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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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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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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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9. 붕괴되는 운명

DUMMY

“단 10분. 딱 10분 안에 정답을 만들게.”


현과장은 간절한 목소리로 기록관 그녀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10분이면 제가 이미 사라져 있을 수도 있어요. 이미 몸의 붕괴는 시작되었으니까.”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 그렇다고 포기할 현과장이 아니었다.


“그럼 5분! 5분만 시간을 줘!”

“5분으로 뭘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5분만 주라고! 날 못 믿어?”


기록관은 기가 막혔다. 어디서 오빠 믿지 같은 소리를.

그런데 왜일까. 저 바보스러운 호구에게서 신뢰가 느껴지는 이유는.

절망적인 이 상황에서도 자꾸만 기대고 싶은 이유는.


“그럼 딱 5분만입니다.”


그녀는 가슴속에 피어난 본능을 따라보기로 했다.

설령 5분 안에 자신의 세상이 끝나더라도. 그러는 편이 마음이 편할 거 같았으니까.


“그래 5분!”


이제 현과장에게 남은 시간은 5분.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은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어도 식은 땀이 줄줄줄 흘러 내렸다. 자신?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그저 무모한 그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만약 곁에 있었더라면, 「신의 방패」로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현과장과 비슷한 능력을 가졌지만 붕괴를 막지 못한 거 같으니까.

이런 상황일수록 시간은 무척이나 잔인하다.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흐르니까.

이제 현과장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1분 남짓. 절망적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슬슬 준비해도 될까요?”


그 순간,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망을 감추려는 듯, 감정을 숨기려는 듯 애써 담담한 척 하는 목소리.


“아직 남았어. 기다려.”


현과장은 남은 시간이 단 몇 초라 할 지라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김없이 다 지나가버린 5분이라는 시간. 이번 문제는 현과장의 완패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럼 전송절차를 시작합니다.”


현과장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기록관의 모습이 희미해져 갔지만,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때,


“잠깐만...”


그의 머릿속 「원더랜드 지식의 50%」가 움직인 것일까. 한 가지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데빌 위딘의 지식 전달 방법은 영혼을 희생해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 그렇다는 건, 지식이 전달되기 전까지는 영혼이 살아있다는 말이 아닐까? 현과장의 눈빛에 희망이 다시 금 불붙기 시작했다.


“저장소 안으로 우선 저장! 일단 저장!”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거예요, 현과장?”


갑작스러운 난입에 당황함을 금치 못한 기록관 그녀. 그렇지만, 현과장은 막무가내였다.


“저장소에서 영혼으로 옮겨지지 전까지는, 자아가 남아있을지 몰라. 마지막 방법이야!”


확신은 없었다. 머릿속의 기억이 그냥 느낌에 의해, 아니면 간절함에 의해 왜곡 되어버린 상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현과장은 포기 할 수 없었다. 포기한다면, 소중한 동료 한 명을 그대로 잃고 마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무슨 짓을...”


그녀는 현과장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데빌 위딘 안에서는 현과장만이 최상위 관리자였기 때문에. 그헣게 점점 사라지는 기록관 우유나.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현과장의 머리 위로 딱딱한 전자 계집의 말투가 들려왔다.


- 저장 완료. 저장명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

“... 밀크나, 밀크나 마샤.”

- 밀크나 마샤. 저장을 완료합니다. -


이 선택이 최선인지는 아니면 최악인지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 거예요?”


현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우유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현과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우유나와 고만을 바라보는 현과장. 그의 이야기에, 두 부녀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인공 신체를 만들 거야. 밀크나가 들어갈.”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너스레를 떨며 차원문에서 나오는 현과장. 그 뒤로 갓패치가 쫄랑쫄랑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갓패치. 문 열어줬으면 그냥 돌아가도 돼.”

“제정신이야? 현과장이 걱정되서 어떻게 돌아가? 아니, 난 못 돌아가.”


현과장이 걱정된다는 말과는 다르게, 그의 시선은 현과장의 손에 들린 김치찌개를 향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욕망에 충실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렇게 먹으면 다음에 먹을 김치찌개가 없다고. 좀 줄여!”

“뭘 줄여? 제정신이야? 먹는 걸 어떻게 줄여?”


현과장과 갓패치가 김치찌개를 두고 아웅다웅하는 사이. 근처에서 한참 뭔가에 몰두하던 우유나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김치찌개? 오케이. 놔두고 돌아가요.”


며칠은 못 잔 것처럼 초췌한 그녀의 몰골. 채야가 만들어준 아름답던 메이드 복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아니, 달랑 하루 만에 그 모습이 뭐야?”

“그 정도로 열중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휴머노이드 만드는 게 뭐 쉬운 일인 줄 아시나.”


우유나는 연구실 바닥에 털썩 앉더니, 그대로 김치찌개의 뚜껑을 열어 마구 입에 때려 넣기 시작했다. 과격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때려 넣었다.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정.


“...천천히 먹어.”

“뭘 천천히 먹어요. 이제 겨우 메인 모듈 하나 만들었는데.”

“메인 모듈”


우유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성인 남성의 주먹 정도의 크기인 은빛 찬란한 쇳덩이가 놓여있었다. 마치 사람의 뇌처럼 생긴 쇳덩이. 현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그 쇳덩이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고야 말았다.


“신기한 눈빛인데요?! 신기하죠? 그쵸?”

“어? 어...”

“이건 우리 강원랜드, 아니지 나 우유나 마샤의 역작의 결정체! 영혼을 담는 메인 모듈! 이름하야! 「밀크나 mk2」되시겠습니다!”


우유나는 모듈을 만든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자존감을 주변으로 마구마구 흩날리며 자신을 과시했다.

그런데, 왜 mk2야? mk1은 어디가고, 갑자기 mk2냐고.


“확실히 영혼을 담을 수 있어?”

“어허! 우리 주인님은 어디 속고만 사셨나. 이래 뵈도 나, 우유나 마샤, 변태입니다. 천재 변태.”


고된 연구에 많이 지친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입으로 변태라고 말하다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럼, 데빌 위딘 안에 있는 밀크나를 꺼내서 같이 만드는 건 어때?”

“그 재수 없는 망할 계집이랑 같이요?”


자신감 가득했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경계심이 느껴졌다. 목소리 뿐만아니라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긴장감. 도대체 그녀가 왜 이러는 걸까.


“조금 위험한데. 조금 위험해.”

“뭐가 위험해?”

“그 계집은 내 미래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내 머리 위에 올라서려고 하면 정말 위험한데...”


그녀의 걱정은,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것에서 비롯된 염려. 순간, 현과장의 머릿속에 재미있는 상황이 그려졌다. 서로의 머리위에 서려고 발버둥 치는 우유나와 밀크나. 이 게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해 둘게. 그리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다 뺏긴다.”

“네? 뭘...”


무엇을 뺏긴다는 말일까. 우유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특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연구실에도 현과장과 갓패치 그리고 자신 뿐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구스러운 현과장.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치찌개에 목숨을 건 갓패치.

잠깐, 김치찌개에 목숨을 걸었다고? 점차 우유나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내 걸 먹어요?!”

“제정신이야? 음식 앞에서 헛짓한 네 잘못이지, 이게 내 잘못이야?”


우유나의 김치찌개를 먹고도 뻔뻔하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갓패치. 참 좋은 사람이긴 한데, 먹을 것 앞에는 부모형제 마누라자식까지 다 팽개칠 인간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갓패치는 김치찌개를 사수하기 위해 얼굴까지 냄비 속에 파묻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돼지가 따로 없었다. 돼지도 그보다 깨끗하고 우아하게 먹을 것이다.


“그래, 다 먹어라, 다 처먹어.”


끝내 두 손 두 발 다 든 우유나. 그나마 다향이라면, 잔반이 남지 않는다는 것일까. 음식냄새가 연구실 안에 배지 않도록.


“그럼 난 가서 만나 봐야겠네.”


말을 마친 현과장은, 이내 연구실 한 편에 놓인 작은 기계 앞으로 걸어갔다. 눈동자 가득 희망을 품은 채로.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 마치 원더랜드에 오기 전, 그가 경험했던 『화이트 룸』과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불러오기. 밀크나 마샤.”


데빌 위딘으로 들어온 현과장이 제일 처음으로 한 행동은, 바로 기록관, 지금은 밀크나로 불리는, 그녀의 영혼을 부르는 것. 행여나 잘못된 게 아닐까. 그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시스템의 응답을 기다렸다.


- 지식 전달 프로세스를 가동합니까? -

“아니. 그냥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줘.”

- 그럼 복원 절차를 실행합니다. -


전자 계집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점차 또렷해지는 형체. 이윽고 현과장의 눈앞에는 얼마 전에 만났던 기록관 그녀가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요. 가상현실 속에 갇히게 되다니.”

“그래도 아직 죽지 않았잖아. 지금은 그 사실에 만족을 하자고.”


너스레를 떠는 현과장을 바라보며,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뭘 위해서?”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건 현과장만 피곤해 지는 일이라고요.”


그녀의 진심어린 질책에, 현과장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이 눈빛에는 일말의 후회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만이 가득할 뿐.


“난 그냥 모두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현과장의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원래대로라면, 이번 현과장도 리셋 될 운명이었어요.”

“그래?”

“원더랜드도 사라질 운명이었고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녀.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이 느껴졌다.


“내 주인이 사라진 후, 몇 번이나 테스트 현실에서 똑 같은 설정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현과장이 원더랜드를 구하는 시나리오는 없었어요.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아시나요?”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현과장은 그녀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헌데, 이상하게도 긴장한 듯이 보이는 그녀의 얼굴. 아무리 눈치가 없는 현과장이었지만, 그녀의 얼굴 앞에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현과장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데빌 위딘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요.”

“내 안에 들어온 영혼들 때문이라는 거야?”


현과장의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영혼들이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


“영혼들이 아니라, 단 한 영혼 때문이에요. 그게 누구의 영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단 하나의 영혼이라. 현과장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뭐, 모두를 구해준다면, 크게 나쁠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아니요. 절대 나빠요.”


단호한 표정으로 현과장을 향해 고개를 젓는 그녀. 이어서 그녀는 진지한 어투로 당부하듯 신중하게 현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명심하세요, 현과장. 당신의 선택은 결정된 운명까지 바꿔 버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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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223. 패잔병과 현과장 23.10.10 29 5 11쪽
222 222. 채야, 진짜 화나다! 23.10.09 33 5 11쪽
221 221. 기어오르는 위기들? - 4 23.10.08 26 5 11쪽
220 220. 기어오르는 위기들?- 3 23.10.07 21 4 11쪽
219 219. 기어오르는 위기들? - 2 23.10.06 22 5 11쪽
218 218. 기어오르는 위기들? - 1. 23.10.05 18 4 11쪽
217 217. 다가오는 그림자, 데빌 위딘3 23.10.04 19 4 11쪽
216 216. 다가오는 그림자, 데빌 위딘2 23.10.03 22 4 12쪽
215 215. 죽지 않는 기사들 23.10.02 24 5 11쪽
214 214. 다가오는 그림자, 데빌 위딘1 23.10.01 25 4 11쪽
213 213. 신의 능력자들3 23.09.30 24 4 11쪽
212 212. 신의 능력자들2 23.09.29 24 4 11쪽
211 211. 신의 능력자들1 23.09.28 21 4 11쪽
210 210. 데빌 위딘의 역습 23.09.27 17 4 12쪽
» 209. 붕괴되는 운명 23.09.26 23 5 12쪽
208 208. 납치의 이유 23.09.25 18 5 12쪽
207 207. 우유나 납치 사건 - 5 23.09.24 21 4 11쪽
206 206. 우유나 납치 사건 - 4 23.09.23 24 5 11쪽
205 205. 우유나 납치 사건 - 3 23.09.22 21 4 11쪽
204 204. 우유나 납치 사건 - 2 23.09.21 18 4 11쪽
203 203. 우유나 납치 사건 - 1 23.09.20 23 4 11쪽
202 202. 이딴 게 에필로그? 23.09.19 23 4 11쪽
201 201. 설마, 이게 끝이야? 23.09.18 24 4 11쪽
200 200. 마지막 찬스 - 2 23.09.17 23 4 11쪽
199 199. 마지막 찬스 - 1 23.09.16 24 4 11쪽
198 198. 의외로 찾아온 기회 +2 23.09.15 30 4 11쪽
197 197. 헤어짐 전문 변호사 - 3 23.09.14 20 4 11쪽
196 196. 헤어짐 전문 변호사 - 2 23.09.13 23 4 11쪽
195 195. 헤어짐 전문 변호사 - 1 23.09.12 2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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