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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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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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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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품 안에 자식처럼 (시즌2-44)

DUMMY

"쨍그랑! 쨍쨍 쨍~"



대리석으로 된 회의실 바닥에 금속성 물질이 부딪칠 때 날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회의실의 자리한 협력사 직원들과 완성차 직원들은 그 거슬리는 소리에 귀를 막거나 눈가를 찌푸린다.



"이게 무슨 소리 같습니까?"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회의실의 대리석 바닥에 떨어뜨렸던 램프의 사출 구조물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건 이번에 프로젝션 모듈(Projection module)의 앗세이(Assembly) 구조물에 신규 적용된 브래킷입니다. 기존에는 알루미늄 재질을 썼죠. 이번에 자동차에서 플라스틱으로 재질을 변경했습니다. 알루미늄을 대체할 새로운 차세대 소재죠. 그런데 사실 방금 소리를 들으셨겠지만 강성은 알루미늄에 버금갈 정도 단단합니다. 촉감도 뭐 거의 돌덩어리 같은 느낌이죠. 플라스틱이 이 정도의 강성을 가지려면 Glass fiber(유리섬유)가 40% 이상 함유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소재를 사출 성형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금형 마모로 인한 금형 수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현재 고객사에서 산출하는 금형비 산정 시스템은 다양해진 소재와 램프 제품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협력사 직원들은 숨죽여 내 얘기에 집중한다.

그들에게는 여태껏 완성차의 구매담당자 앞에서 이런 발언이나 행동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언권이 주어진다고 아무 말을 해선 안 되는 것이 갑을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이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 질문을 했다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느냐 야단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질문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핀잔 아니면 질책이었다.

교사가 아니어도 수업을 빨리 마치고 놀러가나고픈 학우들의 바램을 저버리는 행위로 같은 반 친구들의 핀잔까지 감당해야 했다.

협력사 직원들의 표정은 세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또 다른 애송이 혁명가의 도전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자,

아니면 괜히 쓸데없는 문제 거리를 만들어 자신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자,

그것도 아니면 핸드폰이나 들여다 보며 나 때문에 회의시간이 길어질 거 같아 짜증내 하는 자였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완성차 구매 담당자인 오만한 대리는 팔짱을 끼고 등을 의자에 붙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쏘아본다.



"금형비를 인하할 것이 아니라 인상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동차에는 수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사출 부품이 적용된다.

그 중에서 램프에 적용되는 사출부품은 품질 조건이 꽤나 까다롭다.

램프는 자동차의 눈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눈에 띄고 상징적인 부분이다.

외관 디자인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램프 안에 플라스틱 구조물은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심미적인 역할까지도 소화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출품의 외관부에 티끌 하나 스크래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다.

때론 광택이나 필링(Feeling)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불량품이 되기도 한다.

램프부품의 불량률은 타 부품의 불량률을 압도한다.

불량률이 높다는 말은 손실이 크다는 뜻이다.

손실은 협력사들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된다.

과거부터 램프 제품의 까다로운 품질 조건 때문에 램프 협력사의 원성이 적지 않았다.

특히 완성차에서 제시하는 플라스틱 사출 원가 표준 적용이 어렵다는 호소를 해왔다.

원가 표준에서 제시하는 표준 불량율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불량율 때문에 손실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협력사의 끊이지 않는 원성에 완성차의 설계원가 표준팀에서는 램프 부품을 위한 별도의 원가 표준을 제정했다.

일부 램프 사출품에 한해서 예외사항을 적용해 주었다.

하지만 램프 부품의 원가 표준은 빠르게 변해가는 램프 업계의 신기술이나 공정, 그리고 신소재 적용 등의 변화를 따라오기 힘들었다.

협력사의 제안에도 표준 개정은 지지부진했다.

다른 공정 관련 원가 표준은 해마다 개정을 거듭했다.

하지만 유독 램프 원가 표준만은 개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램프 표준과 상황에 맞지 않는 일반 플라스틱 원가 표준을 적용해서 부품 및 금형 가격을 책정하니 협력사의 사정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래요! 거 참 말 한번 잘했소! 전 금성 몰드(Mold) 김직언 부장이라고 합니다. DG 오토모티브의 램프 금형을 제작해주는 업체입니다. 사실 저희 회사는 전자 부품이랑 자동차의 다른 사출 부품 금형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램프 금형이 만만치가 않아요! 또 요즘 자동차 램프가 휀다쪽으로 깊게 감싸고 들어간 구조로 디자인되는데 이런 길고 깊은 형상의 베젤(Bezel)이나 렌즈(Lens) 금형은 금형 구조도 복잡하고 금형 사이즈도 엄청 커지죠 금형 가공비가 상대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글치 틀린 말이 아냐”


“그러니까 사출 구조가 정말 지랄 같다니까”


“제품 변형도 너무 심하다니까”



그의 발언에 이제 다른 협력사 직원들까지 웅성대기 시작하며 불만 사항을 하나둘씩 토해내기 시작한다.

금형비 절감을 위해 소집한 회의가 갑자기 금형비 인상 회의로 바뀌고 있다.

완성차 구매와 설계원가 담당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자! 자! 여러분 잠깐 휴식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0분 뒤에 다시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그들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을 퇴장한다.

나와 사공차장도 회의실을 나와 한국 오토모티브의 공장동 뒤에 마련된 휴게실 음료자판기에 서서 담배를 피며 커피를 마신다.

그때 회의실에 발언을 했던 그 김직언 부장이라는 사람이 이 쪽으로 다가온다.



"아~ 젊은 청년! 아까 참 말 잘하데... 내 속이 다 후련하더구먼"


"아... 네..."


"사공차장님! DG에 이런 직원도 있는 줄 몰랐네요"


"지도 마 전대리가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당께"


"우리도 사실 한국 자동차 금형 정말 하기 싫어, 돈도 안되고 까다롭기는 어찌나 까다로운지, 우린 요즘 해외로 눈을 돌려가 일본이랑 유럽 완성차 금형을 수주해서 제작 하는데... 그게 참 돈이 되지. 그 쪽에서도 우리 꺼 몇 번 쓰더니 가격이랑 품질이 만족했는지 계속 주문이 들어오더라고, 정말 우리가 우물 안에 개구리였지 정말"


"아! 부장님! 그래서 요즘 우리가 금형 좀 부탁하면 까칠하셨구먼요? 역시 다른 주머니를 차면 생각이 바뀌나 봐요 하하하"


"으따 참! 사공 차장님이 또 그렇게 얘기하심 섭섭하지라 하하"



2차 협력사들도 나름 자기들 살 길을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 같다.

완성차에서 내려오는 원가 압박은 결국 하위 업체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내 파이가 줄면 나눠줄 파이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주던 파이로도 배가 고팠다면 이제는 생사의 기로에서 다른 파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1차 협력사들은 결국 파이 사이에 낀 형국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대기업들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1차 협력사들이 가운데 끼어 위로 비위 맞추고 아래로 달래 가며 이끌어온 것이다.

이제 2차 협력사도 딴 주머니를 차고 목이 뻗뻗해지니 1차 협력사는 갈수록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1차 협력사가 다른 주머니를 찾는다는 것이 한국의 대기업 구조 문화 속에서 쉽지가 않다. 독과점의 한국 자동차 제조업에서 다른 글로벌 고객사와의 거래는 한국 자동차의 입장에서 껄끄러운 것이다.

혹여나 자사의 설계 및 원가 관련 정보들이 다른 글로벌 경쟁사로 흘러갈 것을 우려한다.

그게 협력사들에게 타 해외 자동차사의 거래를 차단하는 표면적인 명분이다.

그 명분으로 협력사들을 구속시키고 길들이는 것이다.

한국자동차는 협력사의 해바라기 충성심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DG오토모티브도 한국 자동차가 매출 비중은 클지언정 이익률은 해외 고객사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부적으로 경영진들은 해외영업에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글로벌 부품사로 거듭나야지만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 갇혀 사육되는 형국이랄까?

한국의 자동차, 조선, 전자등의 간판 대기업들의 존재감은 크지만’

글로벌 부품기업으로 이름난 회사가 드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내가 먹여 키웠으니 이제 네가 효도 해야지 않겠니?”



한국의 대기업은 마치 한국의 부모를 닮아 있다.

자식의 양육을 위해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다 커서도 이래라저래라 하며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거나 놓아주지 않고 계속 복종하길 원한다.

부모와 자식은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이며 각자의 삶이 존중되어야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부모와 자식간의 정이라는 끈끈이로 연결되어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쏟은 정성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자식은 그런 부모의 기대와 시선에 부응하려 자신의 삶이 아닌 그들이 투영한 삶을 살아간다.



“자식 농사 다 망쳤네”


과거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는 것을 농사에 비유한 건 자식을 통해 수확을 얻기 바랬기 때문이다.

사실 원시 수렵 사회에서는 한 명의 자식은 사냥꾼 혹은 사냥꾼 생산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농경사회에 와서는 자식은 곧 노동력이었다.

노동력이 곧 수확량과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식을 놓아서 덕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이다.

자녀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른다.

물론 그것은 부모의 역할이 크게 좌우한다.

이제는 자녀를 키우는 것을 농사로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냥 반려동물로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반려동물을 비록 물질적인 보상은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고 보살피며 거기서 정신적, 정서적인 보상을 받는다.

물론 그 대가로 돈과 시간 그리고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어찌보면 동물의 세계가 냉정하지만 가장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녀가 육체적으로 독립할 시기가 될 때까지 사랑으로 먹여주고 보살피는 것 까지만 해야하는 것이다.

그건 다 자란 새끼가 어미 품을 떠나 야생으로 가는 것과 같다.

정신적인 독립은 부모의 재량이다.

재량이 부족하다면 사회가 알려줄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정신적 성숙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하드웨어는 어찌어찌 그럴듯하게 만들기 쉽지만 소프트웨어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유독 하드웨어에 강한 건 어찌 보면 이런 맥락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도록 놓아주고 다시 자신의 삶과 소명을 이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다 자란 자식을 품 안에 두고 평생 자식의 성공을 바라고 실패를 걱정한다.

그것이 결국 자식이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건 사랑이 아닌 집착이다.

부모는 자녀의 성공에 축하하고 실패를 위로하며,

자녀가 그들의 품에서 자라는 동안 느꼈던 행복과 보람에 감사하는 것이 맞다.

우리의 부모는 그렇지 않았기에 그런 부모가 만든 기업 또한 그렇지 않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부모와 자식 같다.


마치 품 안에 자식을 키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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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6화. 타인을 위한 기도 (시즌2-45) 22.08.06 65 1 10쪽
» 125화. 품 안에 자식처럼 (시즌2-44) 22.08.05 67 3 12쪽
124 124화. 기회는 변화다 (시즌2-43) 22.08.04 6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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