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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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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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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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해변으로 가요 2

DUMMY

군용대검은 관통이 깊도록, 착검으로 찌를 경우 몸을 정면에서 관통시키려고 사제 칼보다 두텁고 길게 만드나, 이제 이 개념은 없어지는 추세다. 북한 총검이 여전히 구식으로 아군 것보다 길어 제대로 찌르면 거의 몸을 관통하고, 앞뒤로 관통되면 출혈이 훨씬 빠르다.


졸병은 부엌칼이나 사제 칼에 베인 것 같다. 그들이 칼을 여러 자루 휴대한 이유가 유추된다. 총소리를 낼 수 없는 날이 꽤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고참이 비트와 반 비트 텐트자리를 뒤져 찾은 건 아군 실탄 30여 발. 둘이 반씩 나눠 가졌다. 부서진 여러 장비가 보인다. 찢어 터진 군장 조각. 조각난 눈에 익은 위장모. 모든 쓸 만한 장비는 치워졌다. 적이 가져갔다. 그거라도 건진 게 다행이다.


그 안쪽 우거진 곳에 탄피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고, 수류탄이 터졌는지 비트는 사방으로 흙이 퍼져 있었다. 누가 저 안에서 끝까지 버티며 격렬하게 싸운 거다. 둘은 그래도 큰 군복이나 판초 천이나 군화가 보이길 바랐다. 군화의 주기는 가능성이 적다. 거기 대대를 적어놓지는 않는다. 그게 타인을 거쳐 돌고 돌았다? 해도 대대 안이고, 군화 혓바닥에 대대를 쓰지는 않는다. 지역대나 중대를 보통 적고 이름 영문 약자나 한글로 이름을 쓴다. 절취자에게 좀 겁을 주려면 중사나 상사 계급장을 그린다.


모든 마크를 완전히 다 제거하고 올라왔기에 온전한 군복이 있어도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을 거다. 성명이라도 하나 찾으면, 나중에 그 중대 그 지역대가 여기서 어떤 일이 있었음을 국방부나 보훈처에 전달할 수 있다. 다만 둘이 산다면...


그렇게 은거지를 다 수색하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주저하다가, 졸병이 위험하니 나가자 했고, 고참은 잠시 망설이다 빠지는 방향을 정했다. 고참이 입술에 손가락 V-자를 댔다. 일단 저쪽 수풀로 들어가서 담배 하나 갈기자고 한다. 빨리 여길 벗어나는 게 맞지만 도저히 마음이 무거워 담배 한 모금 빨고 싶었다.


천천히 그리로 들어가는데, 다른 곳과 비교해서 조금은 습한 땅 흙냄새가 공기 중에 풍긴다. 그늘로 들어와 담배를 꺼내다가 둘은 놀라며 멈췄다. 대체 몇 번인가. 그대로 멈춰라 놀이를 하는 것이. 그러나 이번엔 그게 아니다...


무덤이었다. 둘은 생각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신들이 없다. 이 높은 산중의 적군 게릴라 시신을 놈들이 다 들고 내려가? 전시에? 자기들 전사자면 몰라도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놈들이 매장은 해준 것이다. 헌데 시신이 몇 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한 사람 누운 것처럼 가지런히 배열해준 게 아니라 그냥 여러 무더기에 마구 묻었다.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고 포격으로 사람 몸들이 조각나서 그렇게 묻을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 더 나가자 또 다시 매장지가 나타났다. 거기는 어쩔 수 없이 사람 키만큼 기다란 매장지였다. 거기 일곱 구가 누워 있었다. 둘은 긴 호흡을 내쉬며 무의식적으로 모자를 벗었고 시선이 올라간다. 한숨. 둘 다 눌린 머리를 긁는다. 이 일곱은 당연히 추측이 간다. 포격 받고 적이 내습했을 때 적어도 몸이 성한 상태로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다.


‘수고들 하셨소...’

그러나 둘은 여전히 고민이 풀리지 않는다.

‘몇 여단이야? 수인사는 해야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대대나 지역대 표식을 찾고 싶은 거다. 생존해 복귀한다면 여기 담당 여단은 알 수 있고, 지역대 표식만 있으면 모든 결산이 가능하다. 중대 주기만 있어도 가능할 수 있다. 허나 그건 나중 이야기이고, 당장 알고 싶으니 숫자 두 개로 된 대대 주기라도 보고 여단을 알고 싶었다. 사령부의 각 여단은 같은 부대면서도 실질적으로 관심이 없는 남이며 - 그러면서 궁금한 면을 가진 한 부류다. 이들은 평시에도 다른 여단 가보는 것에 정말 관심 없다. 그러나 북한 땅에서는 마음이 달랐다.


둘은 생각한다. 저 조각들과 누운 사람들 중에서 자신들 동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사건은 아마 일주일은 지난 것 같고, 파내도 얼굴은 알 수 있겠지만, 파봤자 없을 수도 있으니 그건 무익했다. 전사한 동기 얼굴을 본다고 뭐 어쩔 것인가. 사실 둘이 남쪽에서 올라오기 전에 자기들 해안에서 붙은 내륙 섹터 여단이 어디라고 풍문은 들었다. 하지만 풍문일 뿐이고 정확한 걸 알고 싶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디 여단인지 알고 싶은 건 이상하게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둘이 직접 말은 안했지만 실망도 여간 큰 게 아니다. 다른 여단은 나을 줄 알았다. 둘은 바다 쪽에서 왔다. 그곳 목표를 때린 뒤, 도저히, 도저히, 그 일대에서는 차후 작전이 불가능했다. 산도 없는 해안지대는 숨을 곳도 없고 적 해안방어 부대는 우글거렸으며 경계는 삼엄했다. 바다로 퇴출은 시작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버티다 포위되자 내륙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기괴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다사다난했다. 이제 사람을 죽여도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일상이다. 필요가 떠오르면 서슴없이 죽였다. 둘이 겪은 지하 터널 안에서의 전투는 내부소탕훈련의 현실 악몽을 선사했고, 터널 이후에도 대원들이 계속 쓰러졌고 생존한 대원들은 삼삼오오 사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졌다고는 하나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이제 총 든 거지나 다름없다.


군장은 이미 사라졌다. 생과 사의 순간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무거운 군장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외국 특수전부대처럼 삼단 분리 군장도 아니고 부피만 컸지 쑤셔 넣는 엘리스팩 사양 쇠 플레임 군장. 모든 걸 통으로 넣고 분리도 안 되는 군장이 목숨을 위협했다. 그 군장과 함께 하려면 목숨을 담보해야 했다. 용량은 작아도 차라리 백팩을 가져올 걸 후회막심이었다. 중요한 걸 백팩에 넣어 그걸 군장에 넣고 올 걸...


피눈물 난다. 안 보면 모를까 미 육군 특전단 분리군장을 보면 전시에 사비로라도 사고 싶었다. 그들 삼단분리군장 맨 위 1단에 가장 중요한 무전기와 실탄과 비상식량을 넣는다. 여차하면 그것만 분리해서 침낭이고 잡다한 거 다 버리고 튀는 거다. 우린 10년 째 국방전시회 같은 데서 서양 리플리카 같은 것 모양 좋게 만들어 전시하면서 보급될 꺼다 구라만 까고 있다. 채택이 되어도 언제 내려올지 국방부 자신도 모른다. 내려온 여단도 있다는데 둘의 여단은 언제 보급될지 누구도 몰랐다.


그 우겨넣기 엘리스팩을 버리니 졸지에 거지가 되고 말았다. 실탄부터 싸우다 빈총이 될까 불안하다. 적을 죽이고 AK를 잡는 건 로망이 아니라 현실 생존이었다. 47이건 74건 카피판이건 상관없다. 아직 구하지 못했다. 적을 여러 번 쏴 죽였지만 총을 노획할 타이밍이 되지 못한 거다. 지금 둘에게 AK는 절실하다. 그나마 어렵게 얻은 것이 고참이 든 백두산권총이다.


둘은 게릴라 베이스 설정도 없이 곧바로 해안에 돌격했다. 그때부터 군장을 버리고 빠르게 움직이거나 - 속도를 줄여가며 군장을 가지고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것도 그 죽음의 터널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그 지하 곳곳에 쓰러지거나 전사한 동료를 돌볼 시간도 없었고, 목적을 달성했으면 바로 나와야 했다. 그 안에 계속 머무는 건 전사나 포로를 자처하는 포위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같이 도피탈출하다 붙게 된 둘은 동쪽 내륙으로 이동하다, 큰 산들을 보고 다른 여단을 찾아보기로 하고 올라왔다. 이유 간단했다. 좀 떨어진 곳에 도둑처럼 숨어 있다가 이 산악 쪽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총소리는 아군과 적군이 둘 다 공존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둘의 소속 여단이 아니고, 이 시기 이 외딴 산에서 전투를 벌이는 부대라면 다른 여단이 유일했다.


그 총성과 폭발음 때문에 힌트를 얻었다. 어떻게든 강력한 제대로 들어가 제대로 된 비정규전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만약 조건이 된다면 그들 제대를 이끌고 가서 해안 2차 목표를 까부수고 싶었다. 목표였던 해안포 반 정도를 격파했을 때 지역대 병력이 순식간에 급감했고, 전멸을 피하고자 도피탈출이 시작되었다.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스토리는 만화에나 나온다. 훈련부족 어쩌니 해도 북한군은 근무 오래한 놈들이고 총 제대로 쏜다. 맞으면 뒈진다. 그들 지휘관이 돌격하라면 돌격한다. 닝기리 합바지가 아니다. 노농적위대도 할 거는 다 한다. 전술이 돌격 밖에 없어서 그렇지.


둘 다 체중이 10kg 이상 빠졌다. 이틀 간 물만 마셨고 이름 모를 산열매를 먹었다. 그것도 생존이라고, 교육받은 교범대로 한 명이 먼저 수상한 열매 하나를 먹고 20분 간 이상이 없나 기다렸다 다시 한 번 수행하고 그 다음부터 먹었다. 참 좋은 거 배우긴 배웠다 21세기에. 간단한 과학적 상식이 떠오른다. 단백질이 먹고 싶다 탄수화물이 먹고 싶다. 몸에 절실히 원한다. 며칠 도피탈출 동안 군장에 있던 걸 다 먹어치우지 못한 게 한이다. 어차피 죽으면 썩을 삭신, 버리면 못 먹을 군장의 식량.


분산도피한 다른 중대원 지역대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옛날 무장공비처럼 굶주리며 몰리고 몰리다 밥숟가락 놓는 건 아닌지.


졸병은 사령부 스쿠버까지 나와서 침투 때 실전 해척도 했다. 이젠 다 필요 없다. 본질적인 무장공비 게릴라가 되었다.


실탄과 먹을 게 부족하다.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겨야 내려가 개 좆이든 한다. 껏해야 둘이 합쳐 실탄 50발 수류탄 두 발, 이 무슨 꼬라지인가. 졸병은 180이 훌쩍 넘고 어깨가 딱 벌어져 체격이 우람하다. 수영을 잘 못해도 유디티나 스쿠버 보내면 버틸 놈이란 기분이 바로 든다. 인상도 고참들이 좋아하는 몽골계 북방계 이스터 섬의 사각턱. 그러나 외관만 그렇지 졸병은 웃음도 많고 밝다. 한번 웃음이 터지면 대책이 없어, 천리행군 도중 농담 한 마디에 두 시간 동안 웃음이 그치질 않아 후송해야 하나 고민했던 독특한 성격.


그에 비해 고참은 조금 괜찮게 생겼다 할 정도로 평범한 얼굴과 체격에 175. 허기는 세포 덩어리가 더 무거운 졸병이 더 크게 느낀다. 근 2년 동안 키웠던 벌크가 사라지고 체중은 확 줄어 스쿠버 수료 시점과 비슷해졌다. 사회에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식스팩은 빈곤의 상장이 되었다. 둘은 살이 찌고 싶다. 식스팩이 완전히 매몰되도록 먹고 퍼지고 자고 싶다.


너무 오래 있으면 위험할 수 있기에, 이제 가야 하는데 지도가 없다. 암기한 작전지역 한도를 넘었다. 찾을 수 있을까. 섹터의 이 여단 다른 지역대나 다른 대대.


‘도박을 걸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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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다섯 골프 브라보 4 21.01.11 379 17 11쪽
170 다섯 골프 브라보 3 21.01.08 384 22 12쪽
169 다섯 골프 브라보 2 21.01.06 379 18 12쪽
168 다섯 골프 브라보 1 21.01.04 463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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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개도 잠든 밤 2 20.12.30 397 18 13쪽
165 개도 잠든 밤 1 20.12.28 417 18 10쪽
164 안둘 바라기 2 20.12.25 386 23 11쪽
163 안둘 바라기 1 20.12.23 408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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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태운다 나의 거짓 3 20.12.18 376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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