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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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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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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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찬 여행

DUMMY

묘일은 방금 전 사람을 죽인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역시 너 맞았구나? 그럴 줄 알았어. 같이 가자, 따라와."


"아니, 난 널 따라가지 않는다."


"왜?"


"이곳에 볼일이 남았다. 그리고 난설에 다시 갈 생각은 없어."


묘일은 금세 얼굴이 굳었다.


그 급작스러운 표정 변화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확실히 달랐다.


"이것저것 실컷 물어보더니 안 간다고?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그녀의 몸 주변으로 알 수 없는 귀기가 솟았다.


선원들은 적철의 시신을 치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대화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묘일은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 검을 바라보다가 이내 귀기를 거두고 걸음을 돌렸다.


"네 맘대로 해. 부아거 님한테 가서 말하지 뭐."


"잠깐."


"왜, 역시 따라오려고?"


"네가 말하는 부아거는···."


"부아거 님이 왜?"


"키가 이 정도 되는, 머리카락을 이쯤까지 기른 여자가 맞나?"


검은 500년 전, 그의 입장에서는 몇 년밖에 흐르지 않은 그 때 만난 여자의 생김새를 떠올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굳이 찾자면 부아거 님은 쟤랑 비슷한 느낌인데."


묘일은 손가락으로 희의 옆에 서 있던 무영을 가리켰다.


그 배의 유일한 아이였던 무영은 흠칫 놀라 바짝 굳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3대 부아거라도 탄생한 건가?"


묘일은 눈썹을 찡그리며 접힌 귀를 닫았다.


그것이 그녀의 버릇인 듯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부아거 님은 부아거 님이지. 3대는 뭐야? 인간들이 하는 말은 가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리고 그녀는 배의 난간을 훌쩍 건너뛰며 바다로 빠져들었다.


멀리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던, 온 몸에서 진액을 흘리는 역귀가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더니,


이내 그녀를 머리에 이고 물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멀리서 대기하는 역귀들의 무리를 향해 스르르 나아갔다.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잔뼈가 굵은 선원들 중에서도 몇이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바다에 떠다니는 역귀의 점액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두로, 적철의 시신을 수습해라. 그리고 당신은 잠시 나를 따라와."


필림은 두로를 비롯한 선원들 몇에게 그렇게 말하고 해산을 명했다.


검은 희와 무영과 함께 필림의 선장실에 앉았다.


"이 상황을 전부 설명할 수 있나? 아니, 그 전에 당신도 역귀인가?"


"아니, 나는 당신네들과 같은 사람이오."


"500년 전에 누구였다고? 그리고 부아거를 아는 데다 난설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를 본 적이 있는 건가?"


답답한 마음이었는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필림을 검이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전에 한가지 말하겠소. 당신은 내가 당신의 선단에 위협이 되는 자인지 다시금 정립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당신의 선단에 조그만 피해라도 입힐 생각은 없소."


필림은 서랍에서 물부레를 꺼내 불을 당겨 깊게 피워물며 몸을 깊이 기댔다.


"정말 귀신에 홀린 기분이야. 200년 전 대공습 때 바라안이 사람 모습을 한 역귀한테 멸망당했다고 하더니,


그 편린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그들도 이렇게 멸망했겠군."


"어떻게 그들이 나를 알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긴 얘기고 아마 믿기 힘드실 거요."


"그래··· 저승 문턱까지 갔다왔으니 어떤 얘기든 믿을 준비는 되어 있다네."


검은 최대한 간략하게 그가 500년 전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가 짊어진 가혹한 운명의 멍에와 그것을 비웃듯 쥐어진 청경이라는 신물의 존재까지도.


그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필림은 침중하게 물부레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선장실을 가득 메운 연기에 무영과 희는 괴로워했으나,


선실 바깥에는 그들을 적대할지도 모르는 선원들이 한가득이었으므로,


무영은 거의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었고,


희는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선장실에 있는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기구한 이야기군. 현실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어."


필림이 겨우 내뱉은 한 마디는 그것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정은 저렇게 늘 현실로 끌어내려주는 이들과 함께라 조금 낫소."


검은 침대에서 부비적대고 있는 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때, 선장실의 수화기가 울렸다.


통제실과 선으로 연결된 우묵한 철제 통 모양의 수화기를 붙잡고 필림이 말했다.


"말해라."


"중도가 보입니다, 사령관님."


"정박 준비를 하라고 일러라."


필림은 몸을 일으켰다.


"정말 기구한 이야기라 선원들에게 납득시킬 수는 없겠군.


알겠지만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 위에서 낯선 것은 배격하는 게 우선이라,


이 이상 함께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해하오."


"대신 작은 배 한 척을 준비해 주지. 발리아리 군도의 북동쪽까지는 알아서 가셔야 하겠지만."


"호의에 감사하오."


"중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중도에서도 선원들 입단속은 내가 잘 하겠소. 그럼."


필림은 선단을 지휘하러 떠났다.


일행 세 명 역시 그들을 귀신처럼 바라보는 선원들의 눈을 피해 배의 한구석에 모여앉았다.


검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던 무영은 아직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스승님이 사적도에서 그 로구쇠라는 사람을 찾았던 게 그러면···."


"500년 전 난설에서 돌아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희는 그새 가까운 배의 난간으로 가서 속을 게워내고 왔다.


핼쓱한 얼굴이 된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해요? 조각배 한 척으로 군도를 가로질러 가라니.


그것도 해적이 득실댄다는 그 해역에서 하필이면.


조금만 늦게 와주지, 그 묘일이라는 여자."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수밖에. 배를 따로 마련해준 것만으로 그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였소."


그들은 그렇게 중도에서 필림의 선단과 헤어졌다.


뒤에 따라오던 배들 중 하나에서 작은 조각배를 징발해온 필림이 인사를 건넸다.


"그럼, 안녕히···."


"잠깐, 혹시,"


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왜 그러지?"


"선원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여자가 쓰던 금줄 말이오."


"아, 향회가 쓰던 것 말인가? 그게 어쨌기에?"


"혹시 그 줄을 우리의 배에도 달아줄 수 있겠소?"


"그야 어렵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길이로 마련해 주면 되지?"


"최대한 길게 부탁하오."


필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 중 하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낚시에라도 쓰려고 그러나? 웬만한 가재도구들은 배에 다 들어있긴 하다만."


"호의에 다시금 감사를 표하오."


필림은 사람 좋게 씩 웃었다.


그의 뒤로 땋은 머리에 달린 다섯 개의 색실이 바람에 날렸다.


"주는 게 아니라네. 일이 끝난 뒤에 그 배는 여기 중도에 있는 만향의 지부에 반납해 주고."


"당연히 그리 하겠소."


"좋아. 그럼 안녕히. 무운을 비네."


그들은 필림과 헤어져 그들의 배에 올라탔다.


비록 작은 배였으나 노를 저어 가는 구식이 아닌, 배의 옆과 뒤에 달린 바퀴가 돌며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장치가 있었다.


이능자가 만든 장치인지, 해풍만으로도 동작하는 바퀴를 가진 배는 속도가 꽤 빨랐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희가 말했다.


"선실도 있고, 말대로 가재도구도 웬만한 건 다 있고.


작은 배로 옮겨타니까 멀미도 없고. 좋네요. 기운차게 가 볼까요?"


그러나 그들의 기운찬 여행은 채 하루도 가지 않아 끝났다.


멀리 낚싯배인 것으로만 보였던 평범한 배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검은 돛을 올리고 그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온 것이었다.


국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위장하고 있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를 달고 노략질을 하는 해적들이었다.


호랑이가 그려진 선수상에 호기롭게 발을 딛고 칼을 뽑아든 채 그들이 외쳤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가진 것 다 내놓고 꺼져! 물론 그 배도 포함이야!"


"헤엄들은 좀 치시나? 젖 먹던 힘까지 내야 될 거다!"


사람이 별로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검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조금 큰 배로 옮겨탈 수 있겠군."


"어머, 그럼 좋죠."


"배 위로 올라가서 정리하고 오겠소."


검은 흰 깃발을 꺼내 항복의 의미로 흔들었다.


어느새 해적선은 얼굴이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뭐야, 거지 놈들이잖아! 털어서 돈푼이나 나오겠나!"


"저기 봐, 여자가 죽음으로 예쁜데! 창가에 팔면 돈 좀 만지겠어!"


"그 전에 실컷 갖고 놀다가 팔아넘기자!"


"어이! 알아서 값나가는 것들 챙겨서 옮겨타! 잔뜩 귀여워해 줄테니까!"


"크하하핫!"


온갖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해적들을 뒤로하고 검이 무영에게 물었다.


"무영, 같이 가겠느냐?"


무영은 희에게 받은 검을 꼬나쥐며 결의를 다졌다.


"응, 희 누나한테 저런 말까지 하는데 사내로써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다치지 마라. 바다 위에서는 작은 상처도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힘내요! 스승님과 제자님!"


희는 뒤에서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검이 먼저 해적선 옆의 줄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무영이 그의 뒤를 따라 칼을 입에 물고 따라 오르는데,


쿠우우웅!!!!!!


"크아아아악!!!! 커어억!!!!"


챙!!!!!챙!!!!!!!


"으아아악! 뭐야 이 놈!"


푸욱!!!!! 써걱!!!!!!!!!


"커허어어억! 크윽!!!!!!!!"


배 위에서는 이미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검이 현산에서 산 칼로 해적들을 베어넘기는 소리였다.


무영이 줄사다리를 완전히 올라서자, 그곳에는 이미 전투 의지를 상실한 해적 하나만이 살아 있었다.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그를 왠지 검은 마무리하지 않고 보고 있다가,


무영에게 턱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뭐, 뭐, 뭐야! 너희들은! 구, 국, 국가 소속이냐?"


사정없이 말을 더듬는 그는 무영의 실력으로도 상대하기 쉬웠다.


무영은 검에게 배운 검술로 마지막 남은 해적의 손목을 베어 제압한 후, 목을 쳐 완전히 끝냈다.


그리고 희가 금줄을 가지고 해적선 위로 올라왔다.


"이 배에는 추진장치가 없네요. 저 배에서 옮길 것들은 다 옮기고, 다시 출발하죠."


그들은 필림에게서 받은 배에서 추진장치와 가재도구들을 해적선에 옮겨 실었다.


해적선에 있던 도르래와 밧줄로 작은 배를 끌어올려 배의 옆구리에 매어놓은 후, 그들은 해적선을 타고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다시 그들의 기운찬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들을 보고 해적기를 내걸며 다가오는 해적선들도 있었으나, 그들도 맞서 해적기를 걸면 열에 서넛은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나머지는 선상 전투로 해결해야 했지만, 검의 무용으로 일행은 위기 없이, 발리아리 군도의 북동쪽,


문제의 문양이 있다는 그 동굴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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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200년 전, 대공습 24.03.05 9 0 14쪽
56 개곰 24.03.04 6 0 14쪽
55 미친 낙하 24.03.03 11 0 12쪽
54 그만 놀라고 싶은 여자 24.03.02 15 0 11쪽
53 대륙을 가로질러 24.03.01 15 0 12쪽
52 다시, 그곳을 향해 24.02.29 13 0 11쪽
51 열받게 생긴 놈 24.02.28 12 0 13쪽
» 기운찬 여행 24.02.27 12 0 12쪽
49 목적 24.02.26 12 0 12쪽
48 바다 위에서 24.02.25 11 0 13쪽
47 24.02.24 12 0 15쪽
46 대형 상단과 함께 24.02.23 16 0 12쪽
45 둘째와 넷째 24.02.22 16 0 12쪽
44 현산의 여자 24.02.21 16 0 13쪽
43 수도에서 24.02.20 17 0 11쪽
42 두 사람의 싸움 24.02.19 19 0 12쪽
41 문제의 사람 24.02.18 14 0 12쪽
40 한나 24.02.17 18 0 15쪽
39 무의 시험 24.02.16 21 0 13쪽
38 우연한 만남 24.02.15 19 0 12쪽
37 유랑하는 자들 24.02.14 18 0 12쪽
36 위기···? 24.02.13 19 0 11쪽
35 산 넘어 산 24.02.12 17 0 12쪽
34 숨어들다 24.02.11 18 0 12쪽
33 은랑 24.02.10 18 0 12쪽
32 사승부 24.02.09 20 0 12쪽
31 각오 24.02.08 17 0 12쪽
30 결의 24.02.07 16 0 14쪽
29 정체 24.02.06 16 0 12쪽
28 괴물에게 가는 방법 24.02.05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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