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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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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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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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남자

DUMMY

길길이 날뛰는 귀족 청년은 부티는 나지만 눈길을 받을 만한 외모는 아니었다.


균형 잡힌 몸에 살집도 얼마 없지만 퉁방울 같은 눈, 주먹코에 각진 얼굴선이 외모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말해 잘생기지 않은 외모였다.


못생긴 귀족 청년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당신을 죽이고 말거야! 나의 오필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만들다니.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이봐요. 오해에요. 오필리아! 뭐라고 말 좀 해봐! 여기서까지 이러기야?”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흑!”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여인의 모습에 시비를 건 귀족 청년은 더욱 분개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챙!


“이름을 밝혀라! 나는 크래프톤 가문의 차남 올리버 크래프톤이다! 레이디의 명예를 실추시킨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칼까지 뽑은 귀족 청년은 장갑을 벗어 애스톨에게 던지며 결투를 신청했다.


다분히 귀족적이고 형식적인 몸짓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전사였다면 장갑을 던지는 허례허식을 보여주기보다 칼을 상대의 몸에 꽂았을 것이다.


그의 귀족적인 행태는 그가 왕이 없는 시대의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걸 보여줬다.


왕은 없지만 귀족의 핏줄을 보존해 온 모시는 왕 없는 귀족들.


비유하자면 그들은 핵 없는 세포고 씨 없는 수박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든 간에 그들은 매우 적은 수만 존재했으니 이런 곳에서 보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직접 귀족NPC를 보는 일은.


“역시나 꽤나 한심한 모습이네. 귀족NPC들은.”


동훈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말하는 고양이, 니아 아가씨가 인간을 깔보는 고양이의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더니 툭 내뱉었다.


“폴트란 시의장의 첩이군. 이젠 환한 대로에서도 남자를 홀리는 건가?”


“폴트란 시의장의 첩?”


“그래. 그와 저녁마다 밀회를 나누지. 폴트란 시의장은 가정에 충실한 걸로 유명한 인사지만, 흥! 블랙 가문의 눈을 피할 수는 없지.”


고양이의 눈으로 몰래 훔쳐봤다는 소리구만.


블랙 가문의 눈이라봐야 폴트란에는 자기밖에 없을 테니 뭘 보려면 자신이 몸소 나서서 그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게 다야? 저 여자에 대한 건?”


“시의장의 첩이라 흥미가 동해 몇 번 따라다녀 봤는데 이 도시 남자들과 자주 만남을 가지더군? 건너편 방앗간집 아들내미와도 사통하고 시의원의 외동딸과도, 도시 경비대장과도 사통하지. 이 도시에서 저 여자만큼 밤에 바쁜 여자는 없을 거야.”


“남녀 가리지 않고? 사랑이 많은 여성분이시네.”


“사랑이 많아? 그 반대지. 저 여자는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여자야. 남자와 밀회를 나누고 피부를 맞대면서도 온기 없는 눈으로 남자를 보곤 하지. 자신을 치장하고 귀한 것을 입에 대기 위해 뭐든지 이용할 수 있는 여자라고.”


“그런 여자가 애스톨 씨에게는 왜?”


고양이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혀를 쯧쯧 차고는 코웃음까지 쳤다.


“흥, 그런 여자라고 순정이 없겠느냐는 말이야. 저 여자의 눈을 봐라. 아주 물기가 가득하고 전에 없는 애정을 뚝뚝 흘리고 있지. 그러면서도 배신과 질투로 얼룩진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저건 연기라고 볼 수 없어. 진심인 게지.”


저 여자를 오래 관음해온 고양이의 평가라면 믿을 수 있지. 사람의 일을 사람한테 이것도 모르느냐고 비웃음당한 건 열 받지만.


사람을 가볍게 여기고 사랑을 연기하는 여자가 진심을 드러내 보이는 남자라.


확실히 애스톨의 외모는 뛰어난 편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얼굴선과 형태는 뭇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줄 만했다. 마치 조각처럼 생긴데다 바깥 활동으로도 타지 않는 하얀 피부는 귀한 태가 흘렀다.


저 여자처럼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사람마저도 애욕이 들끓게 만들 정도라니. 잘난 외모는 그야말로 사기이자 개연성이었다.


“이 소란도 그럼 저 여자가 꾸민 거겠지?”


“원래 이렇게 일 크게 벌이는 건 저 여자의 방식이 아니야. 다른 사람이 꾸몄거나, 자신의 방식대로 하지 못할 만큼 제정신이 아니란 소린 거지. 표정을 보아하니 정상적인 판단은 어려워 보이는구나.”


고양이는 분홍빛 혀로 앞발의 털을 그루밍하며 샐쭉 웃었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여인이 재미난 장난감으로 보이기라도 하듯.


동훈이 고양이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상황은 진척되었다.


장갑을 벗은 한쪽 손으로 애스톨을 가리키며 귀족 청년은 결투의 맹세까지 하고 있었다.


“결투의 신 앞에 맹세하노니! 저 명예를 모르는 야만인을 내가 징치하겠다! 칼을 뽑아라, 야만인!”


애스톨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곤 혼잣말했다.


“하, 말이 안 통하는군.”


동훈이 볼 때 저 귀족 청년은 애스톨의 상대가 아니었다.

애스톨이 활시위만 당겨도 귀족 청년은 그 위압감에 아무것도 못 할 만큼 수련이 부족해 보였으며 설사 애스톨이 칼을 든데도 귀족 청년은 기본적인 피지컬에서 그를 능가하지 못할 터였다.


물론 그렇게 많은 것을 파악해 낼 수 있는 건 이 근방에서 가장 강한 동훈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올리버! 당신이 다칠 수도 있어요.”


오필리아가 마치 귀족 청년을 걱정하는 듯 그의 팔뚝에 붙었다.

하지만 그를 진정 말리려 하는 건 아니었는데, 팔뚝을 붙든 가녀린 손아귀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다 시선 역시 애스톨을 흘긋거리느라 바쁘지 귀족 청년은 이미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 마당에 귀족 청년은 그저 오필리아가 자신의 팔뚝에 붙은 것을 기꺼워하며 미소를 헤벌쭉 지을 뿐이었다.


“내 걱정은 마시오, 오필리아. 나의 한 떨기 꽃. 나는 가문에서 오랫동안 수련했다오. 이런 촌구석에서 뻗대고 있는 불한당 하나쯤은 내 칼에 최후를 맞이할 거요.”


귀족 청년의 자신만만한 장담에 오필리아는 처음으로 약간 동요했다.


“최후, 최후까지는 말고요. 그냥 혼만 조금 내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녀의 반응에 귀족 청년은 미녀의 비위를 맞추는 남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흔쾌히 정정했다.


“아, 알겠소. 혼만. 걱정마시오.”


“난 사정이 있어 지금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된단 말이오. 무슨 오해가 있는진 몰라도 말로 풀면 안 되겠소? 젠장, 대장에게 면목이 없군.”


애스톨은 전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애스토 역시 붉은 기수들과 대립하는 작금의 상황을 최대한 조용하고 은밀하게 피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의 가지를 흔든다고 다른 이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동훈은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어쩔 수 없군.


애스톨이 휘말린 이상 이건 동훈과도 연관되어 있는 셈이었다.


애스톨이 소란을 일으키면 곤란해지는 건 애스톨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동훈은 인파에 섞여들어 슬금슬금 움직였다.

‘밀지 마!’, ‘어딜 만져!’하는 고함이 들려와도 동훈은 애써 무시하며 오필리아가 서 있는 곳 뒤쪽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오필리아는 하얀 손을 맞잡은 채 긴장하는 것처럼 그것을 입가로 가져갔다.


오필리아는 마치 두 남자의 결투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듯했지만 진실을 아는 동훈에게는 그녀가 전황을 냉철하게 살피고 있다는 게 보였다.


결투의 흥분과 도시에서 좀처럼 벌어지지 않던 드문 사건에 대한 흥미로 들끓는 이곳에서 그녀는 냉철한 이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때 오필리아의 뒤에서 저음역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필리아 슬렛? 돌아보지 말고 들으시죠. 의장님이 절 그쪽과 사이를 오해하면 저도 곤란해지니까요.”


오필리아는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등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의장? 폴트란에서 의장이라는 호칭을 가진 이는 폴트란을 움직이는 시의회의 수장뿐이었다.


시의장의 호칭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이가 폴트란에 있을까?


게다가, 시의장과 자신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그의 정적? 외부의 대세력? 아니라면 시의장을 위협하는 제3세력?


어디가 되었든 그사이에 끼어 이용물이 될 오필리아에게는 암울한 미래뿐이었다. 상상은 한계를 모르고 펼쳐졌다.


오필리아는 긴장으로 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애써 침착하게 되물었다.


“누구시죠. 지금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 나중에 얘기하시죠.”


“아뇨. 지금 얘기해야겠네요. 일단 이 소란부터 멈추시죠. 어어, 뒤돌아보지 마시죠, 아직. 우리가 얼굴을 마주할 사이는 아니잖아요.”


뒤를 돌아보려는 오필리아를 막아 세운 남자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명령에 익숙한 사람이다. 사람을 쥐고 흔들 줄 아는. 오필리아의 위험 감지가 경종을 울렸다.


게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은 폴트란의 경비대장을 자주 접한 그녀도 잘 아는 기운이었다.

그녀는 전사가 아니지만 그런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전사의 투기 혹은 살기.


그것도 무서운 경지에 오른 이였다. 폴트란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오필리아는 시간을 끌기 위해 변명했다.


“소란을 멈추라고요? 그럴 수 없어요. 이미 제 손을 떠났어요. 여기서 제가 저 남자의 소매라도 잡고 거짓말로 속여 저 이와 싸우게 했다고 실토라도 하라는 말이에요?”


“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시죠. 급한 얘기니까. 오필리아 당신과 의장님의 아찔한 밀회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지 않겠죠?”


“....”


남자, 동훈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왕께도요.”


폴트란을 지배하는 자가 남부 변방을 얻는다.


그 말은 곧 남부 변방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반왕이 폴트란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반왕은 분명 폴트란을 자신의 텃밭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이곳의 권력기관인 시의회는 그의 관리를 받을 게 분명했다.


동훈은 바로 그 점을 짚었다.


세력 관계를 제삼자의 눈으로 관조할 수 있는 외부인의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폴트란 시민들이 시의장의 스캔들에 관해 알게 되어 그를 싫어하는 것보다도 폴트란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반왕이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오필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말에는 꿈쩍 않던 오필리아가 돌연 안색이 변해서는 앞으로 나서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만! 올리버, 그만해요. 오해에요. 여기까지 하시라고요.”


갑작스러운 오필리아의 난입은 두 결투자를 당황하게 했다.


그중 가장 당황한 것은 못생긴 귀족 청년, 올리버였다.


그는 말을 더듬거리며 오필리아를 향해 말했다.


“오, 오필리아. 결투의 신 앞에 맹세까지 했어요. 어떻게 여기서 그만,”


오필리아는 올리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며 통보했다. 어차피 그는 오필리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슨 변명을 하고 안된다고 손사래를 쳐도 오필리아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올리버! 그만하시라고요. 저 이가 말도 없이 날 떠나서 곤란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신께 부탁드린 거예요. 아시겠어요? 제가 속인 거니까 그만 하세요.”


오필리아의 마지막 말은 속삭임처럼 올리버의 귀에만 들어갔다.

구경꾼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음량이라 구경꾼들은 오필리아가 올리버에게 무슨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걸로 알았으리라.


그 말을 들은 올리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 오필리아.”


“얼마나 절 더 수치스럽게 만들어야겠어요? 여기서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망신이라도 당해야겠어요? 그래야 그만두시겠어요?”


다급한 마음에 오필리아는 눈물까지 내비쳤다.


오필리아의 눈물을 본 남자는 허둥지둥하더니 두 손을 들었다. 사랑에 눈먼 남자는 그녀가 자신에게 거짓말했음에도 화 한 번 내지 못했다.


“내가 그런 뜻이 아니라, 알겠어요. 알았다고. 그만하면 될 거 아냐. 울지 마세요.”


남자는 그렇게 물러났다.


구경하러 몰린 사람들을 뚫고 가느라 상황이 묘해졌지만 어쨌든 소란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해산할 때까지 기다린 오필리아는 매서운 눈으로 뒤를 돌아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를 찾았다.


이제 속 시원히 요구사항을 말해보시지. 원하는대로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망신까지 당했으니!


하지만 뒤에 서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


애스톨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걸었다.


저 독한 애가 일을 벌여놓고 그냥 포기하다니. 자신을 그렇게나 사랑했나?


그녀가 얼마나 지독한 여자던가. 폴트란에 있을 적 잠시 함께 어울렸던 여인인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도 손수 죽인 여자였다.


불쌍한 여인. 하지만 그의 동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심성은 어딘가 비틀려 있어 매우 위험했다.


애스톨이 황망하게 걷는 사이 어느 그림자가 그의 뒤로 접근했다.


“후, 살벌하네. 그 여자는 뭡니까? 어떻게 엮인 거예요? 아주 위험한 여자라는데.”


옆으로 동훈이 스윽 나타나며 애스톨과 걸음을 맞췄다.


애스톨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보았다.


기척을 숨기고 다가온 동훈을 애스톨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동훈은 1단계의 전사고 자신은 2단계인데도!


등급을 뛰어넘는 천재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그것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디오르, 디오르 씨였군요. 제가 곤경에 빠진 걸 구해주신 게 디오르 씨였습니까? 단지 무력만 강한 줄 알았더니 수완도 대단하시군요. 그 여자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다니. 손해 보는 건 죽기보다도 싫어하던 사람인데.”


“말로 잘 구슬렸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더군요.”


물론 협박도 조금 곁들였다.


애스톨은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도마뱀이 어떻게 용의 뜻을 이해하겠는가. 애스톨은 자조적인 속담을 읊조리며 동훈에게 털어놓았다.


“오필리아 슬렛이라고 예전에 알던 여자입니다. 제가 폴트란에서 몇 달 살 때 자주 어울렸죠. 폴트란 지주의 수양딸로 권세가의 자녀였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살지만요. 당찬 여자입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몇 달 어울린 여자인데 그때도 제가 좋다고 결혼을 하자고 절 졸졸 따라다녔죠. 그런 일은 익숙했습니다. 이전에도 쭉 여성들은 절 보면 그러자고들 했죠. 하지만 단언컨대 제 명예를 더럽힐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세요. 전 그 당시에 해결사 일을 하던 참이라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정보원으로서만 그녀를 대했단 말입니다.”


이런 재수 없는 소리라니.


여성들이 쭉 결혼하자고들 했다니.


그래도 대화의 기본은 공감이니 동훈은 애스톨이 계속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호응해줬다.


“이해합니다, 이해해요. 그럴 수 있죠.”


“이해할 만한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크흠!”


능청스러운 애스톨의 말에 동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봤다. 지금 구해준 게 누군데. 대로에서 칼싸움 시원하게 한 판 뜨라고 가만둘 걸 그랬어. 괜히 구해줬네.


“농담입니다, 농담이에요. 디오르 씨도 어디 가서 빠지는 외모는 아니죠. 다만 제 외모가 특출날 뿐입니다. 하여간 오필리아는 절 저렇게 대할 이유가 없는 여자예요. 오히려 우리는 좋게 헤어졌죠.”


“그렇다면 왜 저러는 겁니까? 애스톨 당신이 혹시 그녀에게 여지를 준 건 아닌가요?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대하고 있잖아요.”


“여지요? 저는 그런 걸 주지 않기로 유명하죠. 이런 데에는 전문가라고요. 여성에게 선을 긋는 일은요. 그녀는 제 뜻을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그녀가 저러는 이유는 저도 모르겠군요.”


애스톨의 표정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겠니. 인간은 언제나 수수께끼인 것을.


동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를 위로했다. 오필리아라는 여자는 최대한 엮이지 않는 쪽으로 움직여야겠군.


“어찌 되었든 쫓아버렸으니 된 것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폴트란에 오래 체류할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죠. 이젠 볼 일이 없겠죠. 그래도 왜 그렇게 날 공격적으로 대한 건지 그녀에게 묻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겠죠.”


애스톨이 씁쓸하게 웃었다.


“반다르 씨와 합류하죠. 지금쯤이면 그의 볼일도 끝나지 않았겠어요?”


해가 지고 있다.


높은 산맥에 기댄 폴트란은 밤이 빨랐다.


이 시대는 전기의 발전이 조잡한 수준이라 밤이 찾아오면 자는 것이 상식이었다.


터덜터덜 걷던 애스톨이 동훈의 뒤를 졸졸 따르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냥 길을 가는 길냥이라고 하기에는 동훈의 뒤에 딱 붙어서 고개를 쳐들고 도도하게 걷는 모양새가 자못 당당했다.


마치 이 고양이가 동훈의 에스코트를 받는 듯한 모습 아닌가.


“그 고양이는 뭡니까? 웬 고양이가 따라오는걸요.”


“아, 이번에 사귄 친구입니다. 이름도 지어줬어요. 니아 아가씨라고. 반다르 씨는 사냥개를 기르지 않습니까? 저도 하나 길러보려고요.”


동훈은 고양이를 슬쩍 보고는 애스톨에게 설명했다. 앞으로의 퀘스트에 유용하게 쓰일 혹을 붙이고 왔다고 적나라하게 밝히진 못하고.


동훈의 설명에 항의하듯 고양이가 사납게 울었다.


키야아앙!


애스톨이 있는 한 그녀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애스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양이는 여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요. 개와 달리 고양이는 말썽만 부려서 골칫덩이가 될 거예요.”


“얘는 영리한 녀석이니 말썽부리지 않을 겁니다.”


“디오르 씨가 그렇다면야. 니아 아가씨, 우리 일행에 합류한 걸 환영해요.”


애스톨이 예의 잘생긴 얼굴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양이를 향해 윙크했다. 보통의 여성들이라면 마음이 녹아버릴 만큼 매력적인 윙크를.


물론 고양이는 역겹다는 듯 사납게 하악질했다.


하악!


“정말이지 까칠하군요. 오필리아 같달까.”


오필리아와 비교된 고양이는 더욱 격렬하게 하악질을 했다.


하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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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아뜨리 카포(2) 23.01.27 212 4 16쪽
87 아뜨리 카포 +1 23.01.25 191 4 13쪽
86 붉바리(2) 23.01.22 198 3 19쪽
85 붉바리 23.01.21 216 3 21쪽
84 폴트란 북문 전투 23.01.18 193 4 13쪽
83 북문으로(2) 23.01.15 207 4 17쪽
82 북문으로 23.01.14 216 4 20쪽
81 기별 없이 온 손님 23.01.13 205 4 19쪽
80 이웃 23.01.10 244 5 12쪽
79 잔비어 요새 대회의 23.01.08 216 5 13쪽
78 충성 맹세 23.01.07 228 5 15쪽
77 복수자들 23.01.05 271 8 16쪽
» 마성의 남자 23.01.03 235 9 18쪽
75 니아 아가씨 23.01.01 256 7 21쪽
74 움직이는 세계 22.12.31 250 8 15쪽
73 안개 도시 폴트란 22.12.29 255 8 14쪽
72 당신의 가격은 22.12.27 269 9 18쪽
71 신을 위한 코드 22.12.25 276 7 16쪽
70 초능력과 친구 22.12.24 280 6 15쪽
69 디올 +1 22.12.21 277 7 13쪽
68 정치와 고립 22.12.18 308 8 16쪽
67 보스 스킬 22.12.17 292 11 16쪽
66 결투 재판(3) 22.12.14 294 7 21쪽
65 결투 재판(2) 22.12.12 283 9 16쪽
64 결투 재판 22.12.10 298 9 20쪽
63 반왕의 붉은 기수 22.12.07 309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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