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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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추적자
작품등록일 :
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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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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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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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삽질 대마법사 이야기 22화

DUMMY

22화 혼란이 끝난 건지 새로 시작된 건지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보통의 사람에게는 뿌옇게만 보이는 본탑이 있었던 위치를 주시했다. 오랜만에 들떴기 때문인가. 얼마 뒤에는 무너질 확률이 상당히 높던 본탑에 응급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했지만, 탑의 반대 방향에도 큰 균열이 생겼다는 걸 감지하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그래도 사람 한 명 구했지?”


카서스는 자문한 후 성벽 위 통로에 주저앉았다. 지금 고치면 확실히 귀찮아진다. 스스로를 숨길 생각은 없지만 거치적거리는 일이 생기는 것은 사양이다. 자신은 애초에 지식의 탐구자지 탐구 당하는 자가 아니니까. 게다가 어차피 그 불꽃으로 가속된 골렘의 주먹이 탑에 부딪쳤다면 역시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행동은 딱히 나쁜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그들이 지금의 일에 책임을 묻는다면 스스로의 가치관에 의거해 도와주겠지만. 게다가 그들은 힌트를 많이 갖고 있다. 그것을 활용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일부러 먼저 나설 생각은 없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일부러 가봐야 수고만 하는 셈이니까.


“뭐 어쨌든.”


염려거리는 제쳐두고 구경이나 하자. 이 상황은 흥미롭다. 계획대로 되었어도 재미는 있었겠지만 약간의 의외성이라는 양념이 첨가되었고 현재 어느 정도 무기력한 자신한테만은 좋은 방향으로 작용되었기에 실로 유쾌하다. 다른 데로 사고를 뻗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게 별로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음에도 말이지. 카서스는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만들어진 복합적인 감정 중 유쾌함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움직이도록 하자. 걸어가는 건 확실히 귀찮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주문을 외웠다.





올드 오스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야가 뿌옇다. 본탑의 붕괴와 동시에 일어난 모래 먼지 때문이겠지. 솔직히 기절하고 일어나니 상황이 알아서 처리되었다는 전개가 일어나면 좋겠지만 어슬렁거리는 바퀴벌레들의 먹이가 되었다는 결말이 나올 것 같아서 시도를 못 하겠군. 그러니 어떻게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당장이라도 어딘가를 부숴버리거나 통곡을 한다거나 하고 싶은 억누르기가 매우 힘든 충동이 몸속에서 솟아나고 있지만.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편다. 심호흡을 하고 눈앞을 흐릿하게 만드는 먼지들 속에서 목이 막히는 것 같은 감각을 무시하며 천천히 냉정을 되찾으려 애쓴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온 몸이 다시 쑤시기 시작한다. 게다가 피로누적도 상당한 것 같다. 위기감에 혹사한 대가인 걸까.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우선 지팡이를 어떻게든 되찾는 거다. 현재 지팡이를 갖고 있는 건 미스 발리에르, 즉 루이즈다. 하지만 이 위치에서 이동하는 게 과연 좋을까?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간달브의 소년도 이 먼지 탓에 보이지 않는다. 바람 계통의 메이지가 좀 날려줬으면 하는데.


오스만은 파괴의 지팡이를 들었다. 이걸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은 오래 전에 내렸었다. 딱히 무기로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어쨌거나 은인의 유품이며 상당한 기간 동안의 마음을 정리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 물건이다. 게다가 그 소년은 왠지 이 도구를 알고 있는 것 같았기에 물어보고 싶은 게 제법 생겼다.


음. 역시 이 상태에서 지팡이를 찾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우선 안전한 상태의 학생의 지팡이를 빌리자. 교사의 지팡이는 자신이 빌려 쓴다고 해서 효율이 오르지는 않는다. 상성이라는 건 있기 마련이니까. 소유하던 지팡이를 쓴다면 학원에 재적한 교사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지팡이를 쓰는 게 학생이라면 자신이 쓰는 쪽이 낫다.


그럼 방향을 확인해보자. 현재 시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게다가 본탑이 무너지는 걸 확인하기 전에 루이즈의 마법에 날려버렸기에 기억으로 움직일 수도 없다. 아! 그래도 방법이 없지는 않군. 본탑이 무너졌어도 원소의 이름을 딴 네 개의 탑에는 손상이 가지 않았을 테다. 일단 본탑이 어느 쪽인가는 기억에 있다. 그 반대 방향으로 가서 학생을 만나자.


오스만은 파괴의 지팡이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혹시나 바퀴벌레를 만나면 한 번 정도는 위기를 벗어날 수도 있을 거다. 물론 그 이상 휘두르는 것은 무리겠지만. 오스만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어차피 시야는 가려져 있다. 바퀴벌레라는 생명체의 감각은 매우 뛰어나서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냥 달려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조금 움직이자 위에서 말울음 소리가 들렸다.


“어, 어라?”


분명히 머리 위에서 들렸다. 올려다보자 회색 외투를 입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검은 색 몸체에 회색 갈기를 가지고 왠지 흐릿한 시야에서도 너무 희미해 보이는 발굽을 가진 말을 타고 있었다. 그래. 공중을 날고 있는 말 위에 있었다.


“어, 어이!”


오스만은 소리를 냈다. 일단 사람을 만났다. 토괴의 후케도 아니다. 위험인물이라는 건 뻔히 알지만 현재처럼 거대 바퀴벌레들이 산재해 있을 상황에서 지팡이도 없어 마법도 못 사용한다면 구조를 요청해야겠지. 말머리-왠지 말과는 다른 생물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가 움직인다. 그리고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와…… 내려오려는 순간이 흙의 칼날이 날아왔다. 말과 그 기수에게.


“무, 무슨!”


흙의 칼날은 기수의 바로 근처까지 갔다가 방향을 바꿨다. 자신 쪽이었다. 오스만은 몸을 굴렀다.


“바, 바퀴벌레 한 마리 잡은 것 같습니다! 미시스 슈브르즈”


오인사격이냐! 오스만은 속으로 불평을 품었다.


“호, 혹시 모르니 그, 그래. 기쉬 네가 확인사살을 하는 거야!”


“왜 제 아름다운 왈큐레가!”


“어이, 어이!”


오스만은 소리쳤다. 기수는 이상한 말과 함께 공중에서 내려와 옆에 왔다.


“사, 사람 같은데요?”


“호, 혹시 사람의 말로 속인다거나!”


“미시스 슈브르즈. 저건 그냥 바퀴벌레라고요!”


“저런 크기의 바퀴벌레는 본 적이 없다고! 그러니 그런 능력 있어도 이상할 게 없어!”


분명히 들어본 목소리다. 평소에는 자상하게 대하던 음성이 왠지 박력이 넘친다. 마치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기합을 주는 장교의 그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다. 소리는 크고 힘이 넘치며 위압감을 준다. 게다가 평소에 사용하던 존중심 어린 말투는 날아가 있다. 뭔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 중 일부를 지금 내보내기 시작한 게 아닌지 염려가 되는데. 오스만의 생각은 날아오는 흙의 덩어리를 피한다고 중지되었다.


“맞았나요?”


“모르겠는걸. 기쉬군. 어서 왈큐레를 보내!”


“어째서 미시스 슈브르즈께서 사용하지 않으시고요?”


“내 골렘으로 바퀴벌레를 짓누르기 싫어서다!”


“그럼 저도 마찬가지입……”


뭔가가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학생에게 폭력……”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 살려……”


사람의 목소리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움직여야 한다! 최대한 빨리! 오스만은 달렸다. 바닥을 찼다. 뒤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흙의 창인가? 이, 이 사람이! 좀 더 달리자 앞에서 벽이 생겼다. 벽을 손으로 치는 동시에 옆으로 몸을 꺾는다. 아! 허리가!


“으윽.”


오스만은 허리를 잡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너무 무리한 게 아닐까. 안 그래도 나이도 많아서 조심스레 다뤄야하는데. 하하하. 잠시 후 놀란 눈초리의 슈브르즈와 왠지 상처투성이인 그라몬 원수의 아들 기쉬가 왔다.


“괘, 괜찮으신가요?”


걱정 어린 듯한 눈이다. 예전 같았으면 감동했을지도, 아니 지금이라도 옆의 기쉬의 부상만 아니라면 감동에 빠졌겠지.


“아, 허리가 좀 아프군. 그보다 저 학생은 괜찮은가?”


“아아. 바, 바퀴벌레한테서 공격당해서 말입니다.”


슈브르즈가 기쉬를 들여다보며 무언의 눈짓을 한다. 아마도 방금 전의 대화를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스만은 바닥을 짚고는 힘겹게 자세를 잡았다. 그냥 푹 쓰러져버릴까? 아니다. 왠지 기절하면 그냥 놓고 갈지도 모른다.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바퀴벌레의 먹이로 끝나는 인생은 절대로 사양이다!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는가?”


자신의 목소리를 바퀴벌레의 흉계라고 무시했을 것이다.


“아, 아. 그러니까 학원장실에 있던 분이 이상한 말 타고 이야기해주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지금 없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아니, 자, 잠시만.


“그, 그는 어디 갔는가?”


“모르겠습니다.”


오스만은 시야가 암흑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놓쳤다. 놓쳤어. 진짜 원흉이 앞에 있었는데 놓쳤다. 잡을 힘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 안 되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귀가 멍해지는 게 느껴진다. 좀 쉬자. 이만하면 오래 살았고 할 만큼 했잖아. 끝은 좀 그래도 충실한 삶을……


“커, 커헉”


갑자기 폐에서 충격이 왔다. 누군가가 발로 밟는 게 어렴풋한 시야로 보였다.


“미시스 슈, 슈브르즈!”


기쉬의 목소리다.


“이 인간 여기서 죽으면 책임이 나한테 온다고! 변태라 해도 살려야 해! 일은 별로 안 하고 탱자탱자 놀지만 어쨌든 살려야 한다고!”


“그, 그건 그렇지만!”


슈브르즈가 발을 높이 들었다. 이, 이러다 밟혀 죽겠다!


“이, 일어, 났……”


콰직.


“케헥.”


“지금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그런 것 같네.”


오스만은 일어섰다. 고통스러운 죽음은 사양이다!


“무, 무슨 일인가?”


“아, 호흡이 곤란하신 것 같아서 가슴 부위를 손으로 압박했습니다.”


웃기지 마라. 전신의 무게를 발에 실어서 공격해오더니만! 오스만은 그렇게 외치고 싶은 걸 참았다. 혹시 공격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정말로 증거인멸을 노릴지도 모른다.


“그, 그런가. 살려줘서 고맙군.”


“안색이 창백하시군요. 역시 피곤하신 건가요?”


그 원인이 말해봐야 설득력이 없어!


“그러고 보면 이 사태는 대체 누구의 책임인가요?”


증거는 없고 직접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원흉이 누군지는 확신하고 있다.


“피해는 어떤 것 같은가?”


하지만 짐작을 말해봐야 혼란만 가중되겠지. 현상파악이 먼저다.


“일단 본탑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인명피해는 딱히 없을 것 같습니다.”


슈브르즈는 말했다.


“어이. 저, 진짜로?”


“일단 학원장님께서는 방에 계셔서 못 들으신 것 같은데 오늘 의론할 게 의론할 거라선지 본탑을 출입을 금지하고 학원 스케줄도 조정을 했지요. 게다가 미스터 콜베르가 후케의 공격이 시작된 후 잠시 뒤로 간 사이 살펴봤으니.”


아마도 콜베르가 공격한 시점은 어느 정도 조사한 후겠지. 다행이야. 정말로.


“다만 바퀴벌레로 인한 피해가 파악이 안 됩니다. 저것들이 육식성이라면.”


이야기를 하는 슈브르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현재 시야가 가려서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렵고 오인 공격할 여지도 많아서 공세로 전환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이, 어이.


“학원장님. 그나저나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정확하게는 모른다.


“굳이 추론하자면. 아까 그 남자는 어디에 갔나?”


“방금 전에도 답변했듯이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그 남자가 원인인가요?”


아아. 그렇네.


“하, 하지만 만약 그 남자가 원흉이라면 학원장님의 거취를 의논하는데서 주도를 막지 못한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오스만은 열려던 입을 닫았다.


“무능한 사람들이 되는 건가요? 이 나이에 직장에서 잘려서 새 직장을 찾다 무일푼으로 어디선가 쓰려져 죽는 건가요?”


“아, 아니. 그, 그렇게까지는.”


“새로운 탑을 세우는 데 돈을 보태야 할 거고 대륙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그 상황이면 당연히 취직은 안 될 테고. 안 그래도 요즘 노인 취직이 안 된다고 하던데.”


“슈브르즈? 슈브르즈?”


땅바닥을 긁으면서 어두운 오라를 뿌리지 말라고!


“아아, 그러고 보면 학원장님 일이었으니 책임을 지는 건 학원장님 혼자가 되려나?”


오스만은 몸이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안 된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하하하. 내가 설령 바보일 지라도 나이가 몇인데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인물을 놔두겠나.”


“그, 그럼 대체 누가 이런 일들을 벌인 거지요?”


어떻게 대답하지? 나중에도 결국은 말해야 하는 거니까. 우선 대충 말을 엮어서 이야기하자.


“간단한 것 아닌가? 후케이지 않은가?”


“하, 하지만 그 바퀴벌레 건은?”


“후케가 밖으로 향하다 돌아올 때 온 거지 않은가? 그렇다면 데려온 건 후케겠지.”


정확한 상황은 알 리가 없지만 후케와 같이 나타난 것은 확실하다.


“하, 하지만 후케가 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요?”


“그녀는 아주 오래 준비를 해왔지. 나는 물론 다른 선생들조차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은밀하게 말이지. 확실히 저런 괴생명체들을 불러낼 약 정도 준비하는 거야 힘들지도 않았을 거야. 후케가 훔친 게 다른 호사가들에게서 발견되는 걸로 봐서 비밀 조직에서 사용되는 어떤 물건이겠지. 골렘의 주먹에서 불이 뿜어져 강력한 일격이 된 걸 생각해보게! 게다가 도망치는 걸로 보이다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지 않겠나!”


“그,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다 후케의 짓이라는 건가요?”


오스만은 크게 소리쳤다. 자신은 이런 데서 발목 잡혀 퇴락되고 싶지 않다!


“그렇네! 본탑을 부순 것도! 저 나타나서는 안 되는 괴물들로 습격한 것도! 모두 다 후케의 탓이네!”


갑자기 강풍이 불었다. 먼지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야 할 목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한다.


“본탑을 부순 것도! 저 나타나서는 안 되는 괴물들로 습격한 것도! 모두 다 후케의 탓이네!”


“지금 내 목소리가 메아리가 된 건가?”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다. 애초에 이런 지형에서 생길 리가 없는 일이다. 이런 평야에 위치한 곳에서는.


“본탑을 부순 것도! 저 나타나서는 안 되는 괴물들로 습격한 것도! 모두 다 후케의 탓이네!”


“본탑을 부순 것도! 저 나타나서는 안 되는 괴물들로 습격한 것도! 모두 다 후케의 탓이네!”


여전히 메아리가 울리고 있다. 혹시 갑작스레 변한 환경에 한번쯤은 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이건 너무 자주다. 바람은 여전히 멎지 않았다. 먼지가 사라져간다. 시야가 확장되어 간다. 오스만은 더 이상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메아리에 대해서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요컨대 어느새 자신들끼리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루이즈와 퀴르케라던가.


3학년의 엘리트들이 바퀴벌레 몇 마리를 쌓아서 불태우려 하는 장면이라던가.


그 바퀴벌레 무더기 사이에 왠지 파도의 모트가 들어가 있는 모습이라던가.


바퀴벌레를 먹고 있는 사역마를 말리는 소년의 모습이라던가.


바퀴벌레에 밟힌 사역마의 시체에 울부짖고 있는 소녀와 그 소녀에게 위로하는 척하며 작업을 걸고 있는 어떤 남학생의 광경이라던가.


바퀴벌레 체액으로 범벅이 돼서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한 상태로 구석에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전설의 사역마와 그 주변에서 다가가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상태로 있는 메이드의 정경이라던가.


불로 공격했다가 불붙은 채 돌격해오는 바퀴벌레들에게서 달아나는 학생과 그 학생을 도우려 움직이는 학생들의 처절한 전투라던가.


그런 모습들도 시선을 빼앗았지만 그 모습의 주인들이 자신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으니까. 분노어린 눈길로. 그 눈빛만으로도 모든 걸 주눅 들게 만들 위력으로. 소리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후케 탓이라고?”


“이게 후케 짓이라고?”


“뭐야. 그 도적!”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수많은 불평이 울려 퍼진다. 모두가 후케에 대한 것인 것 같다. 이제 방금 전의 발언은 취소를 할 수 없다.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도전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도전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워져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사건의 진정한 원흉이 서 있었다.


“이야. 이거 고맙군.”


한 마디 툭 건네고 지나쳐간다. 오스만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했다고.





마틸다는 간신히 따라오는 바퀴벌레들을 쫓아내고 간단히 변장한 채 왕도 트리스타니아의 식당에 들어갔다. 역시 바로 옆에 괴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지 특별한 관심이 쏟아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식당의 게시판에 수배용 전단지가 붙어있지만 문맹률이 높은 이 세계에서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수배용 전단지를 일일이 붙이는 것은 아주 특별한 범죄자의 경우다. 마틸다는 웃으며 약간의 요리를 시켰다. 병사가 한 명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몸을 주체했다. 병사는 새로운 수배용 전단지를 붙이고 있었다.


식사를 아직 안 하거나 끝마친 사람들 중 일부가 그걸 보러 갔다. 마틸다도 제법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구경삼아 다가갔다.


마틸다는 자리로 돌아가 천천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음식이 오고 식은 뒤에도 계속 뭔가를 생각하며 입을 달싹거렸다. 이건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어, 라고 마지막으로 중얼거리곤 그녀는 후케라는 가명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날로 역사상 최악의 악당 후케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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