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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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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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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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바리

DUMMY

보스 몬스터, 지옥의 존재들.


지옥체를 연구하는 대학의 학자들은 여러 마법적 지식, 역사적 지식, 문학적 지식까지 동원해 긴 세월동안 지옥체를 관찰해왔다.


지옥체를 연구하는 일은 옛문헌을 꺼내 조사하고 돈을 줘서 용병을 고용해 생태를 관찰하고 왕과 협력해 지역의 지옥체 토벌에 참관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옥체에 머리를 들이박는 일이었다.

옛 선조들이 지옥체에 머리를 들이박은 기록을 살피거나 사람을 고용해 머리를 들이받아보거나 왕과 협력해 들이받는 걸 라이브로 보거나.


그 결과 인류는 지옥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지옥체 연구의 권위자인 르네 대학 학장 스펜턴 교수는 논문에 이런 말을 적었다.


‘(그들은) 죽여도 껍데기만 남겨두고 영은 지옥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다시 돌아오며 마치 지박령처럼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 어슬렁거린다.


그리하여 지옥체 주변은 죽음조차도 쫓아내지 못하는 그의 영역인 셈이다.


지옥체는 아주 두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가 남기고 가는 껍데기, 전리품이라 부르는 부분에 있어서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죽음도 물리치지 못하는 최악의 괴물이자 보물.


이 이율배반적인 개념이 바로 지옥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명제였다.


그리하여 왕들은 지옥체를 관리하고 토벌하는 일을 독점하며 그 세를 불려갔다.


지옥체는 어느 한 곳에 몰려있는 것이 아니라 대륙 전역에 퍼져있었으니 왕들의 기사들 역시 지옥체의 분포에 맞춰 여러 구역으로 파견되었다.


폴트란에 주둔하는 반왕의 기사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폴트란 북문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지옥체 토벌이었다.


***


날이 바짝 선 기세를 흘리고 있는 스물 내외의 기사들.

붉은색이 은은하게 도는 전신갑옷을 걸치고 각자의 무기와 방어구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 최선두에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풀풀 풍기는 적발의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에 있는 기사들의 모든 기세를 압도했다.


잿더미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군불과 같다고 할까.


그의 기세는 멀리서 보아도 빼어날 만큼 무시무시했다.


그를 향해 한 기사가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위세프 경, 지옥체 사냥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경께서 출군 명령을 내리시면 주둔 기사단은 지금이라도 출군할 수 있습니다.”


위세프라 불린 적발의 기사는 부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 대기해.”


타오르는 갈기 위세프는 폴트란에 주둔한 붉은 왕의 기사단을 통솔하는 자였다.


갈기처럼 삐죽삐죽한 붉은색의 머리칼은 어깨까지 길어서 위세프를 보는 사람마다 머리가 불타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특히 그의 붉은 머리는 전장에서 유독 빛이 나서 닭의 무리 속 학처럼 전장을 휩쓰는 모습이 우아하다는 평을 받았다.


본래 붉은 기수의 세 부기사단장 중 하나인 그는 부기사단장들이 맡아야 하는 폴트란 주둔 임무를 맡아 이곳에 온 것인데 그는 이것이 지겨웠다.


중앙지대에 비해 낙후된 시설, 요새에 있을 때보다 척박한 환경은 안 그래도 붉은 기수 내에서 가장 게으른 기사라고 소문난 위세프를 더욱 게으르게 만들었다.


위세프는 본디 예민한 사람이라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것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화를 삭이고 그것을 게으름으로 푸는 게 익숙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마당에 폴트란에는 위세프의 신경을 자꾸 거스르는 일들, 의욕 없는 병사들과 형편없는 술 등등, 따위가 산재했기에 모든 걸 때려치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세프는 게을러졌다.


이제 위세프를 거스르는 일은 그의 게으름을 방해하는 일로 줄어들었다.


하필이면 바로 이날 아침에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게으름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게 거슬리는 일이지.


위세프는 아침에 쏘아붙였던 말이 떠올랐다.


“지옥체 사냥을 생략하고 반역자 소탕을 우선하라는 장군의 명이 있었나? 아니지. 지옥체 사냥은 왕께서 부여하신 폴트란 주둔 기사단의 임무일세. 장군께서는 임무 이후의 임무를 내려주신 거고. 전령이여, 돌아가 전하게. 장군의 명을 수행하겠노라고. 지옥체 사냥 이후에 말이야.”


지옥체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야심한 밤에 돌아오는 폴트란의 지옥체는 까다로운 시간대에 강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연히 이끌고 있는 기사단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폴트란 주둔 기사단은 흉험한 기세가 일품이지. 생각해보면 요새나 왕성에 있을 땐 전혀 그런 기세가 없던 기사들도 이곳에 오면 자연히 그렇게 변한단 말이지. 이게 폴트란 주둔 기사단의 필요성인가?’


폴트란에 주둔하는 건 기사들에게도 꺼려지는 일이었다.


꺼리는 일을 하게 되면 그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방향은 사람마다 달랐다.


그게 집단이 되면 조금 달라지지만.


원숭이 떼를 한 우리에 가두고 우리의 천장에 바나나를 달아둔다. 그리고 그 밑에 사다리를 둬서 사다리를 오르면 바나나에 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근데 원숭이들이 사다리에 오르면? 오른 원숭이도, 오르지 않은 원숭이도 물벼락을 맞게 한다.

원숭이들은 사다리에 오르면 물벼락을 맞는구나,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반복해서 학습시키고는 원숭이들을 하나씩 뺀다. 하나를 뺀 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원숭이를 투입한다.

사다리에 오르면 물벼락을 맞게 된다는 걸 모르는 새로운 원숭이는 사다리에 오르려 하겠지? 그럼 기존에 있던 원숭이들은 새로운 원숭이 때문에 물벼락을 맞게 생겼으니 그를 저지하려 하지 않겠나?

당연히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그를 막는다.


그걸 반복하는 것이다.

왜 사다리를 오르면 안 되는지 아는 원숭이들이 모두 없어지고 그 이유는 모른 채 사다리에 오르려 하면 몰매를 맞은 원숭이들만 남도록.


그렇게 이유는 모르고 사다리에 오르면 맞는다는 것만 학습하게 된 원숭이들은 또 다른 새로운 원숭이가 들어와 사다리에 오르려고 하면 어떻게 할까?


사다리에 오르길 두고 볼까? 아니면 자기들이 올라가 볼까? 올라가면 안 되는 이유를 모르니까?


아니다. 사다리에 오르면 안 되는 이유를 모르는 원숭이들은 그저 사다리에 오르려는 새로운 원숭이를 두들겨 팬다.


그렇게 이 집단의 원숭이들에게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다. 사다리에 오르려는 원숭이를 두들겨 패는 풍습이.


집단이란 그렇다.


폴트란 주둔 기사단이 그런 상황이었다.

폴트란에 오는 기사들도 주기적으로 바뀌고 오는 사람마다 이곳을 싫어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폴트란 주둔 기사단은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풍습처럼 계승했다.


폴트란 주둔 기사단의 별칭이 ‘인간사냥꾼들’이라 불리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위세프가 폴트란의 인간사냥꾼들을 데리고 무기를 정비했다.

지옥체를 사냥하는 일은 정기적인 행사였지만 그들은 정말 강했다. 위세프가 3단계의 전사라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당연히 주변에서 그를 도와야 하는 기사들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위세프와 기사들을 향해 말을 타고 접근했다.


두다닥! 두다닥!


폴트란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전령은 북문에서부터 온 폴트란의 파발이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달려온 파발은 헉헉대며 숨이 차는 와중에도 바쁘게 위세프를 향해 소리쳤다.


“그들입니다! 전령이 알려온 괴인들이요!”


위세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침에 그렇게 쏘아붙여 돌려보낸 요새의 전령이 말한 괴인? 그들이 벌써 폴트란으로 들어와?


위세프가 전령을 호령해 쫓아낸 것은 게으름을 방해한 데서 오는 짜증도 있었지만 그들이 폴트란에 당도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그들이 감히 어디라고 중앙지대로 기어올라온단 말인가? 감히 반왕의 기사를 물러서게 해놓고?


남부의 변방은 반왕이 지배한다고는 하지만 그 넓은 남부 변경을 모조리 반왕이 지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남부 변방에 잘 숨으면 아무리 반왕이라도 그를 찾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러니 당연히 남부 변방에 그들이 숨으리라 여겼고 위세프는 숨은 이들을 찾아내야 할 여정을 떠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폴트란에서 중앙지대로 머리를 들이밀면 그곳은 반왕의 영토였다. 상식적으로 반왕의 기사를 물리친 자가 반왕의 영토에 머리를 들이민다는 건 죽여달라는 말 아니겠는가?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 허를 찌르는 계책을 낸 천하의 영악한 놈들일 수도 있었다. 중앙지대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계책을 내는 소위 머리 잘 돌아가는 놈들이 산처럼 많았으니. 그들과 비슷한 족속들이라면....


“그들이 어디에 있지? 누가 발견한 거야?”


“소인이 본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북문 경비대와 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위세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들의 움직임이 예상보다도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폴트란으로 온 것도 모자라 관문을 돌파하려 하다니.


하지만 북문이라면 위세프가 서있는 이곳으로 통한다.

허를 찌르는 계책을 내는 영악한 이들이 아니라 그저 자기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바보들이 그간 운이 조금 좋았던 것이로군.


“북문? 서문이 아니라? 자기들 무덤을 스스로 파는구나. 넷이라고 했더랬지?”


“아, 아닙니다. 보았을 때 족히 열은 넘어보였습니다.”


“뭐? 열이 넘어? 전령이 이르기를 기사 알망이 상대한 이들은 넷이라고 했는데?”


위세프의 눈이 쌍심지를 돋궜다.

군사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적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넷인 줄 알았던 적이 열이 넘는다? 이건 적의 숫자를 잘못 알려준 이의 배신행위라고 매도할 수 있을 만큼 큰일이었다.


적의 숫자를 보고한 건 기사 알망이었겠지? 그 고지식한 이가 다른 기사들을 음해하기 위해 숫자를 숨겼을 리는 없었다. 넷 이외의 숫자는 나중에 합류한 건가?


위세프의 복잡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령은 급박하게 말을 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황금색의 갑옷을 입은 열이 넘는 기사들이 홀연히 나타나 그들과 가세해 북문 경비대를 격파하고 있었습니다.”


북문을 격파한다라.


알망을 패퇴시킬 기이한 힘을 가진 이들이 열이 넘는다면 북문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위세프는 급히 진군 방향을 돌렸다.

북문을 돌파하면 위세프의 기사단에 이르기 전 옆으로 빠지는 소로가 있다. 여기서 밍기적거리면 북문을 빠르게 돌파한 괴인들이 중앙지대로 빠져나갈 구실을 줄 수 있었다.


“기사들이여! 회군한다! 폴트란의 관문이 공격받는다! 관문을 구원하러 간다!”


기사들이 위세프의 명령을 복창했다.


“관문으로!”


***


폴트란 북문 전투에서 승리한 동훈은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밤이 깊은 골짜기에는 풀벌레가 찌르르 우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혹 부는 바람만이 골짜기에 부딪혀 한 맺힌 비명 지르는 소리로 변할 뿐이었다.


북문에서 한참 벗어난 뒤 동훈 일행은 골짜기를 따라 걸었다.


슬리젠 골짜기는 대대로 폴트란에서 불길한 골짜기로 통했다. 한없이 음산하고 좀처럼 해가 들어오지 않는 골짜기, 1년 내내 안개가 고여 있고 죽지 않는 지옥체까지 거하고 있으니 불길한 소문이 나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디렌의 탑 앞에서 나왔던 악령이 슬리젠 골짜기 출신이었지. 이곳 말이야.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밤에 골짜기를 걷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골짜기 안으로는 달빛도, 별빛도 닿지 않으니 음산한 안개의 축축함만 느껴질 뿐 눈이 암적응하기 전까지는 시력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태양수호자’들이 횃불처럼 빛을 밝히고 있는 상황.


어두운 골짜기에서 동훈 일행은 횃불을 든 것처럼 시야가 밝았다.


동훈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다. 반다르와 애스톨은 그래도 주군이 길을 안내한다고 말없이 따랐고 인질들도 다른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동물들이 말할 리는 없고.


인질인 종자들은 황금의 기사들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황금의 기사들은 아까 치른 격렬한 전투로 피가 튄 것을 닦지도 못했으니 황금색 갑옷에 붉은 자국들이 흉하게 묻어있었다.


이대로 쭉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리라. 지옥체를 향해 가는 길과 옆으로 빠져 중앙지대로 넘어가는 샛길이 놓인 갈림길이.


골짜기는 넓은 부분과 좁은 부분이 간헐적으로 반복되어 넓은 부분에 이르러서는 별빛에 그나마 얼굴을 비춰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미 북문을 뚫고 상황이 급박하지 않다는 걸 확신한 애스톨은 슬슬 입이 풀리는 듯했다.


“이 그 황금 기사들은 다 뭡니까? 디오르 씨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젠 뭐가 나와도 디오르 씨가 그랬다고 그러면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애스톨이 너스레를 떨며 동훈을 추켜세웠다.

옆에서 기계처럼 달리는 황금의 기사들을 애스톨은 만져도 보고 쿡쿡 찔러도 봤다. 신기한 이들을 마주한 애스톨은 겁 없는 반응을 보였다.


마법과 신비가 살아 숨쉬는 더 벨룸 세상의 애스톨은 이런 기이한 존재들이 익숙한 듯했다.


“애스톨, 주군에게 말조심하도록 해라. 지금이야 격의 없이 지내지만 주군 아래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분명 그걸 불측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야.”


반다르가 애스톨에게 엄숙하게 주의를 줬다.


동훈이 말을 편하게 하고 주군이라는 호칭을 자제하라고 했다지만 그것도 세력이 없을 때에나 일이었다.

반다르는 동훈이 벌인 오늘의 위용까지 겪고 나니 동훈에 대한 경의가 깊어진 듯했다.


반다르가 동훈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왕의 재목으로 여기는 반다르의 태도는 군인이었을 적의 엄격함을 점점 되살리는 듯했다.


애스톨은 툴툴거렸지만 그 말에 반대하진 않았다. 반다르가 과거로 점점 돌아가는 듯 느껴진달까.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초야에 묻힌 노년의 사냥꾼이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동부에서 보았던 대장의 모습을 얼핏 보는 것 같았다.


뒤에 있는 종자 둘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동훈을 못내 경외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고양이는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며 자랑스러워했는데 누가 보면 태양수호자를 자기가 소환한 줄 알겠다.

동훈이 나중에 묻자 그녀는 ‘하인이 칭찬을 받으면 그 주인 역시 자랑스러운 법이다’라며 동훈을 하인 취급했다.


고양이와 실랑이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대꾸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서로 의견이 맞을 때까지 서로를 이용하면 그만이지.


이렇게 북문 돌파로 위험이 다 사라진 것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지만,


위험이 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찾아가야 했다.


동훈은 갈림길이 나오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이곳의 보스 아니, 지옥체를 죽이려 합니다.”


동훈이 폴트란에서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폴트란 주둔 기사단이 지옥체를 토벌할까?


이건 기사단의 본질적인 목적이 지옥체 토벌로 전리품을 얻는 일에 있는지, 영토를 지키는 일에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도 좋았다. 동훈이라면, 기사들에게 보물을 얻어오라고 할까, 땅을 지키라고 할까?


동훈이라면 기사단의 목적을 영토 수비에 둘 것이다.


이건 도의적인 문제를 떠나 그 가치가 무엇이 더 큰지를 따져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게임에서 공성이 중요한지,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게 중요한지를 생각해보라.


당연히 공성전 하러 가지 그 시간에 보스를 잡으러 가는 혈은 없었다. 폴트란 수비가 성에 비할 바는 안 될지 몰라도 보스몹은 충분히 상회하는 가치일 것이다.


동훈의 추측에 따르면 폴트란에 주둔하는 반왕의 기사단은 폴트란을 지키러 올 것이다. 지옥체를 토벌하는 일보다.


더해서, 보스 몬스터를 꺾는 일은 동훈에게 있어 메인 퀘스트이자 폴트란 소녀와의 약속이었다. 퀘스트를 깨야 또 퀘스트로 고통받는 소녀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테니.


“지옥체를? 폴트란의 지옥체를 말하는 건가? 중앙지대에 있는 지옥체가 아니라?”


지옥체에도 체급이 있으니 약한 지옥체는 2단계의 전사들이 모여 잡기도 하며 강력한 지옥체는 5~6단계의 전사들이 무리 지어 토벌해야 했다.


지옥체에 관한 정보는 왕들의 비밀이지만 그래도 지옥체에 대한 대학들의 연구가 활발한 만큼 몇몇 지옥체는 그 정보가 퍼져 있는 편이었다.


폴트란에 있는 지옥체는 반다르가 기억하기에 그리 강하지 않은 놈이었다.


원수인 반왕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 때 그의 영토에 대한 정보도 긁어모았었지.


폴트란에 파견하는 기사의 책임자는 3단계 수준.


3단계의 경지가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도무지 닿을 수 없는 경지인 것은 아니었다. 반다르 역시 2단계의 경지를 밟았고 애스톨도 비슷한 수준이지 않은가.

모르긴 몰라도 디오르는 3단계 혹은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 있는지도 몰랐다.


“예. 이곳의 지옥체를요.”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지옥체를 잡는 일은 지옥체 하나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 땅에 있을 왕의 기사들. 지옥체 토벌을 도맡아 하는 그들도 적이었다.


폴트란에서 거하게 문제를 일으켰으니 반왕의 기사와 대립하는 건 무서울 게 없었지만 그들을 상대하고 지옥체까지 상대해야 하는 일은 얼핏 생각해봐도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러나 주공은 디오르였다. 반다르는 판단한 바를 보고할 뿐 그 판단을 움직여서는 안 됐다.


“폴트란에는 분명 지옥체를 토벌할 반왕의 기사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이끄는 이는 3단계의 경지에 이른 기사일 거야. 지옥체를 잡는 일은 그를 먼저 해치워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폴트란에서 누군가와 한 약속이 있습니다. 왕이 되고자 함은 애초에 대의를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죠. 이제야 제가 고백하는 바지만 전 손이 조금 큽니다. 제 손 닿는 사람까지는 제 사람이라고 말하고픈 욕심도 있고요. 절 도와주시겠습니까?”


고양이 니아 아가씨는 관심 없는 척 기지개를 켰지만 동훈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가 동훈에게 기대를 걸고 그를 따라온 이유는 바로 소녀와의 순수한 약속을 들었던 것도 있지 않았나.


이런 동훈의 태도는 니아 아가씨를 기껍게 했다. 물론 동훈이 그러라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반다르와 애스톨은 잠시 고민했다.


북문을 뚫는 데에 얼마나 많은 체력을 소모했나.


사실상 동훈의 소환수가 많은 일을 했기에 반다르와 애스톨을 비롯한 일행의 체력은 여력이 있었다.

게다가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황금의 기사들은 손실이 전혀 없었다. 피가 튀고 여기저기 흠집이 가기도 했지만 전력의 손실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들이 지쳐 보이지도 않고.


왕의 기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반다르는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할 것이고 애스톨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호방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훈의 지옥체 토벌 제안은 둘이 생각하는 왕의 기질과 부합했다.


“주군의 뜻이 바로 제 뜻입니다.”


그들로서는 동훈의 뜻을 꺾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적이 될 거라면 반왕의 세력은 최대한 깎아놓는 게 좋을 테니.


***


동훈 일행은 다급히 달려오는 폴트란 주둔 기사단과 마주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왔음을 알아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우르르 몰려오니 마치 아침이 밝는 기분까지 받을 정도였다. 야밤에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기는커녕 과시하는 존재들.


반왕의 기사단은 이 땅의 지배자들이었다.


기사단 측에서도 동훈 일행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이쪽에서 저들의 횃불 불빛을 발견했다면 태양수호자들이 발하는 빛을 그들도 발견한 것이다.


“붉은 기수, 타오르는 갈기 위세프 경이시다!”


앞으로 나온 부관으로 보이는 건장한 기사가 목소리를 높였고 그의 옆으로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등장했다. 횃불의 불빛이 남자의 적발에 부딪혀 그의 뒷통수에서 빛이 나오는 듯한 연출을 줬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으며 오만하게 동훈 일행을 내려다보는 위세프.


그의 기세에 종자들은 숨이 막히는지 연신 뒤로 물러났고 반다르와 애스톨 역시 긴장되는지 군침을 삼켰다.

말을 도시에 팔고 와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말들이 발광하는 것을 진정시켜야 했을 수준의 기세였으니.


기세로만 느껴봐도 30레벨이 넘는 듯했다.


“너희가, 왕의 영토에서 기사를 공격한 죄인들이냐? 알망은 너희를 경시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다. 다들 목을 빼고 왕의 처벌을 기다려라.”


동훈의 눈에만 보이는 그의 닉네임.


[/게으른/붉바리] lv.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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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변질 23.02.11 180 2 19쪽
91 보스몬스터 +2 23.01.31 199 4 17쪽
90 매크로 +1 23.01.29 189 5 13쪽
89 위세프의 영성 강림 23.01.28 195 2 13쪽
88 아뜨리 카포(2) 23.01.27 212 4 16쪽
87 아뜨리 카포 +1 23.01.25 190 4 13쪽
86 붉바리(2) 23.01.22 197 3 19쪽
» 붉바리 23.01.21 216 3 21쪽
84 폴트란 북문 전투 23.01.18 193 4 13쪽
83 북문으로(2) 23.01.15 207 4 17쪽
82 북문으로 23.01.14 216 4 20쪽
81 기별 없이 온 손님 23.01.13 205 4 19쪽
80 이웃 23.01.10 24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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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움직이는 세계 22.12.31 249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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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신을 위한 코드 22.12.25 276 7 16쪽
70 초능력과 친구 22.12.24 279 6 15쪽
69 디올 +1 22.12.21 277 7 13쪽
68 정치와 고립 22.12.18 307 8 16쪽
67 보스 스킬 22.12.17 291 11 16쪽
66 결투 재판(3) 22.12.14 294 7 21쪽
65 결투 재판(2) 22.12.12 283 9 16쪽
64 결투 재판 22.12.10 298 9 20쪽
63 반왕의 붉은 기수 22.12.07 309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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