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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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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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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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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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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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진실과 거짓말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남자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린 채 그에게 연락을 했다.


“전 고향에 내려갈 생각입니다. 퇴사했습니다. 전세금 빼고 그곳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겠습니다.”


그는 남자의 결정을 존중하나, 아이들의 문제는 걸고 넘어져야 했다. 그가 입을 열기 전 남자가 먼저 그 문제를 꺼냈다.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그래도 전 제 새끼라고 이뻐 했었습니다. 틀어지기 전까진, 의심이 생기기 전에는 정말 팔불출 소리 들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전 그 여자가 애들 데리고 오기 전까지 제 애들이 태어난 지도 몰랐습니다. 그것도 둘이나... 그냥 보고 믿었습니다. 외로웠던지... 애들 보려고 회식도 거부하고 일찍 퇴근했었습니다. 지금 제 모습을 보면 못 믿으시겠지만.... 제 아이들이 아닌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여겼기에 그냥은 떠날 수 없겠더군요.”


남자는 돈이 든 손가방을 내밀었다.


“적금 깼습니다. 원래 애들 대학가면 쓰려고 모았던 돈입니다. 통장으로 드릴까하다, 명의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다 뺐습니다. 많지도 않군요. 이천만원인데... 이건 증명서입니다.”


남자는 자신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이천만원을 그에게 양도한다고 간단히 쓴 종이도 그에게 주었다. 도장과 지장, 사인까지 한 종이였다. 왜 증명서까지 주는지 그는 이때는 몰랐다.


“돈은.”


“받아주십시오. 준서에게도 미안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 년에게 맞는 걸 보고 눈을 감았었습니다. 그래선 안 되었던 것인데... 나중에는 무뎌지더군요.... 며칠 내로 짐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애들 옷이랑 그런 것들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아이들을 찾게 되면.... 돈은 준서와 그 아이들을 위해 써 주십시오. 제가 해야 하지만, 전...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마음 바뀌시면 연락 주십시오.”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마음 비우고 조용히 살 생각입니다.”


그는 남자를 따라가 아이들의 짐을 찾아오려 했다. 아이들 방에 있는 물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 셋이 살던 집인가 싶을 정도로 갖춘 것이 없었다. 색이 모자라고, 짧아진 크레파스를 보고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가출하며 가지고 나와선지 준서의 물건은 더욱 적었다. 그는 준서의 흔적이 남은 물건들을 상자 하나에 담고 두 아이의 물건들도 상자에 담았다. 아이들이 쓰던 책상은 너무 낡아 가지고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책장도 책을 빼니 쓰러져버리는 고장 난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공부를 했었구나.’


그는 가져가지 않지만 혹시 준서가 그리워할까 싶어 사진을 찍었다. 방에 남은 아이들의 낙서까지 꼼꼼하게 찍던 그는 방구석 이불이 쌓인 곳에서 책 한권을 찾았다.


‘마녀의 일기?’


아이들이 보던 것인지 준서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이라 그는 남자가 있는 안방으로 건너갔다.


“이것도 애들....”


남자는 앨범을 껴안고 울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뒷걸음질 쳐 상자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차에 앉아 기다리자 남자가 다급히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신 줄 알았습니다.”

“확인을 해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아이들 물품이라고 보이는 대로 담았는데...”


그는 뒷문을 열고 가까이에 둔 상자를 당겼다.


“냉동을 계속 유지하시는군요.”


안을 살피던 남자가 말했다.


“아.. 네, 끄는 것을 자꾸 잊어서. 시동 끄면 꺼집니다.”

“그래서 켜 둔 것이군요. 시끄럽다고 쫓아 나오기 전에 서둘러야겠군요.”


주변에 민폐가 된다는 생각을 잊은 그는 급히 문을 닫고, 앞으로 달려가 시동을 껐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그가 가지고 나온 상자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가 다가설 때 남자는 상자 안에 있던 몇 가지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다.


“다 버리면... 못 견딜 것 같습니다.”

“준서도 아이들 사진은 가지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아, 그렇겠군요. 제가 제 생각만 했군요. 기다리십시오. 제가 챙겨서 나오겠습니다.”


30분이 지나서야 남자는 다시 나왔다. 사진을 꺼낼 때마다 견뎌야 했던 남자의 심정이 이해가 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락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는 궁금해 하는 인나와 마나의 질문을 피해 소식을 기다리던 준서와 마주앉았다.


“결과 나왔다.”

“저는...”

“넌 내 동생이다.”

“아....아아...오쁘아...!”

“그래. 내가 네 오빠다. 평생 오빠야.”


쓰러지듯 안긴 준서를 다독이며 그는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거짓말도 있다고, 자신이 거짓말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준서는 그처럼 꼼꼼한 아이였다.


“아빠는 내 아빠에요?”


그는 말하며 그 사실을 피했음을 깨달았다. 거짓말하기 싫은 자신의 비겁함을 바라보며 그는 활짝 웃었다.


“당연하지.”


그는 준서의 엄마가 상속문제를 걸고넘어질 땐 진실을 밝힐 생각이다. 물론 그때도 준서는 모르게 할 생각이었다. 알게 되더라도 한참이 지난 후에 알릴 생각이다.


“.....와, 오빠.”

‘음?’


아빠가 같다는 말에 준서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바란 반응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준서가 당황해 그런 것이라 여겼다.


준서가 진정된 뒤 그는 두 아이가 남자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준서는 두 동생이 불쌍하다며 한참을 울었다. 혼자 달랠 수 없어 그는 마나와 인나를 불러왔다. 두 여인을 인식한 준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금세 진정했다.


“이건 그 남자가 준 돈이야. 준서야... 난 진실이 뭔지 몰라. 그 남자가 해준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어. 그 남자가 좋은 사람인지, 악인인지도 몰라. 단편적인 것을 보면 나쁘지.... 나쁜 것은 나쁜 것이지. 그건 잊을 필요 없는 기억이야.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강요하지 않을게. 다만, 남자가 이 돈을 주었다는 것은 기억해줘. 너희 셋을 위해 준 것을....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네가 성인이 된 후에 해줄게. 그때쯤이면 네 기억도 희미해져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지금보다 더 세상을 알게 될 테고, 더 옳은 판단도 내리겠지? 그러려면 공부 많이 해야겠다.”


웃으라고 하는 말이었지만 준서는 웃지 못했다.


“동생들은 어떻게 되요...?”


그는 솔직히 말해주었다.


“친모가 있으면 미성년 아동에 대한 결정권은 모두 그녀가 가지게 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혹시 알아?”


“엄마는 통화할 때 한국어 잘 안 써요. 전 몽골말 잘 몰라서 조금밖에 알아듣지 못해요.”


“몽골 사람이었어?”


준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엄마는 중국인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말은 몽골말 써요. 물어봐도 잘 알려주지 않았어요. 아, 안산에 아는 언니 있다고 전에 말한 것 들은 기억이 나요.”

“안산 어디에?”

“모르겠어요.... 그런데 엄마가 가방이랑 옷도 전부 챙겨서 갔어요?”

“응? 잘 모르겠는데... 너희들 물건만 챙겨 와서....아. 안 챙겨간 것 같다.”


안방을 들여다보았을 때 열린 옷장 안에 수많은 여성복이 걸려 있던 것을 그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아래에 놓인 크고 작은 가방도 남성용은 아니었다.


“이상하다... 혹시 샤넬빽도 있었어요?”

“샤넬?”

“날씨, 이런 문양이 있는 가방이에요.”


마나가 핸드폰으로 검색해 그에게 보여주었다.


“저도 샤넬은 알아요... 글쎄, 자세히 안 봐서.”

“그럼 앨범은요?”

“앨범?”

“네, 엄마는 저기 아빠 집에서 나갈 때도 우리 사진은 챙겨갔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요.”


‘사진....?’


불길한 생각이 들자 그는 작게 몸을 떨었다. 급히 일어난 그는 어디 가냐는 인나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달렸다. 달려 내려갔던 그는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인나씨! 차! 차키!”

“네? 왜 그래요?”

“아... 어서요.”


당황한 인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마나가 겉옷을 입으며 나왔다.


“인나는 준서랑 같이 있어. 내가 날씨하고 다녀올게.”

“왜...”

“생각하지 마. 인나야. 아무것도.... 준서 알게 하지 말라고. 알았어?”

“어....어, 알았어.”

“가요, 날씨.”


그는 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가고 싶지만, 만약을 위해 함께 가는 것이 좋다 판단했다.


*


마나에게 주소를 알려준 후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이 나타나고, 주차된 차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운전하던 마나는 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진, 윽!”

“미안해요. 깜짝 놀라서...”

“아.. 괜찮습니다. 저기... 저기다 차 세우죠.”


마나는 차를 세운 건너편 주택을 보는 그의 시선을 쫓아가 보았다. 2층을 제외한 모든 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사진을 보며 울더군요.”

“네...”


위로해주려 온 것일까.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따라왔던 마나는 큰일은 아니라 여겼다.


“사진 뒷면은 하얗죠. 그래서 손자국이 잘 보이죠. 이모 집에 있을 때, 엄마 사진이 있는지 이모 집의 앨범을 꺼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저 두고 외출한다며 이모부 구두 닦으라고 시켰었죠.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났던 것 같네요.”


구두약이 묻은 손으로 만졌기에 앨범 여기저기에 손자국이 남아 버렸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의문이 들던 마나는 뒤늦게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날씨...?”

“지우려다 얼룩이 번지더군요.”


남자가 보고 있던 사진에도 얼룩이 있었다. 붉은 얼룩이.


“여기에 계십시오.”

“왜 그러는지 말해줘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옷을 붙잡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대신 마나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금방 올게요.”


비어있는 미소라 마나는 생각했다.


집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그는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부엌을 겸한 거실, 그곳을 기준으로 선 세 개의 문. 좌측 아이들 방문은 열려있었다. 그는 닫힌 두 개의 문 중 안방이 아닌 곳, 집안에서 그가 살피지 않은 곳을 열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욕조가 놓여 있었다. 물을 채웠는지 위를 덮은 천이 젖어 있었다. 천을 치우지 않아도 그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옅은 빛이 들어와 천의 물든 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려 그는 급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안방으로 다가섰다. 문고리를 돌려 밀자 가볍게 열린다. 숨조차 멈춘 채 그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는 서 있었다. 팔을 늘어트리고 다리는 떠 있었다. 장롱 위에 걸린 철봉이 남자의 몸무게로 아래로 처져 있었지만, 키 작은 남자의 발을 바닥에 닿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못난 사람...’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수십 번 누르지 못한 번호를 눌렀다.


“....여기 시체가 있습니다.”


*


밖으로 나와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는 마나가 기다리는 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진하게 달라붙은 죽음의 냄새를 그녀에게 전하기 싫었다. 나오려는 마나에게 손짓해 기다리게 했다. 마나도 나쁜 예감을 하며 그를 보고만 있었다. 순찰차 한 대가 오는 것을 보고 그는 기댄 벽에서 등을 뗐다.


“신고하셨습니까.”


다가온 경찰들이 그의 행색을 살피며 물었다.


“예.”

“장난전화 할 분은 아니신 것 같고... 저기 동승자입니까?”


마나가 앉아 잇는 차를 보고 경찰들은 다시 그를 보았다.


“예.”

“시체를 보았....”

“저 안에 있습니다.”


물으려던 경찰이 파트너를 잠시 보았다. 그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들어가지 말고... 각오하고 가십시오. 범인도 자살한 상태니.”

“범인이.... 흐음, 김순경은 여기 있어봐.”

“예? 혼자 가시려고요?”

“그럼...쯧. 기다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임경사는 잠시 뒤 괴성을 지르며 나왔다.


“으에엑! 으악!”

“왜 그러십니까?!”

“사사사사사....”


임경사는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체면은 몇 초간 지켰을 뿐이다. 헛구역질을 하던 그는 선 자리에서 구토하고 말았다.


“크으...퉤! 제기랄...지원...지원 불러!”


*


-시체가 있습니다.


꼭 하고 싶던 말이었다. 꼭 가야 할 곳이라 생각하던 경찰서에 그는 들어와 있었다. 다른 이유로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는 기이한 감흥에 젖어 있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녹아버린 아스팔트 위에 새 신발을 신고 계속 걸어야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만세형을 보며 살기에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죽음이 기어와 몸에 달라붙는 기분을 느껴 그는 수시로 팔을 쓸었다.


마나는 잠깐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그는 스무 시간 이상 진술을 해야 했다. 그가 남자와 만났던 일화들은 모두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집안일이라 할 말도 많았다.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초반에는 짧게만 답했지만, 그러다 자신이 의심받고 있음을 깨닫고 그는 자세한 설명을 해야 했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하겠지만... 함께 들어가서 그 애들 물건 챙길 때 화장실은 보지 않으셨다는 말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화장실은 왜 가는 겁니까.”


의심받는 상황이 기분 나빴기에 그의 말투는 매우 퉁명스러웠다.


“예?”

“오줌이나 똥이 마려워야 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배변욕구가 없는데 화장실을 가야하는 건지....”

“아아, 제 말은... 애들 물건 중에는 화장실에 놓인 것들도 있지 않습니까? 칫솔도 그렇고.”

“새로 사면되는 것들이죠. 저 그 정도는 법니다. 그리고... 형사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전 낯가려서 아무 곳에서나 화장실 쓰고 그러지 못합니다. 마려워도 참는 편이죠. 그 남자와 그리 친하지도 않은데 아무곳에나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허락받고 찾아볼 생각은 했지만 앉아 우는 걸 보고 나온 겁니다. 그 후에는 그 남자가 물건들 챙겨서 나왔고. 화장실 안 갔다고 절 의심하는 이유는 뭡니까?”

“흠...”


팔짱을 낀 조사관은 그를 가만히 보다 말했다.


“침착하시군요.”

“놀랐습니다. 놀랐다고... 표현으론 부족하군요. 당연히 충격 받았습니다. 전 그 남자 말처럼 애 엄마가 애들 데리고 도망갔다... 그렇게 여겼습니다.”

“뭐...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조금만...”

“밥이라도 주던가.... 저 용의자입니까? 아니면 피의자입니까? 참고인입니까. 괜히 변호사 대동하지 않고 조사받나 후회되고 있습니다.”

“식사는 아까... 드시지도 못하셨잖아요.”


형사의 말에 그는 멍해져버렸다.


“....그랬나요. 아아... 그랬나 보군요.”

“죽이라도 사다 드리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형사들이 나가고 그는 테이블에 쓰러지듯 누웠다. 눈을 감으면 붉은 물에 담긴 사람의 윤곽이 떠올라 벌게진 눈을 감지도 못했다.


*


“아르바이트비 때문에 김율리나씨와 통화하셨다고 진술하셨습니다.”

“예, 준서 전화로. 통화기록 확인하셨으니 아시지 않습니까.”

“정말 김율리나씨였습니까?”

“그건 왜...?”

“확정은 아니지만, 조사결과 사망일시가 일치하지 않는 듯해서 말입니다.”

“그 말은... 제가 죽은 사람과 통화했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희는 제 삼자의 존재에 가능성을 두고 있습니다.”

“제 삼자라...그 여자... 한국어 잘했네요.”

“네?”


되묻자 그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준서나 그 사람도 말해줬는데, 김율리나라는 그 여자가 한국어에 서툴렀다고 합니다. 긴 이야기는 안했고, 거의 제가 일방적으로 소리치고 돈 당장 애한테 돌려주라고 했기에... 지금 생각해보니 대답할 때 어눌한 말투는 아니었습니다. 또렷하고 사투리가 섞인... 그런 뉘앙스로...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어쩌면 이것도 제 멋대로 만든 상상일지 모릅니다.”


급히 받아 적은 형사는 다시 그를 보며 물었다.


“그 대상, 통화한 사람이 김율리나씨가 아니라면 누군지 혹시 아십니까.”

“그걸 알아내야 하는....”


화를 누르며 그는 다시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그 통장 명의자는 누군지 밝혀졌습니까?”

“안산에서 만들어진 통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조사중입니다.”

“그 여자일까요. 최뭐라는 이름...”

“제게 물으시는군요.”

“제가 형사가 아니니까요.”


잠시 바라보다 조사관은 몸을 살짝 뒤로 젖히며 말했다.


“...피곤하신 것은 압니다. 저희도 이렇게 갑자기.... 이런 말도 다 짜증스럽게 들리시겠죠.”

“예, 짜증나고 피곤하고.... 돌아가서 동생에게 뭐라고 말해야할지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동생분과는... 최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형사의 말투에 담긴 뜻을 느끼고 그는 불쾌함을 느꼈다.


“내 동생이니까요. 평생 있는 줄 알았지만, 만날 일은 없다 여기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감정... 모르시겠죠.”


“저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스무살에 헤어진 동생들 찾아서 제가 키웠습니다.”


사실일까? 의심하던 그는 그런 말을 굳이 거짓으로 꾸며 말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속단했군요. 그럼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저와 다른 상황이라 사실 잘 모릅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는 조사관에게 조언을 구했다.


“충격을 받을 것을 걱정하시는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친모에게 학대받다가 전에 살던 집으로 무작정 나온 아이입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답니다. 장례식장에 오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습니다.”


친부가 아니라 여겼기에 준서는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려고 했다. 그리움을 참고 살았다. 죽었다는 것은 친모를 통해 들었다고 그에게 말했었다. 그는 유골을 화단에 뿌렸다. 그 위에 콘크리트를 덮었다. 풀조차 나지 않게, 그렇게 원망을 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았었다. 준서에게는 먼 곳에 뿌리고 왔다 말했다.


“아는 이 없는 옛집을 찾아왔습니다. 있는지만 알던 오빠를 만났고, 아르바이트한 곳에서는 돈을 주지 않으려 했고, 친엄마는 그 돈까지 떼어 먹었고. 교복 없어서 학교도 못가고... 그런 아이에게 이제 네 엄마를 네 새 아빠가 죽였다고 말해야 할까요..... 차라리 신고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그 말에 형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런 일들... 예상은 했습니다. 타인인데 그 집에 오가고.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고.”

“원망하셨습니까? 그들을.”

“제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말도 안하시고, 답변을 강요하시는 겁니까?”

“으음, 방금 질문은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손도 놓고 있습니다.”

“그 녹음기와 카메라는 장식품인가 보군요.”

“꺼려지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잠시 형사를 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동정했습니다.”

“동정심이라...”

“처음엔 그 여자를 동정했습니다. 못된 놈 만나서 고생한다고. 나중엔 그 남자를 동정했습니다. 악녀를 만났구나 싶어서....”


둘에게 휘둘렸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지금은 동정하지 않습니다. 둘 다. 거짓말... 온통 거짓말이었기에. 오직... 그 아이들.... 죽으려면 지들만 죽을 것이지.”

“아이들이 죽었다고 단정하시는군요.”


그가 급히 고개를 내려 조사관을 보았다.


“아닙니까...?”

“왜 그렇게 여기시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저와.... 후우.”

“흥분하시는군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그만하시죠. 애들 가지고... 지금 저와 뭐하시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자 조사관이 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 말투가 취조하는 것 같이 들린다는 점을 잊었습니다. 전 단지...”

“살아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면 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릅니다.”

“당신!”

“진정하십시오. 전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전 살아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반쯤 섰던 그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다시 물으면 실례겠지만.... 왜 아이들이 죽었다 여기셨습니까.”

“후우....자전거.”

“자전거라...”


조사관은 진술내용과 조사내용을 살폈다. 허나 어디에도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서류에서 눈을 뗀 조사관이 보자, 그는 작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애들 자전거가 현관 앞에 있었습니다. 옆집에는 귀가 안 좋은 어르신 한분만 사시기에 다른 집의 물건이라 여길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 데리고 밥이라도 먹이려고 데리고 나갈 때도 그 아이들이 자전거를 가져가려 했고....”


“흐음. 보고서에는 자전거가 현관에 있다는 말이 없군요. 현장 사진에도.”


“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잘못되었을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자전거가 없다는 것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기에.”


“....그렇게 물으시니 저도 잘 모르겠네요. 왜 그랬지... 자전거가 없어서 애들이 없다 여겼습니다. 애들이 소중히 하던 자전거란 기억이 납니다. 새것처럼 보였고... 그 사람들 애들 장난감도 안 사준... 이것도 모르겠군요. 장난감을 그 사람이 자전거와...! 아, 그래... 애들이 엄마와 함께 떠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자전거를 숨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요.”


“제게 물으시는군요.”


“형사시잖아요.”


“제 견해를 물으신다면... 예, 저도 아이들의 장난감이 적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것이 용의자가 살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작한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를 확인하기 위해선 준서양의 중언이 필요한데.... 그리 노려보지 마십시오. 준서양은 지금 대단한 분들이 보호 중이라 인터뷰도 못하고 있습니다.”


마나와 인나를 떠올린 그는 눈에 준 힘을 풀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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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8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5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2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3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20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7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7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2 6 20쪽
»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6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4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20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7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5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21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5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5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5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6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2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7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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