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라스푸티차
한스의 대체자로 근무하던 장군이 전선을 순시하다가 인근 포격에 놀라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였다. 그로 인하여 한스 파이퍼는 급히 호출되어 복직하게 되었다. 한스는 복직이 되자마자 전선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현재 전선의 연료 보급 상황들에 대한 정보를 보고 받았다.
'이럴수가...'
지금 모스크바 인근에 한 사단은 연료가 바닥난 상태였는데, 이들이 연료를 보급받으려면 수십 대의 트럭이 라스푸티차를 뚫고 하루 동안 가야했다. 파르티잔들은 독일군의 연료 보급을 막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연료를 보급받으러 가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작전이었다. 탄약과 연료를 보급하는 부대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야말로 특수작전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한스는 루프트바페에게 고립된 사단을 위하여 연료, 탄약 등을 공중 보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작전이 성공하고 루프트바페가 피해를 덜 입기 위해서는, 최전선에 있는 독일군의 비행장을 소련 항공기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야 했다. 당연히 비행장은 소련 공군의 1순위 타겟이었다. 그리고 소련군의 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라스푸티차로 인하여 최전방 독일군 비행장은 진흙으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이 시각, 에이스 파일럿 권터는 엉망이 된 비행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시발...'
1940년 10월 모스크바 인근에서 소련군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제공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만토이펠 대대의 차량들은 소련군의 폭격으로부터 한 대라도 덜 격파되기 위하여, 최대한 각 차량들을 분산시켜서 주차시켜두었다. 그리고 전차병들은 진흙탕 뻘밭 속에 참호를 파두었다. 오토도 야전삽으로 열심히 참호를 팠다. 그런데 이 정도로 땅이 질퍽거리면 참호를 파는게 존나게 힘들다.
'좆같네!!!'
첫 장마가 시작된 10월, 낮 기준으로 현재 온도는 8도였다. 아직까지는 견딜만한 날씨였다. 하지만 밤이 되면 전차 관측창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퀴벨바겐 등 모든 차량의 전면 유리창은 진흙으로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엄청나게 피곤하고 군화와 군복에 묻은 진흙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리고 식량 보급이 안되고 식수를 구하지 못해서 다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다.
내일도 만토이펠 대대는 03:00에 공세가 예정되어 있었다. 현재 소련군의 공군이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다음 날, 해가 뜨기 전에 공세를 해야 했다. 돌격포 부대가 만토이펠 대대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다들 라스푸티차 때문에 공세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게오르크가 외쳤다.
"괜찮네!! 조만간 강추위가 올거고 진흙이 얼어붙으면 전차를 기동하기 수월해질걸세! 물론 죽고 싶을 정도로 춥겠지만 말야!!"
커다랗고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진 오펠 블리츠 차량이 중대 지휘소 옆에 있었다. 이 오펠 블리츠 트럭은 야전 구급차로 사용되고 있었다. 티거 중전차 대대의 전차병들은 귀한 인력이기 때문에 이런 야전 구급차까지 보내준 것 이었다.
또한 정찰용으로 Sd.Kfz 261 또한 부대에 보급되었다. 이 차량은 모스 부호는 최대 40km, 목소리는 10km까지 신호 송신이 가능했다. 그리고 잠시 뒤, 척후병들이 Sd.Kfz 261를 타고는 인근을 정찰하고 모스 부호로 신호를 보내주었다. 슐레프 중대장이 중대 지휘 차량에서 신호를 받았고, 슐레프 중대원들은 모두 출동을 준비했다.
"시동!!!"
그렇게 슐레프 중대의 전차들은 모두 차간 표시등을 보며 어둠 속에서 기동했다.
한편, 나타샤, 류드밀라, 크세니야, 블라슈크 등은 모스크바에서 독일군과 지옥같은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다. 독일군의 4호 돌격전차 브룸베어는 소련군이 점령한 건물의 콘크리트 벽을 다 부수는 등 시가전에서 엄청난 화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타샤, 류드밀라, 크세니야는 주요 거점으로 쓰이는 건물의 옥상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지붕에 자리를 잡은 류드밀라는 저 멀리서 15cm의 뚱뚱한 곡사포를 장착한 브룸베어가 이 쪽으로 오는 것을 발견했다.
'저..저거!!'
브룸베어의 뚱뚱한 15cm 주포 우측 MG34 기총이 불꽃을 뿜었다.
드득 드드득 드드득
류드밀라는 브룸베어가 측면 기동륜을 노출하기를 기다렸다. 그 때 기동륜을 저격해서 기동불가로 만들어야했다. 류드밀라는 식은 땀이 줄줄 흘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브룸베어가 오고 있는 길목의 우측 골목에 독일군이 엎드린 채로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이 보였다. 잠시 뒤, 그 독일군이 골목에서 연막탄을 발사했다.
퍼엉!
'젠장!!!'
연막탄 때문에 브룸베어를 조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브룸베어의 뚱뚱한 15cm 곡사포가 불을 뿜었다.
퍼엉!!!
쿠과광!! 콰과광!!!
류드밀라가 있던 건물의 2층이 포격을 맞았다.
"꺄아악!!!"
류드밀라는 저격총을 들고는 나타샤, 크세니야와 함께 옆 건물 지붕으로 점프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빨리!!!"
소련군은 주요 거점을 항상 인접한 건물 두 곳에 나누어 놓았다. 건물 하나가 점령당해서 모든 거점을 잃어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브룸베어는 다시 한 번 커다란 곡사포에서 불꽃을 뿜었다.
퍼엉!
나타샤는 옆건물 지붕으로 달아난 다음 계단을 통해 달아나려고 했다.
'이 건물도 조만간 뺏길거야!! 빨리 튀어야 해!!'
하지만 류드밀라가 외쳤다.
"독일 놈들이 이 건물 옥상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야해!!"
현재 브룸베어한테 격파당한 건물이 독일군에게 완전히 점거당하면, 독일군은 당연히 지붕을 통해서 이 건물도 점거할 것 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 지붕에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철조망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결국 나타샤와 크세니야는 독일군이 여기로 오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쳤다. 나타샤는 류드밀라때문에 도망갈 시간이 지체되어 속으로 울부짖었다.
'류드밀라!! 저 썅년!!!'
류드밀라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지붕 위에서 브룸베어의 측면 기동륜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류드밀라가 발사한 총알은 정확히 브룸베어의 기동륜을 맞추었다. 브룸베어는 포탑이 없었기에, 이렇게 기동불가가 되면 주포를 다른 방향으로 조준할 수 없게 된다. 브룸베어 근처에 있던 독일 보병들 또한 당황한듯 연막을 뿌렸고, 류드밀라는 잽싸게 나타샤, 크세니야와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크세니야가 외쳤다.
"류드밀라!! 정말 잘했어!!!"
"다들 무사할까?"
1층에 내려가보니 다른 소련군들은 미리 파둔 지하도를 통해서 이 건물로 옮겨온 상황이었다. 나타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어떻게 도망가지?'
브룸베어의 포탄을 맞은 건물은 이제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현재 류드밀라와 나타샤, 크세니야가 옮겨온 이 건물은 미리 가구, 모래 주머니 등을 통하여 독일군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완벽하게 준비를 해둔 상태였지만 언제 이 건물도 뺏길지 알 수 없었다.
드득 드드득 드드득
탕!! 타앙! 탕!!
잠시 뒤, 잠시 전투가 소강 상태가 되었다. 옆 건물에서 독일군이 독일어로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타샤는 이 소리를 들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빠...빨리 도망가야 해!!'
미리 파둔 지하도를 통하여 식수, 탄약 등이 보급되고 있었다. 나타샤는 아까 전에 포탄 파편을 맞고 부상당한 부상병이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았다. 조금 있으면 저 부상병 또한 지하도를 통해서 후방으로 옮겨질 것 이었다. 한 병사가 외쳤다.
"이 친구 누가 후방으로 옮겨줄텐가!!"
"저요!!"
평소라면 절대 이런 일에 나서지 않았겠지만, 나타샤는 지금 같은 절호의 탈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후방으로 가서 돌아오지 말아야지!!'
나타샤가 자진해서 나서자 크세니야와 안나, 류드밀라 또한 같이 부상병을 옮겨주기로 했다. 커튼을 이용해서 만든 들것으로 넷은 지하도를 통해서 끙끙대며 부상병을 옮겼다.
'아이고 힘들어!!
부상병을 운반하는 카펫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나타샤는 혹시나 피가 묻을까봐 최대한 끄트머리쪽을 들었다. 덕분에 류드밀라가 더 힘들게 들것을 들어야했다. 류드밀라가 말했다.
"나타샤! 너무 끝으로 들면 힘이 안 들어가!"
"응! 알았어!"
하지만 나타샤는 류드밀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나...'
그렇게 넷은 후방에 있는 임시 치료소에 부상병을 옮겨 주었다. 나타샤는 크세니야, 안나, 류드밀라의 눈치를 보면서 무슨 핑계를 대고 남을지 고민했다. 그 때, 블라슈크가 달려와서 모두가 무사하지 확인했다.
"동무들!! 모두 무사한가?"
"무사합니다!!"
블라슈크는 무선 통신을 통해서 주요 거점으로 쓰이던 건물이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이었다. 안나가 외쳤다.
"류드밀라가 파시스트 돌격포의 기동륜을 정지해서 기동불가로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건물은 무사했습니다!"
블라슈크는 류드밀라를 껴안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안나, 나타샤, 크세니야를 껴안았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일세!"
나타샤는 그렇게 블라슈크, 크세니야, 안나 틈에 낑겼다. 그런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호...혹시 블라슈크 동지가 나를?'
나타샤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고보니 블라슈크 동지는 전술에도 능하고 조금 멋있는 것 같았다.
급하게 달려오던 안토노프가 이 소식을 듣고 외쳤다.
"류드밀라 동지가 파시스트 돌격포의 기동륜을 기동불가로 만들었다고? 대단한 영웅일세!!! 용감한 동무들이여! 내가 자네들을 위해 선물을 주겠네!!"
잠시 뒤, 나타샤는 자신이 지급받은 대전차 로켓, RPG-1을 바라보았다.
'시..시발...'
안토노프는 나타샤, 크세니야, 안나, 류드밀라에게 RPG-1을 하나 주고는 전차 격파 임무를 맡긴 것 이었다.
"파시스트 놈들이 쓰는 대전차 무기보다 가벼우니 여성 동무들도 쉽게 쓸 수 있을걸세!! 자네 중에 셋은 대전차소총을 쏘고, 한 명은 이걸 쓰면 될걸세!"
안토노프는 프로파간다 선전을 위하여 병사들이 계속해서 전공을 세우기를 바랬다. 죽음의 숙녀 외에 어린 영웅이 하나 생긴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옳을 것 이었다. 안토노프는 가장 체구가 작고 어린 나타샤에게 말했다.
"대전차소총은 어린 여자가 쓰기 어려우니 동무가 이 RPG-1을 쓰는 것이 좋겠군! 동무들 할 수 있겠는가?"
안토노프가 류드밀라에게 물었다.
"너무 위험한 임무라고 생각되면 다른 녀석들에게 이걸 맡기겠네!"
나타샤가 속으로 생각했다.
'위험하다고 해! 못하겠다고 해! 다른 정예부대 시키면 된다고!'
류드밀라가 당차게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나타샤가 울부짖었다.
'류드밀라 저 샹년이!!!'
안토노프는 류드밀라, 나타샤, 크세니야, 안나를 칭찬하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어린 여성 동무들도 파시스트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죽음 외에는 승리 뿐이다!!!"
나타샤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어차피 이대로는 다 뒤지니까 적당히 눈치보다가 하수구로 숨자!'
한 시간 뒤, 나타샤는 2층짜리 건물 지붕 위에서 질질 짜며 RPG-1를 들고 엎드려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팬티에는 똥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포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전차 궤도 소리가 들렸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마라...제발 이쪽으로 오지마라...'
나타샤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앙...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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