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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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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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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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분열

DUMMY

“인생 참 재미있지 않아? 이런 식으로 이렇게 만나다니 말이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이곳으로 보낸 창조주의 목소리가.

어느새 바뀌어 버린 공간. 내가 있는 곳은 객잔 2층의 고급 방이 아니라, 사방이 새하얀 그곳, 차원문의 방이었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이긴. 네가 너~ 무~ 진도를 못 빼니까 이렇게 도와주려고 왔잖아.”


진도를 못 뺀다고? 도와준다고?

여태껏 잘만 지켜봐 왔으면서 갑자기? 이렇게?


“자, 저기 원더랜드로 가는 차원문이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등 뒤로 푸르스름한 차원문이 생겼다. 차원문 안쪽으로 보이는 익숙하고 정겨운 공간. 그래, 성밖마을이다.


“정말 가도 되는 거죠?”

“그럼. 가도 되지. 다만,”


차원문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내 발을 잡는 그의 한마디. 그 ‘다만’ 뒤에 이어질 말들이 너무나 두려웠다.


“내 이야기를 전부 다~ 듣고 난 다음에 간다면, 절대 잡지 않겠어.”

“뭐, 그 정도야.”


생각보다 싱거운 조건에, 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를.


“한 소녀의 이야기야. 그 소녀는 특이하게 예지몽을 꾸는 소녀였어. 주변에서는 신의 보살핌이라고들 했지만, 그녀 자신에겐 큰 저주였거든. 왜? 알고 싶지 않은 일들까지 알게 되니까.”


흐음, 옛날이야기인 건가? 콩쥐밭쥐같은 고전 동화? 난 별 생각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꿈을 꾸게 된가야. 아름다운 동물들과 자신을 지켜주는 붉은 옷의 남자가 나오는 꿈을.”


잠깐, 붉은 옷이라고? 이거 뭔가 느낌이 쌔 한데.


“잠깐만요. 붉은 옷이라고요?”

“어허, 이야기 중에 끼어들면 안 되지. 흐름이 끊기잖아, 흐름이.”


그는 내 질문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꿈을 본 그녀는, 꿈속의 남자가 자신을 지켜줄 남자라고 확신했지. 그래서, 가문의 비기인 차원이동술을 배워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어. 오직 그 남자를 찾으려.”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난 애써 외면했다. 그냥 느낌일 뿐이다. 불안함이 가지고 온 느낌일 뿐이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찾지 못했어. 창조주가 만든 우주는 생각보다 넓고 방대했거든.”

“그렇게 소녀는 포기했나요?”


나는 내심 이야기 속의 소녀가 붉은 옷의 남자를 포기하길 바라고 있었다. 꿈속의 남자를 찾아 우주를 탐험하다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행동이란 말인가.


“내가 끼어들지 말랬지. 흐름이 끊긴다고 했잖아, 흐름이. 현과장, 너 원더랜드 안 갈 거야? 확 차원문 닫아 버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난 연신 그에게 사죄를 올렸다. 여기서 그의 심기를 건드려 봤자 나에게 이득이 될 건 전혀 없으니까.


“그렇게 우주를 떠돌던 어느 날. 아니, 20년이 된 그 날이었어. 그 소녀, 아니 숙녀가 된 소녀는 꿈속에 그리던 그 사람을 만나고 만 거야. 그 붉은 옷의 남자를.”

“남자를 만났다고요?”


남자를 만났다고? 잠깐, 그럼 내가 아니잖아. 휴, 난 또 여희가 날 찾아 우주 여기저기 헤매는 거로만 알았네.


“그래, 만났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게 되었는 걸.”

“완전 해피앤딩이네. 이야기 끝났으니 저 이만 가봐도 되죠?”


남녀가 만나 결국 잘 살았다는 이야기. 난 그대로 몸을 돌려 차원문 쪽으로 향했다.

이제 전부 안녕이다. 지긋지긋한 복수도, 창조교도, 그리고 여희도.


“잠깐. 얘가 또 이런다. 나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다니까.”


짜증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순간 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긴장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소녀가 남자를 만나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잖아요.”

“누가 그래? 이 이야기의 결말이 행복하다고.”


행복한 이야기 아니었어? 분명 소녀가 남자를 찾았잖아. 설마 남자가 바람이라도 핀 건가? 아니면 소녀 본인이?


“소녀와 남자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있던 운명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 운명의 이름은, 인간 체스를 우승한 사람이 원더랜드를 멸망시킨다.”


잠깐, 인간 체스? 원더랜드? 그렇다면, 설마...


“지금 무슨 이야기를...”

“운명이 움직이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그 세계의 창조주, 현과장. 그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만든 현과장의 행복을 원하지 않았거든.”


당장이라도 차원문을 향해 내달리고 싶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몸 안에 잠자고 있던 ‘현과장’의 의식이 용서하지 않는 듯이.


“그렇게 현과장과 그의 아내 증여희. 그리고 그의 딸 현은아는 사라지게 되어버리고 말았지. 여기서 이들의 죽음 보다 더 충격적인 건 뭔지 알아? 여희는 그나마 내가 만든 세계의 인간이라 자유로워졌지만, 네가 만든 현과장과 은아는 덤프 파일이 되어버렸다는 거야.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 쪼가리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뺨을 타고 뭔가가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원더랜드를 살릴 방법을 찾으라니까, 자신들의 행복을 찾았다고요.”

“그건 네 생각이지. 모든 생명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어.”

“현과장은 내가 만든 생명체입니다.”

“그런 너는 내가 만든 생명체지. 여희도 마찬가지고.”


그의 눈빛에 싸늘함이 감돌았다.

아마도 창조주는 나를 감시하며,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여희가, 은아라는 이름을 내뱉는 순간을.


“은아라는 이름. 본인의 작품입니까?”

“무슨 작품?”

“여희가 뜬금없이 은아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잖아요. 그거 일부러 개입하신 거죠?”

“그렇다면 어쩔 건데?”


눈빛에 머물러 있던 싸늘함이, 그의 미소로까지 번졌다. 단단히 화가 난 듯한 그의 표정. 난, 이 상황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거란 느낌을 받았다.

저 문만 넘어가면 원더랜드지만, 다리는 말을 듣지 않는다. 깨어있는 이성과 다르게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은 내 의지와 상관이 없다. 진짜 현과장인 내 의지와는.


“자, 가고 싶으면 가. 또 한 번 여희를 버려보라고.”

“가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안 듣는데요.”

“당연하지. 그 몸뚱이는 네 몸뚱이가 아니잖아. 네가 만든 원더랜드의 주민, 현과장의 몸이지.”


그는 이미 모든 걸 다 꿰뚫고 보고 있던 거 같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진실을 알게 된다면, 몸의 주인인 그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래, 그의 노림대로 분열되었다. 정신을 지배한 나와 육체를 지배한 현과장으로.


“이 몸의 주인도 합의한 일입니다. 우리는 원더랜드를 구하기로 합의했다고요.”

“그 몸의 주인은 안 그런 모양인데.”


그의 말이 맞았다. 몸의 주인은 내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원더랜드로 도망쳐야 한다는 내 생각이.


“아니, 왜 이렇게 감성적인 거야? 이러다가는 또 못 지킨다고. 또 다 죽는다는 말이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봤지만, 몸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미칠 것만 같았다. 바로 저기인데. 바로 저 차원문의 안쪽이 그토록 그리던 원더랜드인데!


“젠장!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정상으로 돌려놔. 그 몸의 주인이 납득할 수 있는 세상으로.”


잠깐, 지금 창조주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돌려놓으라고? 뭘 어떻게? 난 분명 원더랜드만 지킬 생각인데, 지금 나한테 짬 때리는 거지? 그런 거지?


“잠깐만요! 지금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뭘 돌려놔요?”

“보면 몰라? 온 우주 아니야, 온 우주.”

“아니, 난 원더랜드만 지킬 거라니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원더랜드가 아닌, 우주를 되돌려 놓으라고? 아무리 몸의 주인인 그라도 이런 억지 제안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마음씨가 좋고 사람이 좋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받을 리가...


-끄덕끄덕-


잠깐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고개를 끄덕여? 나와 일말의 상의도 없이?


“잠깐! 이거 나 아니야! 내가 한 거 아니라고!”

“그래도 그 몸의 주인이 한 거잖아. 그럼 동의한 거다.”

“동의는 무슨! 난 절대 인정 못 해! 절대! 절대! 절대!”


난 있는 힘껏 외쳤다. 하지만, 결코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 이 몸의 주인은, 내 의견을 사뿐히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모기의 앵앵거림 정도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어허! 현과장 이러는 거 아니야! 우리 약속했잖아! 계약했잖아! 우린 원더랜드만 그하면 된다고!”


반응이 없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호구인 거야, 이 인간은!


“이제 목표도 정해졌으니,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해야지. 안 그래?”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한다고? 그럼 지금까지 사용한 건 뭐 시험판이나 체험판 정도였다는 거야, 뭐야?


“더는 뒤로 돌아갈 이유가 없으니, 『세이브 포인트』는 필요 없을 거고.”

“아니, 잠깐! 뭘 빼앗아 가는 겁니까? 난 세이브 포인트가 꼭 필요하다고요!”

“왜? 차원문 위치만 알고 빠지게?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해? 내 이야기를 듣고도?”


그러고 보니... 가문의 비기라 했잖아. 그렇다는 건...


“젠장! 여희의 능력이란 소리잖아!!”

“빙고~”


난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저 꼬마 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아니 창조주라는 분이 막 이래도 되는 거야? 특정인을 괴롭혀도 되는 거냐고!


“이건 일방적인 괴롭힘입니다.”

“아니, 그건 네 생각이고. 그 몸의 주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걸.”


이거 사기도 손발이 맞아야 치지. 이 몸뚱이는 누구의 편인 거야? 나야, 창조주야?


“그럼 이 앞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능력을 넣어줘야겠네. 『무한의 주방』 정도면 좋을 거 같은데.”


무한의 뭐? 주방? 이게 뭐야? 요리사나 하라고? 요리도 못 하는데? 난 채야가 아니라고!


“저기요! 저는 채야가 아닙니다! 요리가사 아니라고요!”

“그럼 현과장, 갈 길 가도 좋아.”


내가 온 힘을 다해 목청 높여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이 끝나자, 내 몸, 아니 이 거지같은 몸은, 원더랜드 차원문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비어있는 공간. 그런데 이 몸뚱이가 그곳으로 향하자, 차원문이 열린다. 그것도 새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 무협랜드의 차원문이.


“아니! 잠깐! 이걸 어떻게 아는 거야? 난 전혀 몰랐다고!”


점차 내 비명이 멀어진다. 그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뚱이가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단 몇 발자국 앞, 원더랜드를 뒤로한 채로.




깜짝할 순간에 도착하고 만 설원 위의 마을. 난 오직 눈만이 가득한 땅 위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세상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닐까. 당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하나도 없어.


“아니, 대협!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바로 그때였다. 여희가 눈 위에 누워있는 나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온 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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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342. 현과장의 결단 24.01.17 20 3 12쪽
341 341. 악인들의 집회 - 2 24.01.16 17 3 12쪽
340 340. 악인들의 집회 +2 24.01.15 20 4 11쪽
339 339. 사이비가 아닌 게 아니 것이 아닌가? ... 이게 맞아? 24.01.14 14 3 11쪽
338 338. 난입 24.01.13 14 4 11쪽
337 337. 교리 - 2 24.01.12 18 4 12쪽
336 336. 교리 +2 24.01.11 15 4 11쪽
335 335. 배신 24.01.10 15 3 11쪽
334 334. 믿을 수 있는 사람 24.01.09 20 4 11쪽
333 333. 거지굴 - 4 +2 24.01.08 18 4 12쪽
332 332. 거지굴 - 3 24.01.07 22 3 11쪽
331 331. 거지굴 - 2 24.01.06 15 3 11쪽
330 330. 거지굴 - 1 24.01.05 22 4 11쪽
329 329. 이동 객잔, 동동구리모! 24.01.04 14 3 11쪽
328 328. 현과장의 꿍꿍이 - 2 24.01.03 18 3 11쪽
327 327. 현과장의 꿍꿍이 24.01.02 19 3 11쪽
326 326. 호떡이 싫다고? 24.01.01 11 3 11쪽
325 325. 분열 - 3 23.12.30 12 3 11쪽
324 324. 분열 - 2 23.12.30 13 3 11쪽
» 323. 분열 23.12.29 10 3 11쪽
322 322. 북빙신궁 - 3 23.12.29 15 3 11쪽
321 321. 북빙신궁 - 2 23.12.28 12 3 11쪽
320 320. 북빙신궁 23.12.28 14 3 11쪽
319 319. 아!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 2 23.12.27 15 3 11쪽
318 318. 아!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23.12.27 12 3 11쪽
317 317. 집착남 등장 - 2 23.12.26 11 3 12쪽
316 316. 집착남 등장 23.12.26 16 3 11쪽
315 315. 창조교 - 2 23.12.25 15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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