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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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3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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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6,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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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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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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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2쪽

다섯 골프 브라보 10

DUMMY

만약 위가 다섯 골프이고 아래가 북한군이라면? 그러면 저기 5G로 추정되는 쪽은 아래서 올라오는 적에게 완벽히 당한다. 산중 교차로는 아래서 올라오는 병력이 먼저 선점할 거리와 속도다. 하사와 위쪽 무리는 거리 50미터. 아래 무리와 30미터. 탄창 세 개와 AK를 든 김하사. 게다가 탄창 하나는 열 발 약간 넘게 들어 있다.


군관에게 노획한 그대로. 상황이 오면 그냥 그 탄창을 쓰고 새것을 갈아 낀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다.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하사는 약실에 총알이 한 발 들어간 상태에서 탄창을 새것으로 갈아 꼈다. 안 쓰면 그만이지만, 만일에 대비하려면 만땅을 껴야 한다. 잠시 착각했다. 탄창은 항상 만땅을 끼워놓는 게 맞다.


다시 집중. 선택의 시간. 과연 실체는 무엇인가. 둘 다 아군이라면 용기를 내 암구어를 해야 한다. 소리치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놀라지 않게 먼저 인기척을 내고 소리를 지르나? 아니면 그냥 갑자기 멧돼지를 불러? 이제 아래 대열 20미터. 위쪽도 가까워진다. 김하사는 일단 아래만 보기로 했다. 무월광. 그러나 눈은 어둠에 적응되어 생각보다 빠르다. 눈 가늘게 뜨고 아래 병력에 집중한다. 10미터. 분명 북한모가 보인다. 앞선 경험으로 아군이 북한군복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군복만으로 정확한 판단은 아니다.


그러나... 김하사는 자물쇠를 풀었다.


소리를 들었다. 아래 무리에서 나오는 말을... 언어. 모르는 말이었다. 한국말인지조차 억양이 불분명했다. 억양 폭이 큰 경상도 사투리 같이도 들렸다. 김하사 부대가 아무리 북한 말을 연습하고 새터민들 불러 집중교육을 받았지만, 산중에서 퇴출하며 북한 말을 쓰진 않을 거다. 퇴출하면서 북한말을 연습해? 정말?


어찌됐건 하사는 군장을 벗을 수 없다. 과거 경험으로 야간행군에서 오줌 한번 싸고 나면 엄청 멀어진다. 부대는 행군거리보다 속도를 따진다. 먼저 골인해 먼저 자는 지역대가 이긴 지역대다. 목적지 뚜렷하거나 작전행군에서 10분간 휴식 그런 거 없다. 그냥 산 넘어 쉬자. 넘기 전에 쉬고 넘어가자 등등. 특히 작전복귀 행군은 시계 안 본다. 단독군장 작전행군은 50분 행군 10분 휴식 그런 거 없다. 그냥 미친 듯이 걷는다. 저 아래 위 똑같다.


바로 판단해야 한다. 선택!


김하사는 무릎쏴로 자세를 고정하고 이를 물었다. 그리고, 결심하면서 엄지로 자물쇠를 자동으로 돌렸다. 해 본 적 없다. AK훈련은 모두 단발이었다. 손가락 터치로 하는 AK 점사. 한다면 지금이 처음이다. 심장은 뇌에서 쿵쾅쿵쾅 터지고, 핏줄에서 피가 펌프가 밀듯이 벌컥벌컥 지나간다. 심장고동이 눈으로 터져 나갈 것 같다. 모든 사물이 일그러져 보이고 소리가 귀에 확장되고, 시야가 아지랑이가 가린 듯 울렁거린다. 검게 올라오는 그림자들. 더 이상 지체 못한다. 무리 중간에 기관총으로 보이는 기다란 걸 어깨에 얹고 있다. 아군이면 노획?


떨리는 손. 그냥 숨어서 관망할까 유혹이 온다. 여기서 쏘면 그냥 죽을 거 같다. 당연히 죽는다. 사령부에서 그에게 내린 정확한 단독명령은 5G 조우와 지역대 통신 개통. 쏘는 게 맞는가? 참아야 하는가? 참으면 무서워서 참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침투하다 맞아 추락한 수송기. 그 안의 전우들. 갈증과 허기로 비참하고 초라한 며칠. 자기가 특수전부대 맞나 싶을 정도로 좆 같았다.


여기서 쏘지 않고 그냥 보면? 그냥 관망하면? 여긴 북한. 기댈 곳이 없다. 그리고 위쪽 아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죽는다. 총을 수평으로 들었으나 K1처럼 야간조준은 불가능. 약간 흩어진 대열에서 그림자들이 김하사 자신과 1자로 일치가 많이 되는 열을 조준한다. 행군종대도 아니고 3열 비슷하다. 즉각조치 사격. 울렁울렁 아지랑이. 힘 들어간 동공. 북한모 무리. 깡통모 무리... 그리고 김하사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


‘씨발 쪽팔리게... 쏴~~~!!!’


순간 김하사 몸이 뒤로 두루룩 밀린다. 멈췄다가 또 두루룩 밀린다. 앞서 올라오던 그림자들이 쓰러진다. 또 두루룩. 그리고 잠시 후 저 아래서 반딧불이 반짝거린다. 당황. 방아쇠 당겨도 안 나간다. 벌써 다 쐈어?! 하사는 탄창 제거하고 새것을 찾아 끼려 한다. 이 좆같은 AK 탄창 삽입 시 걸게 걸기. 그때였다. 하사는 사방에서 들리는 총성이 아주 작은 소리에서 점차 큰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많다. 펑펑펑펑 쾅쾅쾅쾅 울린다. 뒤에서도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윗길에서 올라오던 무리가 수평으로 늘어서 아래를 향해 섬광들이 터트리고 있다. 귀에 우퍼 스피커를 댄 기분이다. 웅웅웅웅. 그 소리가 점차 탕! 다다다다! 탕! 탕! 탕! 진짜 총소리로 변한다. 깨달았다. 윗 무리가 아래 무리를 쏘고 있다. 모든 건 결정 났다. 위는 5G! 아래는 적! 그 반대일 수는 없다. 결코!


탄창 결합하고 노리쇠 전진. 다시 점사! 저 아래에서 서 있는 사람이 안 보인다. 쓰러진 사람은 말고는 모두 엎드려 은폐해 사격하고 있다. 섬광들을 보며 거기다 대고 하사는 다시 점사로 두루룩 두루룩 나누어 당긴다. 그리고 또 금방 그 탄창이 끝났다. 다시 갈아 끼는데 이제 열 발 남짓.


‘기동 안 하면 죽어!’


점사로 한 번 또 당긴다. 두두룩. 김하사는 다시 판단의 기로에 섰다. 저 5G에게 가는 게 맞다. 헌데 너무 위험하다. 길로 나가면 죽는다. 그러나 여기 남아 있어도 죽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5G는 곧 사격 멈추고 뛴다. 여단이 달라도 그건 다를 수 없다. 집중사격 후 순차적으로 뛸 거다.


‘뛸 수 있나?’


영화처럼 가능해? 순간 주변을 넓혀서 보려한다. 헉! 이제 사격은 아래 무리와 윗 무리의 교전으로 이어진다. 기회는 지금이다. 더 이상 기회는 없다. 갈 수 있나? 정말로 저 위로 뛰어? 5G는 저 산길을 따라 올라가지 않는다. 분명 그 길로 안 간다. 저 위치에서 분명 길이 아닌 산으로 뚫고 올라갈 거다. 특수전부대가 아니라도 기본적인 판단이다. 길을 달리면 계속 추격당하고 금방 거리가 좁아진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죽어!’


하사는 무거운 군장이 걸렸다. 이걸 지고 어떻게 빠르게 달리나. 하지만 하사는 몸을 돌렸다. 이런 니기미 내 척추! AK를 오른손에 쥐고 뛰기 시작했다.


‘몰라 씨...’


속에선 오 제발 오 제발 소리만 울린다. 마음은 직선거리로 뛰고 싶지만 그러다 수풀에 걸려 넘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로 뛰기 시작했다. 삼각지 교차로 20미터. 전력으로 뛴다. 쏘건 말건. 이래저래 어차피 죽는다. 산길은 다른 곳에 비해 허옇게 보였다. 뒤에서 쏘는 총알이 붕붕 쉭쉭 하사 근처를 통과하고 바닥도 턱 턱턱 때린다. 제발 다리만 안 맞기를 기도한다. 아무 생각 없다. 1미터 앞에서 죽는다. 바로 맞는다. 어쩔 수 없다. 저 아래로 나 혼자 도망가 봤자 기회는 놓치고 또 그 무익한 자신으로 돌아간다. 숨어서 훔치기나 하는.


어느 틈엔가 하사는 삼각지에 도달해 왼쪽으로 꺾었다. 적 방향은 안 본다. 본다고 안 맞고 안 본다고 맞나? 북에 넘어와 처음으로 가장 큰 고함을 질렀다.


“멧돼지~~!!! 멧돼지~~!!!”


그리고...... 원하던 소리를 들었다.

“빨리 와~~~!!!”


멀지 않은 그 쪽을 향해 뛰는데, 그림자들이 일부 길에서 산 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하사는 무서웠다. 단독군장 정도인 그들은 날듯이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무리 중 두 명이 아래를 향해 갈기고 있고 나머진 이미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도달했을 무렵 그 두 명도 산으로 뛰어 올라가는데, 그중 한 명이 김하사를 향해 손짓했다. 염병할 벙거지 위장모를 벗어 던지고 싶었다. 자꾸 눈앞에서 출렁거린다. 모자를 벗어 던질 여유가 없다.


막상 그들이 올라간 곳에 도달했을 때, 땅바닥에 버리고 간 탄통과 AK와 군장이 보였다. 쾅! 쾅! 왼쪽에서 뭔가 두 개가 터진다. 마지막 두 명이 수류탄을 저 멀리 투척했다. 김하사도 용기를 내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 안전핀 뽑고 길 아래로 던졌다. 무리가 올라간 쪽으로 올라간다. 등 뒤에서 들리는 쾅! 하사는 힘을 내 상향으로 뛴다. 군장이 쇄골을 뽀갤 것 같고, 뒤에서 누가 잡아끄는 것 같다. 뒤에서 들리는 수없는 총성. 총알이 땅을 때리고 잎사귀를 때리고 가지를 부러트리고 슉슉 윙윙 공기를 가른다.


그렇게 어두운 산을 위로 뛰는데, 저 멀리 마지막 한 명이 보인다. 손짓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한 명이 앉아쏴로 주저앉는 것처럼 보이더니, 쓰러진다. 왜 저래?


하사는 이제 뛰기 힘들다. 퍼질 것 같다. 속보로 간다.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간다. 총알은 날고 쓰러진 그림자는 점차 다가온다. 하사는 누운 그림자에게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맞았... 맞았어!”

“가야 돼!”


급박한 순간,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눈을 서로 마주했다. 누운 자가 먼저 입을 연다.


“근데, 근데, 너... 누구야?”

하사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하나?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리고 문득.

“나 똥개야!”

“.... 뭐라고?”

“5지역대 맞지?”

그림자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그리고 끝이었다. 말이 없어졌다. 김하사를 응시한 채 누운 자는 멈췄다. 항상 다가오는 번개나 감전 같은 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 그 순간의 연속. 또 하나가 왔다. 밑에는 쏘면서 올라오는 적. 위로 빠르게 멀어지는 다섯 골프. 하사는 왼손으로 쓰러진 사람 심장을 짚었다. 없다. 안 뛴다. 뭐가 없다. 가야 한다. 더 이상 안 돼. 누군지도 모른다. 하사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리가 올라간 방향을 본다. 검은 산 밖에 안 보인다. 눈앞이 저 높은 위쪽 빼고 시커멓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가 앞에 막아섰다.


힘을 내 다시 뛰고 총알은 계속 올라온다. 이미 저들은 눈치 했다.


그렇게 20보 정도 뛰었을까? 김하사는 멈췄다. 그리고 다시 달려 내려간다. 다시 보는 망자의 굳어 고정된 눈동자. 이 사람은 누굴까? 계급... 살집이 있어. 장교 아냐?


‘미안해...’


망자의 K2를 낚아챘다. 다시 뛴다. 저 앞에 있다. 그리 멀지 않다. 곧 잡는다. 곧 합류한다. 간다. 이제 끝났다. 만났다... 지형이 거칠어지고 너무 힘들다. 허벅지가 천근만근. 다리가 무디게 나간다. 하사는 깨닫는다. 왼손에 AK 오른손에 K2.


"이 썅!"


AK를 외진 곳으로 힘껏 던졌다.



11. 기다리는 것인가. 올 것 앞에서 자기 인생과 타이밍이 맞길 바라는, 무슨 우주이론처럼 한 인간에게 일어날 변수 수 백 개가 공존하는 것인가. 하사는 정오의 공중 한복판으로 떠오른 태양을 본다. 다시 혼자. 온 군복이 땀으로 젖었다. 몸이 멈추지 않고 떨린다. 몸은 체력을 다 썼다고 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쓰러진 5G 대원은 재집결지나 가고자 하는 은거지 방향을 알았을 것이다. 하사는 전력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그러나 그래서 얻은 건 K2 한 정이 전부. 드디어 군장에 있던 5.56mm 실탄과 탄창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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