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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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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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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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그들의 현실 - 3

DUMMY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이제야 양이 좀 찬 듯, 배를 두드리는 은하. 하지만 그녀의 언니 은아는 아직 먹고 있다. 그것도 눈동자에 이글이글 불까지 켜면서.


“언니! 그만 먹어! 그러다가 살쪄!”

“내 나이 열여섯! 한창 먹을 나이지!”


은하의 핀잔에도 그녀의 먹성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기를 먹고 야채를 먹고. 또 고기를 먹고 야채를 먹고. 이거 생각보다 음식을 균형 있게 먹는데?


“그래도 편식은 하지 않네.”

“우리 언니 편식은 하지 않지만, 버섯은 안 먹어.”


편식은 하지 않지만, 버섯은 안 먹는다? 이게 무슨 뜻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라는 말처럼.


“버섯은 아빠가 싫어하니까.”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꿀꺽 삼키며, 은하의 말에 첨언 하는 은아. 몸에 배어 있는 식사 예절도 훌륭했다. 어린아이들이라 버릇없이 행동할 줄 알았는데, 나름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은 모양이었다.


“참... 잘 먹네.”


은아를 보고 있던 그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눈치 주는 거야? 아, 진짜. 사람 밥 먹는데 눈치나 주고. 몰라! 나 안 먹어!”


내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일까. 그녀는 그대로 손과 입을 닦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언니, 엄마가 그랬잖아.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고. 그만 먹는 게 아니라, 이제 먹을 게 없는 거겠지.”


은하가 여전히 핀잔을 주며, 식탁 위의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음식이 있었던 흔적도 없이 완전히 깨끗해진 식탁위의 접시들. 밥 한 톨, 조그마한 빵부스러기, 소스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거 완전 인간 식기세척기인데.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고 아빠가 말했잖아. 난 벌 받기 싫었을 뿐이라고.”


은아는 태연하고도 당당했다. 얼굴도 성격도 현과장과 너무 비슷한 은아. 그에 비해 은하는 현과장보다는 여희의 외모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과장의 모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입술과 눈매는 완전히 현과장 판박이였으니까. 난 그녀들의 모습에서 유전자가 가진 힘의 무서움이 느껴졌다. 누가 봐도 현과장과 여희의 외모를 섞어 놓은 듯한 두 자매.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너무 많이 먹잖아. 줄이라고 줄여.”

“소생을 쓰면 너무 허기진단 말이야.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둬야 해.”


현과장의 유전자에 작게나마 감탄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은아의 입에서 익숙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소생』. 현과장이 가지고 있어야 할 그 능력이 왜 은아에게 있는 것일까.


“나도 소생을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막 사람도 구하고!”

“넌 꿈이나 잘 꿔. 문이나 잘 열고.”


그녀들은, 일부러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능력을 구태여 설명하려 하지 않고, 툭툭 말하며 지나갔다. 마치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그러나 그녀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숨기려 해도, 난 이미 현과장과 여희를 경험했었다. 그녀들이 가진 능력의 주인인 두 사람을.


“아, 맞다. 오빠. 우리 결혼 못 한 데. 내가 잘못 봤나 봐.”

“아, 응.”


난 짧게 대답했다. 그녀의 결혼 타령 따위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잠깐, 그러고 보니.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단 말이야.”


갑자기 내 목소리를 의심하며, 훅 치고 들어오는 은아. 그녀는 뭔가 의심스러운 듯, 나를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았다.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니가 사람을 만났다고? 집에서 운동만 하는 언니가?”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거지! 난 항상 집에만 있는데 왜 저 사람 목소리가 낯이 익냐고!”


두 자매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녀가 유원지에서 몇 마디 하지 않은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완전 위기인데.


“설마 유원지에서?!”


드디어 기억이 난 것일까. 은아가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그런데,


“그러면 나도 기억할 거 아니야. 나도 같이 있었는데.”


은하가 단번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마치 그럴 리 없다는 듯이.


“그럼 언제라는 거야? 내가 밖에 나간 건 그날뿐이었다고.”


잠깐, 밖에 나간 게 그날뿐이라고? 그럼 24간 365일 집에만 처박혀 있다는 거야? 이거 완전 중증 히키코모리네!


“혹시, 내 애니메이션 컬렉션에서 본 거 아니야? 언니가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내 컬렉션 보는 거잖아.”

“아! 맞다! 애니!”


은하의 말에 그녀는 감탄하듯 소리쳤다. 참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언니라는 녀석은 히키코모리에, 동생이라는 녀석은 애니 오타쿠. 그렇다는 건 둘 다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는 거잖아. 두 자매가 가정교육과 인성교육은 잘 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회성적인 면에서는, 글쎄, 확신이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기 전에 가정부터 다스려야 할 거 같은데.




【뉴스 속보입니다. 영부인이자 창조교의 성녀, 증여희 여사와 우주 재계 10위인 시스 골드 부인의 협상이 첫날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술집 문을 완전히 닫은 채, 오직 뉴스에만 집중하는 충식과 유연. 일대종사의 꿍꿍이를 알게 된 이상,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바로 소년과 손을 잡는 것뿐이었다.


“제 예상대로 부인이 앞에 나섰네요. 분명 내가 죽였는데.”


그녀는 깁스한 자신의 오른팔을 어루만졌다. 한쪽 팔까지 희생하면서 암살을 성공시킨 유연. 대역이 더 있을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막상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기운이 빠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소년의 정체를 아는 건 우리뿐입니다, 황녀님.”

“그렇긴 하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골드 가문의 진정한 주인을 알게 된 것. 그의 이름은 리오 골드.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소년은 지금 네오 무협랜드의 온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워낙 시선이 소년에게 쏠려 있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는데.”


유연은 다시금 자신의 오른팔을 어루만졌다. 비록 소년과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얻게 된 그녀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갈 판이니까.


“정부와 골드 가문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징조...겠죠?”


그녀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충식에게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살짝 망설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충식. 그러나 그가 입에 담은 이야기는 그렇게 밝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부 측의 오해로 인해 큰 수모를 겪었으니,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고 해도 첫날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으니까.”

“그럼 지금 협상이 결렬된 게, 자존심 때문이란 건가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요, 황녀님.”


충식은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아직 협상 내용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섣불리 예측하고 판단하기에는 큰 위험요소가 많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부와 골드 가문 사이에 작은 균열이 있다는 것. 그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기회가 얼마 없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단 한 번일지 모르겠군요.”

“단 한 번이요? 단 한 번이라...”


한 번뿐이라는 말이 부담으로 다가온 것일까. 아니면 걱정으로 다가온 것일까. 유연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제 경험상, 다음 회담에서 골드 가문이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차피 골드 가문은 장사치 가문. 돈이 되는 일이라면, 자존심 따위는 언제든지 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다음 회담 전에 움직여야 하는군요.”


여희는 입술을 깨물더니, TV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TV에서는 다음 회담 일정에 대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일 오전 11시 30분이라. 그럼 난 오늘 오후에는 무조건 움직여야 하겠네요.”


유연의 말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는 충식. 그녀는 그의 대답을 확인한 뒤 조용히 창고로 들어가 움직일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의 운명을 건 마지막 작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연은 생전 처음 긴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수십 번의 작전에 투입되었지만, 지금만큼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내뱉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가득 안은 채, 시간은 오후로 내달리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나와 시스.

난 들어오자마자 그녀에게 회담의 내용을 물었다.


“뭘 원했어?”

“돌려 말하긴 했지만, 우주 정복을 위한 자금과 정보입니다.”


우주 정복이라. 간이 크다 못해 배 밖으로 나왔다. 현과장도 신이라는 존재가 우주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저런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어떻게 할까요? 이참에 그냥 이곳을 날려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에게 세계를 날려버리라니. 아무리 성능 좋은 보조 시스템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성능이 좋은 것 아니야? 성능이 너무 좋아서 주인의 감정과 신념까지 무시할 정도니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거실의 유리창으로 걸어갔다. 어제 괴한이 침입했던 바로 그 유리창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중경의 전경. 그리고 창에 살며시 비치는 내 얼굴. 누구에게는 좋은 출입문이겠지만, 또 누구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고, 그리고 누구에게는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다. 그냥 유리창에도 이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현과장의 우주 정복에 단순히 우주를 침략한다는 단순한 의미만 있을까. 그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희가 무슨 이유를 대면서 우주로 나간다고 했어?”

“표면적인 이유는 신항로 개척입니다. 우주 교역을 하고 싶어 합니다.”

“우주 교역이라...”


현과장은 큰 욕심이 없는 남자다. 내가 오랜 시간 지켜봤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교역로를 열고 싶어 한다고? 돈을 벌고 싶어 한다고? 내가 없던 사이에 욕심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키우기라도 했던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과장에 대한 확신이 점차 사라져만 갔다.


[띵동~!]


그렇게 머릿속으로 현과장을 분석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룸서비스입니다!”


시키지도 않은 룸서비스. 현과장에 관한 분석들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문밖의 룸서비스가 무척이나 수상하다는 것은.


“열까요?”

“열어.”


수상하다고 해서 전부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다. 특히나 나에게는 위협될만한 존재가 전무한 상황. 문밖의 존재가 창조주만 아니면 된다. 창조주만 아니면.

시스가 문을 열자,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카트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술집에서 만났던 그녀, 유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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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374. 가출 24.02.18 12 3 11쪽
373 373. 그들의 현실 - 4 24.02.17 15 3 11쪽
» 372. 그들의 현실 - 3 24.02.16 14 3 11쪽
371 371. 그들의 현실 - 2 24.02.15 20 3 11쪽
370 370. 그들의 현실 24.02.14 13 3 11쪽
369 369. 암살 시도 - 2 24.02.13 15 3 11쪽
368 368. 암살 시도 24.02.12 12 3 11쪽
367 367. 미래를 보는 아이 - 2 24.02.11 13 3 12쪽
366 366. 미래를 보는 아이 24.02.10 14 3 12쪽
365 365. 등장! 골드 가문! - 2 24.02.09 10 3 11쪽
364 364. 등장! 골드 가문! 24.02.08 15 3 11쪽
363 363. 일상으로 침투 - 2 24.02.07 11 3 11쪽
362 362. 일상으로 침투 24.02.06 13 4 12쪽
361 361. 일대종사 +1 24.02.05 21 4 12쪽
360 360. 권력자의 딸 - 2 24.02.04 19 4 12쪽
359 359. 권력자의 딸 24.02.03 16 4 11쪽
358 358. 빌런, 아니 표절 대첩 24.02.02 13 4 12쪽
357 357. 중경 그리고 삼림 24.02.01 15 4 12쪽
356 356. 중성시대 - 2 24.01.31 13 4 12쪽
355 355. 빌런 24.01.30 15 4 11쪽
354 354. 중성시대 24.01.29 16 4 12쪽
353 353.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3 24.01.28 19 4 12쪽
352 352.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2 24.01.27 31 5 12쪽
351 351. 여긴 누구? 나는 어디? - 1 24.01.26 14 4 12쪽
350 350. 결전 그리고... - 3 24.01.25 15 4 11쪽
349 349. 결전 그리고... - 2 24.01.24 14 4 11쪽
348 348. 결전 그리고 ... +1 24.01.23 18 4 11쪽
347 347. 업데이트 - 2 24.01.22 13 4 12쪽
346 346. 업데이트 - 1 24.01.21 17 4 11쪽
345 345. 내 여자... 입니까? 24.01.20 2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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