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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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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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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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컷!

DUMMY

사실 더 벨룸에서 보스 패턴이니 그런 것들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렇잖은가. 더 벨룸 자체가 스펙 게임인지라 컨트롤 부분이 부각되는 면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보스를 잡을 때도 보통 스펙으로 밀지 보스 패턴을 숙지해서 언제 피하고 언제 딜 타임, 이런 식이 아니라 공격하는 걸 슬금슬금 피해가면서 딜을 꽂을 수 있을 만큼 꽂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몸으로 때워야 했다.


애초에 게임사에서 의도했다는 거지.


약해도 컨트롤로 잡을 수 있는 보스몹이 아니라 스펙되는 놈들만 잡아라, 이걸.


그렇다고 해서 보스 패턴이 아주 의미 없는 건 아닌 게 보스 패턴은 숙지하고 있으면 훨씬 보스 소탕이 쉬웠다.

미리 움직여야 할 방향을 아니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모르는 것보다야 아는 게 낫다.


패턴 숙지는 그런 정도의 수준인지라 자칭타칭 더 벨룸 고인물인 동훈의 지식들이 더 벨룸에서는 한없이 빛을 보지 못했던 거고.


그래도 동훈이 패턴을 다시금 되새기는 건 게임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게임에서는 몇 번이나 잡은 보스였지만 현실에서는 처음이지 않은가.


첫 번째 페이즈, 유령 군세 소환. 이건 피가 3분의 1 이상 까이면 시전한다.

두 번째 페이즈, 광폭화. 이건 피가 3분의 1 이하로 남았을 때 시작되는 마지막 발악 패턴이었다.


마법 데미지 저항이 달린 뮨을 켰지만 그로스만 같은 레이드 보스급은 기본적으로 저항을 일정량 무시하는 공격을 날렸다. 따라서 레이드 보스가 주는 데미지 자체를 버텨낼 체력이 있거나 저항 무시를 무시할 만한 충분한 저항을 갖추고 있는 게 중요했다.


‘무시에 무시에 무시. 모 게임의 강퇴 반사와 슈퍼 방장도 아니고 뭔 무시가 많냐지만 그게 게임의 룰인 걸 어떡해.’


하여튼 동훈은 각종 저항을 펌핑해줄 영웅 등급의 뮨 스킬을 믿고 자신의 저항력을 믿었다. 숫자는 충분했다. 남은 건 실전이었다.


동훈은 남은 태양수호자들을 조종해 그로스만의 공격 범위 밖으로 가게 했다.

지금은 반왕의 기사들이 대신 잡아먹히고 있지만 동훈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태양수호자들을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공격 개시 시간은 태양수호자들이 전열을 정비하는 순간.


반다르와 애스톨은 원거리에서 지원하기 위해 뒤로 빠졌고 동훈은 태양수호자들보다 앞에서 어그로를 끌 준비를 했다.


어그로 컨트롤,


보스몹의 공격 방향과 바라보는 쪽을 결정짓기 위해 동훈은 최대의 딜을 넣어 놈의 관심을 자신에게 끌어올 생각이었다.


‘보통은 딜이 가장 쎈 핵과금러 형님들이 맡는 포지션. 나도 할 수 있다. 장비도 충분하고 스텟도 모자라지 않아. 폴트란의 보스몬스터 정도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


“공격! 최대한 딜링합니다!”


동훈의 게임스러운 오더는 반다르와 애스톨에게까지 가닿지 않았다.

딜링이니 뭐니 하는 동훈의 용어가 본능적으로 나왔지만 싸우기 전에 방언을 터뜨리는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다만 어조를 읽고 맹렬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퓽! 퓽!


타닷!


동훈이 돌진하고 이제 막 반왕의 기사를 잡아먹고 투구를 껍질 뱉듯 뱉어내던 그로스만이 귀찮다는 듯 반응한다.


그아아아아


괴괴괴괴!


그로스만은 피로 흥건한 낫 모양의 부속지를 매섭게 휘둘렀다.


부웅!


가히 총알의 속도로 날아오는 그로스만의 공격을 동훈은 프레임 단위로 나눠보고 있었다. 게임 모드로 들어간 동훈에게 그로스만의 빠르고 강력한 공격은 느리게만 보였다.


카앙!


동훈이 아무리 느리게 보았던 공격이라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우스운 게 아니었다. 과연 동훈의 신블레이드와 부속지가 부딪히자 제철소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나며 동훈이 주욱 뒤로 밀려났다.


땅에 깊은 고랑을 남기며 동훈은 밀려났다.


키아아아아아아!


그로스만 역시 피해를 입었다.


동훈이 칼에 두르고 있던 디바인 스트라이크의 흰 빛은 그로스만에게 큰 흠집을 남겼으며 그 안으로 동훈의 화염이 독처럼 침투했다. 동훈의 기본 공격에 묻어나오는 화염늑대의 영성에서 비롯된 화염이었다.


그로스만의 어그로는 동훈에게 집중되었다.


반다르와 애스톨이 열심히 활을 쏘고 반왕의 기사들이 죽음의 저항을 함에도 그 모든 피해를 합한 것보다 동훈이 단 한 수에 입힌 피해량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키레레레아아악!


괴괴괴괴!


그로스만이 입틀을 활짝 벌리며 끔찍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로스만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동훈은 그로스만의 입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정도였다.


‘사람을 먹어서 그런가, 냄새가 고약하군.’


동훈은 가벼운 감상까지 남기며 다시 날아오는 낫과 닮은 부속지의 공격을 피했다. 움직임을 최소화한 회피로 동훈의 다음 공격을 더욱 빠르게 해줬다.


스칵! 콱!


동훈의 칼이 부속지 하나를 끊어버릴 힘을 담고 내리쳐졌고 부속지 하나는 완전히 동강이 났으며 칼은 멈추지 않고 몸통 일부분에까지 파고 들어갔다.


놈의 비명은 현실에서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괴한 이중주로 들렸다.

마치 컴퓨터로 만진 것처럼 들리는 두 가지의 음률의 괴성은 정말로 이 괴물이 지옥에서 올라온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기괴했다.


몸통에 박힌 칼은 바이스에 끼워진 것처럼 단단히 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로스만은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동훈을 죽이려는 듯 동훈의 칼을 몸통으로 꽉 잡고 온몸의 부속지를 동훈에게 내질렀다. 어느 것을 무기로 삼고 어느 정도로 휘두를지 재지도 않은 막무가내식 공격이었다.


문제는 그 공격이 그로스만의 질량과 악의 어린 기운에 힘입어 꽤 효과적이었다는 점이다.


동훈은 그로스만의 몸통에 박힌 신블레이드를 애써 힘줘 뽑으려 하지 않았다.


“디바인 스트라이크!”


MP를 더욱 소모해서 칼에 흐르는 흰 빛을 강화시킨 뒤 강력해진 절삭력과 힘으로 그로스만의 몸통을 그대로 갈아버렸다. 그로스만의 몸을 크게 휘젓고 그 거대하고 흉측한 몸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혔다.


그로스만은 형언할 수 없는 괴성을 비명처럼 내질렀다.

지금껏 반사적으로 내질렀던 괴성과는 다른, 감정이 섞인 괴성이었다. 지옥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듯한 이중주의 괴성에는 고통과 비명, 분노와 서글픔이 담겨있었다.


물론 동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괴물이 가진 감정 따위 알 바도 아니었다.


동훈은 묵묵히 그로스만의 몸통을 갈고 몸부림처럼 다가오는 부속지들을 썰 뿐이었다.


동훈의 기계적인 움직임에 그로스만의 거대한 몸집도 점점 깎여나갔다. 석공이 거대한 바위를 깎듯 동훈은 그로스만의 반사적인 반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공격을 이어나갔다.


콰곽! 칵! 캉! 푸칵!


그로스만을 깎아내는 건 힘이 조금 들었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훈은 그로스만의 HP를 신중하게 가늠하며 노동을 계속했다.


그로스만을 몰아붙이는 동훈을 보며 어린 사령술사는 생각했다.


아뜨리 카포가 말하는 진정한 왕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어린 사령술사는 본디 아뜨리 카포의 실험체로 키워졌다. 지옥체를 일깨울 특별한 마력을 지닌 실험체로.

그는 지옥체가 세상을 구원할 구원의 존재라고 세뇌당했으며 그를 돕는 아뜨리 카포라는 조직은 어버이처럼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그는 실험체로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아뜨리 카포의 일원이 되었다.

충실한 아뜨리 카포의 실험체였던 어린 사령술사는 사령술사 제라도의 제자가 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에 나온 어린 사령술사는 아뜨리 카포가 가르쳐준 많은 것들이 세상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거짓말임을 알았다.


이를테면 악에 차있다는 세상은 생각보다 평화로웠고 완전히 파괴해야 할 대륙은 눈에 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 많았다.


이곳 폴트란만 해도 그랬다.


변방의 안개 낀 도시는 비록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숨어지냈음에도 도시의 활기, 맥동하는 생명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아뜨리 카포의 지속된 세뇌와 강요된 교육으로 인해 둔감해졌데도 그것을 관통해 어린 사령술사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수준이었다.


어린 사령술사는 아직도 뭐가 옳은 건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확신하는 것이 있다면, 조직의 계획을 망친 저 남자가 살아서 명성을 쌓아올리는 한 조직은 결단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확신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


***


-딜 중지!


한참 활을 쏘던 반다르와 애스톨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동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활을 거뒀다.


귀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에 그대로 때려붓는 듯한 목소리였다. 반다르와 애스톨은 이게 환청은 아닌지, 저 괴물이 된 지옥체가 부리는 사술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그건 동훈이 한 말이 맞았다.


채렙이 왜 채렙인가.


그건 바로 채팅이 가능한 레벨이 20레벨이기 때문이었다.


동훈이 20레벨을 찍고 채렙에 도달한 순간부터 생겼던 기능이 있었다. 그게 바로 채팅이었다.


더 벨룸에서는 아주 저렙일 때는 채팅조차 할 수 없었다. 뭐, 시간이 지나며 20레벨은 아주 손쉽게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이 되었지만 그러기 이전까지만 해도 많은 유저들이 채팅을 하기 위해 레벨을 올려야 했다.


채팅 한 마디를 치기 위해 20레벨까지 키우는 과정은 게임 서비스 초반에는 지난한 일이었다.


20레벨을 찍기 위해서는 튜토리얼 정도는 마쳐야 했고, 당시 게임 플레이타임으로 따지면 수 시간은 걸리는 일이었으니까.


이 같은 과정에서 사람들이 더 벨룸은 돈 없고 레벨 없으면 인권도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바로 레벨이 되지 않으면 채팅조차 칠 수 없는 시스템 때문에.


아무튼 알 게 뭔가. 지금 동훈이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동훈은 혈맹 채팅으로 반다르와 애스톨에게 지시를 내렸고, 채팅 시스템은 그들에게 뇌리로 전해지는 메시지를 한 번 더 전달했다.


-페이즈 조절 들어갑니다! 제가 말할 때까지 활 쏘지 마세요!


동훈은 자각할 수 없었지만 이 채팅 시스템은 반다르에게 상상 이상의 충격을 줬다.


전장의 소음과 소란스러운 명령체계는 아마 세상 모든 지휘관의 골칫거리일 터였다. 그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여겨졌고 일부는 그것을 변하지 않는 공리로 생각하기도 했다.

전장에서 날붙이가 부딪히는 시끄러운 소리와 사람이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 흥분으로 점철된 고함과 공성용 골렘의 굉음은 지휘를 무의미하게 만들곤 했으니.


하지만 지휘를 머릿속으로 한다면? 소음에 구애받지 않고 병사 개개인에게 명령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다면?


20레벨에 등장한 채팅은 바로 그런 명령체계의 한계를 송두리째 바꿀 치트급의 명령체계였다.


콰과곽!


한편 반다르와 애스톨이 딜을 중지한 사이,


페이즈를 넘기는 체력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놓고 동훈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격을 쏟아부었다.

단 한 순간에 쏟아지는 동훈의 참격은 연격임과 동시에 일격이었다. 여러 순간이 한 순간으로 이어지는 경이로운 순간.


동훈의 칼솜씨는 날이 갈수록 정교해졌다.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로스만의 HP가 퍼센트 단위로 날아가 버렸다.


다음 페이즈에 접어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피가 마지막 페이즈 근처까지 떨어진 것이다.


실제 게임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공격이었다. 게임에서는 딜이 강한 스킬을 아껴두다가 다음 페이즈에 접어들기 전 폭딜을 쏟아넣는 건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여러 스킬과 공격을 한 번에 쏟아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스킬의 시전 시간, 선딜과 후딜 등 한 번에 딜을 쏟는 걸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런 식의 폭딜도 가능했다.


그로스만은 계속해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주변에 있는 반왕의 기사들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숨이 간당간당한 것이 그들을 구하기란 요원해 보였다.


동훈은 그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다. 반다르와 애스톨, 인질인 종자들, 사냥개와 니아 아가씨가 멀쩡한지나 살폈다.


반다르와 애스톨은 그로스만의 비명 공격 범위 밖에서 활을 쏘고 있었고 사냥개와 니아 아가씨는 다 죽은 좀비나 물어뜯으며 딜량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칼을 들고 갈팡질팡하는 종자 리옹과 엔솔.

동물들이 움직이지도 않는 시체에다 대고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귀엽긴 했다. 털뭉치들이 뭐라도 하려는 모습이.

물론 게임이었다면 보스전에서 저런 짓 하는 파티원을 참지 못했겠지만.


“놈이 죽어간다!”


동훈의 과격한 폭딜은 그로스만의 상태를 확실히 악화시켰다. 맨눈으로 보기에도 큰 상처를 입은 그로스만은 빈사 상태에 빠졌는지 거체를 휘청거렸다.


동훈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로스만의 마지막 페이즈이자 가장 위험한 순간.


3페이즈 광폭화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애스톨! 접근하면 안 됩니다! 아직 죽은 게 아니에요!”


애스톨의 접근을 육성으로 막은 동훈은 태양수호자들을 움직여 그로스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가가각!


크리야아아아악!


괴괴괴괴괴!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그로스만은 겁먹은 듯 잔뜩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펼치며 근방을 갈아버렸다. 잔뜩 웅크렸던 것이 지금의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비축한 것처럼.


말 그대로 주변 지면은 분쇄기에 갈린 것처럼 갈갈 갈렸다.


그에 휩쓸린 태양수호자들은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3페이즈, 광폭화의 시작이었다.


온몸이 붉게 달아오른 그로스만. 놈의 돌기와 가시는 더 흉악하게 도드라졌으며 입틀은 더 찢어지고 상처에서는 산성의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몸집은 그대로였지만 뿜어내는 기세는 마치 생명을 태워올리듯 더욱 충천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로스만은 생명을 태우며 강력한 힘을 휘둘렀다. 잃어버린 HP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동훈이 아껴뒀던 태양수호자들을 돌격시켜 어그로를 끈 것은 바로 저 광폭화 상태의 첫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광폭화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시전되는 주변 전체 공격은 동훈이 직격 당해도 HP가 쭉 빠질 수준의 공격이었으니까.


“다시 공격해요! 적의 가장 위협적인 공격은 빠졌습니다! 그래도 공격 범위가 생각보다 길어요! 다들 거리 유지하면서 공격하세요!”


동훈의 요구는 어디 산책이라도 가자는 말투였다. 그의 차분한 지휘에 반다르와 애스톨은 지금 위협적인 괴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동훈으로서는 원래 보스몬스터를 레이드하듯 지휘한 거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그로스만의 패시브를 충분히 완화시킨 셈이 되었다.


동훈의 공격과 반다르와 애스톨의 보조로 그로스만은 분노로 미쳐 날뜀에도 천천히 죽어갔다. 그물에 걸린 맹수처럼 그로스만은 열심히 낫을 휘두르고 몸을 부딪혔지만 동훈은 얄밉게 피할 뿐이었다.


콰광! 콰광!


동훈의 디바인 스트라이크를 머금은 신블레이드는 부정한 괴물을 향해 떨어지는 천벌처럼 내리꽂혔다.


크략카랴라락!


케에엑! 케에엑!


그로스만이 괴성을 터뜨리고 주변의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로스만의 기괴한 괴성은 주문이 되어 하계의 입구를 끌어 올렸다. 하계, 명계의 힘으로 영령을 망령으로 바꿔 시전자에게 복속되게 만드는 지옥의 주문이었다.


2페이즈, 본래 유령 군세를 소환하는 모션이었다.


동훈은 조금 긴장했다.


원래라면 저 피로 다시 2페이즈에 돌입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긴 게임이 아닌 현실이지 않은가.

일말의 혹시나 때문에 동훈은 긴장으로 몸을 당겼다.


털퍼덕!


동훈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듯 그로스만은 단말마를 내뱉고 쓰러졌다. 3미터가 넘는, 거의 4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려앉았다.


쿠궁!


거체가 땅바닥으로 무너지자 골짜기 전체가 진동하는 듯했다.


슬리젠 골짜기의 지배자, 안개와 망령을 먹어치우는 지옥체 그로스만의 최후는 이렇듯 쓸쓸했다.

썩은 피의 냄새, 그가 토해놓은 산성의 잔해물, 안개처럼 부옇게 뜬 흙먼지와 싸늘하게 식은 그로스만의 시체만이 골짜기를 비명으로 울렸던 괴생명체가 존재했었음을 거증했다.


반다르와 애스톨은 긴장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겠네. 지옥체 토벌이 원래 이렇게 힘든 겁니까? 동부에서 우리 부대가 지옥체 토벌 부대가 아니라 다행이었네요.”

“보통의 지옥체 토벌보다, 더럽군. 준비 없는 지옥체 토벌이 성공으로 끝난 것만으로도 신께서 굽어보신 게지.”

“전 디오르 씨를 믿었어요. 어떻게든 우리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죠. 대장은 항상 너무 비관적이에요.”

“최악을 가정하는 게 결국 목숨을 살린다. 넌 언제고 낙관적인 판단으로 큰 낭패를 볼 거야.”


반다르와 애스톨은 차마 일어나서 말다툼하진 못하고 누워서 서로 입씨름만 했다.


그대로 널브러져 지친 몸을 쉬는 반다르와 애스톨을 눈짓으로 격려한 동훈은 마찬가지로 잔뜩 지쳐 쉬고 있는 종자 둘, 사냥개와 니아 아가씨를 확인했다.

저 넷은 뭘 했다고 잔뜩 지쳤대. 아까까지만 해도 이미 죽은 기사나 좀비를 쑤시던 걸 보았는데.


동훈은 넷이 등을 맞대고 옹기종기 쉬고 있는 모습에 웃어버렸다.


정말로 끝난 느낌이 든달까.


동훈은 그로스만에게서 나온 아이템과 경험치를 수습했다.


더 벨룸에서는 딜량 1위에게 모든 것이 돌아간다. 아이템, 많은 경험치, 보스몬스터 리젠 타임까지. 승자가 모든 것을 손에 쥐는 승자 독식의 세계. 동훈은 이게 익숙했다.


‘보스몹 보상은 별것도 아닌 게 양이 많아서 한 번에 쫙 확인을 해봐야 한단 말이지.’


보스몬스터를 잡자 숨겨졌던 길이 드러났다. 보스몬스터를 잡으면 갈 수 있는 길. 나무와 절벽으로 가려져 있던 오솔길은 왜 발견하지 못했냐는 듯 드러나 있었다.

동훈은 저 오솔길을 보스몬스터를 잡기 전에는 아무리 뒤져도 절대 찾지 못 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임에서는 일종의 포탈로 등장했던 길이었으니까.


저 길만 지나면 그렇게 고대하던 중앙지대였다.


오솔길 사이로 중앙지대가 그 속살을 드러냈다.


중앙지대,


진정한 전쟁의 땅.


안개가 짙은 슬리젠 골짜기를 지나면 안개는 눈 녹듯이 사라진다. 멀리서 새벽 어스름이 밝아왔다.남부 평야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광활한 지평선과 멀리 대륙 중앙에 공중 섬처럼 떠 있는 ‘태초의 땅’까지.


“튜토리얼의 끝. 지독한 전쟁의 시작인가.”


도착이자 시작, 무수한 왕들의 각축장.


더 벨룸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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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변질 23.02.11 181 2 19쪽
91 보스몬스터 +2 23.01.31 199 4 17쪽
90 매크로 +1 23.01.29 189 5 13쪽
89 위세프의 영성 강림 23.01.28 197 2 13쪽
88 아뜨리 카포(2) 23.01.27 212 4 16쪽
87 아뜨리 카포 +1 23.01.25 191 4 13쪽
86 붉바리(2) 23.01.22 198 3 19쪽
85 붉바리 23.01.21 217 3 21쪽
84 폴트란 북문 전투 23.01.18 193 4 13쪽
83 북문으로(2) 23.01.15 207 4 17쪽
82 북문으로 23.01.14 216 4 20쪽
81 기별 없이 온 손님 23.01.13 205 4 19쪽
80 이웃 23.01.10 244 5 12쪽
79 잔비어 요새 대회의 23.01.08 216 5 13쪽
78 충성 맹세 23.01.07 228 5 15쪽
77 복수자들 23.01.05 271 8 16쪽
76 마성의 남자 23.01.03 236 9 18쪽
75 니아 아가씨 23.01.01 256 7 21쪽
74 움직이는 세계 22.12.31 251 8 15쪽
73 안개 도시 폴트란 22.12.29 255 8 14쪽
72 당신의 가격은 22.12.27 269 9 18쪽
71 신을 위한 코드 22.12.25 276 7 16쪽
70 초능력과 친구 22.12.24 280 6 15쪽
69 디올 +1 22.12.21 277 7 13쪽
68 정치와 고립 22.12.18 309 8 16쪽
67 보스 스킬 22.12.17 292 11 16쪽
66 결투 재판(3) 22.12.14 294 7 21쪽
65 결투 재판(2) 22.12.12 283 9 16쪽
64 결투 재판 22.12.10 298 9 20쪽
63 반왕의 붉은 기수 22.12.07 309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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