 아닌가?


드러난 집을 보고 이씨는 모텔이라 확신했다. 그도 듣고 나니 그럴싸하다 느꼈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것은 옥상이다. 옥탑방이라 불리던 불법건축물이 서 있던 곳에 지금은 탑이 서 있다. 반원형의 지붕을 가진 탑이다. 외벽도 붉은 벽돌을 벗겨냈는지 덧바른 것인지 대리석과 자연석 회반죽으로 꾸몄는데, 옥상의 난간은 성벽처럼 오목하고 볼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에서 누구라도 성을 떠올릴만한 곳이었다.


-별장 아닐까요...?


준서만 조금 다른 관점을 보였다. 과연 누가 볼 것 없는 폐촌을 별장으로 삼을까 라는 의문이 남지만, 그는 준서의 의견이 그럴듯하다고 한참 떠들어주었다.


“외국에서 왔으니 이런 한적한 분우기가 좋을지도 몰라.”


그는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준서는 그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준서는 자신이 즐겨보는 책에 나오는 특정인을 떠올렸다.


‘마녀일까.’


귀신이 나올법한 동네로 이사한 사람. 그런 사람의 집이 동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준서도 건너편 집을 보고 자랐기에 변화에 크게 놀라워했다. 마치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까지 하는 중이다.


마녀는 숨어서 살지만 마법을 부릴 수 있어 위기를 쉽게 벗어나곤 한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던 준서는 마녀가 되고 싶었다.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쩌면 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


준서가 학교에 갈 결심을 했다. 상처가 거의 아물었거나, 교복이 준비되어서가 아니다. 그는 준서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옷과 신발을 사며 교복도 맞춰주었다. 그때의 준서는 자신감이 없었는지 쉽게 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준서가 결심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는 마나가 인형처럼 껴안고 다니며 이것저것 가르쳐준 결과 화장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준서가 용기를 낸 이유는 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준서를 본다. 경계 없이, 사랑스럽게. 말로 하지 않아도 눈을 마주친 순간 눈웃음을 짓는다. 준서가 경계하지 않고 어른을 대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처음엔 부담을 느꼈지만 준서는 곧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의지해도 좋은 존재, 자신을 정말 아껴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점들을 느낀 준서는 용기 낼 수 있었다. 더는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됨을 알게 된 것이다.


월요일부터 학교에 나가기로 한 준서를 위해, 또 그동안 고마웠음에도 해주지 못한 것이 많다 여겼기에 그는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준서와 마나를 끌고 나왔다. 영화를 보고, 함께 식사를 한 후 그가 먼저 두 사람을 쇼핑몰로 데리고 갔다.


“학용품 샀고. 가방도 샀고. 신발도 샀고. 또...”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그는 준서가 다른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게 더 많은 것을 사주고 싶어 했다.


“이미 충분한데...”

“아냐, 살 때 다 사자. 공도 살까? 운동 안 좋아해? 아, 자전거도 살까? 그래 자전거 사러가자.”

“자전거는 아르바이트 돈 받으면 살게요.”

“음? 어? 아르바이트?”

“날씨.”


준서에게 할 말이 있던 그였지만 마나의 부름과 그녀의 걱정 어린 눈빛에 시선을 돌려야 했다.


“왜요?”

“잠깐 나 좀 봐요.”


마나는 그를 끌고 준서에게서 멀어진 후 속삭였다.


“왜 이렇게 무리해요?”

“아아... 괜찮아요.”


그는 자랑스럽게 통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우오? 오오...? 우리 날씨 갑부였네?”

“크흑.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뇨. 이 정도가 매달 들어오면... 저보다 연봉 높은데요?”


그 순간 그는 억 소리 나던 인나의 연봉을 떠올렸다.


‘마나씨도 많이 받겠지...’


순간 마나의 연봉이 얼마인가 고민했다. 뿌듯하던 마음도 조금은 식었다.


“이번 달은 초반에 저 혼자 일한 날들도 있고, 특송도 잦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래서 많은 거예요. 다음 달은 반 정도밖에 안돼요.”


“반? 반이면... 음 나보다 조금 작은가...”


작게 말했지만 그는 분명히 들었다. 인나보다 입사년도가 늦은 마나보다는 많겠지 싶었던 그였다. 한없이 높았던 그의 자존감은 적당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앞으로 마나 앞에서 돈 자랑은 하지 말자 생각했다.


“나도 사줄 거예요?”

“그렇게 예쁘게 눈짓 안 해도 사줄게요. 뭐든 좋아요. 마나씨에게 얻은 것은 물건으로 보상할 수 없는 것이니.”

“제가 뭘... 저야말로 날씨에게 받은 것이 적지 않아요.”

“아...”


두 사람은 서로를 지그시 보았다.


“오빠, 배고파요.”


준서가 적절한 시간에 끼어들어준 덕에 두 사람은 민망함을 느끼기 전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음? 준서가 뭘 사달라고 한 건가?’


그는 준서가 손을 잡아끌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 먹을래? 응? 저기 갈까?”


그는 준서도 들떴다 여기며 기쁘게 끌려 다녔다.


*


즐거운 쇼핑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마나와 준서 모두 불만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화났어? 나 정말 필요 없다니까.”


그는 자신을 위한 물건은 구매하지 않았다. 이는 그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두 사람은 이해해주지 않았다. 매일 같은 옷, 그것도 색만 조금씩 다른 운동복만 입고 다니는 그에게 마나와 준서는 옷을 사라고 종용했다. 구멍이 난 옷도 있지만, 그는 꿰매서 입고 다니는 중이다. 두 사람이 골라준 자신의 옷도 슬쩍 빼놓고 결제했다. 정신없이 쇼핑에 몰두하던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고, 차에 와서 물건을 살피던 도중 알게 된 것이다.


“옷도 구멍 나고! 신발도! 자기 거 구멍 나면 새로 사야지!”


계속 신던 운동화에 구멍이 생기자 그는 일을 참 많이 했다 여겼다. 그런 후 신발장에 있던 아버지의 신발 중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 신고 다닌다.


“내가 사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고!”


참던 마나가 폭발해버렸다.


“마나씨. 준서 놀라겠다. 살살...”

“언니 저 피곤해서 들어가 있을게요.”


알아서 피해주는 준서 덕에 그는 내일은 꼭 옷을 사러 간다고 약속해야 했다.


*


이른 아침. 기이한 소리에 놀라 그가 눈을 떠 나갔을 때, 마나도 잠옷 차림으로 나와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글쎄요.”


이른 매미소리가 아닐까 두 사람이 결론 내릴 때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기이이이. 기이이이이.


반복적으로 울리는 소리를 쫓아 그가 움직였다. 마나도 매미처럼 생긴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 두 사람은 기둥에 걸린 오래된 인터폰을 발견했다.


“허!”

“날씨! 집에 벨이 있었나 봐요?”

“그러게요. 나도 처음 봐요.”


인터폰은 화면은 없고 목소리만 전달되는 형식이었다. 그에겐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이런 물품이 생소해서가 아니라, 일 년 넘게 살며 인식조차 하지 못한 도구라 그렇다. 찾아오는 이가 없던 집이라 쓰임새가 없었다. 가끔 점퍼나 수건, 셔츠를 걸어두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그게 뭔지 그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마나도 마찬가지다.


“온도계인줄 알았어요.”

“온도계? 아, 온도 조정.... 그건 안방에 있잖아요.”

“...뭔지도 모르고 닦았었네.”


그녀는 가끔 먼지 쌓인 인터폰을 닦기도 했다. 대문에 벨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마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벨 대신 집에 있는 누군가를 전화로 부른다. 아니면 가지고 다니는 열쇠로 직접 연다. 70년도에 만들어진 낡은 대문에 벨이 있을 것이라고 두 사람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과 달리 준서는 그 물품에 익숙했다. 두 사람이 일으킨 소란에 나와 본 준서는 둘이 멍하니 보고만 있자 한숨을 쉬며 응답버튼을 눌러 말했다.


“네....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기 옆집인데요.


세 사람의 눈이 확 커졌다.


‘옆집이라니...?’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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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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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8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4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2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3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19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7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7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1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5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3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20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7 8 21쪽
»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5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21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5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5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4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6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2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7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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