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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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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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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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87. 각자의 결정

DUMMY

“난 현과장의 결정에 따를 거야.”


무슨 말을 어찌 해야 하는 걸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일까나? 현과장의 결정에 따르다니?”


곁에서 듣고 있던 채야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못 믿어서가 아닌, 마치 나를 걱정하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내 입에 걸린 자물쇠를 더욱 단단하게 채우기 충분했다.


“이제 현과장의 차례라는 말이다냥. 어렵게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냥. 마지막이 바로 코 앞이다냥.”


어흥선생은 나를 격려하려는 듯 살며시 어깨를 두드렸다.

응원한다고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다. 모두가 다 쓸데없는 짓.


“현과장이 결정해. 우린 기다릴 게.”

“나, 난...”


난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런 책임은 처음이었으니까.

영업사원으로 있었을 때에도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했었다. 큰 결정부터 작은 결정까지. 심지어 점심 메뉴까지도. 그런 나에게 결정하라니. 모든 책임을 떠안으라니. 난 할 수 없었다. 아니, 절대 할 수 없다.


“난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그렇게 난 거실을 뛰쳐나와 숲으로 달렸다.

이게 내가 본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이후에는 원더랜드의 멸망이 시작되었으니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원더랜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숲의 주인인 키토와 늪의 주인인 리코. 그리고 타 행성의 공주인 우유나까지도.

오직 나만 등을 돌리고 있었다. 현실로부터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용기가 없었다. 모두를 살릴, 그리고 자신을 던질.

내가 각오를 다진 때는, 우유나의 반쪽만 남은 신체를 마주했을 때였다. 그토록 자신이 증오스러울 때가 없었다. 난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성을 잃은 나는, 갓패치가 남긴 모래시계를 챙기고, 누군가의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난 내 스스로 뭔가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두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도만 할 뿐이었다. 가엾고 처량한 날 그 감당 안 되는 지옥으로부터 구해달라고.

난 비록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현과장은 다르다.

나보다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을 해온 그라면, 이 난관을 현명하게 헤쳐 나갈 게 틀림이 없다. 그래, 그는 내가 만들어낸 모든 변수를 극복한 현과장이니까.




“모두를 태우고 떠날 우주선을 만드는 거야! 그래 이름도 찬란한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


현과장은 숟가락을 머리 위로 올리며 당당하게 선포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오직 감치찌개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어이! 모두 듣고 있는 거야? 그만 먹고 내 말을 들으라니까!”


현과장이 숟가락으로 탁자를 내려쳤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묵묵부답. 그도 그럴 것이 입안 가득 김치찌개가 차 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 건 당연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 진짜! 내가 모두를 위해 스페셜한 김치찌개를 만들어줬는데, 너희들은 날 쳐다도 안 보냐? 어이, 어흥선생! 말 좀 해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냥. 조용히 해라냥.”


그나마 평소에 이야기를 잘 듣고 대꾸해주는 어흥선생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핀잔뿐. 현과장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커피를 마실 때도, 호떡을 먹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김치찌개에 목숨을 거는 거야?


“아니 김치찌개가 우선이야? 원더랜드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제정신이야? 사라질 땐 사라지더라도 난 오늘의 스페셜 김치찌개를 먹어야겠어!”


갓패치의 말에 공감하는 듯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묵묵히 김치를 찢고 있던 키토도 밥그릇을 두고 눈싸움을 벌이던 루프와 팽도.


“현과장! 현과장!”


바로 그때였다. 김치찌개에 미친 다른 이들과 달리, 멋지게 날아서 현과장의 품으로 들어오는 리코. 그래, 리코는 현과장의 편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 리코 님!”

“리코! 더 먹고 싶음!”

“응?”


순간 현과장의 사고(思考)가 멈춰버렸다. 그러니까, 현과장의 품으로 날아온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김치찌개, 그것도 이 김치찌개가 더 먹고 싶어서?


“더... 먹고 싶다고?”

“응! 응!”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리코. 다른 때는 시선도 안 주던 인간들이 김치찌개 이야기가 나오니까 일제히 현과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너무 많이 먹으면 탈나는데...”

“리코! 많이 먹고 싶음!”


리코는 현과장의 품에서 얼굴과 몸을 이리저리 비비며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귀여운 몸짓에 완전이 넋이 나가버린 현과장. 그의 다음 행보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당연히 만들어 줘야지! 리코 님이 먹고 싶다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해왔는 지 잊은 것일까. 헤벌쭉한 표정으로 리코를 데리고 주방으로 걸어가는 현과장. 바로 그때였다.


“현과장, 현과장 어흥선생도 더 먹고 싶다냥!”


산만한 덩치를 온힘을 다해 구기며 현과장의 품을 향해 몸을 날리는 어흥선생. 현과장은 반사적으로 그의 돌진을 피했다.


“애교 같지 않은 애교 함부로 떨지 마. 먹고 있던 거 확 다 뺏어 버리기 전에.”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어흥선생을 보며 정색하는 현과장. 그러자,


“현과장, 현과장. 나도 먹고 싶다랄까나~”


이번엔 채야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현과장의 오른팔에 팔짱을 꼈다. 하지만, 마치 돌부처가 된 듯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 현과장 정색한 그의 얼굴에 더욱 진한 그림자만 내려왔다.


“뭘 먹고 싶어? 꼭 예쁜 것들은 얼굴만 들이대면 다 되는 줄 알지. 확! 저리 안 가?!”

“그렇다능! 저리 안 가냐능!”


어느새 김치찌개를 다 먹고 현과장의 머리 위에 올라와 앉아있던 키토. 마치 현과장과 한 몸이 된 것 마냥, 그는 당당히 주변의 모두를 물리쳤다.


“모두 물리쳤다능! 이제 주방으로 가자능!”

“키토 님도 내려 와야지. 주방에 털 날리잖아.”


단호한 현과장의 말투에 충격을 받은 것일까. 그의 동그란 황금빛 눈동자가 더욱 똥그래졌다.


아니, 그건 그렇고. 이 사람들 지금 제정신이야?

원더랜드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런데 이렇게 한가롭게 밥이나 먹고 있어? 김치찌개나 먹고 있어?

... 이 사람들, 정말 원더랜드를 구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말이지, 안드레아. 원더랜드가 원더랜드가 아니라니.”


의회의 상석에 앉아있던 피터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의 원더랜드는 현과장이란 인물이 시간을 정지시켜서 만든 가짜 원더랜드. 진자는 이미 사라졌답니다.”


피터는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본인들이 침공을 논하고 있는 원더랜드가 가짜라고? 진짜는 이미 사라졌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건 말이 안 된다, 안드레아. 나와 켄지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그 안의 인물들은 가짜가 아니야.”


아담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켙지도 마찬가지. 심지어 현과장과 일시적 우호 관계를 가졌던 라니도 두 사람의 편에 섰다.


“믿을 수 없어. 그게 가능하기나 한 말이야? 현과장이 시간을 정지시켜서 만든 세계라고? 그럼 현과장이 무슨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신이었어요. 일시적이긴 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모두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과장이 신이었다고?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신이었다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네 말이 맞다면, 우리가 대적하는 이가 신이라는 말이잖아!”


라니는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음 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틀림없다고요.”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린 안드레아. 그 순간 의회장 안에 일순간 적막이 찾아왔다.


“...그럼 그대가 음 님을 알현했다는 말인가?”


살짝이 떨리는 아담의 목소리. 그의 질문에 안드레아는 대답대신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럼 신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인데...”

“아니요, 피터. 우린 신을 상대하는 건 아니에요.”


안드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원더랜드는 신이 된 현과장 때문에 건들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미 신이었던 현과장이 사라진지 오래. 지금의 현과장은 단순한 능력자입니다.”

“신이 된 현과장과 지금의 현과장이라... 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안드레아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 한 것인지, 아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을 뗄 건가요, 아담?”

“아니. 난 이런 어려운 상황은 이해 못 한다. 그냥 단순이 때리고 부수는 일만 맡겨 줬으면 한다.”


대답을 마친 아담은, 이내 의회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켄지와 라니. 그들 역시 안드레아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아담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피터와 다리안 두 사람 뿐이군요.”

“난 신을 거역할 마음이 전혀 없지. 게다가 이번 일을 위해 영웅의 영혼까지 제공해 주셨는데.”


희미한 미소를 지은 다리안은 안드레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나 의회를 나섰다. 이제 의회 안에 남은 사람은 단 두 사람, 안드레아와 피터. 쉽게 쉽게 안드레아의 말에 동의한 사람들에 비해, 피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반대하는 건가요, 피터?”

“그건 아니야. 단지...”


점차 심각해지는 피터의 얼굴. 그의 마음속에 의문이 쌓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지금 안드레아가 말하는 것 말고, 다른 이야기도 있을 거 같아서.”


안드레아는 순간이었지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역시나 의회를 이끄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피터의 예감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내가 음 님께서 들은 이야기는 이게 전부예요.”

“... 그분을 방패로 삼으시겠다. 알겠어.”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은 심각해 보이는 피터의 표정. 어쩌면 안드레아와 신이 나눴던 대화를 조금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겠다.


“따라야지. 그분의 말씀이신데.”


의외로 순순히 안드레아의 편에 서준 피터.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안드레아를 응시한 피터. 냉랭한 기운이 그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비록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려고 하셨을지라도.”

“......”


안드레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에게 확신만을 안겨 줄 게 뻔한 노릇이었으니까.


“대답이 없다는 건, 긍정으로 봐도 되지?”

“...생각보다 그 자리에 집착이 있네요, 피터.”

“처음엔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집착이 생기더라고.”


안드레아는 피터의 대답에 피식 웃어버렸다. 피터가 대놓고 의회장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선포를 한 상황. 아무래도 그는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회장 자리를 노리는 이름이 다른 사람도 아닌 안드레아라는 착각을.


“그럼 기회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이건 내 자리니까. 네가 아닌.”


그렇게 단단히 착각한 채 의회를 떠난 피터. 안드레아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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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314. 창조교 23.12.25 14 3 11쪽
313 313. 설원에서 23.12.23 19 3 11쪽
312 312. 은행털이 - 3 23.12.23 19 3 11쪽
311 311. 은행털이 - 2 23.12.22 24 3 11쪽
310 310. 은행털이 23.12.22 17 3 11쪽
309 309. 그들의 꿍꿍이 - 3 23.12.21 20 3 12쪽
308 308. 그들의 꿍궁이 - 2 23.12.21 15 3 11쪽
307 307. 그들의 꿍꿍이 23.12.20 15 3 12쪽
306 306. 영업의 신 23.12.20 11 3 11쪽
305 305. 여정의 시작 23.12.19 13 3 12쪽
304 304. 조건 23.12.19 17 3 11쪽
303 303. 원치 않았던 만남 23.12.18 15 3 12쪽
302 302. 새로운 모험, 무협랜드 +1 23.12.18 22 3 12쪽
301 301. 하드 리셋 23.12.16 11 3 11쪽
300 300. 뜻 밖의 제안 23.12.16 10 3 12쪽
299 299. 마지막 희망. 그리고... 23.12.15 12 3 12쪽
298 298. 마지막 희망 - 5 23.12.15 9 3 11쪽
297 297. 마지막 희망 - 3 23.12.14 12 3 11쪽
296 296. 마지막 희망 - 2 23.12.14 9 3 11쪽
295 295. 마지막 희망 23.12.13 14 3 11쪽
294 294. 몰아치는 전쟁 - 3 +1 23.12.13 15 4 12쪽
293 293. 몰아치는 전쟁 - 2 23.12.12 18 3 11쪽
292 292. 몰아치는 전쟁 23.12.12 17 3 11쪽
291 291. 신살(神殺) +2 23.12.11 27 3 12쪽
290 290. 드러나는 배후 +2 23.12.11 25 3 11쪽
289 289. 담판 23.12.09 12 3 11쪽
288 288. 침공 방어 23.12.09 14 3 11쪽
» 287. 각자의 결정 23.12.08 14 3 12쪽
286 286. 습격 그리고 23.12.08 13 3 12쪽
285 285. 제안 23.12.07 1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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