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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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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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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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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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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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2부]삽질 대마법사들 이야기 5화

DUMMY

5화





시공관리국의 여직원은 초점 없는 눈으로 무표정의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기동 6과가 출범한 것 외에는 딱히 특별한 변동 사항은 없다는 건가?”


“네.”


여직원은 그렇게 말했다.


“좋다. 그럼 넌 지금부터 10분전까지의 기억을 잃는다. 알겠나?”


남자의 붉은 눈이 녹색으로 돌아오자 여자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 움직였다.


“아, 안녕하세요.”


예의상의 인사. 여기 왜 있었는지 잊었기 때문에 나타내는 반응 중 하나. 남자는 어느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번의 정보원은 어떤 걸로 할까.”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 복도를 향해 걸었다. 아무래도 당장 새로운 정보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뭔가 비밀을 캐려면 상층부에다 접촉을 해야 하는데. ‘그분’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준 능력은 강력한 것이기는 하나 원하는 그대로였기에 제약이 많았다.


이번의 일을 성공한다면 ‘그분’은 지금의 제약을 없애기 위한 의식을 치러주시겠지.


남자는 복도에서 문 밖으로 나섰다.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은 남자는 조용히 목적지를 말했다.


“프라임시로.”


운전수가 뒤늦게 인사를 했다.


“아 그, 프라임 시면 요새 DTMM재단의 지부가 세워진 곳인가요?”


“그것까지 알고 있다면 지부도 알고 있겠군.”


운전수가 머리를 끄덕인다.


“조금 물어 가면 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럼 부탁하지.”


택시는 도로를 따라 달려갔다.





크로노와 유노는 탁자를 가운데 둔 채 머리를 감싸 쥐고는 이야기를 나눴다.


“하필이면 레지어스 중장이 직접 지휘를 하러 오다니.”


절망감까지 서린 크로노의 목소리에 유노는 그다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답변했다.


“이건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어. 우리가 가장 의심스럽게 여기는 것은 제일 스칼리에티지.”


말과 함께 화면이 뜨고 제일 스칼리에티의 사진이 나타난다.


“그런데 레지어스 중장은 잘 알듯이……”


유노는 스칼리에티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옆으로 움직였다. 레지어스 중장의 모습이 담긴 하나의 화면이 나타났다.


“전투기인 도입 주장에 가장 열렬한 반응을 보였지.”


크로노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일단 나름대로의 명분을 세워 기동6과를 창설할 것을 주장했고 그 명분은 합당했기에 설립은 됐어.”


“최고 지휘관이 문제기는 하지만.”


크로노의 덧붙임에 유노는 살짝 웃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넣었어. 우리가 군벌을 세우지 않을까 미심쩍다고 생각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지. 만약 그렇다면 설립은 해주는데 동의하지만 지원은 대충 해줬어야해.”


“지원은 이상할 정도로 많았어. 특히 미드칠더 지상본부에서.”


“더구나 레지어스 중장이 직접 왔어. 이건 기동6과를 어떻게 해보려는 거야.”


그렇게 결말이 나와서야 원점으로 회귀하잖아, 라고 크로노는 투덜거렸다.


“아냐. 이건 완벽하게 다른 뜻이야. 레지어스 중장이 뭔가 생각하는 바가 없었다면 지원을 줄이는 쪽으로 나서야 했어. 하지만 그 정도의 거물이 직접 나타났다고. 그것도 현재 가장 의심스러운 스칼리에티와의 친분이 확실한 자가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지상 본부의 전력을 이끌고.”


크로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찔리는 게 없다면 가만히 있는 쪽이 나았을 그가 직접 왔다는 건 뭔가의 증거를 은폐한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군.”


“그래. 이제야 단서를 얻은 거야. 전력을 다해 조사하자. 레지어스 중장을!”


유노는 그렇게 외치고는 방으로 나가려 했으나 어깨가 잡히는 바람에 멈춰섰다.


“무슨 일이야?”


“비록 회의를 위한 핑계거리기는 하겠지만 말이지?”


크로노의 이마에는 핏줄이 돋고 있었다.


“일주일 내에 사서를 어떻게 이 정도나 모집하라는 거냐!”


크로노의 노성이 메아리쳤다.




레지어스 중장은 자신의 집무실의 고급스런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앞을 바라보았다. 의자 앞에 있는 탁자에 커피가 놓여졌다. 비서가 갖고 온 것이리라.


“각계의 반응은 어떤가?”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했으나 비서를 제대로 알아들은 뒤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연다.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단순히 한 과의 일에 중장이란 직위의 분이 직접 지위를 맡는다는 말에 찬반양론이 격렬합니다.”


예상했던 바다. 마력이 없는 몸에다 스스로도 잘 알듯이 비호감적인 외견과 목소리에도 중장의 위치에 올라서고 권력의 중추에 자리 잡은 자로서는 언론이 집중해서 추궁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눈을 떠서 앞을 보는 것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광경에 불과할 뿐.


“그렇다면 ‘검은 쥐’는?”


비서는 잠깐 멈칫하다 말을 잇는다. 순간적으로 암호명이 기억이 안 난 건가? 스스로가 그녀가 아니니 알 리야 없다만.


“‘금빛페럿’과 접촉했습니다.”


자신이 지은 암호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기밀을 아는 자라면 그 정체를 뻔히 알 내용이었다.


“역시인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던 가정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1년 전의 예정과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고 협력자인 제일 스칼리에티의 행동은 갈수록 수상해졌으며 그 쓰임새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이 유출되는 자금의 행방도 제대로 된 추적이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무슨 명목인 것 같은가?”


“이번에도 무한 서고의 관련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레지어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은 그저 누군 한 명을 더 구할 수 있기 위해 시공관리국에 입국하고 마력이 없음을 한탄하여 지휘관으로서의 적성을 키우며 인원의 부족을 무시한 채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공관리국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투기인 도입을 주장했었는데.


제일 스칼리에티. Unlimited Desire. 말 그대로 무한한 욕망을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 그와 협력하는 것은 잘못이었는가. 겉보기로는 여전히 그와 유착관계로 보일 때지만 이미 자신과 그는 완벽하게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또한 세 원로와의 대화 역시 뭔가 미묘하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의 지시들과 정책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혼란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수십 년 간의 경험이 확실하다고 선언하고 있기에.


그렇기에 조사를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스칼리에티의 오리지널의 능력이나 보지 못한 동안 만들어졌을 새로운 타입의 전투기인들의 시선을 속인 채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어려우며 가장 강력한 보안 아래 보호를 받는 삼 원로를 조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그리고 과거의 영웅들에 존경을 바치는 그의 심정적으로도 불가능했다.


“그러고 보면 전에 사서들의 불만에 대한 레포트가 ‘금빛페럿’이 ‘검은 쥐’와 접촉했을 때 올라왔었나?”


비록 담당구역은 아니었으나 의심스러웠다. 천재들을 위한 휴식처니 어쩌니 하면서 유노 스크라이어와 제일 스칼리에티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방이 주워졌을 때부터 그는 감시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서들의 불만에 대한 레포트를 전달하러 가고 나서 사건이 터졌고 기동6과의 초안이 본국에는 레티 제독을 통해 전달되었지?”


허나 그 초안은 레티 제독이 제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초안에 담긴 많은 정보와 논거. 논거는 그렇다한들 그 정보는 무한서고를 통한 것. 레티가 타인이 만든 걸 제출했건 아니면 직접 만들었건 무한서고의 입김이 닿아있음은 명백하다.


게다가 세 원로가 최대한 기동6과를 배려할 것을 지시했다.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자신이 직접 나서야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기동 6과의 지휘를 맡기로 한 지금 ‘검은 쥐’와 ‘금빛페럿’이 접촉하고 있다.


벌써 버림패가 된 건가? 레지어스는 속으로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투지를 이끌어냈다. 마력 하나 없고 좋은 인상이 아닌 그는 자력으로 중장에 올라섰다. 저런 풋내기들에게 당해줄 수는 없다. 또한 그 풋내기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뭔가의 가장 중요한 단서라는 것 역시 확실하다.


“지금 우리는 단서를 얻지 않았나?”


“네. 각하”


비서가 경례한다. 레지어스는 잠시 혀를 축이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유혈이 없는 무수한 전쟁을 이겨온 투사의 눈빛을 발했다.


“전력을 다해……”


레지어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금빛페럿’, 아니 위험인물 유노 스크라이어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카서스는 마천루들이 즐비한 곳의 인도를 따라 걸었다. 비상시에는 높이 뜰 수 있는 비행이 가능한 자동차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욕에 차 빠른 걸음을 더 빠르게 만들고 있었다.


한 때 스스로의 국가를 지키려 했던 그에게는 약간의 흐뭇함과 동시에 거대한 쓸쓸함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확실히 나사가 풀렸다. 네서릴의 파멸과 함께 중요한 뭔가가 빠져나가버렸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1년 전의 그 파멸적인 결말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자신은 그저 어느새 거의 모든 의욕을 잃은 채 습관적으로 어설픈 지식을 구하고 습관적으로 움직여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다한들……”


스스로를 책망하는 비판의 외침에 할 말은 많았다. 수백 년 동안 헌신해 온 것이, 모든 소중한 것들이 무너져 내렸으니까. 뛰어난 자가 자신의 모든 뛰어남을 다 사용하고 모든 정신의 기력을 사용했는데도 그 결과는 참혹했으니까.


과연 자신은 다시 한 번 그 전의 열의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상실감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그와 같은 오랜 시간을 존재하거나 높은 지혜와 지식과 이치의 길에 도달하지 않은 자들의 어설픈 이론과 미약한 이해로 이뤄진 것들로는 채워질 리가 없으리라.


잠깐 동안은 이 새로운 세계의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공허를 지워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 과학의 수수께끼는 어느새 간단히 노력도 없이 이해가 되고 기억이 되며 능숙해져버렸기에 죄책감과 허무는 마음에 똬린 채 자리를 비키려 들지 않는다.


그 때, 미스트릴과의 사건 때 자신은 죽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딱히 죽음에 대한 동경도 두려움도 없으며 죽음이란 상태가 자신의 힘과 의지를 어떻게 하는 것조차 이제는 불가능할 정도로 강해져버렸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도 답이 아니다.


“역시 할 일이 없으니 별 게 다 떠오르는군.”


침체된 상황을 벗어나려 들고 있지 않으니 자연스레 부정적인 생각들이 강대한 정신의 매우 미약한 빈틈을 노려오고 있지 않은가.


“그럼 역시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마법은 자제하자. 그건 이쪽의 이들에게 절대적이며 항거할 수도 없는 반칙이니까. 게다가 그런 걸로는 활력을 찾을 리가 없다. 게임을 하듯이 스스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적당한 기분으로 상황이 어찌 변하든 대충 넘어가면서 움직여보도록 하자.


미스트릴과의 사건 전처럼 주도면밀한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누군가의 고뇌어린 외침을 듣거나 순수한 정의나 욕망에 대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넘어갈 것이다. 어리고 나약하며 완성되지도 않은 이론과 허점투성이의 사상들로 덤벼들 자들을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에는 가치가 없을지 모르나 자신이 이 지긋지긋한 권태와 무기력함과 타성에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일이 되지 않을까. 더 이상 시간 속에, 나태함 속에, 빠져들기 전에……


지난번에도 이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지 않았나. 그 결말은……


그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 강력하기에 덤벼오는 운명의 농락. 그러나 더 이상 위험천만한 인과의 파도에 당황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정적 속에서 멍하니 있을 수도 없다.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규모의 일을 하자. 너무나 손쉽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나 그렇기에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그럼 우선 해야 할 것은……”


평소보다는 마법의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다. 이 세계는 아직까지는 잘 돌아가고 있다. 불길함이 지척에 가까웠긴 해도 그 원인이 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스스로가 또다시 그 불길한 운명으로 몰아가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적당한 양 이상의 마법은 정말로 필요가 있을 때만 쓰도록 하자. 어차피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련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흡사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럼 무엇을 제일 먼저 할까?


이곳의 문명의 발달은 상당하다. 네서릴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나 신분의 증명이 빠르기에 허세로 만든 거짓 신분은 의미가 없다. 물론 자신의 신분은 죄다 거짓이겠지만.


마련해야 할 것은 여기서 활동한 신분. 그 이유는 저 익숙한 기척과 원인 모를 어두운 운명을 지워 없애기 위한 수단 중 하나.


“아니.”


진짜로 원인을 모를 리는 없지 않은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문제지.


카서스는 사고를 중단했다. 그리고 다시 신분 마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쓰는 정도의 위력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순간 저 정부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자신이 생각해둔 기록이 적힐 것이며 파손되지 않은 누군가들의 앨범에 자신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며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신분증이 손에 나타날 것이다. 허나.


“적당히, 적절히.”


카서스는 약간의 정보의 흐름을 읽은 뒤 하나의 건물을 떠올렸다. 건물의 구조가 낱낱이 그의 정신 속에서 기억되는 신분 제작에 관련된 사람이 있는 방의 위치를 파악한 그는 할짝 웃었다.


순간 눈앞에는 문이 있었고 노크도 없이 열어젖힌 카서스는 놀란 표정을 지은 레게머리의 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경찰이나 사법기관은 아니네.”


아직 남자는 당혹해하고 있다. 간단히 용기를 부여해줄까 했지만 지금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약간 기다려주기로 했다.


“실제로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사법기관과 연분이 있는 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약간 운을 띄웠다.


“자네의 보안은 그렇게 간단히 뚫려질 게 아닐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용건이 뭐요?”


다소 불안감 서린 목소리. 하지만 일을 수행하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보수는 넉넉히 주지. 자네가 자랑하는 가짜신분이 필요해서 말이지.”


남자의 손짓에 하나의 화면이 뜬다. 화면에다 몇 번 손가락을 클릭하자 화면 옆에 화면이 화면 뒤에 화면이, 그렇게 수십여 개의 화면이 남자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필요한 건 그래……”


애초에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게임으로 생각한 이상 약간은 진행자 측의 권한을 악용한다고 생각하자.


“5개가 필요하네. 전부 다 나의 것으로.”


“그래. 어느 차원에서 사용할 건가?”


“미드칠더의 국가기관에서 사용될 수 있는 걸로.”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카서스는 이미 그 이유를 파악하고 있었다.


“미드칠더에서, 더구나 국가기관에서, 뭐 단순히 도서관이나 병원 정도를 사용하려는 게 아니라는 거야 뻔한 거겠지만. 뭐 그런 부류라면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런 적은 용도만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지?”


카서스는 가만히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긍정의 표시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기밀 시설에 침입하는데 사용되는 신분증 같은 것은 지문과 동공 DNA와 마력패턴이 전부 입력된 거라고. 그런 걸 5개아 만들 수는 없잖아. 한 명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설혹 한다고 해도 신분증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국가 단위 이상의 기업체에서 만든 신분증으로 가장된 특수하며 극비에 속하는 신형 디바이스나 가능한 것일 거야.”


남자는 자신의 말에 확신을 담았다. 명백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카서스는 웃었다.


“그런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남자는 자신의 레게머리를 문지르다 소파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그건 대체 뭐지?”


변신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지문과 동공을 위조하는 것은 무리다. 당연히 DNA도 무리고. 마력패턴은 더더욱 말도 안 된다. 결국 신분을 위조해도 1명당 하나 정도. 아니면 국가 정도의 뒷세력이 수많은 신분 체크들을 피할 수 있게 회피로를 마련해준다거나. 하긴 국가가 그렇게 해줄 바에는 다른 사람을 파견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지만.


“그건 대체……”


그 자는 모든 것을 속여 넘겼다. 그리고 유유히 5개의 신분증을 들고 사라졌다. 꿈인가 싶었지만 입금된 액수는 방금 전의 일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처음부터 아무 보안시설에도 걸리지 않고 갑작스레 나타났다. 자신이나 자신의 세력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냥 넘어가자.”


남자는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위험한 직종인데 더 위험한 곳으로 갈 필요야 없으니까.





“먹잇감이 많아서 일부러 이곳으로 왔는데……”


다소 컴컴한 동굴 안에서 젊고 활기찬 ‘완벽한 자’는 여러 구의 시체들 옆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뇌가 빠져나가 있었다.


-그 소서러도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군.-


거대한 목소리가 ‘완벽한 자’의 귀를 울렸다. 일리시드라 불리는 자 중 육체에 대해서도 마법에 대해서도 재능에 대해서도 행운에 대해서도 완벽한, 그렇기에 파라곤(paragon)이라 불리는 그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문어머리처럼 생긴 얼굴이라 인간이 구별할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180cm정도의 키에 보랏빛 피부, 모양은 문어나 다를 바 없으나 그 촉수가 네 개인 머리, 머리 아래에는 두 개의 팔과 뭔가를 잡고 제대로 조작할 수 있는 손과 두 개의 다리가 있었다. 화려한 마법사의 로브를 약간 변조시킨 듯한 외견의 옷을 걸친 젊은 ‘완벽한 자’, 파라곤 일리시드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일단 그 소서러가 일을 터뜨렸고 여기는 그다지 먼 곳도 아니니 인간들의 포위망이 올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목소리의 근원의 힘이라면 인간의 마도사가 얼마나 오든 무의미하다.


-쓸어버리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계속 추격이 달라오겠지. 그런 건 신경에 거슬리기도 하고 마침 다른 데로 움직이기도 쉽군.-


“그렇습니까.”


파라곤 일리시드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허를 찔러서-


목소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인간들이 미드칠더라 부르는 곳으로 가보지.-


파라곤 일리시드는 밖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약한 동족은 닿는 것만도 질색할 햇빛 속을 아무렇지 않게 달려갔다. 그 순간 굉음이 있었다. 동굴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자욱해졌다.


갑작스레 강풍이 불었다. 먼지가 빠르게 걷혔다. 그리고 거대한, 그 존재감만으로도 모든 것을 압도할 붉은 빛의 드래곤이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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