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다섯 골프 브라보 4

해체작업을 하다 김하사가 서서 멈췄다. 난감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 손에는 총을 들고... 어이없다. 허리 빼고 몸은 이상이 없는데, 왼쪽 옆구리에 결속한 총이 휘었다. 눈으로 봐서 총이 휘어 보일 정도라니. 김하사는 자연스레 오른쪽 접지인데 왜 총이 휘었나. 굴렀을 때 어디 돌덩어리 같은 걸 친 모양이다. 다 정리하고 군장 지기 전에 휘어진 K-2를 본다. 총열 쪽이라, 결론적으로 이건 끝났다. 병기창에 보내야할 총이 되었다. 수리 불가능하다. 남은 것은 대검인가? 비참했다. 아무리 그래도 소총이 이 지경이 되다니. 북한에서...

‘이런 개 니기미 증말, 아...’

일단 조준경만 떼어 군장에 집어넣었다.

‘담당관이 권총 하나만 넣어달라고 할 때 그냥 받을 걸...’

개나발이 된 K2를 확 던져버렸다.

점입가경.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침반을 꺼낸다.

‘어디가 북이냐 염병. 거리는? 레드라이트도 안 들어왔으니...’

3. 북으로. 북으로. 나침반을 보고 간다. 가다가다 보면 지도정치에 필요한 참고점이 나올 게다. 저 큰 산. 저기 오르면 뭐가 보일 게다. 허리 아프다. 계속 뻐근하고, 앉았다 일어서면 척추 하나가 불타는 것 같다. 디스크에 관한한 지역대에도 전문가들이 많다. 추간판 탈출만 아니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가자. 가다가 판단해. 산악을 걸어 우리 팀 TOT 안에 도달할 수 있어? 안 그럼 어떻게 해? 이대로 산을 넘는다고 다른 여단 다른 대대 만나나? 통신이라고 무전기 때문에 식량도 몇 개 되지도 않아. 일단 위치를 아는 게 중요해. 내가 가진 5만 분의 1 안쪽이 아닐 확률도 높다. 여긴 어디 섹터지? 섹터라 해도 어떤 지역대 섹터이니 사람 몇 되지도 않을 거고. 이런 산중은 아예 섹터가 아닐 수도 있다. 어찌해? 일단 가장 높은 곳을 올라가. 그 길 밖에 없어. 대체 DZ에서 얼마나 남으로 떨어진 건가...’

무전기. 유선안테나. 숏안테나. 태양전지. 수동발전기. 전압 아답터. 충전 배터리 2개. 워키토키 작전무전기. 소형 GPS. 야투경. 각종 배터리. 조준경. 실탄 5백 발. 수류탄 여섯 발. 침낭. 모포. 판초. 개인텐트. 폭약 5파운드. 예비 군화. 반합. 특전식량 5개, 전투식량 1개. 대검... 그나마 하사의 경우 전투장비는 적은 편이다.

예전에 침투하다 죽은 북한 정찰조 장비 전시를 봤다. 적에게 사살되어 전시될 때, 이런 것들이 먹고 살고 싸우기 위한 군장 내용물이지만 무척이나 초라하고 측은해진다. 중동에서 죽어 폭도들에게 전시된 사람과 장비도 그랬다. 그 사람에게 그게 가진 전부로 보이고 피아를 떠나 애달프건 뭘까. 그게 그 사람이 가진 전부는 아닐 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으로 보인다.

어떤 팀은 목표 때문에 대전차지뢰까지 군장에 넣었고, 어떤 팀은 아예 포장식량 대신 쌀을 한 짐 나누어 넣고 수송기에 올랐다. 목표 때문에 200파운드가 넘는 폭약을 진 팀도 있었고, K-7과 소총을 이중 휴대한 팀이 많았다. 사령부 대테러제대 창고에 있던 은퇴 저격총들이 모두 풀려 여단과 팀까지 내려왔고, 화기주특기들은 201과 저격총을 세트로, 다른 주특기가 K-7을 들었다. 모두 재보급을 믿지 않았다. 이런 모든 물품도 사실 초라했다. 많아 보여도 곧 소모될 것이며 전통적인 게릴라로 전락할 위험은 다분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전쟁이 빨리 끝나야 한다. 물론 아군의 승리로. 압록강에 생기는 새로운 대한민국 국경선. 그게 모든 군인들의 로망 야망이다.

김하사 군장은 줄어들지 않는다. 먹어봤자 거기서 거기다.

어느 높은 능선에 올라. 김하사는 작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군장 안의 장거리 무전기. 아직 배터리 충전이 싱싱하다. 전술종합 직전처럼 일주일 정도 계속해서 충전기에 꼽아두었다. 김하사는 일단 전문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수송기가 피격된 것과 약 2개 지역대 생존확률에 관한 짤따란 문장들. 문제는 자기 현 위치를 모른다는 것.

다시 정신을 차렸다. 군장 어딘가 처박아둔 저가 GPS. 급하게 뒤져 꺼낸 다음 바로 찍었다. 숫자가 나왔을 때, 하사는 굳었다. 예상대로 위치는 통신 때문에 휴대한 작전지도 밖이었고, 그 숫자만으로 현 위치를 알 수 없었기에 점차 GPS를 확대하면서 위치를 대충 봐야 했다. 지명이 나와도 정확히 감이 없다.

상부에서 신경 쓰지 않은 중요한 착오를 깨달았다. 모든 대원에게 비율 크더라도 북한 전도를 줘야 했다. 장거리 항공기 침투에서 작전지역 외 비율이 큰 전도를 휴대하지 않은 건 실수였다. 수송기가 모두 DZ에 정확히 도착한다는 것부터 희망사항이었다. 적어도 도와 군과 시가 표기된 전도가 필요했다. 과거 2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전투강하한 미국 영국 공수부대원들은 천으로 된 그 나라 전도를 서바이벌 장비의 하나로 받았다. 포로가 되었거나 탈출이 필요할 때 보라는 것. 항공기 승무원들은 간략한 유럽 전도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 GPS는 김하사가 작전목표가 있는 도(道)에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무전기를 버릴 수도 없고, 이 군장으로 이 높은 산들을 통과해 도를 넘어가?’

결국 김하사는 비상망으로 들어가서 사령부와 교신을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먼저 싱싱하게 충전된 배터리의 송신 파워가 믿음직했고, 나머지 하나는, 홀로 고독한 이 산악에서 아군진영 신호를 받아보고 싶어서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주 높이 올랐을 때 저 멀리 멀리 평평한 곳에서 교전 징후인 폭발물 섬광이 어쩌다 한 번씩 밤에 보였다. 어떤 여단 어떤 대대인지 작전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우리 특수전통신을 우습게 보고 비난도 한다. 모듈형 전문송수신기가 개발되었으나, 기본적으로 이 시대에 이런 저출력 무전기로 장거리통신을 시도하면서 모오스 부호를 치냐는 것. 그럼, 우리나라 군사정지위성을 대여섯 개 띄우던지. 그러면 무전기도 소형화 디지털화 된다. 특수전통신 무전기도 보이스통신(주로 FM) 가능하다. 하지만 통달거리가 짧고 배터리를 엄청 잡아먹어 30분도 안 돼 방전시킨다. 모오스 출력이 실이면 보이스통신 출력은 냉장고 굵기는 된다. 모오스 타전신호 송출이 가장 저출력으로 먼 거리를 보낸다. 더 큰 것을 지고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전문을 완성한 후에 암호화를 시작해 마무리 확인까지 10분 만에 끝냈다. 그리고 송수신 모듈에 숫자로 입력하기 시작했다.

[수신 : 4763

발신 : 8723

내용 : 0대대 2개 지역대 탑승 수송기 피격. 화재.

확인 생존 강하자 10. 공군 2. 현 위치 00남도 00군.

현 통사 단독. 목표와 이격. 즉각 차후 지시바람.

명령 수령까지 수신대기 하고 있겠음.]

눈으로 못 봤지만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양쪽 문 공군 근무자도 강하자로 보고했다. 지도정치를 일반적으로 해석해 방위각을 잡아 유선안테나를 힘겹게 설치하고 무전기에 연결했다. 주파수를 비상망으로 돌리고 스위치 on!

'어?‘

누가 사령부와 교신하고 있다. 그 소리만으로도 깊은 호흡이 들어가고 마음이 안도한다. 호출부호로는 누군지 모른다. 과연 지향성이 최대한 일치해 자기 신호가 남쪽 기지국에 들어갈지 김하사는 불안했다. 지도로 정확히 방위각을 딴 것이 아니다. 적당한 지향성으로도 기지국의 강한 출력 송신음은 들릴 수 있으나, 저출력 무전기 전파가 저쪽에 들리는 건 다른 문제다.

타전기를 들고 교신이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팀이나 지역대로 보이는) 미세한 전파가 송신 끝 확인 부호를 보내자마자 김하사는 호출부호를 연달아 맹렬하게 치면서 물고 들어갔다. 정규 교신시각에만 훈련을 했기에 김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반응이 없어 곧바로 다시 호출부호를 대여섯 번 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응신이 왔다. 아는 자만이 아는 희열. 감도 하나란다. 하사는 보낼 보고전문을 받으라 했고, 보내라는 응신이 오자마자 전문송수신 모듈의 send를 눌렀다. 드르르륵 전문이 날아갔고, 하사는 확인부호를 보낸다. 일단 그 쪽에서 기계로 수신된 전문의 형태와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

결국 오케이 신호를 보내왔고, 긴급이니 회신을 기다리겠다는 전망대기 신호를 보낸다. 이후로 잠잠해졌다. 그렇다면 우리 팀에게 올 전문은 아직 없다는 거다. 모든 팀들은 송수신 후 곧바로 장비 철수해 이동한다. CAS가 아니면 김하사 같은 경우가 특이한 거다. 무슨 뜻인지 이해한 사령부 통사가 마지막으로 알았으니 대기하라고 송신했다. 대기에 들어간다. 하사는 배터리가 떨어질까봐 태양을 보면서 솔라셀을 펴 연결했다. 전압 바늘이 쑤욱 올라간다.

사람들이 잡목을 하도 해가서인지 굵은 나무들 외에는 산이 모양 그대로다. 풍성한 나무들이 산 모양을 가리지 못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설악산이나 금강산이나 뭐가 다르다는 건가, 다 거기서 거기고, 옛 문헌에 따라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산에 휴전선만 그어놨는데 뭐가 얼마나 다르랴. 오히려 자연을 덜 건드린 우리 쪽 산이 더 좋은 거 아닌가? 말로만 듣던 금강산에 갔다는 생각만으로 노인들이 흥분할 뿐이다. 북한사람들에게 우리 다도해 관광시켜줘 봐라 금강산은 개뿔이나...

여긴 남한과 다르게 잔나무가 없다. 누군가 화목으로 벌채해간 거다. 잡목 없고 나무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어 이게 한국인가 서양인가 분간이 안 간다. 화성인가? 달의 뒷면이야? 혹시나 민간인이 출현할까봐 김하사는 계속해서 사방을 관측하며 귀만 무전기 외부 스피커에 집중한다. 무기라곤 그저 대검.

시간은 오후로 가고 산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나 조금 춥기까지 하다. 느끼지 못했지만 무거운 군장 지고 오르면서 몸이 많이 젖었다. 허리도 여전히 불안하고 악화될까봐 앉았다 일어서는 게 무섭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김하사는 담배 하나 물고 혹시나 해서 귀를 스피커에 댔다 뗀다.

응신이 바로 와? 쉽사리 올 거란 생각은 안 한다. 비상망이면 엄청난 보고들이 들어갈 것이고, 상부 보고절차도 있고, 응답이 내려와 정통단에서 다시 전문을 작성해 자신을 호출하는 시간, 예상이 안 된다. 김하사가 보낸 전문은 해역한 다음 작전과로 올라가겠지만, 그 내용 보고 김하사 하나의 거취에 관해 바로 전문이 올 거란 생각이 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