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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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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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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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바리(2)

DUMMY

흔히 30레벨을 호렙이라 부른다. 호칭을 붙일 수 있는 레벨이라는 뜻이다.


[/게으른/붉바리] lv.31


위세프의 닉네임인 붉바리 앞에 붙은 /게으른/ 칭호는 아이디의 본주가 손수 붙여놓은 칭호였다.


호칭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고 그냥 멋으로 달아놓는 거라 큰 의미는 없었다.


그래도 고인물 입장에서 굳이 의미를 붙여보자면 아이디의 본주가 어떤 성향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거?


‘저 캐릭터의 본주를 아는 입장에서 게으른이라는 칭호는 아주 어울린다고 할 수 있지.’


교회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참교육하고 강진상을 패준 날, 동훈은 예배가 끝나고 경찰서로 가야 하지 않았나.


당연히 동훈을 교회에 데려온 집주인 내외는 동훈이 없어진 것을 보고 걱정했었다.


추후에 동훈이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먼저 나오게 되었다 양해를 구하고 풀었는데 오히려 집주인 아저씨는 자기가 못 데려다줬다며 미안하다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교회에서의 게임 이야기 이후로 급격하게 친해진 아저씨와 동훈은 만날 때마다 종종 게임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간부 형님 중에 붉바리 형님이라고 있는데 정모든 공성이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지각을 하셨어. 오죽하면 본인 어머니상에도 늦었겠어?’


간부 붉바리는 본인 어머니상에도 늦었다. 그걸 아는 건 집주인 아저씨도 그 장례식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핏빛기사단’ 혈맹은 당시 꽤나 돈독해서 간부나 오래 같이한 식구 같은 혈원들의 경조사를 다 같이 챙겨주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도 그런 혈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이런 혈이 은근히 많았다.


하여튼 돈독한 혈원 몇이 상제보다 먼저 도착했으니 그의 지각 천성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혀를 쯧쯧 찼다고 한다.

상주인 붉바리의 형이 지각한 붉바리를 보고는 그냥 크게 한숨을 쉬고는 말았다고 하니 그게 천성이 아니면 뭐겠는가.


당연히 이런 잦은 지각은 단체활동에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그 또한 지각으로 혈에서 크게 데인 적이 있다고 하니.


‘그렇게 지각으로 구설에 오를 정도였으니. 그런 사람은 간부 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그때 부군주 하던 형님이 극구 중재해서 겨우 무마했지 뭐냐.’


물론 천성이 어딜 가냐고 그렇게 호되게 당했는데도 붉바리의 지각은 계속 되었고 결국에는 모두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지각쟁이의 이미지는 많이 안 좋았다고 하니.


혈의 군주에게도 미운털이 박혀있었다고 한다.


‘군주 형님이 붉바리가 뭐냐, 다들 붉은 뭐뭐로 닉 통일 안 했냐, 넌 왜 그렇게 엇나가냐는 식으로 많이 꾸중하셨지. 그래도 그렇게 뭐라고 하시면서도 군주 형님도 붉바리 형님을 많이 챙겼다고는 하던데. 뭐라더라, 취미가 같다고 하던가?’


집주인 아저씨가 준 정보를 종합해 붉바리라는 캐릭터의 본주를 이미 파악해놨다.


지각쟁이 붉바리.


가장 레벨이 높았을 때는 50레벨대 추정.


집주인 아저씨와 비슷한 급의,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윗급의 간부.


지독한 게으름뱅이에 지각을 달고 사는 특성을 지닌 이의 캐릭터였다. 본주의 게으름이 캐릭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알망 경은 잘 지냅니까? 그분 덕분에 우리가 이곳까지 잘 왔습니다. 부디 격조하셨으면 하는데요.”


동훈이 입을 뗐다.


위세프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알망의 안위를 묻다니. 그가 패배의 책임을 지고 고초를 겪을 거라는 건 패배시킨 저들이 더 잘 알 터인데.


동훈 역시 알고서 물어본 것이었다.

상대를 격분하게 만들든 알망과 적들 사이를 이간질하든 동훈은 많은 의도를 담고 말을 던졌다.

어느 쪽이든 동훈에게는 이득이고 적들에게는 손해인데다 아무런 효과가 없다 한들 동훈으로서도 잃을 게 없으니 교활한 수였다.


동훈은 행동대장 시절부터 이런 수 쓰기를 즐겼다. 말 한마디로 얻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았다.


“말 한 번 간교하게 잘하는군. 내 친히 그 간사한 혀를 잘라주지. 기사 알망은 요새에서 잘 지내고 있다. 그대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훈의 입담을 잘 아는 고양이 역시 위세프의 살벌한 선언에 동의하는 듯했다.


동훈은 발 옆으로 다가오는 고양이를 슬쩍 밀었다.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이젠 칼로 말해야 할 때.


동훈 일행은 폴트란의 북문을 작살내놨고 저들, 폴트란 주둔 기사단의 임무를 망쳐놓았다. 적들도 동훈 일행도 서로 싸워야 할 이유만 있었다.


싸움을 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쉬이이잉-


짙은 안개 속에는 무거운 살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피와 철, 긴장 섞인 땀의 냄새가 뒤섞여 고약한 전장의 냄새를 자아냈다.


일촉즉발의 상황.


호리병 형태의 보스전 지형은 좁은 호리병의 목을 혈맹원들이 막는 사이 호리병 안의 보스를 정예 혈맹원들이 빠르게 잡아내는 방식으로 보스전을 진행하게 했다.


동훈 일행은 호리병의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는 방향이었고 적들은 호리병의 허리로 내려오는 방향이었다.


보스가 출현하는 호리병의 윗부분을 막아서고 그보다 조금 더 넓은 공터인 호리병 아랫부분에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적들의 배치는 정석적인 보스를 상대하는 배치였다.


폴트란 주둔 기사단은 지옥체를 보호하면서도 동훈 일행을 물리칠 수 있는 병력의 배치를 완성해놓은 것이다.


NPC들 역시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살아움직이는 사람들.


게이머인 동훈에 비해 관조하는 시선이 부족할 뿐 무엇이 유리한지 귀신처럼 판단했다.


지형을 이용해 진형을 짜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더 벨룸의 유명 혈맹이 공성을 펼치는 모습과 비슷했다.


현실에서 이런 정련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확실히 놀라웠다. 더 벨룸을 모니터 너머로 조망하는 상태로 진형을 짜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려움이 아니던가.


지금 펼쳐진 상대 기사단의 진형은 동훈 일행을 단숨에 감싸 사방에서 몰아치려는 형국이었다.


동훈 일행에 태양수호자들이 열다섯 기나 있었지만 수적으로는 열세였다.


위세프가 팔을 높이 치켜들자 옆에 있는 위세프의 부관이 크게 소리쳤다.


“붉은 기수, 거창!”


척! 척!


채챙!


창을 든 기사들은 길다란 창을 동훈 일행을 향해 겨눴고, 칼을 든 기사들 역시 칼을 뽑아 동훈 일행을 향해 겨눴다.


기사 알망은 생각이 많아 동훈 일행을 향해 일대일 결투를 제안했으나 위세프는 곧장 회전으로 돌입했다.

기사들이 그저 도열해 있는 것과 본격적으로 무기를 겨누고 기세를 내뿜기 시작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그들의 기세에 기가 눌리는 기분이랄까.


전투에 이골이 난 기사들은 무기를 겨누자 금방이라도 적들을 도륙할 것 같은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스르릉!


위세프가 칼을 뽑았다.


그가 칼을 뽑자 마치 세상에 풀려나서는 안 될 흉악한 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은 섬뜩함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느꼈다.

3단계의 경지가 가감 없이 기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에게 대적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고고고고고-


위세프가 선 땅으로부터 은은한 진동이 들려왔다. 이 땅이 그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3단계의 경지에 오른 위세프는 주변의 공기를 떨칠 수준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망의 기세와는 확연히 달랐다.

알망의 것이 맹수의 것이라면 위세프의 것은 잘 벼려진 살인마의 칼날 같은 기세였다. 알망의 것보다 정돈되었으나 다른 일면에서 더 미쳐있는 듯한 기세.


위세프가 칼을 뽑는 것을 기점으로 부관은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칼을 높게 쳐들고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대열을 갖추고 적들을 분쇄하라! 왕의 보물에 손을 대는 자들을 가만두지 마라! 왕을 위하여!”


“왕을 위하여!”


부관의 명령에 복창한 기사들은 마찬가지로 칼을 치켜들고 창을 치켜들고 앞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와-!


죽여라!


기사들의 돌격은 육중한 철의 파도를 보는 듯했다. 그들의 갑옷이 붉은빛을 띠고 있으니 붉은 파도처럼도 보였다.


동훈 일행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의 돌격에 맞서 동훈 일행도 전진했다.


“최대한 몸 사리시면서 싸우시죠! 돌격!”


동훈이 마치 게임할 때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듯 소리쳤다.

동훈의 명령 아래 동훈 일행 역시 돌격하며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최선두는 동훈과 태양수호자들이었다.


태양수호자들이 황금빛 칼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들은 모두 동훈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동훈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명령을 알아듣고 행동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꼭두각시들.


‘MP로 소환하는 친구들이니 죽어서 역소환되면 쿨 기다렸다가 재소환하면 그만이야. 쿨이 조금 길어서 문제지만.’


태양수호자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는 쿨타임은 5시간.


단기 결전 난투전에서 죽어 역소환된 다음에 전투가 끝나기 전에 재소환하는 건 불가능했다. 전투는 대개 짧은 순간에 결판이 나곤 했다. 그러니 태양수호자들이 죽으면 전투에서 활약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한번 소환해놓으면 제한시간이 다 되거나 역소환될 때까지는 계속 움직였다.


체력도, 스테미너도 무한한 병사들인 셈이었다.


“죽여! 겉만 번드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이들이다! 겁먹지 마라!”

“왕을 위하여! 거짓된 기사들이다, 이들은 명예도 없는 이들이야!”


탱! 채챙! 챙!


태양수호자와 붉은 기수가 격돌했다.


맞붙은 최선두에서 태양수호자의 황금빛 광채가 폭발하듯 발광했다. 아침이라도 온 것처럼 빛이 눈부시게 터졌다.

폴트란에서 아직 잠들지 않은 이들은 슬리젠 골짜기에서 기인하는 빛줄기에 신의 징벌이라며 두려워했다.


쾅! 챙챙! 쓍!


“으윽! 다들 시야를 확보하고 아군을 공격하지 마!”

“이, 이쪽으로 붙지 말라고. 어딜 보는 거야!”


기사들은 과연 폴트란 수비대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태양수호자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적을 앞에 두고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며 오히려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태양수호자들은 기사들과 맞붙어 이제야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기사보다 조금 밀리지만 비등한 수준의 힘과 민첩성이었다. 일개 소환수치고 대단한 수준의 능력치였다.


보통 소환자의 레벨에 따라가는 소환수의 한계상 동훈처럼 캐쉬로 둘둘 두르고 있는 게 아니면 레벨에 맞게 보다 고레벨에 밀리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 기사들에게 맞서는 모습에서 과연 전설급 아이템으로부터 나온 소환수라는 위용을 보여주는 듯했다.


“저런 위용을 보여줘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게 소환수의 가장 큰 단점이지.”


유통기한.

보통 식품의 신선도와 직결된,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이라는 의미의 단어는 게임으로 들어와 다른 뜻으로 쓰였다.


게임에서 아이템이든 캐릭터든 제 효용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데 대개 그것이 짧은 것들에 붙는 부정적인 단어였다.


이런 아이템을 통해 소환할 수 있는 소환수에게 유통기한이라는 단어가 붙는 걸 보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템으로 소환할 수 있는 소환수는 대개 그 스텟이 고정적이다.


이를테면 어떤 영웅 등급의 소환 아이템을 얻어서 그 아이템으로 소환물을 소환한다고 치자. 그 소환수가 15레벨 정도의 스텟을 지녔다면 그건 유저의 성장과는 전혀 상관없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15레벨의 스텟을 지닐 것이다. 어쩌면 게임이 서비스 종료될 때까지.


레벨 10 때 15레벨의 소환수를 부리는 건 사기급 성능을 자랑할 것이다.


하지만 15레벨 때는? 그냥저냥 평범한 소환수일 것이고


20레벨 때는? 고기방패로 쓰기에도 아쉬울 것이다.


하물며 20레벨 때도 탐탁지 않은데 30레벨, 40레벨 정도로 레벨업을 계속하면 할수록 소환수는 도태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짧은 유통기한이 다 되게 된다.


전설급 아이템에서 소환하는 ‘태양수호자’는 분명 강력하고 스텟도 훌륭할 테지만 글쎄. 그게 언제까지 유용할까.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대역무도한 자여. 본 기사가 칼을 뽑는 것까지 기다려줘야겠느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나.

동훈이 전황을 살피며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뒤 마주 선 위세프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기다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최선두에서 돌격한 동훈이었지만 난전에 끼어드는 대신 홀로 고고하게 서있는 위세프를 향해 달렸던 것이다.

난전은 태양수호자들과 반다르, 애스톨이 주도해 이끌었고 적들 역시 위세프의 부관을 위시한 기사들이 거세게 맞섰다.


동훈에게 주어진 일은 우두머리끼리 맞붙는 일.


이곳에서 가장 강한 사람 둘이 결판을 지어야 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한 건 긴장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알망 경도 그렇고 위세프 경도 그렇고 참을성이 조금 부족하시더군요. 반왕의 기사들은 다 그런 건가.”


“그렇게 애써 도발할 것 없다. 내 친히 네 목숨을 거둬줄 테니. 그렇게 급할 것 없단 말이다!”


타오르는 갈기의 위세프.


현재 31레벨.


그는 붉은 기수의 셋뿐인 부기사단장이자 알망을 꺾고 부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른 실력자였다. 레벨을 떠나 그의 스텟이 분명 알망을 압도할 터.


동훈은 알망을 상대로 합을 나눌수록 힘겨웠던 그때를 떠올렸다.


알망의 칼은 그만큼 날카롭고 매서웠다.


그렇다면 위세프는? 얼마나 강할까?


캉!


“과연 입을 놀릴만한 실력은 되는구나!”


동훈과 위세프의 칼이 맞붙었다.


동훈은 30레벨이 넘는 위세프와 맞서면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는 동훈의 레벨에 있었다.


20레벨!


동훈은 폴트란에서 닥사에 집중할 수 없다고 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퀘스트를 깨고 틈틈이 움직여 레벨을 착실히 올려놓은 것이다.


동훈의 스텟은 현재 이러했다.


===

LVL : 20

HP : 700

MP : 430

STR : 110 +2

DEX : 51

CON : 73

INT : 32 +3

WIS : 32 +3

CHA : 15

===


100을 훌쩍 넘는 STR과 700에 달하는 HP, 70이 넘는 CON은 어지간한 수준의 기사 캐릭터와 비견할만했다.


지금 30레벨의 위세프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기량을 보라.


알망을 보스 스킬로 날려버릴 때까지만 해도 알망을 버거워했지만 며칠이나 지났다고 지금은 알망을 이긴 기사마저도 상대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이것이 동훈이 오히려 반왕의 영역으로, 중앙지대로 거슬러올라가면서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였다.


엄청난 성장 속도!


‘돈은 많이 들지만 역시 왕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지. 경험치에 배율이 들어간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


합이 이어질수록 위세프의 얼굴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동훈은 마치 첫 공격에는 힘을 다 쏟지 않은 것처럼 점점 더 강력한 힘을 휘둘렀다.


고고고고고-


동훈의 몸에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주변 공기를 떨쳤다.

아까 위세프가 3단계의 경지를 엿보이며 보여줬던 위세를 동훈은 20레벨, 그러니까 2단계의 경지로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는 스텟이 위세프와도 겨룰 만큼, 혹은 그보다 강한 스텟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동훈이 돈을 써서 아이템을 뽑고 컬렉션을 모은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디바인 스트라이크!


카가각!


칼에 흰빛이 감돌고 MP가 쑥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칼에는 막강한 파괴력이 실리며 위세프가 기함할만큼 치명적인 일격이 가해졌다.


투칵! 챙!


“알망을 기괴한 수를 써서 요새로 날렸다더니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었군. 오히려 그를 압도할 실력. 넌 알망을 살려준 건가? 왜?”


위세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동훈의 공격을 흘려내곤 머리를 굴렸다. 이미 위세프의 머릿속에서 동훈과 그의 일행은 상대의 허점을 찔러 주도권을 잡는 책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렇기에 알망을 죽이지 않고 살려 요새로 돌려보낸 의도에 대해 고민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때는 정말로 동훈이 알망을 죽일 자신이 없었던 것인데, 누가 그런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사람의 실력이 며칠도 되지 않아 그렇게 향상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터였다.


다시 한번 둘의 칼이 부딪쳤다.


투캉!


이제는 힘의 우위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해졌다. 동훈의 칼은 흔들림이 없었지만 위세프의 칼끝은 분명하게 흔들렸다.


“제가 왜 알망을 살려줬는지는 요새로 가서 알아보시면 되겠군요. 혹시 가서 만나게 되신다면 고맙다는 말은 필요없다고 전해주시죠.”


후욱!


동훈이 칼을 왼허리춤으로 숨기며 몸을 숙이고 기이한 준비를 하자 위세프는 몸을 긴장으로 바짝 조이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이한 수에 대비했다.


위세프는 동훈의 기이한 예비 동작을 보고, 동훈이 요새로 가 알아보라는 말까지 듣자 그가 알망을 요새로 날려 보낸 기이한 스킬을 사용할 줄로 착각한 것이다.


어디지? 기이한 스킬은 어디로 날아오는 거지?


위세프가 수만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눈의 초점을 흐릴 때,


동훈은 정직한 공격을 선택했다.


강화 횡베기! 그리고 디바인 스트라이크!


휭!


푸학!


“크악!”


상대의 수를 오판한 대가는 컸다.


동훈의 횡베기는 가히 칼을 찢고 방어구를 꿰뚫는 위력의 일격. 칼에 쓰인 흰빛의 아우라는 반왕의 붉은 철을 찢을 만큼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위세프의 붉은 갑옷 옆구리가 찢어지며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한치쯤 파고든 동훈의 칼에 장기가 상하는 것만 겨우 피했다.


위세프는 동훈의 페이크에 속아 반응이 느렸지만 그는 대단한 기사였기에 늦게나마 동훈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동훈은 위세프의 몸을 양단할 각오로 칼을 내질렀으나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힌 것에 그쳤다.


‘까비. 이 저항감이 AC인가? 내 명중이 30따리 붉바리의 AC는 뚫나 보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레벨 차이가 현격한 상대. 한 번에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크흐흐, 젠장. 여기서 이렇게 상처를 입을 줄이야. 폴트란으로 파견 왔을 때만 해도 이런,”


피가 뚝뚝 흐르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위세프는 푹 고개를 숙였다.


상처의 고통을 억누르는 건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동훈은 이 틈을 타 공세를 이어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의 직감으로는 공세를 이어가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위세프에게서 위협적인 기세가 누그러지기는커녕 더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고개를 든 순간 그의 얼굴에는 완연한 미소가 피어있었다. 광기에 완전히 물든 것 같은 위세프의 얼굴에는 기존에 있던 나른함과 타성에 젖었던 태도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피 튀기는 전장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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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위세프의 영성 강림 23.01.28 197 2 13쪽
88 아뜨리 카포(2) 23.01.27 212 4 16쪽
87 아뜨리 카포 +1 23.01.25 191 4 13쪽
» 붉바리(2) 23.01.22 199 3 19쪽
85 붉바리 23.01.21 217 3 21쪽
84 폴트란 북문 전투 23.01.18 193 4 13쪽
83 북문으로(2) 23.01.15 207 4 17쪽
82 북문으로 23.01.14 216 4 20쪽
81 기별 없이 온 손님 23.01.13 205 4 19쪽
80 이웃 23.01.10 244 5 12쪽
79 잔비어 요새 대회의 23.01.08 21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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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정치와 고립 22.12.18 309 8 16쪽
67 보스 스킬 22.12.17 292 11 16쪽
66 결투 재판(3) 22.12.14 294 7 21쪽
65 결투 재판(2) 22.12.12 283 9 16쪽
64 결투 재판 22.12.10 298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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