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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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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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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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변질

DUMMY

***


그것이 존재감을 드러내자 골짜기의 안개는 끔찍한 것을 피하듯 모두 물러났다.

태양수호자들과 몇 없는 횃불만이 빛을 비추던 골짜기에 가득한 축축한 안개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신 코를 비트는 유황내가 났다.


체고 3미터,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머리는 아래로 좁아지는 역삼각형의 모양새였다. 삼각형의 윗꼭짓점에 달린 두 개의 커다란 눈은 흰자위란 없고 온통 검은자위뿐이었다. 입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갈라졌으며 코는 흔적에 불과했다.


아래로 쭉 빠진 놈의 몸은 허리까지는 사람의 몸이었으나 아래로는 곤충의 배를 가졌다. 괴악한 취미를 가진 흑마법사가 사람과 곤충을 이어붙인 듯했다.


[‘변질된’ 망령을 탐하는 그로스만] lv.36


이름 앞에 붙은 ‘변질된’이라는 머리말은 얼핏 캐릭터의 칭호와 비슷해 보였는데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칭호 중에서도 자신이 정해서 붙이는 무의미한 칭호가 아닌 상태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붙는 ‘고정 칭호’.


그중 ‘변질된’이라는 칭호는 아뜨리 카포와 연관된 이벤트에서만 등장하는 고정 칭호였다. 그 에피소드에서만 등장하는 키워드라고 해야 할까.

더 벨룸 중반쯤이었나? 에피소드 기획팀 총괄이 바뀐 건지 에피소드 추가시 본래의 추세가 바뀌었다.


그건 바로 에피소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하나씩 선정한 것이다.


게임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새로운 업데이트의 등장을 그때는 반겼더랬지.


아뜨리 카포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대륙의 변절자’ 편에서의 키워드는 바로 ‘변질’이었다.


변절한 자들의 낙인, 변질.


그것은 매우 이질적인 힘이었다. 정신과 육체를 안팎으로 변하게 만드는 변질은 몬스터, 보스몹, NPC를 기괴하게 변화시켰다.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세계관의 아주아주 라이트한 버전, 모 게임사의 타락 키워드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몬스터 같은 힘을 얻는 대신 괴상한 외형과 비정상적인 생식행위를 하게 만드는 변질은 보고 있기에 썩 유쾌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부분에서 매니악한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었으니 변질 상태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 물론 플레이어의 캐릭터들은 다 예외다. 변질되거나 변질시킬 수 없었다.


돈 들여 키운 캐릭터가 변질이니 뭐니 손해를 입으면 아마 게임사인 티에이징은 그날로 줄줄이 소송부터 들어올 테니.


그러니 변질에 대해 크게 걱정할 것도 없지만 마냥 마음 놓을 것도 아니었다. 게임 기반이라지만 현실은 현실. 뭐든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아아아아아!


그로스만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망령을 탐하고 변질되기까지 한 괴물.


마지막에는 사령술사까지 잡아먹으며 변질의 정점을 찍었다. 울룩불룩하게 올라온 검은 핏줄과 온몸에 돋아난 역겨운 돌기, 몸에 난 구멍으로 줄줄 흘리는 불길한 점액질까지.

원래도 흉측한 보스몬스터의 외양을 하고 있던 그로스만은 업그레이드된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보니 우는 아이의 울음쯤은 가볍게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멈추기만 할까? 멈췄다가 다시 울리겠는데.


그아아아아


괴괴괴괴!


마치 성대가 두 개인 양 기괴한 외침을 중첩된 상태로 내뱉는 그로스만은 한층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다.


“3단계, 3단계를 뛰어넘는 기세에요. 원숙한 3단계의 기세. 이런 변방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지....”


애스톨이 무심코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괴기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기세.


이 땅의 사람들이 전사의 경지를 나눌 때 단계로 표현한 것은 인간의 경지 구분을 일련의 차례로 구분하기 때문이었다.


1단계, 첫 차례를 지난 자는 전투술의 기초를 다진 이들이다.


2단계, 두 번째 차례를 지난 자는 전투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이다.


3단계, 세 번째 차례를 지난 자는 전투술을 깨달은 자들이다.


3단계에 이른 이들 모두 강자라고 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반 이후,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되는 이들은 진정한 힘에 눈 뜨는 4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로 여겨진다.


4단계에 이른 자는 중앙지대의 군벌에게도 중시되는 인재고 여러 참칭자들에게도 세력의 중추가 되는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중앙지대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원숙한 3단계의 경지에 이른 이는 변방의 패자 노릇도 할 수 있을 터.


그러므로 이런 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싹수가 보이는 이들은 다들 중앙지대로 빨려들어갔으니. 전쟁이 주는 명예와 위업, 온갖 부와 권력은 블랙홀처럼 사람을 빨아당겼다.


동훈만 해도 일행과 함께 중앙지대로 나가려는 차 아니던가.


확실히 근방에서 활동하는 고만고만한 레벨의 이들이 견디기에는 거세고 거센 기세였다.


강력하고 흉측한 보스몬스터의 등장에 모두가 얼었다.


위세프의 기사들, 반다르와 애스톨, 종자들과 동물들, 달아났던 어린 사령술사, 그리고 좀비까지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동훈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득을 봐야지.


동훈은 엘리트 좀비, 그러니까 매크로 계정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해치우기 위해 달려들었다. 동훈의 날카로운 칼끝이 좀비의 목줄기를 노렸다.


“끄에에엑!”


좀비는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였다.


칼을 내팽개치고 동훈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게 아닌가!


갑자기 동훈이 두려워졌다거나 실력의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걸 진작 알아볼 놈이었다면 동훈과 대거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자식아, 가만히 좀 있어 봐라! 거기로 왜 가는 거야! 너 죽어, 인마!”


동훈은 좀비를 잡으려다 좀비가 도망치는 방향을 보고 기겁했다.


좀비가 달려가는 방향은 보스몬스터, 그로스만의 아가리 방향이었다.


곤충의 입틀처럼 가로로 벌어지는 그로스만의 아가리는 끈적한 액체를 머금은 털과 이빨 같은 가시로 가득했다.

보통 산 사람이라면 저곳으로 걸어들어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좀비는 이미 죽은 몸이라 그런지 망설임이 없었다.


좀비는 아껴뒀던 돌진 스킬까지 사용하며 그로스만의 아가리로 뛰어들었다.


타닷!


덩치 큰 좀비의 육중한 활강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상한 한자닉을 머리에 달고 돌진하는 인영이 느리게만 보였다.


돌진하는 인영은 한차례 몸을 뒤틀었고 마치 행위 예술을 하듯 느릿하게 그로스만의 입속으로 골인했다.


꿀꺽!


죄악이 쌓이는 건 켜켜이 한계가 없다.


특히나 사람을 먹는 죄악은 그 업보가 충천하여 변질은 최고조에 이르기 마련.


좀비를 삼킨 그로스만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목줄기로 울룩불룩한 핏줄이 잔뜩 올라온 채다.


그아아아아


괴괴괴괴!


그로스만의 변이가 왕성해졌다.


암세포가 제 몸집을 불리는 것을 3미터의 크기로 재현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생식을 위해서만 부풀어 오르는 구역질 나는 생장의 과정은 가장 끔찍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시체도, 흙도, 주변 공기까지도 섭식하는 형태의 생장은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몸체를 키울 뿐 어떤 것도 세상으로 환원하지 않았다.


아뜨리 카포의 변질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생식으로의 변질.


“젠장. 이건 누구의 수작이야? 아까 잡아먹힌 사령술사가 꾸민 짓은 아닌 것 같고. 좀비 조종하는 걸로도 벅찬 레벨이었잖아.”


동훈의 예민한 감각은 좀비가 보스몬스터를 향해 뛸 때 좀비 안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요동치며 좀비의 머리로 치받는 것을 보았다.

그 이질적인 기운에 점령당한 좀비는 마치 자살을 하듯 보스몬스터의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간식이 스스로 걸어 사람의 입으로 걸어 들어가듯.


동훈은 알지 못했지만,


좀비의 몸 안에는 고등급의 금제가 들어있었으니 제라도가 어르신이라 부르는 그가 최초 좀비를 가져다줄 때부터 담아놓은 금제였다.


지옥체를 위해 자신의 몸을 공양할 것.


매크로 계정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게임에서 이름 한 자락은 날렸을 캐릭터는 그렇게 소모품으로 쓰인 것이다.


게다가 그로스만의 끔찍한 외양은 그저 흉악하게 생긴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우웨엑! 우웨에에엑!”

“신이시여, 왕이시여, 날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저, 저건, 믿을 수 없어. 저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돼!”


패닉에 빠진 반왕의 기사들.


그들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상체를 앞뒤로 흔들고 침을 흘리고 자해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지옥체의 본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과 기억 속의 모습에서 오는 괴리를 더욱 크게 느끼는 듯했다.


“우리가 아는 폴트란의 지옥체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 저런 불경한 존재라니!”


기사들은 종말의 날이 온 것처럼 무너져내렸다.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 기사들의 모습은 비록 적이지만 동훈이 보기에도 비참했다.


“오우, 끔찍하게 생겼네. 화면 너머로 볼 때보다 흉측한데.”


동훈은 꽤나 충격적인 몰골의 보스몬스터를 보며 한줄평을 남겼다.


“근데 저게 저렇게 충격받을 일이야? 흉측하게 생긴 건 생긴 거고, 기사들이라면 저만큼 끔찍한 꼴도 많이 봤을 텐데?”


본디 대게처럼 생겼던 그로스만의 모습에 변형이 가해졌다. 머리가 몸체에 붙어있던 것이 쭉 분리되어 상반신을 이뤘고, 그 상반신에는 사마귀 같은 부속지가 달렸다. 끔찍스런 부속지는 가시와 돌기, 뚝뚝 떨어지는 산성의 액체로 무장하고 있었다.


지옥에서 올라온 사마귀처럼 생긴 외형은 가히 비명을 부를만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봤을 때야 윽, 더러워, 하고 말겠지만 그게 실재하니 풍기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겁 많은 사람이 보면 오금이 저리고 실례를 할 법도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반응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전장에서 잔뼈가 굵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험한 꼴 역한 꼴 볼 만큼 다 본 사람들이 정신줄 놓은 것처럼 패닉에 빠진 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반다르와 애스톨 역시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불편한 표정과 공포로 굳은 몸은 삐걱거렸지만 기사들보다는 상황이 괜찮았다. 이들은 패배를 경험하지도, 아직 절망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떡할 텐가? 저건 더 이상 평범한 지옥체가 아니야. 토벌은 너무 위험해. 전력을 재정비하고 더 많은 인원을 데려와야 하네.”

“잠시 몸을 피하시죠. 물러날 때를 아는 것도 전략이랍니다. 전략적 후퇴는 누구도 욕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후퇴를 권하는 일행들. 그만큼 그로스만의 모습은 압도적이었고 가까운 기사부터 한입에 집어삼키고 있는 그로스만은 위험해 보였다.

게다가 현재 일행은 앞선 두 차례의 전투로 지친 상황 아니겠나. 이런 상황에 저런 괴물과 싸우자고 하는 건 다 같이 죽자고 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지옥체는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을 테니 가능한 제안이기도 했다.


“후퇴요?”


동훈은 궁리했다.

에피소드가 진행될 당시를 기억하는 동훈은 저렇게 변해버린 보스몬스터가 지역을 벗어난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마을을 침공하고 상행을 다니는 NPC들을 잡아먹는 보스몬스터는 당시 혁명적이었다. 뭐, 그저 에피소드 진행이라 에피소드가 끝나고 나면 다시 복구가 되었지만 보스몬스터의 마을 침공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벤트였으니.


그건 과연 현실이 된 지금도 동일할까?


그렇다면 폴트란이며 주변 마을이 모조리 초토화될 수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동훈의 감각을 벗어나는 이는 없었다.


그가 다가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동훈은 그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뒀다.


그는 바로 제라도에게서 도망쳤던 어린 사령술사였다.


어린 사령술사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조심스럽게 동훈에게로 왔다.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도록 하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달팽이처럼 느려서


어딘지 불안해 보이고 무언가 두려워하는 듯한 어린 사령술사는 겁을 내면서도 동훈이 말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접근했다.

동훈은 어린 사령술사를 이미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사령술사에게 동훈이 이미 알고 있음을 알려주기만 하면 됐다.


어린 사령술사는 동훈이 그의 접근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는듯했다.


그림자를 입은 듯 존재감을 지운 사령술사는 반다르와 애스톨의 감지 범위에서 교묘하게 벗어나 있었다.


그러므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도, 서로의 이야기가 닿는 것도 오로지 어린 사령술사와 동훈뿐이었다.


어린 사령술사의 수준이 여기 있는 이들보다 강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사령술사의 마력은 형편없었고 체력마저 저기 그로스만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기사의 주먹질 한 번도 견디지 못할 수준이었으니.

다만 녀석은 특수한 아이템 덕분에 그 존재감을 완벽히 숨기고 있는 듯했다. 가슴팍에서 은은하게 발산하는 파장을 동훈은 눈치챌 수 있었다.


잔뜩 움츠러든 어린 사령술사는 동훈에게 말했다. 아니, 어린 사령술사의 말은 메신저 마법으로 동훈의 머릿속을 울렸다.


“지옥체의 진체를 드러내면 이 땅에 자격 없는 평범한 이들은 혼란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걸 지옥체의 일깨움이라 부르죠. 일깨워진 지옥체는 진리를 전파합니다.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를요. 저 지옥체가 존재하는 한 저것은 진리를 행하려 할 겁니다.”


잠시 뜸을 들이고,


“모든 것은 재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여기까지 들었을 때 동훈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뜨리 카포의 변질 에피소드는 설명했듯 게임을 지지하는 중견층 유저들의 레벨대가 40레벨대에 이르렀을 때 등장한 에피소드였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를 제대로 즐길 대상들은 40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이었고 그 이전 레벨대의 플레이어들에게는 레벨업을 하라는 압박을 선사했다.


그게 바로 레벨이 안 되는 이들이 에피소드 보스를 만나면 얻게 되는 디버프들.


원래 레벨 높은 몬스터나 캐릭터는 명중과 방어 때문에 공격을 적중시킬 수조차 없지만 변질 에피소드의 보스들은 거기에 더해 상태 이상과 디버프를 걸어대기 때문에 더욱 뉴비가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런 디버프는 NPC들 역시 피할 수 없었는데,


그중에 가장 특징적인 NPC들의 행동은 이 디버프를 먹고 공포에 질린 듯 자리를 피하려 한다는 점이었다.


“지옥체를 막지 않으면 모든 걸 먹어치울 테죠. 일깨워진 지옥체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면 그 일깨움은 허무로 소멸합니다. 다음 지옥체 강림 때는 평범한 지옥체로 돌아올 거예요. 이번 지옥체만 지옥으로 돌려보내면 이곳의 악몽도 끝날 겁니다.”


녀석은 약이라도 한 것처럼 눈에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고 발음도 군데군데 어눌했다. 마치 정신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상태인듯했다.


동훈은 이윽고 이해했다.


이 땅의 평범한 이들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고 그랬지. NPC는 디버프를 먹고 공포에 빠지게 된다. 녀석도 그것을 피할 길이 없었겠지.

아뜨리 카포는 저런 괴물을 만들어내는 조직이니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동훈의 합리적 의심상 그건 향정신성 약물을 통한 제어일 듯했고. 뇌에다 화학물질을 때려 넣는 방식으로 놈들은 정신 공격을 피하는 방식일 거다.


동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메신저 마법을 쓸 줄도 모를뿐더러 여기서 입을 열어봐야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될 테니.


어린 사령술사는 동훈이 대답하건 말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요청했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처럼.

실제로 그를 구할 수 있는 건 동훈뿐이었다. 주변을 싹쓸이할 그로스만으로부터 도망친다는 건 목숨을 건 도박밖에 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아마 저 지옥체는 이곳에 있는 모든 이를 잡아먹겠죠.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어린 사령술사의 설명에 따르면 본디 엘리트 좀비에 취해놓은 조치로 인해 한 번 일깨워진 지옥체는 우두머리 사령술사 제라도에 의해 통제되어야 했다. 제라도가 생각한 아뜨리 카포의 대계는 그런 방향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바로 동훈이 등장했다는 것.


어느 누가 짠 계획이든, 아무리 공을 들여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세워놨든 그 상식을 뛰어넘는 비대칭 전력의 등장은 그 어떤 계획도 뒤집어엎고야 말았으니.


확실히 폴트란 지역에서 동훈은 저울을 망가뜨리는 체급이었다.


제라도는 죽었고 그로스만은 생각보다 더 일깨워졌다. 예상 밖으로 강해진 지옥체는 이곳의 모든 생명을 종식시킬 대재앙이었다.

근방의 모든 것을 쓸어 먹고도 만족하지 못해 자신이 쓰러질 때까지 먹을 것을 찾아다니겠지. 그렇게 되면 저것을 멈출 수 있는 건 반왕뿐일 테고, 그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남부 변방이 초토화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동훈은 깨달았다.


이곳의 보스몬스터도 마을을 침공하고 주변의 모든 인간을 잡아먹으려 들 터였다.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저건 여기에만 얌전히 있을 놈이 아니에요. 아마 주변 있는 건 모든 걸 먹어치울 놈입니다. 폴트란이 가까워요. 여기서 우리가 후퇴하면 지도에서 폴트란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될 겁니다.”


동훈의 선언에 반다르와 애스톨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다 같이 죽자는 말로 들렸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동훈을 믿고 중앙지대로 나서려는 일행이었다. 일행이 반대했는데도 리더가 결정했다면 더 반대하기보다 그를 믿고 따르는 게 중요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저 괴물이 보통의 지옥체처럼 이 근방을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의 태클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계획이 있나? 3단계, 그것도 원숙한 수준의 지옥체야. 본래 이곳의 지옥체를 토벌하던 기사들마저도 간식거리가 되고 있는 마당이지. 괴물이 된 놈을 처치하려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전력이 있어야 할 걸세.”


“계획은 간단합니다. 제가 시선을 끌고, 공격을 받아내고, 지휘합니다. 다들 그로스만을 최대한 공격해주세요. 단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기왕에 아뜨리 카포의 계획을 어그러뜨릴 거 완벽하게 다 어그러뜨리는 게 좋지 않겠나. 동훈은 그로스만을 보며 칼을 고쳐잡았다.


‘진심으로 가야 한다. 아뜨리 카포 이벤트하고 겹쳐서 보스가 얼마나 파워업했는지는 몰라도 만만하진 않을 거야. 패턴 되새기고 깔끔하게 잡아낸다.’


동훈은 그로스만의 공격 패턴을 되새겼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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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질 23.02.11 181 2 19쪽
91 보스몬스터 +2 23.01.31 199 4 17쪽
90 매크로 +1 23.01.29 189 5 13쪽
89 위세프의 영성 강림 23.01.28 196 2 13쪽
88 아뜨리 카포(2) 23.01.27 212 4 16쪽
87 아뜨리 카포 +1 23.01.25 191 4 13쪽
86 붉바리(2) 23.01.22 197 3 19쪽
85 붉바리 23.01.21 216 3 21쪽
84 폴트란 북문 전투 23.01.18 193 4 13쪽
83 북문으로(2) 23.01.15 207 4 17쪽
82 북문으로 23.01.14 216 4 20쪽
81 기별 없이 온 손님 23.01.13 205 4 19쪽
80 이웃 23.01.10 244 5 12쪽
79 잔비어 요새 대회의 23.01.08 216 5 13쪽
78 충성 맹세 23.01.07 227 5 15쪽
77 복수자들 23.01.05 271 8 16쪽
76 마성의 남자 23.01.03 234 9 18쪽
75 니아 아가씨 23.01.01 256 7 21쪽
74 움직이는 세계 22.12.31 250 8 15쪽
73 안개 도시 폴트란 22.12.29 255 8 14쪽
72 당신의 가격은 22.12.27 268 9 18쪽
71 신을 위한 코드 22.12.25 276 7 16쪽
70 초능력과 친구 22.12.24 280 6 15쪽
69 디올 +1 22.12.21 277 7 13쪽
68 정치와 고립 22.12.18 308 8 16쪽
67 보스 스킬 22.12.17 292 11 16쪽
66 결투 재판(3) 22.12.14 294 7 21쪽
65 결투 재판(2) 22.12.12 283 9 16쪽
64 결투 재판 22.12.10 298 9 20쪽
63 반왕의 붉은 기수 22.12.07 309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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