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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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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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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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낙하

DUMMY

단여는 산이 많은 나라였다.


그 중에서도 수도인 천강은 수많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접근이 힘들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


워낙 산이 많은 탓에 어떤 산은 몇십 년 동안 외부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산들 중에 하나, 이름도 잊혀진 산의 암자에서 여자 한 명이 걸어나왔다.


소박한 차림새를 한 그녀는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인이 건넨 편지를 펼쳐 읽었다.


"무곡으로 간다는구나. 전 대륙을 여행할 기세인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산청의 말대로 그 사내는 대단한 무위를 지닌 것뿐만 아니라 특수한 사정도 있는 모양입니다. 낯선 이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희가 이토록 오래 동행할 줄은 몰랐군요."


여자는 편지를 구겨 손 안에 넣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을 펴들자 편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현산에서 산청과 그 남자를 맞붙게 한 것이 아무래도 걸리는구나. 산청의 의사였고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니 내버려두긴 했다만, 그 남자는 예상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야."


"산청은 그 뒤로는 조용하지 않습니까? 외간 남자에게 진 것이 못내 충격이었나 봅니다."


"희가 보낸 편지를 보니 산청이 검이란 남자에게 희와 동행하는 그의 남성을 자른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구나."


"산청의 보고에는 그런 말이 없지 않았습니까?"


"희와 같이 다니는 남자의 수준을 보기 위해 기무결투에 참가했고 졌다, 그렇게 쓰여져 있었지."


"산청이 경솔했군요. 다음 서편을 보낼 때 주의를 주겠습니다."


노인의 앞에서 마루 위에 선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성은 비밀 암살 집단 은랑의 단주, 란이었다.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 유지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구성원들의 일체감 혹은 공포.


속한 집단에 일체화되어 비밀을 지키거나, 누설 시에 닥칠 벌에 대한 공포로 입을 닫거나.


항간에 안개처럼 떠도는 소문과는 다르게 은랑은 전자에 속하는 집단이었다.


단주인 란이 그녀만이 아는 방식으로 은랑에 적합한 사람을 선별해 접촉하여 일원으로 만든다.


포섭에 실패한 적도 없고, 일원이 된 자가 암살이라는 방식에 거부감을 표한 적도 없이 금방 은랑과 일체되어 움직이게 되는 것은 구성원들을 선별하는 란의 신묘한 복안으로 가능했다.


그들 모두가 한번은 살기를 포기한,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혼이 죽어버린 빈 껍데기였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새로운 단원이 들어오는 것은 오직 그녀가 지정한 사람에 한해서였으며, 기존 단원들 역시 서로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


특수한 경우, 이를테면 새로운 단원의 포섭 또는 교육을 맡은 자들은 예외였다. 새 단원을 맞이하는 자들이 그들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므로.


그리고 그것은 10년 전 희의 교육을 맡았던 산청의 경우에도 해당되었다.


10년 전, 희가 어릴 때 그녀는 은랑에 선택되어 산청의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그 과정에서 희는 산청의 얼굴을 볼 수 없었으나 산청은 달랐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아이에 대해 각별한 정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산청 역시 희와 비슷하게 몸과 마음이 망가졌던 경험이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단주인 란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산청을 책망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초목이 우거진 깊은 산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봄이 오는군. 눈이 녹고 낯익은 새들이 날아와 터를 잡는 걸 보니."


"그렇군요."


"희에게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래야지요."


검은 알지 못했으나 금랑전에서 평봉으로 하여금 청경을 뽑게 해 그들을 위기에서 구한 것도, 그들을 특급 범죄자에서 해제시킨 것도 란의 비호 아래 은랑이 한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가 구성원들을 아끼고 지키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를 직접 봐 두는 편이 좋겠구나."


"그러시지요. 준비가 필요할 때 말씀해 주십시오."


란은 암자로 들어갔다. 시중을 드는 노인 역시 옆에 딸린 자그만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



희는 검과 무영, 그리고 얼빈과 함께 늦은 밤 무곡의 한 술집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먼 할머니인 휘의 전언을 가지고 그녀가 보낸 사람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키가 작고 날렵하게 생긴 사람으로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몇 번을 마주친다 해도 쉽게 눈치채지 못할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


"휘 님의 말씀입니다. 부아거의 정보를 확인했으며 진실이라고 믿겠다고, 오랜 궁금증을 풀어주어 고맙다고 하셨고, 이 지도를 건네셨습니다."


그는 지도 한 장을 건넸다. 무곡의 수도 재래의 궁궐 내를 묘사한 지도였다.


그곳에 있는 많은 건물 중 하나에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곳이 여러분이 찾는 장소라고 하셨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것을 함께 전하셨습니다."


그것은 희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도복이었다.


"이게 뭐예요?"


"검격을 막아주는 이능이 걸린 옷입니다. 웬만한 갑옷보다 튼튼합니다."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네, 그럼."


남자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떠나갔다.


"흐응, 할머니께서 좋은 옷을 주셨네."


희는 받은 도복을 이리저리 펼쳐보며 젓가락을 들어 옷을 쿡쿡 찔러보았다.


"휘는 당신을 꽤나 어여삐 여기는 모양이군."


"그건 당신이 할머니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얼마나 계산적인 분이신데요."


얼빈은 주위를 한번 살핀 후 남자가 두고 간 지도를 펼쳐보았다.


"대체 이 지도를 어디서 구한 거지? 일반인들은 출입조차 함부로 하기 힘든 재래의 궁궐 지도를···. 게다가 비밀 장서관은 혼조의 첩보부대조차 알아내는 데 몇 년이 걸렸는데."


"자세히 알려고 들지 않는 편이 좋을 걸요. 그리고 계속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비밀 장서관의 위치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엄격하게 통제되는 궐 내에 들어갈 방법이 없는데."


"방법이라면 있죠. 저 역시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얼빈은 품 속에서 괴이하게 생긴 조형을 각각 세 개씩 꺼냈다.


"이게 뭐죠?"


"저는 재래에 있는 도적 조합에서 궁으로 숨어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도적 조합이요?"


"네. 어디에나 그림자에 숨는 자들이 있는 법이죠. 어떤 고초를 겪어 그들과 접촉하고 이것을 손에 넣었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역시 도망자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가, 이런 데엔 빠삭하네, 형."


"고맙다. 어쨌든 도적 조합의 말에 따르면 궐 내로 진입할 때는 이능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방법이 막히게 되죠. 동물로 변신하는 것도, 무영처럼 모습을 숨기는 것도요."


"그럼 도둑들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을 넘으면 된다는 거예요?"


"당연히 그것도 궐을 지키는 이능자들에 의해 발각되겠죠. 애시당초 경비가 촘촘하여 사람은 접근도 못하지만요."


"그럼 어떻게 들어가라는 거예요?"


얼빈은 위를 가리켰다. 그들이 있는 술집의 천장을 잠깐 바라본 일행은 곧 그가 한 말을 이해했다.


"하늘에서?"


"네. 이능이 감지되지 못할 만큼 먼 하늘에서 낙하하다 지면에 닿기 직전에 낙하산을 펼치는 겁니다."


그는 가져온 도구들의 쓰임새를 설명해주었다. 이능이 깃든 물건들로 하나는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도구, 하나는 낙하하는 속도를 줄여주는 낙하산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경비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거예요?"


"궐 내에 들어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장소나 왕이 사는 곳은 당연히 경비가 따로 몇 겹으로 지키고 있으니, 원래라면 침입한다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지요."


"우리의 목적이 비밀 장서관이라서 가능한 거군."


얼빈은 지도의 변두리에 붉은 원으로 둘러쳐진 건물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궐의 외곽에 있는 건물입니다. 상식적으로 책을 보관하는 곳에 역귀까지 드나드는데 경비를 삼엄하게 세워 놓았을 리가 없죠."


"그렇군. 오늘 밤 개시하겠소."


그렇게 해서 일행은 한밤의 미친 낙하를 시도하게 되었다.


궐 내에서는 밤에도 횃불이 밝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목표 지점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빈과 검은 각각 하늘로 떠오르는 도구의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 있었고, 희와 무영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목표 지점의 상공까지 왔으니 여기서 손잡이를 놓으시면 됩니다.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착지 지점을 잘 잡으시고 떨어지기 직전에 낙하산을 펴시면 됩니다. 무섭다고 낙하산을 미리 펴시면 너무 눈에 띄니 조심하시구요. 그럼 먼저 갑니다."


얼빈은 먼저 손을 놓고 까마득한 발밑 아래로 날아 내려갔다. 검도 이어서 손을 놓고 떨어졌다.


희와 무영 두 사람은 손잡이를 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뭐 해, 어서 손 놔, 누나."


"넌 무섭지도 않니?"


"날 어쩌지 못하는 죽음이란 건 전혀 무섭지 않··· 으아아아―!!"


희는 무영이 말을 하는 도중에 손을 놔 버렸다.


"바보야, 혀 씹을 뻔했잖아!"


두 사람은 함께 낙하하면서도 투닥거렸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얼빈이 가져온 도구들이 각각 세 개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씹을 수 있을 때 많이 씹어둬."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얼빈이 준 낙하산, 펴지지가 않는데? 평소에 좀 까칠하게 굴었다고 불량품을 줬나봐."


"뭐야?"


황급하게 희의 등을 살피는 무영의 손을 희가 살짝 쳐내며 씩 웃었다.


"농담이야."


그들이 땅에 닿기 직전 희는 낙하산의 줄을 잡아챘고 그들은 안전하게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누름쇠를 누르자 낙하산은 다시 갈무리되어 손 안에 들어오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 작은 거 하나에 이능 몇 개가 걸린 거야? 무곡 사람들 대단하네."


"쉿, 이제부터는 미리 약속한 수화로 하겠습니다."


얼빈이 앞서 걸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공중에서 궐 내의 특정한 장소를 향해 한번에 착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떨어진 장소는 비밀 장서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발소리를 죽여 나아가는 그들의 앞에 작고 초라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빈이 지도를 펼쳐 위치를 비교해보더니 손으로 건물을 두 번 가리키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취했다.


그들이 찾던 비밀 장서관이 이곳이 맞다는 의미였다.


비밀 장서관치고는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희는 얼굴을 구겨 보였고, 얼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안은 나무로 된 선반 몇 개에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평범한 창고와 같은 모습이었다.


적막만이 감도는 목조 건물 안을 얼빈이 면밀히 살피고 있는데, 검이 바닥에 있던 깔개를 휙 걷었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 통로가 나타나며 안쪽에서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얼빈이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누구신가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일행은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케케묵은 창고에 이런 늦은 밤에 오는 사람이 있다니.


돌아본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였다.


달빛을 받으며 그녀의 얼굴이 희게 빛났다.


"이번 시대에서는 검 님이셨죠. 다시 뵙는군요."


그렇게 말한 여자는 다름 아닌 매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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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200년 전, 대공습 24.03.05 9 0 14쪽
56 개곰 24.03.04 6 0 14쪽
» 미친 낙하 24.03.03 12 0 12쪽
54 그만 놀라고 싶은 여자 24.03.02 15 0 11쪽
53 대륙을 가로질러 24.03.01 15 0 12쪽
52 다시, 그곳을 향해 24.02.29 13 0 11쪽
51 열받게 생긴 놈 24.02.28 12 0 13쪽
50 기운찬 여행 24.02.27 12 0 12쪽
49 목적 24.02.26 12 0 12쪽
48 바다 위에서 24.02.25 11 0 13쪽
47 24.02.24 12 0 15쪽
46 대형 상단과 함께 24.02.23 17 0 12쪽
45 둘째와 넷째 24.02.22 16 0 12쪽
44 현산의 여자 24.02.21 16 0 13쪽
43 수도에서 24.02.20 17 0 11쪽
42 두 사람의 싸움 24.02.19 19 0 12쪽
41 문제의 사람 24.02.18 14 0 12쪽
40 한나 24.02.17 18 0 15쪽
39 무의 시험 24.02.16 21 0 13쪽
38 우연한 만남 24.02.15 19 0 12쪽
37 유랑하는 자들 24.02.14 18 0 12쪽
36 위기···? 24.02.13 19 0 11쪽
35 산 넘어 산 24.02.12 17 0 12쪽
34 숨어들다 24.02.11 18 0 12쪽
33 은랑 24.02.10 18 0 12쪽
32 사승부 24.02.09 20 0 12쪽
31 각오 24.02.08 17 0 12쪽
30 결의 24.02.07 17 0 14쪽
29 정체 24.02.06 16 0 12쪽
28 괴물에게 가는 방법 24.02.05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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