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짖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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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어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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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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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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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용기내어 얻는 것 2

이 글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DUMMY

인나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간 후, 마나는 피곤하다며 준서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삼남매와 그만 3층 발코니에 나가 자리를 잡았다.


“조용하다.”

“운치 있네.”

“인나가 발코니 확장해달라고 우겨서 공사비가 추가되었지만... 괜찮네.”


인나는 언니와 오빠를 보다 그를 보았다. 그는 조용히 술잔을 들어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분위기를 깨기 싫어 인나도 술잔을 들어 입에 댔다.


“말을 잘 안했지만, 그늘은 보이지 않더라고.”


각자의 생각이 깊어질 무렵 인성이 말했다. 피노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습니까. 저는 게임을 할 줄 몰라서 놀아주지 못했는데. 감사했습니다.”


“아니... 나도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오래전 질려서 그만 둔 게임인데, 재미있었어... 아 참. 내가 안 쓰는 컴퓨터가 몇 대 있어. 그거 주기로 했는데 다음에 받으러 와.”


“오빠, 새로 사면되지 뭘...”


“감사히 받겠습니다. 연락드리고 찾아가겠습니다.”


그는 이해했지만 인나는 여전히 불만에 찬 눈으로 인성을 보았다.


“인나야, 이건 나와 피노의 약속이야. 내가 새 걸 사준다고 하면 그 아이가 받으려 했을까?”

“내가 사주면 되는데....”

“인나씨.”


그의 부름과 눈빛을 보고 인나도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해요.”


인나도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피노에 대한 이야기는 곧 키오로 이어졌다.


“그렇게 귀엽게 구는데 누가 싫어할까. 아까 엄마 아빠 표정 봤어?”

“응. 조금 서운하기까지 하더라.”


인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민망했던지 인나는 그의 얼굴을 잡아 슬쩍 돌리고 화제를 돌렸다.


“언니는 준서랑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한 거야?”

“인나... 질투하니? 언니가 다른 동생 생길까봐?”

“뭐래...”


뚱한 표정을 짓던 인나는 곧 이곳에 그도 함께 있음을 떠올렸다.


“오빠, 저저... 표정 봐. 봤어?”

“어..봤지. 그리고 난 저런 표정 너에게도 매일 본다.”

“....도움이 안 돼. 여기선 내 편 들어야지? 저쪽은 커플이고 우린 솔로잖아.”

“왜 편을 그렇게 짜는데? 난 날동생하고 편먹고 싶다. 평생 너희랑 편먹어서 아주 질린다. 남동생... 정말 남동생 필요...”


활기차게 말하던 인성이 돌연 표정을 굳혔다. 그는 셋 모두 죽은 셋째에 대해 알고 있음을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자신 때문에 어색해한다 여겼기에 그가 입을 열었다.


“들었습니다.”

“응?”

“어머.”

“날씨...? 누구에게...”


인나의 질문에 그는 부친과의 대화에 대해 짧게 전해주었다.


“아빠가... 그랬구나.”


인성과 인영은 놀란 듯 서로를 보고 다시 그를 보았다.


“필요하면... 제가 동생 해드리죠.”

“응? 풋! 어... 예상하지 못한 순간 훅 들어오네? 잠시만... 피노가 난 더 좋은데. 음... 날동생은... 서른 셋이지? 어...?”


살아있다면 죽은 남동생이 나이가 딱 그때라는 것을 인성은 깨달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랬나.”

“오빠, 괜히 속단하지 마. 나이 비슷한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인영의 말에 인나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들었지만, 어쩌면... 그래서 날씨에게 잘해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엄마도, 아빠도.”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군.”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었음을 자각하며 인성은 인영을 보았다.


“준서는 어떤 아이야? 날 계속 피하는 것 같아서 대화도 못했는데.”

“귀엽고, 사랑스럽지.... 너무 예뻐. 말투도... 나 사랑에 빠졌나봐.”


인영의 너스레에 그는 가볍게 웃었다. 감춘 표정을 드러냈다면 세 사람도 그가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전에 봤을 때는 선머슴아 같았는데, 오늘 보니 그땐 피지 않은 들꽃이었나 봐. 피고 나지 저렇게 화사한데. 분위기도 상당하지 않아? 날씨 집안 내력인가... 묘한 분위기가 있어.”

“음... 분위기라.”


그는 인성의 시선에 무안해 잔을 들었다.


“하긴 너희들처럼 오빠를 편리한 지갑, 짐꾼, 부모님 화났을 때 방패로만 사용하려는 아이는 아닌 것 같더라.”


농담인 줄 알기에 인나와 인영이 웃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봤지? 자각도 없어.”

“오빠 그만해. 날씨가 사실인줄 알겠어.”

“....와! 미치겠네.”


인성은 기막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럴수록 인나 자매는 웃기만 했다.


‘사실 같은데...’


그가 슬쩍 고개를 끄덕여주었기에 인성은 억울함을 조금 해소할 수 있었다.


밤과 어둠이 만든 정적은 쉽게 또 내려앉았다.


“사고 났을 때.”


이번에도 인성이 정적을 밀어냈다.


“내심 얼굴에 자신이 있었는데, 얼굴 다치니 세상이 달라지더라고.”


깊이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며 그도 잠시 놀랐다. 그러나 그는 말을 주워 담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기에 입을 열었다.


“아닌 척 굴지만 연민, 동정... 그런 게 보여서 점점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때 게임을 참 많이도 했지. 잠도 안자고... 그 전에는 게임을 왜하나 싶었는데. 솔직히 욕도 했어 그런 사람들. 운동하고 건강하게 야외활동을 하지, 뭐하나 싶었지... 그랬는데 위안을 많이 받았어.”


나도 게임을 했다면 달랐을까. 그가 생각할 때 인성의 말은 이어졌다.


“거긴 내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니까.... 어디서 들었는데, 요새 아이들은 두 개의 인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네? 온라인과 오프라인.... 아까 피노를 보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걱정할 내용은 아니야. 그냥 그 아이가 온라인에서도 더 쉽게 말을 한다는 것이지. 나도 그랬었고.”


‘자신을 감출 수 있는 공간이라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해한 듯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성은 달 옆에 강한 빛을 내는 것이 인공위성일까, 금성일까 생각하다 다시 옛 기억을 더듬었다.


“나도 만나봤는데, 평범해. 그런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완전히 달라. 그걸 모를 때는 자주 만나려 했지. 그 안에서는 가까운 이들에겐 한없이 자상해지거든. 적에겐 더할 수 없이 냉정하고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워하고.... 캐릭터에 동화되는 것이지.”


잔을 들거나 입에 와인을 머금고 향을 즐기거나. 각자 통일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며 집중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건 배려였다. 인나와 인영은 인성이 평소에 진지한 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그는 상대를 배려해서 적당히 시선을 던지곤 했다. 모두 인성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담아 듣고 있었다. 차분하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목소리를 지닌 인성의 말은 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은 전혀 다른데.... 지금은 자신감도 많이 회복했고, 피부이식도 이제 한번만 더 하면 거의 완치니까.... 그렇겠지? 음, 그래도 난 기억하려고 해. 그때의 나를.”


‘과거의 나...’ 그는 멀지 않은 지난날을.

‘그때의 나.’ 인나는 강렬한 기억이 남았던 날을.

‘그 시절의 나...’ 인영은 불편한 기억을 꺼내 보고 있었다.


“진짜 나와 그런 나를 봐주는 사람들을.... 난 소중히 기억해. 그들이 날 잊었다고 해도. 사고 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얼굴 망가졌다고 무시하고 떠나고... 전에는 그들이 전부였는데 말이지. 온라인을 통해 생전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고... 후회 안 해. 다시 사고 나길 바라지는 않지만... 그런 내 모습, 그때 이후로 변하며 완성되어온 지금의 내 모습이 난 좋아.”


부끄러워하는 인성의 미소에 인나와 인영은 울컥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나는...’


자신이 좋은지 그는 판단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늘 여행을 많이 다녀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라는 이유를 그 시절에 깨달았지. 인영아, 인나야... 너희들은 날 걱정했겠지만 반대였어. 난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그의 내 모습이 좋아.”


“오빠...”


인영은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하필 그곳에 그가 있었고, 그는 눈이 마주친 순간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울듯말듯한 인나가 보였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그래서 신데렐라를 기다렸어?”


인나의 말에 인성이 가볍게 웃었다.


“신데렐라라... 만난 적이 있어. 온라인으로 대화하다 편해지고, 어느새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서 만난 사람. 너희에게 말한 적 없었지...? 그녀는 내 흉터에 대해선 의식조차 하지 않았어. 가끔 흉터가 있는 것을 잊어서 서운할 때도 있을 정도로. 그랬는데... 신데렐라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야. 알아?”


눈으로만 호응해주는 동생들에게 눈웃음을 보내고 인성은 말을 이어갔다.


“겁을 먹더라고.... 난 그녀가 내게 욕심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못하더라고. 그리고 변해버려. 대하는 태도도 어색해지고, 그녀 주변인들도 날 대하는 모습이 달라져. 그래도 난 견뎠지만, 그녀는 도저히 할 수 없다더라... 내 피부에 생긴 흉은 아무렇지 않지만, 내 몸에 새겨지지 않은 것들에 그녀는 질리고 두려워했어.”


결국 헤어졌구나, 라고 인영이 말하자 인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나나 싶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자존심 상했지. 내가 나은 점이 수없이 많아 보였으니까.”


분위기를 보고 인성은 가라앉으려는 목소리를 와인으로 부드럽게 바꾸고 다시 말했다.


“신데렐라에 대한 내 사견을 더 말하자면.... 왕자는 신데렐라의 화려함에 반했어. 신데렐라도 왕자를 본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과 달라. 허름하고 볼 것 없는 날 봐주는 사람을 찾고 싶어. 그래, 난 평강공주를 찾는 것이지. 다들 오해하는데,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삶이나 형편을 배경에 둔 사람이 아니야..... 난 너희 생각보다 현실적이야. 내가 계속 자택근무형식으로 아버지 일을 돕는 것도 그런 이유고. 카레이서의 꿈을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 꿈을 꾸게 된 것이지. 차는 언제든지 탈 수 있잖아? 일하는 것이 즐겁기도 해. 내 적성이었는지...”


그는 격차, 계급차가 존재하는 세상에 환멸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며 사는 평범한 사람 중 한명이다. 너무나 쉽게 사회적, 실질적 계급차에 대해 말하는 인성의 말에 그는 불쾌감을 느꼈다. 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지는 거지로 볼 뿐입니다.”


그는 내뱉고 이내 후회했지만 자신의 말을 돌이킬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거지는 거지로 본다...”

“이런 이야기 오늘 처음 말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처음이지. 난 동생처럼 동생들에게 살갑게 못하거든. 부끄럽고, 어색해서.”

“해보면 쉽습니다. 전 한달 전만 해도 동생이 없었습니다.”

“음, 노력은 해봤지만... 봐. 우리 나이가 서른, 마흔이야. 늦지 않았을까? 그 보다는 그 이야기나 해줘. 내게 충고하려는 거지?”

“충고...”


그는 남은 술을 마시고 잔을 채웠다.


“기분 나쁘게 들으실까봐 주저되는군요.”

“예상은 하니까. 말해봐.”


예의범절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접하던 그였다. 그들과 너무나 다른 인성의 인격을 마주하고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곧 그 성격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깨달았다.


-성격은 어디 내놔도 자랑할 만하지.


인나 부친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바닥이구나 싶을 때, 땅이 꺼지는 기분을 느껴 보셨습니까.”

“으음... 그 쪽인가? 다르지만, 느끼긴 했지. 아까 말했듯이 주변에 사람이 떠날 때.”

“예... 고통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라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이 떠오르는군요.”

“상대적이라는 말이지? 알아들었어.”

“찾으시는 것은 날 알아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내가 만족하는 사람입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듣던 인성의 표정에 미소가 떠올랐다.


“음? 이건 처음인데... 어어... 다른가? 난 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만족하고 싶은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적이시군요.”

“...와! 순간 소리칠 뻔했다. 강한데?”

“부정하십니까?”

“부정... 음... 이유를 듣고.”

“자신을 감추고 상대를 만나는 것에 대한 자책과 죄의식은 없으십니까?”


인성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잔을 들어 마시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성은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강렬하다. 음, 강렬해. 인나야? 네 남자 말 참 잘한다.”

“음. 어? 조금...”


인나는 끼어들지 말라는 인영의 눈짓에 잔을 들어 마시며 흐지부지 작게 대답했다.


“내가 상대를 속이는 것이라는 말이지?”

“예.”

“그렇게 해서라도 얻고 싶으면... 그건 잘못된 것이고?”

“이기적인 것이죠. 진심을 내비추지 않고, 어떻게 상대가 진심을 보이길 원하십니까?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신분, 진짜 모습을 감추면 도대체 상대의 뭘 보아야 하는 겁니까.”

“인간인 나?”

“그 인간... 사람을 이루는 요소에 감추려는 것은 별도의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인성이라는 형님의 이름에 걸린 모든 것들 중에 극히 일부를 드러내고서... 그게 옳다 생각하십니까.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라면... 제가 여성이 아니지만, 만약 그 관계에 놓인 친구라면 기분이 나쁠 겁니다. 실망할 겁니다. 배신감을 느낄 겁니다.”


-그런 사람인줄 몰랐어요.


내세우지 않아도 다르게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참 많이 듣고 상처받았던 그 말을 떠올리며 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이해가 되고 있어. 나 지금 떨고 있다.... 확, 와 닿게 계속 말해주면 좋겠어.”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상대가 진지하기에 그도 신중해졌다.


“저와 인나씨의 만남에 대해 들으셨을 겁니다.”

“듣긴 했지.”

“전 인나씨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알게 된 후에 생각해봤습니다. 알았다면 달랐을까? 예, 달랐을 겁니다. 전혀 다른 관계가 되거나, 헤어졌을 겁니다. 접근도 만남도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차단했을 테니까요. 앞서 말하신 그분의 심정 저는 이해합니다.”


인나가 슬쩍 그의 손을 잡자 그도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래! 내가 바로 그걸 걱정하는 거잖아?”


“인나씨는 절 만나기 위해 스스로 내려놓고, 포기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매우 독선적이고, 혼자만 살아선지 사회성도 결여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불과 몇 달 전의 저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이봐 동생. 조금... 자랑 같이 들려.”


인성의 말에 그는 미소 지었다.


“자랑 맞습니다.”


그는 인나를 보았다.


“전 벌레를 무서워하는 여자와 사귀고 있습니다. 냉수에 샤워도 못하는 여자입니다. 그런 여자지만, 제 앞에선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극단적으로 떠나버렸지만... 돌아왔습니다. 저도 징그러워하는 돈벌레를 가까이서 보고 있던 적도 있습니다.”

“아! 날씨도 그 벌레 징그러웠어요?”

“네, 인나씨... 누구나 그럴 겁니다. 벌레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도 냉수 싫습니다. 그래서 보일러 고장 나거나 너무 추운 날은 목욕탕에 갔습니다. 다르지 않아요. 그걸로 진지하게 걱정하는 모습에서는 다름을 느꼈지만... 그조차 조율해야 할 한 부분일 뿐이었죠.”


그는 시선을 기다리는 인성에게 눈을 돌렸다.


“같이 자라도 인나씨와 인영누님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취향도 다르고, 말투도 다릅니다. 나이차가 나고, 만난 사람들이 다르고... 전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여깁니다.”

“잠깐! 이 녀석들이... 오빠가 중요한 이야기 하는데 끼어들어서... 동생. 그런 이야기는 둘에게 따로 하고 내게 집중 해.”

“같은 이야기입니다. 형님은 아마 저보다 훨씬 많은 연애 경험을 가지셨을 겁니다. 전 태어나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느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어머. 뻔뻔하게 저런 말을...

-언니, 선수야. 선수.


“풋! 들었지? 경험과 실력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지.”


“....농담이겠죠. 저는 형님이 그냥 다 드러낸 상태로 만난 사람이 어떤지 지켜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겉모습에 혹해서 다가온 사람이라도 평생 위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내면을 바라보며 접근한 사람도 맞지 않아 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확률적으로... 동생이 말했잖아. 사람 속 알기 힘들다고. 난... 그래. 지쳤어. 그래서 내 겉모습에 혹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야.”


“그럼 차부터 바꾸십시오. 누가 저런 차타고 다니는 분을 다르게 보겠습니까?”


“아아... 또 들었네. 음, 달라. 전에는 잔소리로 들었는데... 맞아. 그 말이 옳아. 난 결국 치장하고 나선 것이네? 그래놓고 다르게 봐달라고 한 것이고. 으음, 그래.... 그런데 말이야. 난 이런 생각도 해.”


잠시 뜸을 들이던 인성은 포도주로 목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오해할 수 있겠지만... 이건 현실이야. 난 흔히 말하는 재벌 삼세야. 금수저지. 난 괜찮아도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해. 난 결국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고.... 물론, 상속세 내고 공정하게.....”


그가 어깨를 으쓱이자 인성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랑으로만 사람을 만나면 문제가 분명히 생겨. 아까 말한 그 사람처럼 도망가거나 내게 바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아. 그런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야. 그 욕심을 보고 견디는 것이 힘들어... 이것도 경험한 이야기야. 정말 뻔뻔한 사람들도 있더라고. 만난 지 삼일도 안 되었는데 백화점 명품관에 끌고 가서 사달라는 투로 말하는 여자였어. 날 호구로 보나 싶어서 차버렸지.”


“그럼 맞는 사람들을 만나보시면 되겠네요.”


“들어봐.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 인영이나 인나, 여기서 하는 행동하고 그런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달라. 동생이나 동생의 가족이 풍기는 분위기는 우리 가족을 너무 쉽게 무장 해제시켜. 그게 참 묘해..... 정치 알지? 우리 가족은 그런 것에 익숙해. 인나나 인영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놀랄 거야. 저런 흐트러진 자세나 표정? 절대 보이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고. 아버지? 집돌이 대하는 모습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리잖아? 적어도 백만명은 놀랄 거야. 난 그게 양면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디까지나 사생활과 그 외적인 삶을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사람이야.”


“그건 누구나 가진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응, 그렇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더 심하다고 해야 할까? 모임은 전쟁터야. 정보탐색전을 벌이거든. 인나와 인영이는 그쪽 사람과 얽히고 싶어 하지 않아서 격식만 차리고 끝내지만, 난 다르지. 난 그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내가 사랑으로만 사람을 선택하면, 내 사람은 분명 고통을 받게 돼.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가장 잔인한 방법은 모두 말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잘 알려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편할 수도 있어. 내 주변에도 꽤 있거든. 적어도 그녀들은 버텨낼 줄 알거든.”


너무 다른 세상의 이야기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눈치를 보며 살아온 그의 인생과 그리 다를 것 없이 느껴졌다.


‘그래도 다르겠지.’


“하늘에 맡기고 계속 선을 봐야겠군요? 집안이 맞는 사람들과.”

“응? 그렇게 결론이 나나?”

“네.”

“포기한 거야? 하... 방법이 없을까?”

“없습니다.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으신데, 어떻게 뭘 집을 수 있습니까? 손은 두 개입니다. 다른 것을 잡으려면 손에 쥔 하나는 놓아야 합니다.”

“...명언을 쏟아내고 말이지. 나 박사 학위 있는 사람인데, 자존심 상하는군.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아. 진심으로 날 대해준다는 것이 느껴져.... 나이가 비슷했으면 친구하자고 달라붙었을 거야.”


조용히 술만 마신 인영과 인나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음을 연 두 사람은 그를 인식하지 못하고 서로를 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

“조사를 해보시지요.”

“누굴?”

“길을 가다 아무나.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쫓아가 보시죠. 이왕이면 재력이 있어 보이는 여성으로. 아니지... 그럼 범위가 너무 넓어지니까. 아아... 수행비서 해보시겠습니까?”

“수행비서?”

“네, 운전해주는 분들이 있지 않나요?”

“아아, 있지.... 그건 신분을 숨기는 일 아닌가?”

“예를 들어 말한 겁니다. 누굴 염탐하라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만날 가능성을 높인 채 그런 사람들을 살펴보시라는 것이지요. 슈퍼카 끌고 다니면서 집안도 맞고, 성격도 좋고,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여성을 찾지 마시고..... 그런 이들이 모인 자리에 서 있어도 그들이 경계하지 않을 사람... 뭐, 그런 사람이 되어서 제 3자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는지... 그런 이야기입니다.”

“뭔가... 그 말 들으니 떠오르는데...?”

“파티 자주하시죠? 파티에 출장뷔페 부르고 그러시죠? 거기서 서빙하면 이런저런 이야기 들리지 않나요? 저도 아르바이트 해본 적 있는데, 서로 헐뜯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는 분도 있더군요. 참 얼굴도 예쁜데 심성도 곱다 싶은 분도 있고. 저런 사람 밑에서 일하면 고생하겠다 싶은 사람도 보이고. 그들이 경계를 푸는 곳에 서서 관찰자가 되어 보시라는 겁니다.”


‘이것도 훔쳐보는 건가?’


스토커처럼 범죄 수준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면 괜찮겠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대화에 맞춰주는 것이라 여기기에, 그는 인성이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가?! 그래... 어어? 왜 그런 간단한 생각을 못했지?”

“들키면 부끄러우니까요.”

“....아! 그건 또 놓쳤네. 술에 취했나...? 그렇지. 걸리면 참 민망하겠어.”

“신데렐라 이야기 나와서 생각났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에서 왜 가면 쓰잖아요.”

“응, 쓰지.”

“거기 보면 서빙하는 사람들도 가면 쓰더군요.”

“오오! 가면무도회? 좋다! 또! 또 아이디어 줘.”

“어....그게 다입니다. 전 그쪽 세계를 모르니까요.”


실망한 표정을 과장되게 짓는 모습에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인성도 이내 웃었다.


“아! 나이 차이 많이 나도 상관없으면 클럽에 가시죠. 인나씨처럼 완벽한 여성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인나가 완벽....푸후! 아니...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인나가 언제까지 본성을 감출지 모르겠지만. 성질이 보통이 아니야.”


그 말에 그는 끔찍했던 날을 떠올렸다.


“저 마나씨와 인나씨 싸움을 말리다가 옷 다 뜯기고 멍들고...”


잊고 싶었기에 핑크색 여성운동복에 대해선 그는 말하지 못했다.


“...겪었구나. 그래도 완벽해?”


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나씨의 강점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완벽하려 노력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 점을 본받아서... 완벽한 사람은 못되어도, 비슷한 모습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생전 입지 않던 정장도 입고. 머리에도 신경 쓰고. 그게 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아니죠?”

“갑자기 질문? 어... 잠깐. 그 말... 어라?”

“형님과는 반대지만... 서로에게 맞춰가는 것이 아닐까요. 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도 그 사람이 형님을 싫어한다면... 형님에게서 싫어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래서 헤어진다면...”

“....결국에는 다 똑같은 건가? 그래도 뭔가... 다르지 않을까? 내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도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여자가 진짜 아닐까?”


못 말린다며 그는 웃었다.


“전 정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전과 달리 이젠 딸린 식구도 많아졌죠. 인나씨가 그걸 부담스러워할까 걱정도 합니다. 잘 지내지만, 가끔은 질투 날 정도로 잘 지내지만 결국 가족은 아니니까... 그것도 그렇고. 나중에 우리가 헤어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얼마나 슬퍼할까. 그런 생각.... 형님 말처럼 맞는 사람과 살면 다를까도 생각해보지만,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또 질문? 음...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걱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예? 무....어.”


인성의 눈짓에 고개를 돌린 그의 표정이 굳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인나가 그를 보고 있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단체등은 사실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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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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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퀵보드를 타고 온 단서 1 20.06.09 15 1 17쪽
61 착오 20.06.09 18 3 24쪽
60 용기내어 얻는 것 7 20.06.08 23 2 22쪽
59 용기내어 얻는 것 6 20.06.08 23 5 21쪽
58 용기내어 얻는 것 5 20.06.07 24 3 9쪽
57 용기내어 얻는 것 4 20.06.07 22 4 22쪽
56 용기내어 얻는 것 3 +2 20.06.06 23 3 23쪽
» 용기내어 얻는 것 2 20.06.06 20 3 25쪽
54 용기내어 얻는 것 1 +4 20.06.05 27 4 24쪽
53 진실과 거짓말 5 +4 20.06.05 21 4 30쪽
52 진실과 거짓말 4 +2 20.06.04 27 6 21쪽
51 진실과 거짓말 3 +2 20.06.04 21 6 20쪽
50 진실과 거짓말 2 +6 20.06.03 25 5 22쪽
49 진실과 거짓말 1 +2 20.06.03 19 5 20쪽
48 복덩이효과 2 +2 20.06.02 23 4 20쪽
47 복덩이효과 1 +2 20.06.02 20 4 18쪽
46 옆집의 마녀 3 +2 20.06.01 19 5 21쪽
45 옆집의 마녀 2 +2 20.05.31 27 8 21쪽
44 옆집의 마녀 1 +2 20.05.31 25 4 25쪽
43 집 잃은 고양이들 5 +2 20.05.30 25 5 23쪽
42 집 잃은 고양이들 4 20.05.30 21 3 13쪽
41 집 잃은 고양이들 3 20.05.29 19 3 13쪽
40 집 잃은 고양이들 2 20.05.29 25 5 14쪽
39 집 잃은 고양이들 1 +5 20.05.28 25 6 18쪽
38 동호회 4 20.05.28 24 6 18쪽
37 동호회 3 20.05.27 26 5 20쪽
36 동호회 2 20.05.27 22 4 23쪽
35 동호회 1 20.05.26 23 3 21쪽
34 카센터 3 +1 20.05.26 27 5 17쪽
33 카센터 2 +2 20.05.25 24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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