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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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리아
작품등록일 :
2023.03.19 14:37
최근연재일 :
2023.07.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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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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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캠퍼스 러브 스토리 제15화

DUMMY

◐ 지연의 일기 ◑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아.. 너무 힘들어.

대학생 되면 신나게 놀기만 할 줄 알았더니..

어떻게 된 게 고딩 때보다 공부할 게 더 많은 건지..




오늘 본 건 좀 많이 틀리긴 했지만..

다른 과목들은 워낙 잘 봤기에..

전체적으로는 만족이다.

기말고사도 이 정도로만 보면 장학금은 문제 없겠네.

그때도 봉구 선배 도움 좀 살짝 받아야지.. 후훗..

마침 선배도 오늘 마지막 시험을 친다고 했으니..

오늘 밤엔 술이라도 거하게 한잔 사줘야겠다.





"지연아.. 뭐해?"


벤치에 앉아있는데..

동아리 선배인 운석 선배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아.. 안녕하세요. 그냥 바람 쐬고 있어요."

"아,, 그래? 밥은 먹었어?"

"네.. 선배님은요?"

"어.. 나도 막 먹고 오는 길이야. 그나저나 너 얼굴 보기 왜 이렇게 힘드냐?"

"에궁.. 요즘 시험 기간이라 공부 좀 하느라구요.."

"아.. 그렇지. 어때.. 시험은 잘 봤어?"

"네.. 생각보단 괜찮게 봤어요."

"하하.. 잘했네. 근데 봉구는 어디 갔어?"


............

소문 다 났네.. 이런..


"아.. 지금 시험 치고 있어요."

"그래? 아직 안 끝났나 보네. 걔도 오늘이 마지막인가?"


.............

내가 무슨 봉구 선배 대변인도 아니고..

왜 자꾸 묻는 거야..

에휴..


"아마 그럴 거에요.. 아참.. 근데.."


이 기회에 봉구 선배에 대해 궁금한 거나 물어 봐야겠다.


"어.. 뭔데?"

"혹시 봉구 선배 1.2학년 때 공부 잘했어요?"

"공부? 잘하긴 했지..그 녀석이 좀 노는 거 같아도 이상하게 공부는 잘 하드라고"

"그래요? 장학금도 받았어요?"

"장학금? 당연하지.. 과톱인데.."

"네? 과톱이요?"


헐.. 진짜?

맨날 오락실이나 다니고 만화책이나 보던 선배가 과톱 이라고?

말도 안돼..

.............


"왜? 너도 신기하지? 하하.. 나도 처음에 그 녀석이 과톱 했다고 할 때 절대 안 믿긴 했다..하하.."


그러게요..

절대 안 믿기긴 하네요..

어딜 봐서 그 선배가..


...........

순간.. 머리 속으로..

선배의 에로 비디오 보던 모습..

오락실에서 나오던 모습..

분식집 딸 보러 라면 먹으러 가던 모습 등등..

내가 평소에 상상하던 모범생과는

전혀 상반된 선배의 모습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

세상엔 참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구나..

후아..





* Where? *


봉구 선배에게 문자가 온다..

근데 뜬금없이 웬 영어?

영문과한테 도전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건가?


* Me? I'm in bench in front of school cafeteria *


어디..봉구 선배 영어 실력 좀 보자.


* 영어로 치기 귀찮네. 지금 갈게 *


.............





"야.."

"왔어요? 시험은?"

"어.. 그럭저럭.."

"몇 점 인데요?"


과톱에게 그럭저럭 이란 게 대체 몇 점인 거야..


"뭐.. 답을 뭘 썼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거 말고는 다 맞은 거 같어."


.............

역시 과톱에겐 하나 틀린 게 그럭저럭 이었군..

아니.. 그나마 그 하나도 맞을 수도 있단 거잖아..

이씨..

어제 두 개 틀린 걸로 좋다고 난리 친 거 생각하니 괜히 화나네.


"좋겠네요.. 잘 봐서.."


괜한 심술이 나서 퉁명스럽게 대꾸해 버렸다.


"어? 너도 전체적으로 잘 봤다며.."


잘 보기야 했지요..

근데 너무하잖아요.

전 거의 일주일을 잠도 못 자고 공부만 미친 듯이 한 거고..

선배님은.. 펑펑 놀다가...


자.. 잠깐..

그러고 보니 선배는 어제도 저녁때만 잠깐 공부한 거 같던데....

뭐야..

난 어제 아침부터 오늘 새벽까지 쉬지도 않고 했는데..

왜 난 70점밖에 안되고 선배는 하나밖에 안 틀려?

하.. 갑자기 열 받네..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선배가 괜히 얄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술이라도 한잔 사줄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안될 거 같다.

이 기분으로 술 마시다간..

선배 앞에서 욕이라도 튀어 나올라..

..............

좀 전까지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기분이 다운 된 거야?

나,, 정말 성격에 문제 있나?


"시험도 끝났는데.. 술 한잔 해야지?"


...........


"피곤해요.."

"어? 그래? "

"죄송해요..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어요."

"어.. 뭐 그럼 할 수 없지."


선배에게 실망한 표정이 보인다..

내가 좀 심한 건가?

근데.. 도대체 왜 이렇게 오늘 따라 선배가 얄미운 거야..

혹시 나 지금 이 선배 공부 잘 하는 걸로 질투 하는 거야?

그런 거 맞지?


아무래도 집에서 좀 쉬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겠다..

오늘은 일단 푹 쉬고 내일 기분 괜찮아지면 마시자고 해야지..

먼저 가겠다고 하고.. 홀로 집으로 향한다.




...............

그냥 술이나 마실걸..

집에 오면서 기분이 다 풀려 버렸다.

막상 빈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

쉬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버렸다.

시험 끝난 날인데..

그래도 보름 전부터 이 날 만을 바라보고 버텨온 건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지.

그래.. 일단은 나가자.

나가서 뭐라도 하는 거야..

허겁지겁 핸드폰을 집어 든다.


* 뭐해요? *


에휴.. 먼저 튕기고 집에 온건 나인데..

그새 맘 바뀌어서 다시 놀자고 하는 나를..

선배는 어찌 생각할까..

고민 끝에 문자를 보내긴 했는데..

답장이 어떤 식으로 올지..

걱정부터 앞서는 나였다.

.............

아냐.. 어차피 선배도 할일 없을텐데 뭘..

놀아 주는 게 어디야.





10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다.

삐졌나?

아니 뭐 그 정도 가지고 삐져?

모처럼 놀아 줄려고 했더니..

흥!!



...............

그나저나 뭐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과 친구들 술 마신다고 할 때 따라갈걸..

다시 방바닥에 누워버린다.

흥..

남자가 쪼잔하게 뭐 그런 거 가지고 답장을 안 해?

난 뭐 문자 보내기 쉬웠는 줄 알아?

나도..


띠리리리리리링~~♬


헛..

봉구 선배의 전화다.


* 여보세요~ *

* 야.. 나.. 지금... *


수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길래 이렇게 시끄러워?


* 아잉~ 선배님.. 한잔 해요 빨리.. *


잉? 여자 목소리?

뭐야?

지금 여자랑 술 마시는 거야?


* 야.. 너도 와라. 여기 스카이 쏘주방이야. 지금 애들이랑 술 마시는 중이다. *

* 애들 누구요? *

* 선배님.. 왜 다 안마셔요~ 빨리요 빨리.. *


................


저거 왠지 선주 목소리 같은데?


* 어.. 여기 선주.윤아.경은이 이렇게 있어. 애들도 너 빨리 오래. *


뭐야.. 지금 여자들 속에 둘러 쌓여서 술 마시던 거였어?

난 혼자 이렇게 방 구석에 처박혀 외로워 하고 있는데?

이씨..


* 뭐 분위기 좋은 거 같은데.. 재밌게 노세요 전 그냥 잠이나 잘래요 *

* 야.. 왜? 같이 와서 놀아. 선주야.. 너 장난 그만 치고.. *


............

아주 신났구만 신났어.

저렇게 좋으면서 나한테 전화는 뭐하러 해?

그냥 꽃밭 속에서 신나게 뒹굴든가 하지..


* 끊어요.. 저 피곤해요. *

* 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


문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보내 가지고 처량한 티만 잔뜩 내고

화도 더 나버리고..

아 짜증나..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계속 고민 중이다.

도저히 심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험은 같이 끝났는데..

혼자만 재밌는 시간 보내고 있는 봉구 선배가 너무 부러웠다.

나도 가서 신나게 놀면 되지 뭐..

흥!!

가서 윤아랑..선주랑.. 경은이랑..

신나게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그러면 되는 거야.

그래.. 가자..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선다.




스카이 쏘주방이 어디였지?

학교 앞이었나?

지난번에 개강 파티 했던 술집인 거 같은데..

위치가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전화로 위치를 물어볼 생각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는다.

헛..

방에 놓고 나왔네.

너무 멀리 와서 집까지 다시 갈 수도 없고..

...........

그냥 근처 술집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였지?

아.. 하필 오늘 같은 날 전화기를 안 들고 나오다니..

힝..

혹시 후문 쪽인가?

..........

그러고 보니..

후문 쪽에..

지난번에 동아리 선배들과 술 마시던 곳이 하나 있긴 했었다.

거기인가 보네..




부지런히 후문까지 도착하니..

저 앞쪽으로..

스카이 쏘주방 간판이 보였다..

후아.. 찾았다.




..........

없다.

분명 스카이 쏘주방이라고 했는데..


"저기 혹시 여기 남자 한 명 하고 여자 세 명 같이 온 팀 없나요?"

"아.. 좀 전에 나갔는데요~"

"네? 언제 갔는데요?"

"한 30분 전쯤에요.. "


...............

아.. 짜증나..

오늘 따라 핸드폰은 왜 놓고 나온 거야.




에휴..

이 좋은 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터벅터벅..

다시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오늘 따라 집은 또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지..

그동안 봉구 선배랑 같이 다니느라..

이렇게 먼지도 몰랐네..


"어머? 지연아~"


잉?

저 앞에서 경은이.윤아.선주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 너희들 왜 여기 있어?"

"아.. 그냥 수다 좀 떨다가.. 이제 나이트 갈려고.... 지연이 너도 갈래?"

"아.. 나는 그냥 좀 피곤해서.. 근데 봉구 선배는 같이 있던 거 아냐?"

"봉구 선배? 아까 너랑 통화 끝나더니 바로 다른 약속 있다고 가던데.."

"봐봐.. 둘이 사귄다니까.."


..............

선주야.. 다 들린 단다..


"진짜인가 보네.. 지연아 너 봉구 선배랑 진짜 사귀는 거야?"


.............


"무슨 소리야.. 니들.."

"봉구 선배 아까 행동도 그렇고.. 너도 막 이렇게 달려 나온 거 보면.. 뭔가 수상하네. 뭐야 이지연.. 빨리 불어. 사귀는 거야?"


하하..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 거 아냐. 그냥 좀 같이 다니는 거야.. "

"진짜? 근데 봉구 선배는 왜 그렇게 급하게 가 버린 거야.. 우린 또 둘이 사랑 싸움 이라도 한 줄 알았잖아.."


으이그..

도대체 봉구 선배는 처신을 어찌하고 다니길래..

애들한테 이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키워 준거야..


"왜? 봉구 선배가 어쨌길래?"


궁금하긴 하네..


"몰라.. 너랑 전화 끊더니 표정 심각해져선.. 그냥 다른 약속 있다고 가버렸어. 우린 너한테 간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

뭐야..

봉구 선배.. 내가 심심해 할까봐 놀아 줄려고 나온 건가?

왠지 그런 거 같은데?

정황상.. 그거밖에 없잖아..

통화 끝나자마자 표정 심각해지고.. 약속 있다고 나오고..

그리고 전화를 했겠지?

근데 난 전화가 집에 있고..

............



후다닥 집을 향해 뛰었다.

에휴..

뭐 이렇게 엇갈리는 거야 대체..




모처럼 뜀박질을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에휴.. 내가 봉구 선배 때문에 이 먼 길을 뛰어오다니..

진짜.. 봉구 선배도 복 받은 거야..

시험 문제 뽑아 준거만 아니면..

그냥 애들이랑 나이트 가서 신나게 노는 거였는데..

내가 진짜..

그놈의 시험 문제 때문에 한번 인심 써준다..

............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구.




멀리 .. 맛짱 분식이 보인다.

저 앞에서 좀 쉬었다 가야겠다.. 후아..

분식집 까지 와서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뛰려고.. 일어 나려던 찰나..


"아.. 저야 뭐 주연씨가 마시고 싶다면야...."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봉.. 봉구 선배?


"어머 그럼.. 제 친구 부를까요? 친구도 술 진짜 좋아라 하는데.."


그리고 그 앞에는..

그 신소재 얼짱 이라는 분식집 딸 신주연?

뭐야 저 깨가 쏟아질 거 같은 그림은?


"친구요? 뭐 저는 상관 없습니다 하하.."

"그럼 전화해 볼게요. 지금 아마 할 일 없어서 집에서 만화책 보고 있을거에요."


아니 쟤는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봉구 선배 꼬셔서 술 마실 생각이나 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놀아줄 사람이 없나?


.............

뭐.. 난 그래도 나이트 가자는 거 내가 튕긴 거니까..

쟤들처럼 할 일 없는 건 아니었어!


"그래요.. 안 그래도 오늘 술이 땡기긴 했는데.. 잘됐네요."

"호홍.. 오빠가 쏘는 거죠?"


오.. 오빠?

뭐야..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오빠래?

저 기집애 완전 여우네.


"당연하죠..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맘껏 드세요.."


................


"그럼 빨리 가요.. 엄마.. 나 술 마시고 올께.."


헛.. 이런..

둘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나도 모르게 전봇대 뒤로 후다닥 몸을 피했다.




선배 옆에 바짝 붙어 살살 꼬리를 치는 그녀..

그저 좋다고 입을 헤 벌린 채 걷고 있는 선배..

그걸 몰래 전봇대 뒤에서 훔쳐 보고 있는 나..


..............

근데 나 지금 왜 이러고 있지?

갑자기 서글퍼지네.

왜?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곳에 숨어서..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저 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거야?

천하의 이지연이가..

도대체 왜?



왠지 모르게..

서러움이 밀려 드는 밤이었다.







◐ 봉구의 일기 ◑




시험이 끝났다..

친구들과 결과를 맞춰보니.. 거의 다 맞긴 했다.

한 문제가 좀 아리송한데..

도대체 뭘 썼는지 아무리 떠올려 봐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뭐.. 그래도 생각 했던 것 보단 잘 나왔으니.. 됐다.




지연이가 기다리려나?

문자를 보낸다.


* Where? *


매점 앞에 있다는 그녀..

오늘은 운 좋게도 같이 시험이 끝났으니..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야겠다.

설마.. 그렇게 열심히 시험 문제 뽑아줬는데..

거절하진 않겠지?

들뜬 마음으로 그녀에게 향한다.




벤치 앞에 앉아 있는 그녀..

봄 바람에 살랑 거리는 생머리가 유난히 눈부시다.

.............

왜 이렇게 이뻐 보이냐 오늘..

뭐.. 원래도 이쁘긴 하다만..

햇빛빨을 받아서 그런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이뻐 보이는 그녀였다.


심호흡을 좀 하고.. 그녀를 부른다.


"야.."

"왔어요? 시험은?"

"어.. 그럭저럭.."

"몇 점 인데요?"

"답을 뭘 썼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거 말곤 다 맞은 거 같어."

"좋겠네요. 잘 봐서.."


엥?

얘 표정이 왜 이래?

시험 망쳤나?


"어? 너도 전체적으로 잘 봤다며.."


오늘 시험 대신.. 그냥 전체적인 시험 얘기로 얼버무린다..

이거 술 마시자는 얘기.. 해도 되는 거야?

............


"시험도 끝났는데.. 술 한잔 해야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본다.


"피곤해요."


괜히 물었군..


"어? 그래? "

"죄송해요.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어요."


아무래도 시험 재대로 망쳤나 보네.

하긴.. 어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성적 안 나왔으니 얼마나 허탈하겠어.

이해해 주마.


"어.. 뭐 그럼 할 수 없지.."


아쉽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일단은 그녀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가자. 데려다 줄께.."

"아니요. 오늘은 그냥 저 혼자 갈게요."


..............

도대체 얼마나 못 봤길래 이러지?

빵점이라도 맞은 건가?


"어? 그래?.. 그래 그럼.."


인사도 재대로 안하고..

허둥지둥 자리를 뜨는 그녀..

왠지 섭섭하네 이거..




기운 내라고.. 문자라도 한통 보내줄까?

한참 전부터 폰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에 빠져있다.

아냐.. 오늘은 그냥 놔두는 게 낫겠다..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했을 때의 허탈감..

얼마나 크겠어.

그래.. 오늘 하루는 푹 쉬렴.

내일 이 선배가..

위로주 한잔 거하게 쏴주마!




그나저나 난 이제 뭐하나..

시험도 끝났는데 집에 그냥 가기는 뭐하고..

그냥 벤치에 쭉 앉아서..

이 시간 이후의 스케쥴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본다.


"선배님~~"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동아리 후배들이다.

윤아..

............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이름을 모르겠다.

이거.. 이름 모른다고 섭섭해 하진 않겠지?


"선배님 여기서 혼자 뭐하세요?"


그나마 몇 번 봐서 친분이 있던 윤아가 먼저 말을 걸어 온다.


"어.. 시험도 끝나고 해서 잠깐 바람 쐬는 중이야.."

"어머 선배님도 시험 끝나셨어요? 우리도 지금 막 시험 끝났는데.."

"아.. 그래? 다들 시험은 잘 봤냐?"

"네.. 저랑 선주는 하나 틀리고 경은이는 다 맞았어요.."


오호.. 얘가 선주고.. 쟤가 경은이군..


"그래? 야.. 이거 대단들 한데?"

"헤헤.. 뭐 저희가 좀 한 머리들 하잖아요.."


요것들.. 귀엽네.. 훗..


"그나저나 선배님은 얼굴 보기 너무 힘드시네요."

"그러게 말이다.. 뭐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앞으로 자주 보면 되잖아..하하"

"그쵸? 아.. 그러지 말고 우리 지금 술 마시러 갈건데 같이 안 가실래요? 너희들은 어때?"


윤아가 애들에게 의향을 묻는다.


"어? 지금?"


뜻밖의 제안에 잠시 당황한 나..


"그래요.. 선배님도 같이 가요.. 이번 기회에 좀 친분도 쌓아야죠.."


옆에 있던 선주.. 그리고 경은이도 동의해 버린다.


"그래도 되겠냐?"

"물론이죠.. 빨리 가요.."


...........

이거.. 생각지도 못한 술자리가 되어 버렸네.

설마 나보고 술값 내라고 데려가는 건 아니겠지?

뭔가 불안한데?


그나저나.. 지연이는.. 잘 들어갔으려나..





"자 건배요.."


여자 세 명에 둘러 쌓여.. 술을 마시는 중이다.

헐..

이건 뭐.. 3천궁녀를 거느리던 의자왕 안 부럽네..

나의 취미.. 나의 관심사.. 나의 인생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 오는 그녀들..

드디어 내 인생에도 꽃이 피는 건가.. 흑..


"선배님.. 지연이는 어디 갔어요?"


...........


"글쎄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에이.. 선배님 하고 지연이 하고 맨날 같이 다니시면서 오리발은.."


...........


"둘이 사겨요 혹시?"

"하하.. 아냐 아냐.. 그냥 친한 선후배지 뭐.."

"그래요? 하긴.."


하긴?

뭐야 저 의미심장한 말은?

경은이 얘.. 좀 맘에 안 드네..


"자.. 건배해요. 우리.."


옆에 있던 선주가 건배를 청한다..

얘는 좀 귀엽다..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온갖 애교를 다 피우고 있다.

그래..

여자라면 이 정도 애교는 있어야지.

지연이는 왜 이런 애교를 못 부리는 거야 대체..


............

하긴.. 지연이가 이런 애교까지 부리면..

버텨낼 남자가 없겠지..

당장 나부터도 쓰러지겠네..




"선배님.. 지연이도 심심하면 나오라고 해봐요."

"어? 지연이?"


그럴까?

같이 놀면 재밌을텐데..

어차피 지연이도 다 친한 애들이고..

그래.. 전화해 보지 뭐..

혹시 알아?

심심해서 내 전화 기다리고 있을지..

그나저나.. 지연이까지 오면 4:1 이군.

하하하하하..


핸드폰을 꺼낸다..

잉?

* 뭐해요? * 라는 문자가 와있다.

시간을 보니 10분 전에 보낸 건데..

노느라 정신 팔려 문자 온 줄도 몰랐군.

역시 심심해 하고 있었네..

후훗..

여기 와서 4:1 로 놀자꾸나..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

* 야.. 나.. 지금... *

" 아잉.. 선배님.. 한잔 해요 빨리.. "


갑자기 선주가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잔을 들었다.

..........

얘 좀 취했나?

왜 이렇게 달라붙지?

전화하는데 방해 되니까.. 잠깐 기다리렴.

일단은 선주의 적극적인 공세에 못 이겨..

전화기를 든 채 맥주를 삼킨다..


* 야.. 너도 와라. 여기 스카이 쏘주방이야. 지금 애들이랑 술 마시는 중이다.. *

* 애들 누구요? *

"선배님.. 왜 다 안마셔요. 빨리요 빨리.."


..........

또다시 들러붙는 선주..

아 좀 기다려 봐. 통화 좀 하고 놀아줄게..


* 어.. 여기 선주.윤아.경은이 이렇게 있어... 애들도 너 빨리 오래.. *


빨리 와라. 지금 분위기 최고조란다..


* 뭐 분위기 좋은 거 같은데 재밌게 노세요. 전 그냥 잠이나 잘래요 *


엥?

뭐야.. 그럼 문자는 왜 보낸 거야?


* 야.. 왜? 같이 와서 놀아. 선주야.. 너 장난 그만 치고.. *


옆에서 계속 전화도 못하게 장난질 하는 선주..

얘도.. 애교 많아서 이쁜 줄 알았더니..

술 좀 들어가니까.. 엄청 피곤한 스타일이네.


* 끊어요. 저 피곤해요. *

* 야.. 여보세요? 여보세요~ *


.............


"뭐래요? 온데요?"

"아니.. 피곤하다고 그냥 잔데.."

"에이.. 뭐야. 오랜만에 지연이랑 신나게 놀아보나 했더니.."


.............

그나저나 뭐하냐고 문자 보내 놓고

왜 안 나오는 거야?

분명 심심해서 놀자고 연락 한 걸 텐데..

혹시.. 얘들이랑 좀 사이 안 좋나?

생각해보니.. 그 이유밖엔 없었다.

내가 얘들 있다고 말하니까..

바로 잠이나 잔다고 했었잖아..

흠.. 그냥 얘들하고 어색해서 그런 거였구나.

에휴.. 가엾은 것..

친구들이랑 이렇게 어울리지도 못하고..

홀로 힘겹게 살고 있다니..


그나마 나 하나 바라보고 사는 모양인데..

난 이렇게 신나게 여자들이랑 술이나 퍼 마시고 있으니..

지연이 맘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래..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지.

가서.. 지연이랑 좀 놀아 줘야겠다.




"야.. 나.. 좀 가봐야겠다"

"네?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요?"

"아.. 딴 약속 있는 걸 몰랐어.. 미안해.."

"아뇨. 뭐 할 수 없죠."

"그래.. 술값은 내가 내고 갈 테니까.. 너희들끼리 더 놀다가."

"에이.. 뭐 우리도 어차피 선배님 없으면 더 있을 필요 없죠. 얘들아.. 우리도 가자.."


............

내가 분위기 깬 건가?


"왜? 더 있다 가지.."

"아뇨.. 저희도 술 적당히 먹고 나이트 갈려고 했어요.. 가요 언능"

"그..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이들과 헤어진 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루루~~

안 받는 그녀..

뭐야.. 삐졌나?

아니지.. 삐질 일은 없는데..

자는 건가?

다시 한번 걸어본다..

..............

역시나 받지 않는다..

자나 보네.

괜히 나왔잖아.. 젠장..

분위기 좋았는데..

안주나 다 먹고 나올걸..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먹다 말아서 그런가.. 괜히 아쉽네.

환수형 이라도 불러서 술이나 더 마실까?

그냥 이렇게 잠들기엔 너무나 아까운 밤이다.

시험도 끝났는데..

이렇게 일찍 어떻게 자냐고..


"어머.. 보..봉.. 아.. 안녕하세요?"


헛.. 주연씨?

편의점을 지나는데

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주연씨가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아.. 안녕하세요.."

"네.. 근데 이름이 봉.. 뭐였죠?"

"아.. 봉구에요. 김봉구"

"아.. 맞다.. 봉구씨. 집에 가시는 거에요?"

"네.. 주연씨는요?"

"어머.. 제 이름 기억 하시네요? 전 지금 분식집에 가려구요.. "


아 그래?

그럼 나도 가줘야지..

안 그래도 아까 안주를 먹다 말아서 배도 출출했는데..

잘됐네.


"아.. 그래요? 저도 마침 배가 고파서.. 라면 이라도 먹으러 갈까 생각 했는데.."

"그래요? 가요 그럼.."


오.. 주연씨는 왠지 성격이 시원시원한 거 같다.

좀 어색할지도 모르는데..

별다른 거부감 없이.. 동행을 허락해 준다.


"저기 근데.. "

"네.."

"저 그냥 그쪽한테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헐..

오.. 오빠?

뭐야 이 적극적인 태도는?

몇 번이나 만났다고 오빠래?

원래 이렇게 막 밀어 붙이는 스타일인가?


"네? 아.. 뭐.. 편하실 대로 하세요."


흐뭇함을 애써 감춘 채.. 태연하게 대답해 준다.


"봉구씨 봉구씨 이러니까 뭔가 이상하잖아요. 그냥 오빠라고 부르는 게 편할 거 같아요."


자신감이 넘쳐 나는구나.

하긴.. 이러면 남자들이 녹아 내리겠지..

나부터도 이렇게 설레는데..

여러 남자들 애 간장 태웠겠구나..

주연씨는..






"근데 오빠는 시험 끝났는데.. 왜 이렇게 일찍 집에 들어가는 거에요?"


분식집에 앉아 떡볶이를 먹으며 그녀가 묻는다.


"네? 아.. 그냥 뭐..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에휴.. 저두 그런데.. 심심해 죽겠어요. 시험도 끝났는데.. 뭐 이렇게 심심한지.."


............

요즘엔 사람들이 미녀들을 왕따 시키나?

지연이도 그렇고..

왜 죄다 이렇게 외롭게 사는지 모르겠네?


"우리.. 심심한데 술이나 한잔 안 할래요?"


헛..

잘못 들었나?

지금 내 앞에 이 아가씨가 나한테 술 마시자고 한 거 맞지?


"수.. 술이요?"


아.. 너무 당황한 티를 내버렸네.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 해야 했는데.. 쩝..


"네.. 술이요.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아.. 저야 뭐 주연씨가 마시고 싶다면야.."

"어머 그럼.. 제 친구 불러도 돼요? 그 친구도 술 진짜 좋아라 하는데.."


친구?

설마.. 남자 친구는 아니겠지?


"친구요? 뭐 저는 상관 없습니다 하하.."

"그럼 지금 전화해 볼께요. 지금 아마 할 일 없어서 집에서 만화책 보고 있을 거에요."


.............

나도 시험 끝나는 날 만큼은 만화책을 안 보는데..

이 친구들은 도대체 얼마나 할게 없으면..


그나저나 오늘 무슨 날인가?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여자들과의 술자리가..

단 하루 만에 두 번이나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착하게 살았다고 하늘이 복을 내려 주시는구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게요..


"그래요.. 안그래도 오늘.. 술이 땡기긴 했는데.. 잘됐네요."

"호홍.. 오빠가 쏘는 거죠?"


..........

흠..

또 쏴야 돼?

이러다 이번 달 생활비 거덜 나는 거 아냐?

그래도 뭐 주연씨와의 술자리인데..

이깟 돈 쯤이야.. 뭐..


"당연하죠..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맘껏 드세요.."

"그럼 빨리 가요. 엄마.. 나 술 마시고 올께.."


자리를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선다..




지연이도 연락해서 불러내 볼까?

지난번에 주연씨랑 인사도 했겠다..

크게 거부감 갖지는 않을 거 같은데..

일단 주연씨 친구 오면 상황 봐서 연락해 봐야지.




...........

근데 이 싸늘한 기운은 뭐지?

누가 뒤에서 쳐다보나?

슬쩍 뒤를 돌아보곤..

다시금 주연씨의 팔에 이끌려..

술집으로 향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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