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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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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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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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28화. 감독과 작가처럼 (시즌2-47)

DUMMY

"띠리리링!"


"여보세요?"


"뭐하노?"


"이제 잘라꼬"


"야! 연말연시에 집구석에 처박혀 잠만 자냐? 나온나!"


"귀찮아! 피곤해!"


"快出来!我需要你的帮忙”(빨리 나와!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在哪儿? 这么晚帮什么忙?”(어딘데? 이렇게 늦은 시간 무슨 도움?)


“나이트! 일단 나와보면 안다!"



시계가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다.

연말 연휴 오랜 만에 부산집에 내려왔다.

방바닥에 붙어서 뒹굴거리며 리모콘 위의 손가락과 눈알만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전날 친구들과의 연말 송년회로 과음을 했다.

연말이면 언제나 그렇듯 꼬치 친구들과 약속이나 한 듯이 모여서 마시는 술은 정신 줄을 놓게 만든다.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 라서인지 꼬치친구들과의 연말 송년회는 누군가는 꼭 한 명은 필름이 끊긴다.

그게 이번에는 나였다.

전날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외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꼬치친구들끼리 하는 얘기의 레파토리는 항상 반복되기에 그닥 기억할 의미가 없다.

보나마나 옛날 어린 시절 추억얘기로 시작해 여자 얘기 그리고 돈벌이 관련 얘기로 이어졌을 것이다.

신기한 건 필름이 끊겨도 일어나 보면 항상 집에 누워있다.

의리는 있는 친구들이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숙취에서 간신히 회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정신을 좀 차리려 할 때쯤 지노의 연락이 왔다.



그는 연산동의 어느 나이트클럽에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빨리 나오라고 재촉만 한다.

내가 나오지 않으면 인연을 끊겠다느니 하는 우정을 볼모로 삼고 협박을 일삼는다.


나는 하루 종일 뒹굴던 방바닥과 접촉하던 표면적을 줄이며 일어선다.

순간 현기증이 밀려온다.

너무 오래 누워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일상화해야 한다.

누워만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이라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도둑처럼 집을 빠져나온다.

집을 떠나 살기 시작하면서 이젠 고향집이 예전처럼 내 집 같지 않고 어색해졌다.

다행히 12시가 넘지 않은 시간이라 운행 중인 버스에 올랐다.


늦은 시간 버스 안은 한산하다.

버스 안 노약자 석에는 목이 꺾여 졸고 있는 청년이 입가에 침까지 흘리고 있다.

제일 뒷좌석에는 앞으로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젊은 연인 한 쌍이 팔짱을 낀 채 기대 앉아 있다.

둘은 느끼한 표정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연말 연시 아기 예수라도 한 명 만들 분위기다.

그 앞에 앉은 한 여자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짜증과 분노 섞인 목소리로 전화기 저편에 있을 누군가에게 이별을 얘기하고 있다.

버스기사 뒤에 앉은 한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했는지 기사에게 연말에 고생하신다는 말을 계속 반복한다.

연말연시 버스 안 사람들의 표정에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느껴지는 듯하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버스 타고 온다고"


"아 놔! 이 시간에 버스를... 택시 타고 오면 되지!"


"버스 있는데 택시는 왜 타냐? 돈 아깝게"


"아따~ 스크루지 나셨네!"


"야! 참! 인사해라! 여긴 호영이 형, 호주에서 나랑 일하고 있어"


"아.. 안녕하세요! 전희택입니다."


"어.. 예!"



들어선 나이트 룸 안에는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지노가 소개해준 호영이라는 형은 나를 아래 위로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 나에게 고개를 한 번 까닥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앞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집중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 앉아 있는 여자는 어둑한 룸 안에서도 빛이 나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아니 드레스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다.

그 해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남아공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프리젠이션을 할 때 입었던 옷과 흡사하다.

단정하고 격식있는 의상이 나이트클럽을 마치 상류층 무도회로 격상시키는 느낌이다.

그녀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무료한 표정으로 호영이 형이라는 자를 바라보고 있다.

호영은 그녀의 환심을 사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말한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거의 무표정에 가깝다.

그가 구애 하는 모습이 구차할 정도로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희택아! 잠깐만!"



지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룸 밖으로 끌어낸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나에게 설명한다.



“나 드디어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


“헐! 진짜?”


“누구?”


“내 앞에 앉은 여자”


“나이트에서 운명에 여자라··· 너 말고 저 형님도 운명의 여자를 만난 듯 한데···”


“그래서 니 도움이 필요하다”



지노는 생각 없이 호영형을 따라서 놀러 온 나이트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는 것이다.

호영이 형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앞에 앉은 여성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정말 재밋는 사실은 세 명의 여자가 친자매라는 것이다.

그녀들은 연말 가족 모임이 끝나고 세 자매가 재미로 나이트를 찾았다가 그들과 만난 것이다.

자신의 파트너가 막내이고 호영이라는 자가 공략 중인 여자는 둘째 그리고 남은 한 명이 첫째 언니라고 한다.

문제는 첫째가 파트너가 없어 지루해 한다고 한다.

자칫 동생들을 데리고 철수 명령이라도 하는 날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노는 급히 나에게 지원 요청을 한 것이다.



"야! 왜 하필 나냐?


"내가 한국에 친구가 너 밖에 더 있냐?"


"꼭 이럴 때만 친구 찾더라 너는?"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좀 도와주라, 호영이 형도 지금 저 여자한테 꽂혀서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야~ 니들 다음 주면 호주 돌아가야 되는 거 아냐? 지금 여자를 꼬셔서 뭐 우짤라꼬?"


"그렇다고 눈 앞에 운명을 놓칠 수는 없잖아! 나중이 어찌되던 일단 지금 뛰고 있는 이 심장을 속일 순 없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여자들 아직 우리가 호주에서 왔는지 몰라"



그는 감정에 솔직하다.

가끔 이 녀석은 이성(理性)이라는게 있긴 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노를 알고 지낸지도 벌써 10여년이 넘었다.

10년전 대학 시절때도 항상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녀석이 항상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런 그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온 나는 결국 내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증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감성이 설 자리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감성이 스며들려 치면 재빨리 이성이 찾아와 감성을 밀어낸다.

가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과 연애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은 이성모드와 감성모드를 자유자재로 변환하며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갖춘 듯 보였다.

난 아무래도 그 변환기가 고장 난 것 같았다.



“도와 줄꺼지?”


“뭘?!”


“뭐긴 뭐야? 니가 첫째를 사수해야지”


“휴~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냐?”


“大哥! 拜托你了!” (형님 ~ 부탁합니다!)


“미칫나 내가 왜 니 형님이냐?”


“이 일만 잘되면 내가 널 영원히 형님으로 모신다. 정말!”


“아놔~”



나는 친구의 일생일대의 소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세 자매의 컨트롤 센터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그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나의 연막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노는 결국 운명의 여자의 연락처를 따냈다.

안타깝지만 호영형은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두 남자의 희미가 엇갈렸다.

세 자매는 컨트롤 센터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룸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임무를 완수한 대가로 그가 호주로 돌아가기 전까지 형님 소리를 들으며 술을 얻어먹었다.



나이가 삼십대로 넘어가면서 더 이상 이성(異性)에 대한 설레임이 모든 것을 가려버릴 정도의 강력함은 사라져 버렸다.

이십대 때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서른이 넘어가며 사랑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중요한 것들이 사랑을 가져다 줄 수도 혹은 뺏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하지만 지노는 아직까지 이성(異性)의 설레임이 이성(理性)의 강력함을 압도하는 모양이다.

얼마 뒤면 지구 반대편을 날아가서 만날 수도 없는 여자에게 왜 저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나로선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에겐 감정을 속이는 삶에 익숙해진 내가 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른 환경이 그와 내가 이렇게 다른 삶을 살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이성을 만날때면 심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단 현실의 조건과 가능성을 먼저 생각했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사랑하는 아니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가슴으로 느끼는 문학이나 예술보다는 머리로 계산하는 수학이나 과학이 더 쓸모 있어 보였다.


내가 이미 완벽한 시나리오와 그에 맞는 배우와 상황을 찾는 감독과 같다면 그는 배우와 상황에 맞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나가는 작가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많은 스탭을 거느리며 세상의 주목을 받는 감독이 화려하고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펜 한 자루로 마음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가처럼 자유로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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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화. 감독과 작가처럼 (시즌2-47) 22.08.08 64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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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화. 도광양회(韜光養晦) (시즌2-33) 22.07.25 76 3 13쪽
113 113화. 마음은 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시즌2-32) 22.07.24 89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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