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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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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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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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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작년부터 소문만 무성했던 올미디어의 매각이 현실화 됐다. 호주계 힐 사무엘펀드까지 가세하면서 올미디어 인수전이 혼전양상을 띈 끝에 마침내 인수자가 결정됐다. 올미디어를 품에 안은 주인공은 케이블업계 강자 다솜미디어이다. 업계에서는 막판에 펼쳐진 경쟁구도로 인해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따르지만, 다솜미디어의 통 큰 투자로 21개(정리 전) 채널과 시장점유율 21.9%에 달하는 국내 최대 케이블TV 채널 보유 회사를 탄생시키며 최후의 승자에 한 발 다가섰다.]

- YNTV.


[업계 전문가들은 올리온그룹이 미디어 부문을 매각하는 이유에 대해 앞으로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과감하게 투자할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케이블TV 출범 초반만 해도 발 빠른 행보와 기획력으로 미디어 시장에 안착하긴 했지만, 추가로 막대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과 최근 광고시장이 좋지 않은 점도 매각 추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한편 이번 매각에는 올리온그룹 외식사업과 공연기획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리건스를 운영하는 외식업체 롸이즈올과 무대공연을 기획했던 재미로까지 매각한 이상 이화윤 부회장은 앞으로 미디어 산업에서 손 떼고, 제과부문 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 문화신문.


[올리온그룹은 지난 2007년 극장 사업을 매각한 바 있다. 다시 올미디어를 매각하게 되면 사실상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업종에서 손을 털고 빠지는 셈이다. 반면 올리온그룹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다솜미디어가 올미디어를 인수하면서 케이블 시장 전체를 독점하는 지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시장을 공급자 위주로 주도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인수합병 후 겹치는 채널들을 정리하면 모든 시장에서 단일 공급자가 되어 가격 등의 결정권을 홀로 쥘 수 있다. 당연히 영향력도 훨씬 커진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인해 사실상 케이블TV업계에 다솜미디어라는 절대 강자가 탄생하게 됐다.]

- 백원일보.


[이번 두 회사의 합병은 시청률 면에서 SBC 수준에 근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청률조사기관 티엔에스(TNS)미디어코리아 집계로 다솜미디어와 올미디어 채널들의 지난 5~7월 평균 시청률 합계는 4.8%로 지상파 방송사와 대등하고, KBC 2TV의 4.6%보다 높은 수준이다. 케이블방송 시장점유율도 두 회사가 합치면 21.9%까지 뛰어오른다. 물론 지상파 TV의 계열사 케이블방송과 대적할 정도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지상파보다 케이블이 유리한 면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경기침체로 광고시장이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지상파방송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중간광고, 광고요금 자율화 등을 케이블에서 제약 없이 하고 있다. 따라서 다솜미디어의 독점 구도가 완성되면 초과 이윤을 쉽게 얻어낼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 동양일보.


[류지호의 가족이 대주주인 다울재단은 케이블 보도채널인 YNTV의 최대 주주다.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가온그룹은 케이블 전체를 쥐게 되고 여기에 보도채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거대 미디어그룹이 된다. 지상파 SBC 부럽지 않은 수준의 규모와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과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온그룹 입장에서 시너지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여당이 발의한 ‘언론 7대 악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만약 개정 신문·방송법까지 통과된다면 가온그룹은 기존 언론매체를 월등히 뛰어넘는 초거대 언론사가 될 수 있다.]

- 겨레일보.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측 회사가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언론 매체의 바람(?)과 달리 독점 혹은 과점 기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무리 없이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올미디어는 대구와 강원·전남 권역에 모두 56만여 명(점유율 3.7%)의 가입자를 보유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 4개를 갖고 있다.

15개 SO, 가입자 210만 명을 보유하고 있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다솜미디어는 21%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대광의 티브로를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올리온그룹의 올미디어는 케이블TV 시청률 1위를 꾸준히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 만화 채널 투디버스와 바둑TV, 여성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올 스타일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솜미디어와 겹치는 영화, 게임, 드라마, 스포츠, 음악 채널 등은 천천히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 양사의 조직과 인력을 통합하는 것에 집중했다.

두 기업의 채널수는 케이블 시청점유율 합계 50%이상인 지상파 3사가 거느린 케이블채널 수(3사 합쳐 19개)보다 많았다.

다솜미디어의 시청점유율은 21.9%로 3사 지상파 케이블과 대적할 정도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KBC 계열의 케이블 채널의 시청점유율은 너끈히 추월하지만.

업계에서는 지상파를 대적할 유일한 곳은 올미디어를 편입한 다솜미디어가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런데 다솜미디어의 입장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 차이가 있었다.

내부적으로 일차적인 목표는 홈쇼핑사업 위상 강화다.

올미디어는 TV홈쇼핑의 주 고객인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채널을 다수 보유(올 스타일, 스토리 올 등)하고 있기에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미디어에 쇼핑을 접목한 컨버전스 모델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간다는 전략에서 인수를 추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융합모델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솜미디어는 이번 인수가 마무리 되는 것과 함께 디지털화에도 더욱 박차를 가한다고 들었습니다.”


류지호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었다.

두 기업의 합병에서 가장 큰 시너지 효과는 게임 채널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다솜게임과 올게임넷은 E-스포츠 중계방송의 양대 강자였다.

두 채널 사업자가 다솜미디어 소속으로 한 솥 밥을 먹게 됨에 따라 전문 게임 방송 인프라 결합으로 인한 시너지의 기대가 높았다.

특히 가온그룹은 서울, 부산 등에 E-스포츠 전용 스타디움을 보유하고 있다.

새만금간척지에 조성 중인 아리울과 인천송도에도 전용 경기장이 들어서게 된다.

E-스포츠 종목의 프랜차이즈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서 기초가 준비 중이다.

서로 강점을 가진 게임 중계 특허(혹은 실용신안등록)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두 채널이 합병하면서 세계 최대 게임전문 방송이 탄생하게 되었다.

JHO/DirecTV 위성방송을 통해 북미와 유럽 일부에서 통합 게임 채널이 서비스될 예정이다.

그를 위해 외국인 중계진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펙트럼 엔터테인먼트에서 시범 서비스하는 OTT를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고.

일부 양대 리그로 진행 중이던 종목의 교통정리도 불가피했다.

한편 올미디어를 경쟁자에게 빼앗긴 BS그룹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케이블TV에서만큼은 해볼 만했다.

그런데 가온그룹이 1위 채널 사업자를 집어삼키면서 격차를 벌리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인수 대상자가 다솜미디어로 결정된 후 이희경 BS그룹 부회장이 연락을 해왔다.

축하를 전함과 동시에 섭섭함도 토로했다.


- 저희 쪽에서 또 한 번 크게 한 방 맞았네요.

“현찰이 빵빵했어요. 즉시 결재를 싫어할 사람은 없죠.”

- 롸이즈올과 재미로 카드를 올미디어 M&A에 묶을 줄은.... 어휴!

“부회장 누님 쪽에서 제시하지 못하는 조건이었죠.”


BS그룹의 외식사업과 올리온그룹 외식사업이 서로 합쳐봐야 시너지를 기대할 수가 없다.

그나마 잘 나가고 있는 BS그룹 외식브랜드까지 망가질 수도 있다.

공연기획사 재미로 역시 BS그룹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중복투자일 뿐이다.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다솜은 동남아시아에 홈쇼핑을 진출시킬 생각이 없으니까.”

- 별로 위로가 안 되는 군요.

“중국 멀티플렉스 사업에 팁을 줬잖아요.”

- 후우. 도대체 류 의장은.... 영화 잘하는 것도 놀라운데, 손대는 것마다 다 대박을 만들어 내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이에요?

“하소연 해봐 소용없습니다. 오동석 대표와 만나서 홍콩의 멀티플렉스나 얼른 매입하세요. 그래야 중국에서 겪고 있는 멀티플렉스 사업의 애로사항을 하루 빨리 해결할 테니까.”

- 알겠어요. 고마워요.


가온그룹은 G.O.M Cinemas 소유 홍콩법인이 필요가 없게 됐다.

GH 오락집단유한공사의 대주주가 되면서 중국시장은 GH 산하의 멀티플렉스로 공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5년 이상 홍콩법인으로 영업을 한 G.O.M 브랜드 극장을 BGV에 매각하기로 했다.

BGV가 G.O.M 홍콩법인을 인수하게 되면 중국과 홍콩이 체결한 서비스무역협정(CEPA)에 따라서 중국 법인에서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할 수가 있게 된다.

가온그룹이 올미디어를 먹고, BS그룹은 가온의 홍콩법인 극장을 인수하는 딜이 수면 아래서 성사되었다.

BS그룹으로서는 G.O.M 홍콩법인 인수를 토대로 고전하고 있는 중국의 시장에서 숨통을 트일 수가 있게 됐다.

지분율을 끌어올릴 수가 있게 됨으로써 중국 파트너에 휘둘리지 않게 될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온그룹보다 늦었지만 BS그룹 역시 해외진출에 힘을 쏟아왔다.

BS미디어 산하의 홈쇼핑은 일본과 대만·홍콩 등에서 10만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곧 필리핀에도 입성할 예정이다.

동남아 8개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가온그룹은 동남아시아로 진출할 계획이 당장은 없었고.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 OTT와 모바일 쇼핑사업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할 생각이니까....’


스마트폰 시대가 정착되면, 동남아시아에서 TV홈쇼핑의 인기가 시들게 된다.

개도국과 후진국은 PC인터넷을 건너뛰고 곧바로 스마트폰 환경에 적응한다.

몇 년 잠깐 TV홈쇼핑이 반짝했다가 온라인 전자상거래와 모바일 쇼핑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다솜미디어는 TV홈쇼핑에서 해외진출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 밖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가온이라는 종합미디어왕국 출현으로 열악한 국내 콘텐츠 시장에 자극이 된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 같아요.


이전 삶에서 BS그룹이 했던 일들이다.

류지호로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올미디어 M&A를 위해 자금을 준비한 것으로 들었는데요.....”

- 콘텐츠 개발과 중소업체 인수에 사용해야죠. 다솜과 중복된 채널이 꽤 많을 텐데.....

“구조조정이 있겠죠. 실무자들을 다솜미디어에 보내 보세요.”

- 다솜미디어는 보도채널만 없는 사실상 종합편성매체가 되었네요.

“BS도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니 종합편성채널이 따로 필요가 없다.

괜히 여당의 미디어법 개정에 발을 맞추지 마라.

그런 의미가 숨겨진 말이었다.


-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지만.

“잘 될 겁니다. 플랫폼은 갖춰졌으니까 이제부터는 무조건 콘텐츠에요.”

- 우리 채널의 TV시리즈 연출 해달라니깐.

“<불한당> 하자니까 싫다고 한 것은 BS였어요.”

- ......

“중국 비즈니스는 세계 어떤 곳보다 불확실성과 장벽이 높아요. 조언하자면 꽌시 믿지 마세요. 충칭 당서기 쪽에 줄을 대고 있죠?”

- ......

“거기 썩은 줄입니다. 부주석에 줄을 대세요.”

- ....음.

“중장기적으로 콘텐츠 비용절감을 통한 수익성을 개선하고, 콘텐츠 확충을 통한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보도를 제외한 전 장르를 포괄하는 미국식 ‘메가 콘텐츠 그룹’으로 변모할 토대를 BS도 쌓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가온과 함께 잘 해 봐요.”

- 고마워요.

“나중에 미국 출장 오면 벨에어로 초대할 게요. 식사 한 번 해요.”

- 알겠어요.


한때 류지호는 가온그룹을 키워서 JHO를 먹어치우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망상에 불과했다.

두 기업 간 격차가 너무 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두 기업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JHO Company Group이 글로벌 미디어제국이 된다면.


‘가온그룹은 적어도 아시아 지역의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 ❉ ❉


10월 초순.

미국으로 돌아온 류지호의 가족이 뉴욕의 롱아일랜드 파커저택에서 지냈다.

그 시기부터 미국에서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총 1,140만 명분의 백신을 각급 의료기관에 공급하겠다고 발표 했다.

올해 안에 어린이, 청소년, 임산부, 만성질환자 등 우선 접종 대상자 수천만 명에 대한 접종을 끝낸다는 계획도 밝혔다.

류지호 가족 중 1차 백신접종 대상은 아기 류시아와 고령의 윌리엄 파커 둘 뿐이다.

거기에 최근 임신 6주 차 판정을 받은 레오나까지 포함되었다.

부작용을 염려해 백신접종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신혼 때는 배우자의 지적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때론 음악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다가온다.

잔소리는 그저 잔소리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배우자의 잔소리는 얼핏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잔소리에 대한 상대 배우자의 피로감이 쌓이면 사랑의 불씨가 꺼질 수도 있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면 평소 몰랐던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게 마련이다.

자연히 잔소리를 하게 될 수 있다.

그로인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다.

류지호와 레오나는 5월부터 9월까지 여주의 가온타운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지냈다.

3개월 이상을 붙어 있었던 것이다.

자칫 부부싸움이 날 법한 상황이 여러차례 있었다.

웬걸.... 더욱 사이가 좋아졌다.

일찌감치 딸을 재워놓고, 오붓하게 와인을 마시며 분위기를 잡는 날이 많았다.

얼마나 깨를 볶았던지.

그 기간에 레오나가 둘째를 잉태했다.

태명은 밝고 명랑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초롱‘이라고 지었다.


“Thor! 쑥쑥 자라 거라.”


힘차게 뛰는 심장소리가 천둥을 닮았다고 해서 영어로는 토르(Thor)라는 태명을 붙였다.

남매가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늘어놓았다.


“북유럽 사람들에게 토르는 농사의 신이래. 어딘지 파커 가문과 어울리는 태명이야.”

“조카의 태명이 토르라면, 오빠는 오딘이 되는 거야?”

“형은 예술의 신 아폴론에 가깝지.”

“오빠는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였잖아. 마법사처럼 미래도 예언하고.”

“그럼 형수는 프리그가 되는 건가? 출산과 풍요의 여신?”

“둘만 낳으면 되지 뭘 더 낳아?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심영숙이 남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못 먹고 못 살 때나 하나만 낳아 잘 살자고 했지. 세상도 변했고 큰애가 셋을 못 키울까?”

“결국 키우는 건 올케잖아. 힘들게 공부해서 변호사 됐는데 집에서 애만 봐?”


류민상까지 은근슬쩍 거들었다.


“아이들은 네 엄마와 내가 키우면 된다.”

“우와. 우리 아빠 맞아?”


류지호 집안은 본래가 손이 귀했다.

때문에 류민상은 자손에 대해 무척 민감했다.


“너희들도 능력 되는 만큼 아이를 낳으면 좋겠다. 많이도 안 바래. 둘씩만 낳아.”


시댁 식구들이 자신의 임신 사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를 들으며 레오나는 심사가 꽤나 복잡했다.

둘째를 임신한 것은 축복이자 감사한 일이다.

문제는 임신과 육아로 또 몇 년을 전업주부로 살아야 한다는 것.


‘신종플루도 문제고....’


미국에 와 보니 유난히 소아의 신종플루 감염율과 사망률이 높았다.

괜히 미국으로 돌아왔나 후회가 들 정도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외부 활동이 많은 류지호는 어쩔 수 없이 1차분 백신을 접종했다.

한국은 10월 말에나 백신접종이 시작될 예정이다.

의료선진국 중심으로 신종플루 백신이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예정됐던 신종플루 백신 1억2천만 도스(dose) 중 1천3백만 도스만이 1차적으로 공급됐다.

1도스는 성인 1명의 1회 접종량을 뜻한다.


“수천 만 명의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원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생산은 예정보다 몇 주 더 늦어질 것 같아요.”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이 비관적인 보고를 했다.


“일반 독감 백신만을 제조하던 제약사의 공정을 바꾸는 것과 달걀에 의존하는 시대에 뒤진 생산방법이 신종플루 백신 공급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요.”

“게다가 백신을 개발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기심도 한몫 하구요.”

“....예.”

“빨라야 11월 말. 그때서야 백신 접종이 본궤도에 오르겠죠?”

“예. 보스.”


지난 4월 이후로 벌써 800명의 미국인이 신종플루로 사망했다.

그 중에는 소아도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가는데, 한편에서는 새로 태어난 생명에 대한 축하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중 한 곳이 파커였다.


❉ ❉ ❉


뉴욕에서도 부자들과 상속가문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유명한 롱아일랜드 지역.

파커가문 대저택에서 윌리엄 파커의 외증손녀 돌잔치가 조촐하게 열렸다.

신종플루 대유행 때문에 손님들을 초청하진 않았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가볍게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윌리엄 파커가 한국식으로 돌상을 받은 류시아를 보며 감회에 젖었다.


“시아가 태어난 지 벌 써 일 년이 되었구나. 불과 열흘 전 친구를 땅속에 묻고 슬퍼했는데. 세월 참 화살 같구나.”


사람 사는 모양이 다 그렇듯이.

가는 사람은 가고, 오는 사람은 오는 것이다.


“으앙!”


류시아에게 한복을 입혔는데 거추장스러운 모양이다.

옷고름이 풀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심영숙과 레오나가 간신히 어르고 달래 옷매무새를 바로 해 간신히 돌잡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돌잡이는 엽전, 실, 마패, 붓, 오방색지를 기본으로 한다.

시대가 흘러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돌잡이 품목도 많이 달라졌다.

기본적인 물품 외에 새롭게 추가되거나 유행이 지나 사라지는 품목도 있다.

장수하며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이었던 과거엔 쌀과 실이 최고 인기 돌잡이 물건이었다.

쌀은 굶지 않고 배불리 먹는 인생이고, 실은 장수 한다는 의미다.

그 같은 것들은 이제 와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돼 버렸다.

때문에 아기가 잡을 확률을 낮추기 위해 상에서 구석진 곳에 놓거나 다른 물건으로 가리는 경우도 있다.

많은 자손을 의미하는 대추도 과거엔 인기 물건이었다.

이제는 자식 많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닌지라 쌀이나 실과 같은 신세가 되거나 아예 돌잡이 상에서 빼놓기도 한다.

류시아의 돌잡이 상에는 양쪽 집안 어른들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었다.

윌리엄 파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 장난감을 놓았다.

법관이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매사 바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현명함을 갖추길 바란 것이다.

제임스 파커는 달러와 함께 계산기를 상에 놓았다.

금융업 종사자가 되길 바란 것이다.

캐서린 파커는 법봉과 함께 한국 전통의 마패를 놓았다.

외할머니와 친엄마에 뒤를 이어 법조인이 되길 바란 것이다.

레오나는 대추, 실, 연필, 활 같은 전통적인 돌잡이 물건에 만족했다.

특이한 것으로 사과를 놓았다는 점이다.

건강하고 미인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남매는 CamPro 액션캠, 오방색지를 놓았다.

액션캠이야 아빠가 영화감독이니 그 길을 걸어도 좋다는 의미고.

오방색지는 최근 한국 돌잔치에서 유행하고 있는 마이크와 비슷한 의미다.

즉 연예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으로는 오방색지에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동서남북 땅의 기운을 받아 화려한 삶을 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굳이 연예인의 삶이 아니더라도, 오방색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삶을 살라는 뜻을 담았다.

할머니 심영숙은 지휘봉과 동화책을 놓았다.

리더십을 갖춰 높은 사람이 되거나 교육자가 되길 바랐다.

골프공 같은 스포츠 관련 물건은 놓지 않았다.

류민상은 돌잡이 상에 양털을 놓았다.


“양털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윌리엄 파커가 양털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류민상이 빈 종이에 직접 한자를 쓰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양이란 동물에서 비롯된 한자가 제접 많아요. 羊이 크면(大) 아름다운(美) 것이고. 물(水)을 뜻하는 글자와 합치면 바다 양(洋)이 되지요. 착할 선(善)과 고울 선(鮮)에도 양이 들어앉았어요. 羊이 나(我)와 함께라면 옳을 의(義)가 되죠. ‘부러워하며 바란다’는 선망(羨望)의 ‘선’도 양(羊)과 먹고 싶어서 침 흘린다는 연(沇)자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그런 깊은 의미가 있었던가? 이 양털에....?”


제임스 파커가 몰랐다는 듯 되묻자, 윌리엄 파커가 말을 보탰다.


“양이란 동물은 일찍부터 제사 때 신에게 바쳐지는 대표적인 동물이었다. 지금과 달리 고대에는 제물이 결코 나쁜 뜻이 아니었지. 무려 신께 바쳐지는 것이었으니까.”

“맞습니다. 그 제물이 바로 희생입니다. 한자로 볼 때 ‘희(犧)’자에도 羊이 들어가 있습니다.”


심영숙은 자신의 한자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는 남편에게 한 소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잡이에 무슨 공자 왈 맹자 왈이에요!”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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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2) +4 24.04.27 1,673 72 27쪽
839 자네까지 나서지 않도록 하겠네. (1) +4 24.04.26 1,670 76 24쪽
838 큰 기대 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5 24.04.25 1,649 73 24쪽
837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3) +4 24.04.24 1,635 72 28쪽
836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2) +3 24.04.23 1,633 71 25쪽
835 뭘 망설일 것이고, 무얼 두려워하겠습니까! (1) +6 24.04.22 1,666 76 23쪽
834 두 배 성장할 겁니다! +6 24.04.20 1,690 74 25쪽
833 불한당(不汗黨). (10) +6 24.04.19 1,591 71 29쪽
832 불한당(不汗黨). (9) +2 24.04.18 1,536 68 26쪽
831 불한당(不汗黨). (8) +8 24.04.17 1,526 78 22쪽
830 불한당(不汗黨). (7) +6 24.04.16 1,537 74 24쪽
829 불한당(不汗黨). (6) +5 24.04.15 1,576 75 26쪽
828 불한당(不汗黨). (5) +6 24.04.13 1,667 71 27쪽
827 불한당(不汗黨). (4) +9 24.04.12 1,679 80 30쪽
826 불한당(不汗黨). (3) +6 24.04.11 1,625 79 24쪽
825 불한당(不汗黨). (2) +5 24.04.10 1,649 80 24쪽
824 불한당(不汗黨). (1) +10 24.04.09 1,741 79 26쪽
823 미래의 성장 동력. (3) +8 24.04.08 1,765 83 28쪽
822 미래의 성장 동력. (2) +6 24.04.06 1,790 78 23쪽
821 미래의 성장 동력. (1) +7 24.04.05 1,844 73 24쪽
820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게임기? +9 24.04.04 1,825 72 22쪽
»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4) +5 24.04.03 1,761 86 22쪽
818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3) +3 24.04.02 1,734 79 20쪽
817 아시아 패자 정도는 돼야겠지! (2) +4 24.04.01 1,774 74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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