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능범 때려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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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w
작품등록일 :
2023.05.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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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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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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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대련

DUMMY

늦은 시각.


침대에 누운 레이븐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불쾌한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블루가드의 일을 해오면서 실력이 부족했거나, 머리가 나빠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센스가 없어서 일 처리가 어설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순히 위험했던 A급 건에 과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A급 건은 과거에도 몇 번 맡아본 적은 있었다.


그중에서도 윅보다 신체 강화 수준이 높은 범죄자는 당연히 있었다.

신체 강화 수준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가진 특수능력과 역량을 발휘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충분한 환경이 갖춰진다면, 천희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를 때 없는 넓은 곳이 아니라 레이븐이 유리한 골목에서 윅을 상대한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또다시 윅 글라스처럼 싸움에 익숙한 상위 수준의 미르인들을 상대해야 한다면, 그때 환경이 또 레이븐의 능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는 법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던 레이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자를 벗는 것처럼 머리에 감고 있던 붕대를 벗어 쓰레기통에 떨어트렸다.


장검을 챙긴 레이븐은 윅을 상대했던 장소를 다시 찾았다.


붉은 슈트를 입고 주변을 지키는 레드가드 직원들이 레이븐에게 다가왔다.


레이븐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할 뿐이었다.

붉은 슈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 레이븐에게 길을 터주었다.


레이븐은 곧장 마지막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곳에 섰다.


윅이 사방에 불을 질렀던 주변은 마른 황무지가 되어있었다.


레이븐은 눈을 감고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았다.

머릿속으로 윅을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마치 가상의 윅을 상대하는 것처럼 몸을 날리며 격렬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윅에게 검이 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하아...”


“레이븐!”


레이븐은 순간 환청을 의심했다.


레이븐이 뒤를 돌았을 때, 양손에 곤봉을 하나씩 들고 있는 천희가 서 있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천희가 레이븐에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아. 정말. 레이븐! 레이븐이 말도 없이 밤늦게 수상한 행동을 하니까 절 깨우잖아요!”


“미안하다...”


“하여간. 윅 글라스 같은 녀석한테 벽이라도 느낀 거예요?”


부끄러웠던 레이븐이 슬쩍 검을 집어넣었다. 상황만 놓고 본다면 완전히 레이븐이 신입직원이었다.


젠장...


레이븐은 적어도 자신이 일을 가르쳐줘야 하는 천희에게만은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요!”


천희는 들고 있던 곤봉 하나를 레이븐에게 던졌다.

곤봉을 받은 레이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검 좀 쓸 줄 알거든요. 후련하게 해줄게요. 레이븐의 검보단 조금 많이 짧지만... 뭐 어때요. 핑곗거리로 딱 좋죠? 제가 진짜 벽을 느끼게 해드리죠.”


잠을 방해받은 것치곤 천희의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들떠 있었다.


곤봉을 만지작거리던 레이븐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벌써 직전까지 머릿속을 채우던 복잡한 생각들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 잠시만요.”


천희는 뒷머리를 묶었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묶여있는 뒷머리를 확인한 천희가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이제 됐어요. 들어와요.”


레이븐은 전력으로 천희에게 달려들었다.


천희는 레이븐의 공세를 받아내며 빈틈을 노리는 형태로 대련에 임했다.

그런데도 천희의 곤봉은 몇 번이나 레이븐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실전이었고 곤봉이 아니라 칼날이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경계에 신경을 기울여야 할 붉은 슈트가 천희와 레이븐의 대련을 감상했다.


교대하기 위해 찾아온 붉은 슈트들은 하나같이 처음 보는 미르인들의 대련을 감상하며 탄성을 질렀다.

붉은 슈트들은 대련이 끝나면 전해주기 위해 시원한 물이 담긴 작은 페트병을 들고 왔다.


하지만 붉은 슈트들이 몇 번이나 교대를 거듭해도, 대련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레이븐은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폐가 찢어지도록 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천희의 매력적인 흰 목선에 점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허리를 향해 휘둘러진 곤봉을 낚아챈 천희는 손바닥을 펼쳐 레이븐의 흉부를 강하게 밀었다.


레이븐은 곤봉을 놓치며 그대로 날아가 흙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전신의 힘이 쫙 빠지며 움직일 여유가 사라졌다.


“하아... 해가 뜨잖아요. 이제 그만 해요. 이렇게까지 땀을 흘려본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


“나는 죽을 거 같은데... 하하하...”


보고 있던 붉은 슈트 하나가 레이븐과 천희처럼 땀을 흘리고 있는 페트병 두 개를 들고 왔다.


“좋은 구경 했습니다. 박수를 쳐 드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박수쳐 줘도 괜찮아요.”


천희가 물병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손이 빈 붉은 슈트는 보란 듯이 답답할 것 같은 느린 박수를 선보였다.


“풉... ”


천희는 뻗어 있는 레이븐에게 다가가 차가운 물병을 레이븐의 목에 가져다 댔다.

레이븐은 화들짝 놀라며 물병을 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고맙다.”


“제가 가지고 온 거 아니에요. 레드가드에서 챙겨줬어요.”


레이븐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고맙다고 말했지만, 천희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레이븐은 말없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


한창 자야 할 시간에 필사적인 대련을 마친 천희와 레이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레이븐이 채비하고 있을 때, 석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잠은 푹 주무셨습니까?”


“예. 개인 숙소처럼 여긴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편하게 계셔주세요. 아 그리고 3층 정보과 회의실로 천천히 와주세요. 루스터 씨에겐 제가 똑같이 연락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레이븐이 문을 열었을 때, 타이밍을 잰 것처럼 천희가 동시에 나왔다.

레이븐은 천희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너...”


“혼자 가면... 뻘쭘할 거 같아서... 아니. 레이븐 때문에 늦잠 잔 거잖아요.”


레드가드의 여직원들 사이에서 천희와 레이븐을 향한 미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근처에서도 듣기 힘들 정도로 작게 소곤거릴 뿐이었기에, 자세한 내용을 알아내긴 어려웠다.


긴 직각 탁자가 있는 정보과 회의실에는 석현과 크레인,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이미 도착한 올리아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측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리아나를 본 천희가 당황하며 레이븐에게 따졌다.


“저녁이나 돼서 오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려고 했지만, 얼른 상태를 보고 싶어서 서둘렀어.”


올리아나가 대신 답변했다.

조금 심술이 난 것 같은 올리아나가 비꼬며 말했다.


“푹 쉬라고는 했지만 이건 정말 예상 밖인걸? 이럴 줄 알았으면 편하게 앉아서 올 걸 그랬어? 뭐 때문에 그렇게 급한 마음을 먹어서 표도 없는 기차를 서서 타고 온 걸까...”


아무리 자기부상열차가 빠르다고 해도 거의 대륙 끝단에 있었던 소보까지 오기엔 족히 한나절은 걸렸다.

레이븐의 안색을 확인한 올리아나가 안심한 듯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급할 때를 대비해서 비워두는 좌석이 있거든. 앉아서 타고 왔어. 이미 소보 정보과장님에게서 얘기를 들었지만, 너희 얘기도 들어보고 싶은걸? 앉아.”


올리아나의 카리스마는 공간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벌을 받기 직전의 아이처럼 서 있던 레이븐과 천희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먼저. 루스터. 코드네임은 아쉽게 됐어. 이번 소보의 A급 건에서 루스터로 암호화가 돼버려서. 다른 B~C급 건이었으면 몰랐겠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번 사건이 주목도가 굉장히 높잖아...”


“알겠어요...”


천희는 암호화라는 단어에서 의지를 잃고 풀이 죽었다.


“대신. 총본부에서 귀엽고 강한 이미지로 만들어주겠다고 답변이 왔어.”


“네?! 그러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러니?... 그래. 그럼 그렇게 전해줄게.”


천희는 단순히 놀림당했던 예전 별명과 유사한 코드네임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총본부의 인물들이 대체로 비상식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천희는 더 이상 총본부가 자신에게 관여하지 말아 주길 바랐다.


“윅 글라스가 어떤 말들을 했었어?”


올리아나의 시선은 레이븐을 향했다.


“레드가드와 블루가드의 간섭이 없는 도시를 얻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건 들었어.”


“윅 글라스의 생각대로 되었겠습니까?”


여전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레이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마도. 마수 토벌대도 바빠지고 있다는 얘길 들었으니까.”


올리아나의 대답에 크레인이 눈을 감았다.

소보의 시민들이 전부 난민이 되어 소보를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소보가 점령당한 후라면, 토벌대의 지원을 요청하고 소탕전을 벌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편이 블루가드로서는 윅 글라스의 일당을 처리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올리아나의 무리하지 말라는 조언은 여차하면 도시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우선 협상에 응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조치를 취했겠지. 제대로 규모파악이 되었어도 지금은 지원을 못 받았을 거야.”


“토벌대는 왜 바빠진 건가요?”


순수하게 궁금했던 천희가 물었다.

올리아나 대신 석현이 설명했다.


“칼비노스 중앙 고원에 대형 마수 무리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또 칼비노스인가...”


크레인이 중얼거렸다. 석현이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최소 인력만 남겨두고 집결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토벌대 출신인 윅 글라스가 이것까지 알고 일을 벌였다고 보는 게 맞겠죠...”


“그래서 곰이나 소 형태의 마수가 도시 근처에 출몰하면 우리한테 지원요청이 올 거야.”


“네?... 저희도 바쁜데요.”


올리아나가 불편한 소식을 전하자, 천희가 따지듯이 말했다.


올리아나가 앞머리를 들고 이마를 드러내며 천희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게 말이야...”


“이건 부당해요! 따져야겠어요!”


“부탁해. 이왕이면 부모님께 잘 좀 말해줄래?”


올리아나는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천희를 부추겼다. 그리고 올리아나는 다시 시선을 레이븐을 향해 옮겼다.


“윅 글라스가 다른 말은 없었어? 나도 잠깐 만나봤지만, 말이 꽤 많던데?”


“저희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치밀하네. 신입도 그렇고 소보도 그렇고. 이쯤 되면 윅 글라스가 불쌍한걸?”


올리아나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갔지만, 레이븐은 윅 글라스의 사탕발림에 자신이 현혹되었는지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전 윅 글라스 같은 녀석과 함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머. 내가 너무 집요했나?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었어.”


레이븐이 알고 있는 한 올리아나보다 잔인한 사람은 없었다. 레이븐은 침을 꿀꺽 삼키며 올리아나를 응시했다.


회의실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올리아나와 레이븐의 눈치를 살피던 천희가 말했다.


“팀장님 오해에요. 레이븐은 그냥 윅 글라스한테 진 게 분했던 것뿐이에요.”


“뭣?!”


레이븐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커다란 눈동자를 만들며 크게 당황했다.


“푸하하핫!!!”


올리아나가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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