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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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최근연재일 :
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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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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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진실과 거짓말 3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집으로 돌아갔던 그는 잠시 잠을 청하고 다시 경찰서로 가야 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죄송합니다. 제 판단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조사관은 주변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를 확인하다 용의자 서씨가 자신의 차량에 자전거를 싣는 장면을 발견했다.


“애들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아...”


막혀 있던 수도관이 열리듯 그의 눈에선 연신 눈물이 쏟아졌다. 고개를 내리면 더 많이 나올 것 같아 그는 계속 천장을 보았다.


“키우기 싫으면 내게 말하면 되는 것을... 벌레만도 못한 것들...”


조사관은 조용히 장비를 챙겨 나갔다.


“어떻습니까?”

“터졌어.”

“예?”

“참 오래 버틴다 했더니, 애들 이야기 꺼내니까 바로 터지더라고....”

“정상적인 반응입니까?”

“....너무 기막히면 방어기제가 감정을 눌러버리는 법이야. 진정하실 때까지 그냥 둬... 내비게이션 분석 아직 안 끝났나?”

“아, 끝났다고 방금.”

“...이 새끼가. 왜 지금 말해! 당장 움직여!”


자전거를 버린 장소는 찾아냈지만, 아이들은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할 준비를 했다. 아이들이 제 삼자에게 납치되었을 가능성도 염두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작 아이들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그게 사실입니까? 찾았다고요?”

-예. 허. 정말 이런 일이...

“어딥니까? 가겠습니다.”

-저희가 서로 데리고 오는 중입니다.

“아... 그럼 다행이군요. 다행이에요. 제가 일하고 있어 저는 바로 못가지만... 다른 분을 보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아이들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하시지 않으십니까.

“말하셔도 되는 것이라면.”

-옆집에 있었습니다.

“...예?”

-옆집 어르신께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치매도 있으신지 아이들을 손주들이라 여기신다더군요. 집주인이 애들 소리가 들려서 내려갔다가 발견하고 알려준 것입니다.


부부싸움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밖으로 피신을 했다. 그를 본 노인이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런 이후 자신의 손주들이라 여기며 함께 지내고 있었다.


*


“아무래도 아이들이 사체를 목격한 것 같습니다.”

“아...”

“지금 아동심리상담사가 들어가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노인이 잠들었을 때, 집에 들어갔다면...”

“애들은 어떻던가요.”

“큰 아이는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작은아이는 말은 하지만, 불안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숨이 막힐 듯해 그는 벽에 몸을 기댔다.


“...저 애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호적상의 양친이 사망을 했지만... 서씨의 회사 사물함에서 말씀하신 친자확인 서류를 발견했습니다. 친자라고 해도 서씨 집안에서 가까운 친인척은 찾을 수 없으니....”

“예...그럼...?”

“모친 쪽은 필리핀 대사관에 문의한 상태인데.”

“필리핀입니까?”

“예? 아, 예... 안산에 거주하는 김씨의 지인들을 탐문한 결과 김씨가 평소에 중국인 혹은 몽골인 행사를 했다고 하더군요.”

“준서는 몽골말을 했다고...”

“예, 제법 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그 최여린씨. 통장주인은 한국인 여성이었습니다.”

“언니... 입니까?”

“예? 아, 예. 나이가 그쪽이 더 많습니다.”

“.... 그 여자가 준서 엄마에게 코치해준 사람입니다. 통장에는 준서 돈이 있던가요?”

“그건 아직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건 범죄 아닙니까? 통장 빌려 주는 거.”

“예, 분명.”

“그 여자도 분명 그 돈에 손댔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시죠?”

“허, 이거 참... 시험받는 기분이군요. 으음... 아, 그렇군요. 그날 통화한 것은 김씨가 확실하겠군요.”

“예. 사망시각 알려주셔서 깨달았습니다. 그때 통화한 것은 준서 엄마였습니다. 그날 돈을 빼서 쓰지 않았다면 통장에 준서가 받은 아르바이트비가 들어 있을 겁니다. 그걸 썼다면, 그 여자가 쓴 것이겠죠.”

“참고하겠습니다.”

“썼다면 고소하겠습니다.”

“최씨에게 감정이 있으신 것 같군요.”


김씨와 최씨가 아버지의 집과 그 상속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준서와 자살한 서씨는 들었다. 그를 통해 서씨는 준서도 그와 혈연이 아니라 짐작했고, 준서도 그의 부친과 혈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준서를 자신의 동생이라 계속 말했고, 세상에 진실을 알릴 생각이 없다.


“자살한 그가 말하길 그 여자가 언니라 부르는 사람과 통화를 하며 제가 받은 상속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같습니다. 본래 성격도 형편없겠지만, 법에 대해 잘 아는 한국 여성과 친분이 있다면 상담을 했겠죠.”


“그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시는군요.”


“시간이 갈수록 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렸다는 것이... 특히 그 남자... 살인을 저지르고...”


“우발적 범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여인은 죽었다. 화장실 변기에 있던 혈흔이 여인의 머리에 있는 상처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게 우연인지, 남편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서씨는 유서를 남겼다. 자신이 여인을 죽게 했다고 고백했다. 직접 죽였다는 말은 쓰여 있지 않았다.


“유서에는 아이들에 대한 말이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전거를 버리러 간 이유는, 자신이 죽였다 여겨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숨겼다는 것이네요.”

“...만취상태였다고 진술하셨더군요. 술에 취하면 성격도 달라진다고. 그리고 기억도 잘 못한다고.”

“예...”

“자기가 했다 믿고 지냈다. 혹은,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했다... 자신이 자전거를 내다버린 기억은 사라지고, 선생님을 만났을 때에는 또 부인이 죽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도 추측일 뿐입니다. 큰 충격을 받아 스스로 기억을 봉인하고 짜깁기한 것이 아닐까...”


조사관의 말을 곱씹던 그는 의문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제 행동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까요.”

“....제가 어떤 답을 해주길 바라십니까.”

“그 사람... 아이들을 무척... 그건 꾸민 것이 아니었습니다. 후회, 번민, 갈등... 그 세세한 감정들이 연기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도 회사에 설치된 CCTV영상을 확인해보았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여깁니다. 친부가 아니라는 두려움, 그걸 잊고 살고 싶은 마음의 갈등.”

“그는 제가 알려주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알려주기 전에는...”


조사관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그 자리에서 서류를 열고...”

“검사를 의뢰한 병원에 직접 확인했습니다. 1차 유선통보에서 그와 통화한 사실을. 나중에 들은 적 없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현실을 그렇게 부정하는 이들이 생겨서, 병원에서는 만약을 위해 녹음도 합니다. 들려드릴까요.”


그는 꽤 오래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


아이들을 찾으며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해결할 문제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는 그런 문제들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준서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공개결정하기 전 아이들을 찾았기에 언론에는 노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의 문제로 그는 준서가 사건을 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속입니까.”

“준서양도 미성년자지만, 현재 상속권을 가진 제 1순위자입니다. 필리핀대사관에서는 김씨의 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답변해왔습니다. 그들은 어떤 루트로 한국에 들어왔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상속될 재산은 집의 전세 보증금과 증거물로 수집되었던 물품들, 서씨의 퇴직금과 서씨가 가지고 있던 땅입니다.”

“친자도 아닌데...”

“부친이 사망한 경우 어머니에게 먼저 상속권이 갑니다. 그 다음이 아이들이죠. 어머니가 물려받은 재산을 다시 받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현재 준서양의 법정 보호자는 정날씨입니다. 대리인자격으로 수령 후 관리를 하다 성인이 되면 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준서양도 동석해야 합니다.”

“거부권은 없습니까?”

“큰돈은 아니지만... 토지와 상속세를 제외해도 4~5천 만원입니다. 거부도 준서양의 의사가 반영 되어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든 준서를 빼고는... 어렵습니까.”

“예... 그리고 두 아이들의 문제도... 친부가 아님이 밝혀졌고, 친부가 누군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준서양이 두 아이를 양육할 능력은 없으니, 다시 이 문제는 정날씨에게...”

“당연히 제가 맡아야지요.”

“....조금 어려운 문제들이 걸리지만, 예. 그건 문제없이 해결될 것입니다. 다만, 준서양은...”


그는 함께 온 인나를 보았다.


“제가 차분히 달래면서 이야기 해 볼까요?”

“그건...”

“날씨...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잖아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들어와서 함께 지내면 말을 할 수도 있고. 혹은 그 아이들의 이상한 점을 보고 준서가 물을지도 몰라요.”

“아아...”


직사각형 틀 안에 엄마를 그려 넣는 아이를 보고 목격한 것이라고 아동심리학자는 확신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보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씨가 죽은 뒤 서씨는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집이 빌 때마다 아이들이 몰래 숨어들어가 죽은 엄마를 보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는 그에게 말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변호사와의 상담을 끝내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


그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감정이 깃들면 준서의 감정이 더 커질까봐 두려워 조심스럽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거짓말.”


준서는 믿지 않으려 했다. 당연한 반응이라 여기며 그는 설득해야할지 고민했다. 그런 그의 눈에 준서의 얼굴이 담겼다.


“...알고 있었구나.”

“거짓말!”


준서가 달려와 그를 잡았다.


“전처럼 말하면 되잖아요! 내가 오빠 동생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왜 말해요. 왜!”


주먹을 쥐었던 준서는 그를 때리지 못했다. 몸을 떠는 준서는 그가 안아주자 울다 기절해버렸다. 깨어나서도 다시 울고, 지쳐 잠들었다. 준서는 그의 곁에서만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아침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났고, 동생들을 챙겼다. 학교에도 가지 않으려 했으나, 마나가 어디선가 데리고 온 여인이 온 뒤론 고집부리지 않았다.


“누구에요?”

“친구요.”

“친구...”

“집에서 놀고 있다기에 애들 봐달라고 부탁했어요.”

“아...”

“유아교육과 나왔고, 아동심리치료사? 그런 자격증도 있어요.”


가만히 듣던 인나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는 두 사람이 눈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슬쩍 사이에 끼어들며 앉았다. 인나는 그를 피해 마나를 보다 그에게 속삭였다.


“마나 애인이에요.”

“아니야.”

“맞잖아. 너 바람 필 때 만난 여자잖아.”

“목소리 낮춰. 애들 자니까.”

“여기 방음 잘되거든?”

“유치하긴...”


그 말에 인나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유치한데?”

“뭐? 너 왜 그래 갑자기?”

“내말 틀렸어? 그 여자 너랑 사귀던 사람이잖아.”

“잠시였어. 지금은 만나는 사람도 있고. 나랑 맞지도 않았어.”

“그게 사실이면 그렇게 말해야지 왜 거짓말을 해?”

“거짓말은 안했어. 현재 나와 그런 관계가 아니라 말한 것뿐이야.”

“넌 늘 거짓말 하지.”


마나도 그 말에 표정을 굳혔다.


“왜 그러는 건데?”

“몰라서 물어?”

“내가 뭘?”

“너... 내가 말 안한다고 모르는 줄 알아?”

“말을 똑바로 해. 할 말 있으면.”

“도도한척 하긴... 너 날씨를 왜 그렇게 보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 잘래.”


자리에서 일어난 마나를 따라가 인나는 손목을 잡았다.


“왜 이래?”

“말해. 너 뭐야.”

“뭐가?”

“너 설마...!”

“이거 놔. 네 멋대로 판단하지 마.”

“아니라고?”

“뭐가?”

“자꾸 피하지 마. 너와 내가 그런 사이야?”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는 마나의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었다.


“캐묻지 마....”

“말하라고. 기회줄 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반 떼어서 나 줄 거야?”

“날씨는 네가 좋아하는 케이크가 아니야.”


‘에?’


그제야 둘이 싸우는 이유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는 몸을 움츠렸다. 피하고 싶은데 둘은 언제나처럼 그를 사이에 두고 싸우고 있었다.


“그래, 케이크가 아니라서 달라고 못해. 됐어?”

“정말이야?”

“자꾸... 나 화나게 하지 마.”

“화내면 어쩔 건데? 왜 숨기는데. 왜... 그러는 건데. 질투야?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싫어서 그래?”

“아니야.”

“아니면 왜... 너 안 그랬잖아.”

“....나도 몰라. 그냥... 좋아.”


‘허으.’


숨 막힌 긴장감이 돌았다. 그는 서둘러 도망갔어야 한다며 후회했다.


“좋다고?”

“응.”

“너...”


인나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마나도 인나가 잡은 손 때문에 함께 앉아야 했다. 그는 두 사람이 자신의 허벅지를 테이블 삼아 마주보고 있는 모습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좋다니... 얼마나?”

“너만큼... 아니, 어쩌면 너보다 더.”

“...왜. 왜 그렇게 되었는데?”

“네가 없었잖아. 네가 떠난 빈자리가 컸어. 너무 외로워서 너에게 닿은 뭐라도 가까이 하려고 찾아왔어. 그랬는데... 다르게 변해갔어. 나도 놀라고 있었어. 매일... 즐거웠어. 그냥 대화만 해도... 때론 가슴도 두근거렸어.”

“너무해... 그거 사랑이잖아...”

“응... 전엔 아니라고 부정했는데, 네가 나타난 후에 알게 되었어. 이게 사랑이라는 것을.”

“난 어쩌라고...”

“난 너에게서 날씨를 빼앗을 생각은 없어. 날씨는 늘 내게 선을 긋고 행동했고. 난 그냥 지금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는 것으로 만족해. 다른 사람 찾을 생각도 들지 않아. 그냥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거짓말이야. 넌 그걸로 만족 못해.”

“그럼 어쩌라고!”


마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마나의 입을 막았다. 그에게 있어 지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준서와 아이들이었다.


“들어가서 대화하세요.”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드디어 해방되나 싶었지만, 두 사람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


‘이게 뭐야...’


그의 좌우에는 마나와 인나가 누워 있었다. 전에도 겪은 일이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 둘이 합의했다는 것이 달랐다. 그의 의사는 상관없이 공유에 대해 이야기했고, 인나는 마나가 그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을 허락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묻자 마나는 손잡고 잠들고 싶다 말했다. 두 사람에게 눕혀진 그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금세 잠든 두 여인을 차마 두고 가지 못했다.


‘나도 모르겠다.’


포기하자 양옆에서 전해진 온기로 그는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이날을 경계로 묘한 눈치싸움이 있었던 마나와 인나는 푸근한 미소로 서로를 보는 관계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감정을 나누던 때에는 약간의 긴장과 경계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보는 눈빛에 신뢰와 사랑만 담겨 있었다. 그는 변한 두 사람을 보며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 이롭다 여겼다. 또 마나에게 어색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셈이라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세 사람의 변화를 준서도 감지했다.


“오빠, 이거 드세요.”

“준서도 먹어.”

“오빠 먼저.”

“응, 피노랑 키오도 많이 먹어야 해.”


그의 말에 어린 오누이는 어색한 표정으로 보다 곁에 앉은 준서의 옷을 잡았다.


“날씨 애들 겁먹잖아요.”

“아... 미안.”

“겁먹은 거 아니에요. 언니. 그렇지 피노야? 누나말 맞지?”

“키오는 오빠 알아요.”


막내의 말에 그의 입이 활짝 벌어졌다.


“기억하는구나?”

“햄버거 사줬어. 오빠도 먹었어. 오빠 기억나?”


피노는 키오의 말에는 반응한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피노가 큰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남자동생도 귀엽구나 생각했다.


“오늘 김밥하고 치킨사서 공원에 갈까?”

“오빠 오늘 쉬는 날이에요?”

“응. 준서는 학교 가야지.”

“어으.... 나도 가고 싶은데.”

“나도 가고 싶어! 날씨! 우리 퇴근하고 가요. 날도 별로 안 춥고, 우리 다섯시에 끝나고 달려오면 여섯시? 그 전이니까. 우리가 올 때 김밥하고 치킨 사올게요.”

“나도 가고 싶어요. 날씨. 꽃구경...”

“그럴까?”


밤에 무슨 꽃구경이냐고 준서가 작게 투덜거렸지만, 두 동생이 그에게 서먹하게 구는 것을 알기에 알았다고 답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인나와 마나가 나갈 때, 마나가 고용한 보모겸 심리치료사가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 날이라고 합니다.”

“들었어요. 남정주. 나이는 마나와 동갑.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죠?”

“허음...”


뭘 들었기에 저런 표정일까. 그는 자꾸 이리저리 훑어보는 여인의 눈을 피해 물러났다.


“피노야! 키오야! 선생님 왔어요!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선생님!”


키오가 달려와 안기고, 피노는 천천히 다가와 여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서운함을 느끼며 물러나다 손에서 느껴진 온기에 돌아보았다.


“오빠, 다녀올게요.”

“어? 흐으, 준서구나... 아, 태워다 줄게.”

“괜찮아요. 오빠 쉬어야 해요. 매일 무리하고.”

“으응...”


까치발을 들고 이마를 짚는 준서의 행동에 그는 기쁨과 어색함을 동시에 느꼈다. 동생을 걱정시키는 자신이 과연 옳은가라는 자책도 함께 했다.


“밥 잘 챙겨먹고. 잠도 자고. 시끄러우니 우리 집에 가서 자고요. 선생님 있으면 애들 괜찮으니까....또...”

“용돈 있어? 준비물 빠진 거 없어? 체육 있던데, 체육복 챙겼지? 가방은 왜 이렇게 가벼워? 아, 책 놓고 다니지. 핸드폰은 챙겼지? 보조배터리 가지고 가?”

“오빠 이발해야겠어요. 엄청 잘생겨 보여야하는데 조금 덜 잘생겨 보여요.”

“정말? 그거 큰일인데?”

“오빠 내가 잘라줄까요? 저 옛날에 아빠 머리카락 잘라줬었는데.”


그는 앨범에서 기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부친의 사진을 본 기억을 해냈다.


“오빠 자주 가는 이발소 있어.”

“커트 육천원 거기요? 거기 말고, 언니들 가는 미용실 가면 잘 깎아 줄 텐데.”

“미용실은 언니들만 가는 곳이야.”


-푸후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정주가 있었다. 그녀는 두 아이를 양옆에 끼고 앉아 있었다.


“언제까지 알콩달콩 거리나 보려고 했는데.... 미용실에 남자도 많이 다녀요. 오빠는 어느 시대 사람이에요?”

“아... 그렇군요. 알긴 알지만. 제 말은...”

“모를 수도 있지.... 오빠 나가요.”


준서에 의해 이끌려 나가며 그는 정주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그를 본 정주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다녀오세요! 배꼽인사! 자! 다녀오세요!”

“다녀오떼요!”


준서에게 끌려 나온 그는 집돌이의 산책을 겸해 준서를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빠 들어가요.”


주변 눈치를 보는 준서를 보며 그는 서운함을 느꼈다. 그런 그의 눈에 다가오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같은 학교학생들임을 깨닫고 그는 웃으며 물러났다.


“다녀와.”


조용히 속삭이자 준서가 손을 살짝 들었다 내렸다. 정류장에서 물러난 그는 멀리 가지 않고 준서가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렸다. 준서도 그가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지 창가자리에 앉아마자 그를 보고 웃으며 손을 들어주었다.


“으음...뿌듯하다.”


버스가 움직이자 집돌이가 움직였기에 그는 여운을 즐길 시간을 갖지 못했다.


“넌 어떻게 주인의 마음도 모르니? 이럴 땐 조금 더 기다려 주면 되지 않아?”


그가 말을 걸자 집돌이는 돌연 발에 힘을 주며 앞으로 돌진하듯 움직였다.


“그 녀석 성질하곤... 또 어디 가고 싶어서? 응? 또 거기야?”


집돌이가 그를 끌고 간 곳은 사건현장이었다. 자주오던 곳이었고, 이젠 익숙해져 긴장하지도 않았던 그였다.


-컹!

“응?”


집돌이의 외침에 그의 평범했을 아침이 바뀌었다.


‘저 차...’

“집돌아, 조용히.”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집돌이는 더 짖지 않았다. 다만 그처럼 건너편에 선 검은색 차량을 노려보았다.


‘벤츠... 나타났구나.’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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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8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4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2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3 3 23쪽
55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20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7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7 6 21쪽
»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2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5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4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20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7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5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21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5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5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4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6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2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7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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