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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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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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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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빌런

DUMMY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인생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혹은 생각하는 대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뒤에서 방해를 하는 것처럼. 성공 직전에 실패한다던가, 아니면 성공을 하더라도 정말 힘겹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겨우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게 된다.

어쩌면,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쉽게 얻은 결과물은 쉽게 머릿속에서 잊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전혀 원했던, 아니, 단 한 번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술집에서, 그것도 여장인 상태로 일을 해야 하다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상황인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이렇게 앉아있는 걸까.


“어이! 신입! 웃어! 웃으라고!”


바 테이블 앞의 그녀, 유연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나오지도 않는 미소를 어떻게 만들라는 거야. 특히나 난, 원더랜드를 구하기 위해, 감정을 죽이면서 살아왔는데.


“그런 얼굴로 앉아있으면, 오던 손님도 다 도망가겠다!”


그녀가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내 표정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난 그냥 앉아있을 뿐이다. 술집 계산대 앞에 마련한 높고 좁은 의자에 앉아서.


“아니! 좀 웃으,”

“놔둬. 저 모습도 나름 진귀하니까. 얼음공주, 아니, 얼음미소년이라니. 이 정도면 사람이 모이고도 남겠어!”


바 테이블 쪽에서 충직과 유연이 뭐라고 지껄이는 게 들리긴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내 관심은 오직 하나, 기억을 되찾는 것. 물론 원더랜드를 구하는 게 최우선 목표이긴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게 절대로 쉽지 않았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원더랜드의 위치와 그때의 기억이. 원더랜드를 구해야 한다는 기억와 무협랜드에서의 기억들이 일부 돌아왔지만, 제일 중요한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원더랜드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건, 뭐 그렇다고 쳐도, 돌아가야 할 위치를 모르는데 어떻게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18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보내야만 했는데, 내 기억 때문에 발목이 잡힐 줄이야. 다른 것도 아닌 나 자신이 원인이라니.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도, 18살 짜리를 저기에 앉혀 놓는 게 좀 그런데요.”

“괜찮아. 쟤는 저기서 아무것도 안 할 거니까. 쟤는 그냥 마스코트야. 우리 중성시대의 마스코트라고.”

“마스코트? 그거 좋은데요!”


내가 이렇게도 심각한데, 술집의 두 악당은 실실 쪼개며 작당모의를 하고 앉아있다. 참 속 편한 사람들이네. 하긴, 저 사람들은 지킬 게 없지. 아니, 완전히 잃었다고 해야 하나.


“저기... 이름이 뭐예요?”


내가 충직과 유연에게 시선을 돌린 바로 그때였다. 계산서를 가지고 내 앞으로 다가온 두 여성. 그녀들은 신기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짙은 인상을 풍기는 두 여자.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같이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름은 없어요.”

“이름이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말해 줘요.”

“이름도 얼굴처럼 예쁠 것 같다, 그치?”


두 여자는 계산에는 관심을 주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니, 게이바에 여자들이 헌팅하러 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게 지금 무슨 짓일까.


“저기요! 걔 남자예요!”


점점 인상이 굳어지려던 바로 그때, 유연이 내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나, 남자예요?!!”

“여자 아니었어요?!!”


화들짝 놀라 나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지는 두 여자. 이내 그들의 시선에는 경멸감이 가득 차올랐다.


“아니, 남자인 주제에 날 꼬시려고 했던 거야?”

“어머어머, 주제를 알아야지!”


어이가 없다. 누가 누굴 꼬셔? 내 앞까지 와서 이름을 물어본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일 텐데.


“빨리 계산이나 해주세요.”


그녀 중 한 명이 카드를 내밀었다. 도대체 무협랜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니, 카드라니!

신분증이 있는 것도 놀라운데, 카드라니!!

광선검이 있는 것도 놀라운데, 카드라니!!!


“빨리 계산이요! 짜증나게.”

“미친 손도 개 느리네.”


눈앞의 벌레들이 나에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런 게 갑질이라는 건가? 세상 쓴맛도 못 본 쓰레기들이 벌써부터 이런 개념 없는 짓을 벌이다니. 이건 사회의 어른으로서 두고 볼 순 없다.


“빨리 계산이나 하라니까!”

“계산?”


난 그녀가 내민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작은, 정말 작은 힘을 카드의 끝에 모았다. 그러자,


[파스스스...]


손끝에서 점차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카드.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내 손에 있던 카드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손님, 카드가 부서졌는데요. 이거 가짜 아닌가요?”

“이, 이럴 리 없는데!”

“빨리 계산하셔야죠.”


이번엔 다른 여자가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파스스스...]


다른 카드를 내민다고 해서, 그녀들에게 다가올 결과가 바뀌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완전히 가루가 돼서 땅으로 떨어지는 카드의 잔해들. 두 여자의 눈동자에 당혹감과 공포가 빠르게 차올랐다.


“두 분, 계산 안 하세요?”

“혀, 현금으로 할게요.”


두 여자는 머리를 맞대더니 어찌저찌 지갑 속 돈을 끌어모아 나에게 내밀었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화르르르]


그럴 리 없다. 내 손에 올려지자마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지폐들. 행패를 부리려 했던 그녀들은 오히려 겁을 집어먹은 채,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손님들 계산해야죠?”


내 친절한 미소 앞에, 서서히 흔들리는 그녀들의 눈동자. 난 그런 그녀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런 강력한 무공을 펼치는 사람은 네오 무협랜드가 설립된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거대한 원탁 앞에 앉아있던 군복차림의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 작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점점 시간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두웠던 창밖에 여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계신 겁니까.”


그런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 붉은색 정장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정체는 바로 현과장. 네오 무협랜드의 통치자이자, 최강의 무인이다.


“각하 나오셨습니까.”


군복차림의 남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과장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그러자, 너스레를 떨며 방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현과장.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각하는 무슨 각하입니까. 저는 그냥 필부(匹夫)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각하께서 나눠주신 지식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각하께서야 말로 최고의 통치자이십니다!”

[짝짝짝!]


군인들은 현과장을 향해 아부의 박수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현과장은 그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라를 지키라고 앉혀 놓았더니, 이렇게 아부나 떨고 있다니. 그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을 믿고 나라를 통치해도 괜찮을 것인가. 조금씩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앉아 회의를 이어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는 눈앞의 사람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애써 숨겼다. 눈앞의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밝힐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는 여전히 미소를 이어간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이들의 정신상태를 고쳐놓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래, 무슨 일로 아침까지 여기에 계셨습니까?”

“새로 나타난 빌런 때문에 이렇게 앉아있었습니다.”

“빌런이요?”


이미 빌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현과장이지만, 그는 시치미를 떼며 원탁 앞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순식간에 전기를 내뿜는 자입니다.”

“광검도 소용없는 놈이었습니다.”

“붉은색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과장은 담담하게 군인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이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군인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요점은, 새로 나타난 빌런이 자신들의 능력을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아미파, 무당파에 이어 곤륜파까지 합세했는데 못 막았다니. 그럼, 칠 장군. 공동파는 어떨 거 같습니까? 힘들 것 같나요?”

“맞붙어 보진 않았지만, 그럴 거 같습니다.”


현과장의 곁에 앉아있던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년의 장군. 그는 18년 전, 현과장에게 패배한 공동파의 장문, 칠승진이었다.


“칠 장군님. 그럼 3개 중경 수비대와 3개 군대가 합동으로 대응하는 건 어떻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군과 경이 요즘 좀 소원한 상태인지라.”


승진의 말에, 군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군인들의 얼굴에 탐탁지 않은 듯한 감정이 드러났다.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습니까?”

“아미와 무당, 그리고 곤륜은 전 황제를 지지한 문파입니다. 비록 규모가 작아졌다고 하긴 하지만, 사실, 그런 이들이 중경의 치안을 담당한다는 게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승진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단지 단호할 뿐만 아니라, 앙금이 아니라 원망이 가득한 것만 같은 그의 목소리. 그의 말에, 앉아있는 군인들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은 경찰보다는 군대가 대응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게...”

“왜? 자신이 없으십니까?”


현과장은 승진을 비롯한 군인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마치 패잔병과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군인들. 싸워보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패배를 경험한 것 같았다.


“그럼 제가 모든 군대를 지휘하고 통솔하겠습니다. 자신이 없으시면 자리에서 내려가세요.”


그들이 정치가 같은 모습을 보였을 때도 가만히 넘어갔던 현과장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군인이 군인의 의무를 저버리려고 하다니. 그는 도저히 이런 상황은 용납할 수 없었다.

청천벽력같은 통보에, 군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 자리를 지키고 싶긴 하지만, 빌런을 잡을 자신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만을 보았다. 현과장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알려진 건, 빌런이 엄청난 무공을 보였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공을 펼치자마자 도망을 쳤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의 무공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요?”


현과장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군인들이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단번에 지워버리는 그의 언변. 원탁의 모두가 그의 말솜씨에 꼴딱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럼, 공동사단에서 우선 정예 10명을 차출하겠습니다. 빌런의 실력을 확인할 겸.”


제일 먼저 현과장의 말에 동조한 사람은, 역시나 승진이었다. 현과장을 향한 무한한 믿음을 보이는 승진. 그의 말을 끝으로 이날의 회의는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완연한 햇님. 현과장은 모두가 떠난 회의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절대 오리지널일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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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373. 그들의 현실 - 4 24.02.17 15 3 11쪽
372 372. 그들의 현실 - 3 24.02.16 14 3 11쪽
371 371. 그들의 현실 - 2 24.02.15 20 3 11쪽
370 370. 그들의 현실 24.02.14 13 3 11쪽
369 369. 암살 시도 - 2 24.02.13 16 3 11쪽
368 368. 암살 시도 24.02.12 12 3 11쪽
367 367. 미래를 보는 아이 - 2 24.02.11 13 3 12쪽
366 366. 미래를 보는 아이 24.02.10 14 3 12쪽
365 365. 등장! 골드 가문! - 2 24.02.09 11 3 11쪽
364 364. 등장! 골드 가문! 24.02.08 15 3 11쪽
363 363. 일상으로 침투 - 2 24.02.07 11 3 11쪽
362 362. 일상으로 침투 24.02.06 13 4 12쪽
361 361. 일대종사 +1 24.02.05 21 4 12쪽
360 360. 권력자의 딸 - 2 24.02.04 20 4 12쪽
359 359. 권력자의 딸 24.02.03 16 4 11쪽
358 358. 빌런, 아니 표절 대첩 24.02.02 13 4 12쪽
357 357. 중경 그리고 삼림 24.02.01 15 4 12쪽
356 356. 중성시대 - 2 24.01.31 13 4 12쪽
» 355. 빌런 24.01.30 16 4 11쪽
354 354. 중성시대 24.01.29 16 4 12쪽
353 353.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3 24.01.28 19 4 12쪽
352 352.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2 24.01.27 31 5 12쪽
351 351.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1 24.01.26 14 4 12쪽
350 350. 결전 그리고... - 3 24.01.25 15 4 11쪽
349 349. 결전 그리고... - 2 24.01.24 14 4 11쪽
348 348. 결전 그리고 ... +1 24.01.23 18 4 11쪽
347 347. 업데이트 - 2 24.01.22 13 4 12쪽
346 346. 업데이트 - 1 24.01.21 18 4 11쪽
345 345. 내 여자... 입니까? 24.01.20 2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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