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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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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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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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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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2: 010514 사건 종결

DUMMY

[Z 어? 나틸리! 오늘도 놀러 돌아다니는 거야?]


[N 뭐? 오빠, 내가 어딜 봐서 놀러 다니는 것처럼 보여?]


아침 9시에 옷을 잘 차려입고 혼자 나온 나는, 나오자마자 편지를 돌리러 다니는 제미크를 만날 수 있었다. 에브게닌 가에서 좋은 자전거를 타본 나로선.. 저 삐걱삐걱거리는 쇳소리를 내는 자전거를 보자 내 생각 이상으로 구린 자전거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우리들이 외제 고급 자전거 선물로 받은 걸 알면.. 저 오빠 배아파 죽으려고 하겠지?


[Z 야, 마을사람들한테 소문 다 났어. 그 마법사랑 맨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거.]


[N 마을 사람들이.. 날 보고 뭐라고 해?]


[Z 이제 여관 잘되니까 퍼져가지고 직원들에게 다 떠맡기고 놀러다닌다고, 완전 헤이해졌다고 걱정들이 많으시던데?]


[N 뭐? 나에 대해서 뭘 그렇게 안다고! 나 여관운영할때보다 요즘이 바쁘고 힘들어 뒤질 것 같단 말이야! 누가 그래, 누가 그러냐구!]


[Z ..우리 엄마랑 알리치 엄마가.]


[N 음.. 걱정해주셔서 고맙다고 전해.]


나랑 많이 친한 두 오빠의 어머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면,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겠구나.. 그래, 차라리 그런 단순한 오해를 받는 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눈엔 여관일에 완전 손놓고 친구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일하기 싫어져서 놀러다니는 거라고 충분히 생각할 만 하다.


[N 오빠, 내가 알기론 알리치, 아침에 번화가 순찰 돈다고 하던데.. 맞지?]


[Z 응? 아닌데? 나 아침에 성당에서 만났는데?]


[N 뭐라고? 성당에서 왜?]


[Z 성당에서 뭐 해야 될 게 있어서 어제 거기서 잤대. ]


아아.. 성당병원에 있는 모리슨을 감시하기 위해 거기에 있나 보구나? 참.. 말단 순경이라 그런지 힘든 일은 죄다 떠맡는구나.. 불쌍한 우리 오빠.


성당은 잘 알겠지만 우리집과는 꽤 거리가 먼, 남쪽 지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아.. 자전거가 있으면 이정도 거리도 10분 안쪽으로 쉽게 갈 수 있겠지? 지금은 자전거가 없는 바람에 20분 넘게 걸어간 나는, 성당을 들어가자마자 로슈아를 만날 수 있었다.


[N 로슈아 오빠, 오랜만이야, 안녕?]


[R 아! 나틸리구나, 반가워.]


[N 혹시.. 옆의 병원건물에 알리치 만난 적 있어?]


[R 하하하! 알리치? 당연히 봤지! 어제 밤부터 어떤 환자를 감시한다고 머무르고 있거든.]


[N 오빠, 어제 들어온 남자애.. 상태가 어때? 내가 듣기론 온몸이 만신창이라고 들었는데..]


어지간한 일에는 온화한 미소를 잊지 않는 로슈아가, 정말 심연이라도 맛본 것처럼 공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얼마나 심하게 다쳤길래 저 오빠까지 저럴까?


[R 알리치가 말하길.. 정말 거대한 대형견에게 물어뜯겼나봐. 약간 허약해 보이긴 하지만 175의 키에 성인인 남자가 처참하게 온몸이 물어뜯겼더라구.. 그런데 말이야, 나틸리.. 이빨 자국이.. 난 개 이빨자국으로 그런 이빨 자국은 보지 못한 것 같거든? 도대체 어떤 종의 개한테 그렇게까지 물린 걸까?]


당연히 그렇겠지! 오빠! 개가 아니라 인간한테 물어뜯겼으니까! 알리치가 괜히 충격을 주기 싫어서 로슈아한테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이쯤되니까, 나도 어떻게 물어뜯겼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곧바로 성당 옆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으로 달려가서, 사제님들에게 알리치의 위치를 물으니 곧바로 나에게 말해주셨다.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가서, 남자 화장실 쪽으로 가보니 알리치가 씻고 나서 눈을 감고 이빨을 닦고 있었다. 참.. 어쩌다가 갑자기 여기로 오게 된 걸까? 어제 저녁엔 이런 말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N 오빠, 잠 안잤어?]


[A 야! 여기 남자 화장실이야! 임마! 난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그래?]


[N 아, 미안.. 바깥 퍼걸러에서 앉아서 기다릴게.]


곧바로 바깥 퍼걸러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오빠가 평소의 말끔하고 맵시있는 옷매무새로 와서 나의 옆에 앉았다.


[A 어? 너 혼자 왔냐?]


[N 응.. 많이 오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나 혼자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 에르제랑 빅토르에게 말하고 혼자 왔어.]


[A 뭐가 부담스럽다는 거냐?]


[N 응.. 그게.. 아! 그 전에, 오빤 왜 갑자기 여기에 있어?]


[A 왜 여기에 있냐구? 에이, 젠장! 짜증나서 정말! 왜 여기에 있겠냐? 샤노브 그 누님 때문이지! 경감님이 갑자기 밤중에 불러서 성당병원에 있는 그 자식 감시하라고 말하는 바람에 여기 와서 새벽 2시까지 감시한 거야. 저 새끼.. 왜 저렇게 늦게 자? 짜증나게! 덕분에 5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짜증나 죽겠다!]


[N 그래.. 오빠, 고생이 많네?]


[A 그나저나, 왜 온거야.. 응? 왜 온 이유를 말 안해?]


[N 바로 말할게. 나 성당병원에 가서.. 그 남자애 좀 만날 수 있을까?]


감시를 한다는 말은.. 함부로 누구와 만날 수 없게 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고, 알리치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사실이었다.. 바로 만날 수 없다고 반대를 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봤자 좀 구슬리면 만나게 해주겠지만.


[A 안 돼! 임마! 그 자식 부모랑 변호사 외엔 아무도 만나면 안돼! 샤노브때문에 온몸에 상처를 입고나서 성당 맨 위층 경치좋은 독방에서 편하게 누워 지내고 있는 게 열받긴 하지만, 어쨌든 환자라서 안정을 취해야 되는 상태야. 경감님이 절대,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나한테 몇번이나 말했다구!]


[N 아잉.. 오빠, 내가 샤노브 그 누님도 아니고, 들어가서 물어뜯길 하겠어? 때리길 하겠어?]


[A 니 성격이면 충분히 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내가 차라리 에르제였다면 들여보내 줬겠지만, 넌 안돼! 임마! 니 성격에 저놈이 열받는 소리를 하면 참을 수 있겠어? 바로 주먹이 올라가게 될걸?]


[N 오빠, 저 새끼가 아무리 열받는 소리를 해도 꾸욱 참을게. 진짜로!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라 침대에 누워있어야 되는 병자를 때릴 정도로 내가 막나가진 않아.]


[A 글쎄?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N 이 오빠가 진짜!]


[A 거기를 왜 들어가려는 거야? 가서 샤노브처럼 욕하고 때리려고 들어가는 거 아니야?]


[N 미쳤어? 내가? 빨간 줄 그이게? 그냥.. 레냐가 했던 말을 대신 전해주고 자수를 권하게 하려고 온 거야. 옷 이쁘게 입은 것 좀 봐, 오빠. 싸울 거면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입고 왔지, 이런 레이스 달린 옷을 입고 왔겠어?]


[A 하.. 너, 진짜 절대 저놈 몸에 손대면 안된다? 그새끼가 아무리 열받는 소리한다고 해도 성격 못죽이고 패기라도 하면, 니가 아니라 내가 다 책임져야 돼! 잘리진 않겠지만 월급 까이고 경위서 써야될 수도 있다고!]


[N 아, 진짜! 오빠! 좀 믿어줘! 딱 할말만 하고 나올 거야!]


[A 정말이지? 마이더리스님께 맹세코?]


[N 그래! 마이더리스, 디렐로스, 이세상의 모든 신께 맹세할게!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빨리 그 방으로 들여보내줘.]


[A 휴.. 알겠어, 올라가보자.]


***


알리치 덕분에 성당병원 꼭대기의 전망좋은 방으로 인도된 나는, 노크를 한 후 그 방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잘 드는 방의 작지만 푹신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이 일의 원흉인 모리슨이 누워 있었다. 와.. 진짜 심하게 물어뜯기긴 했구나!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도 바로 알 수밖에 없는 게, 뺨에 큰 붕대를 두른 데다가 눈에 멍이 들어 있었고, 수척한 얼굴에 딱봐도 고통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저 모습을 25살 여자한테 당해서 생긴 상처라고 믿겠어? 아마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M 당신은 뭐야, 왜 갑자기 들어오는 거야!]


[N 안녕하세요, 전 나틸리 안보렌이라고 해요. 모리슨 신시노프 씨.]


[M 왜 안면도 모르는 사람이 여길 들어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으니 나가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공손히 말을 걸자, 모리슨은 상당히 신사적으로 받아주었다. 눈빛이 날카롭긴 했지만.. 눈빛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 저 눈빛은 살인자란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이지적인 지식인의 눈빛으로 보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저렇게 말끔하고 지적이며 연약해 보이는 남자애가, 1년간 동창을 스토킹 한 후 집에 친구들과 함께 들어와 간살을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N 아니요, 그럴 수 없어요.]


[M 뭐라고? 당신, 경찰이라도 돼? 난 법의 보호를 받고 있어. 나와 공식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변호사한테 허락받고 오도록 해, 알겠어?]


[A 이 자식이, 그렇게 맞아놓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네! 확 진짜.. 뒤통수를 때릴까보다! 이 아가씨는 경찰인 나의 허락을 받고 들어온 거야. 그러니 이 아가씨 말에 대답이나 잘해, 알겠어? 모르겠어! 이 개자식아!]


[M 일개 순경밖에 안되는 주제에 간도 크시군요. 곧 변호사를 선임하면 반드시 이 일을 변호사에게 알리겠습니다.]


[A 알려봐, 알려봐! 이 개새끼야! 이게 진짜, 며칠간 사람취급해줬더니 내가 진짜 널 사람으로 보는 줄 알아? 레냐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놓고 아직도 뻔뻔하게 구는 것좀 봐! 나틸리, 내가 보기엔 이새낀 사람 안돼.. 눈꼽만큼도 기대하지 말라구.]


[N ..오빠, 우리 둘끼리만 이야기하게 잠시 좀 나가줄래?]


[A 야, 이 새끼가 갑자기 일어나서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옆에 있을게.]


[N 오빠, 내가 저 사람한테 맨몸으로 당할 사람처럼 보여?]


[A ..아니? 오히려 그랬다가 저놈이 얻어터져서 죽을까봐 그러지.]


[N 장담하는데 저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손도 대지 않을 거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오빠를 부를게. 그러니 제발 잠시만 나가줘! 응?]


[A 아, 알겠어! 뭔 대단한 대화를 할려고.. 에휴.. 나틸리, 뭔 말을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걸? 시간낭비야, 시간낭비.]


알리치가 궁시렁대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 방 안엔 나와 모리슨 신시노프만 남겨져 있었다. 모리슨이 나에게 시선을 거두더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휴.. 내가 먼저 말을 할 수 밖에..


[N 신시노프 군. 저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셨죠? 전 사라진 가족들을 구해준 사람중 한명이에요.]


[M ..]


[N 그리고 레냐의 친구이자, 레냐의 마지막 말을 직접 들은 사람이에요.]


[M ..]


[N 유령인 상태로 만났고,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짧은 만남으로도 레냐양이 얼마나 겉으로나 마음씨로나 이쁘고 착한 사람임을 잘 알 수 있었어요.]


[M ..]


[N 레냐가 해준 이야기와, 레냐의 언니의 기억을 읽으면서 당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완전히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중학교 시절 따돌림 당하던 당신에게 손을 건네준 천사같은 친구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한 건지 따지고, 욕하고 싶지만 참겠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왔었다면 진작에 당신에게 다가가 샤노브처럼 반 죽여놨을 테니까요.]


[M ..]


[N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 뿐이에요. 가족들이 무사한 걸 알게 되고, 드디어 하늘 위 마이더리스의 법정으로 올라갈 결심을 하고, 우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을 때, 레냐는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자신을 사랑했던 아이니, 3년동안 정신적으로 충분한 고통을 입었을 거라며.. 분명 후회하고 있을 거라구요. 그리고, 당신이 죽어 마이더리스의 법정에 서게 되도, 거기서도 자신은 피고인으로 서 있을 당신을 용서해 주겠다고 했구요. 이봐요, 모리슨 신시노프! 제3자인 내가 봐도 당신의 행동은 악마나 할 짓이에요. 당신이 현실이든 마이더리스의 법정이든 사형판결을 당하고 죽어서도 고통의 감옥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았으면 좋겠다구요! 그런데, 당사자인 레냐는 그런 당신을 용서한 후 하늘나라로 올라갔어요. 당신.. 정말 양심의 가책이란 게 없나요? 죽고 나서 올라갈 마이더리스의 법정이 무섭지도 않나요? 당신이 한때나마 진심으로 그 아일 사랑했다면, 그 아일 소중하게 생각했었다면, 지금이라도 참회하고 블라도프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 후 자수하세요. 자수해서 법정에서 당신의 죄를 솔직하게 말한 후, 하늘 위에 있는 레냐와 마이더리스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란 말이에요!]


마지막 말은 거의 협박하듯이 격하고 강한 어조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 악마같은 자식이 뒤늦게라도 레냐에게 잘못했다고 말하길 바랬으니까.. 이 자식이 후회와 용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게 레냐에게 줄 수 있는 내 마지막 보답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 악마는 눈빛이 잠시 흔들렸을 뿐, 눈물은 커녕 얼굴의 변화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랬다. 이 자는 악마였다. 비실비실하고 이지적으로 보일 뿐, 속엔 사도였던 샤노브보다 더욱 더 악독하고 비인간적인 악마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M 하하하! 당신..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이군요. 유령을 봤단 말인가요?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딴 정신나간 말로 날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본데.. 어림없어요. 난 결백합니다. 조만간 법정에서 내가 무고함이 명백히 밝혀질 겁니다! 그러니 더이상의 정신병자나 할 헛소리는 그만하고, 이 방을 나가주십시요. 더 여기서 미친 여자처럼 지껄이고 협박한다면, 변호사를 통해 당신 역시 저 깡패같은 경찰처럼 고소장을 넣을 줄 아십시요.]


난 포기했다. 얼굴을 보면 어제 샤노브처럼 달려가 주먹으로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아서, 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꾹꾹 누르고 참으며 애써 저 남자애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뒤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갔다.


분노로 시뻘개진 내 얼굴을 보며, 곧바로 눈치를 챈 알리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A 참.. 나틸리, 내가 말했지? 저 자식은 구제불능의 악마새끼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 짓이야. 이제 이 일은 엄정하고 공평한 법정에서 가릴 일이야. 저 새끼를 사형장으로 끌고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준비들을 다 하고 있으니까, 이제 이 일은 잠시동안 잊고 있어, 나틸리.]


[N ..괜히 만난 것 같아. 너무 화가 나. 이정도까지 말하면 약간이라도 참회할 줄 알았는데..]


[A 이미 선을 완전히 넘은 악마야, 나틸리. 저놈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구. 어쨌든 수고했다. 집에 가서 쉬어.]


알리치가 수고했다는 의미로 어깨를 탁탁 두드려 주었다. 난 오빠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성당을 나가 집으로 걸어갔다. 아.. 레냐를 위해서 저 인간쓰레기가 지금이라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길 바랬는데! 새벽녘 레냐의 웃는 모습으로 바라보며 떠나가던 모습이 걸어가는 동안 계속 환영처럼 내 머릿속에서 멤돌았다.


***


그리고.. 이 길고 길었던 블라도프 가문의 이야기를 이제 끝낼 시간이 온 것 같다. 놀랍게도.. 나의 간절한 설득에도 완고히 저항하던 모리슨 신시노프는.. 이틀 후 자살을 했다. 빅토르의 집에 모여 앉아있을 때 알리치가 전해준 그 충격적인 소식에, 나는 할말을 잃고 멍하니 알리치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N 뭐? 진짜야? 오빠?]


[A 그래!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자나 보려고 문을 살짝 열어봤는데, 커텐을 빼서 방 등거는 곳에 매단 다음 자살했더라구! 보자마자 경찰서에 가서 경감님에게 보고하고, 시신 수습하자마자 곧바로 너희들에게 온 거야.]


[N 이상하다.. 이틀 전 내가 그렇게 설득을 했는데도 꿈쩍도 않더니, 왜 갑자기 그렇게 자살을 한 거야?]


[A 자, 유언장 내용을 적어 왔어. 나틸리, 너의 그 설득이 당장은 아니라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E 아.. 혼자 병원에 가서 자수하라고 설득했다고 했죠?]


[N 네.. 그렇게 하는 게 레냐가 원하는 방법일 것 같아서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알리치가 건넨 종이를 넘겨받아 천천히 읽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저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할 말을 남기고 떠나겠습니다.


전 그 아이를 결코 그렇게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때 만난 제 악마같은 친구들의 꾐에 빠져, 그리고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레냐에 대한 집착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그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친구들의 부추김에 의해 그 아이에게 그런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지만, 죽일 생각까진 없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전 레냐를 죽일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레냐의 목을 졸라 죽인 것은 제 친구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전 그녀를 덮치고 나자마자 후회했고, 곧바로 그 집을 도망쳐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레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자마자 두 친구들이 레냐의 목을 졸랐고, 전 도무지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사력을 다해 제 친구들을 막았을 겁니다.. 아니,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제 친구들에게 레냐에 대해 말하고, 부추김을 당해 두 친구들을 이 집에 오게 만들어 두 친구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만든 모든 원인은 다 저에게 있습니다. 저란 악마가.. 한순간의 질투와 욕정에 악마가 되어 이런 씻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레냐가 절 용서했다는 말이 마음의 위안이 되면서도, 제가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는지를 잘 알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전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제 전 수백년, 아니, 수천년간 고통의 감옥에서 고통받고 썩어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제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기에, 이제 기꺼이 그 고통의 감옥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저를 믿고 키워주신 부모님, 할머니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부디 가문의 수치이자 악마와도 같은 저를 완전히 잊고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블라도프 가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레냐야.. 법정에서 진심으로 너에게 사죄할게.>


[V 휴..그래도, 마지막엔 참회를 하고 떠났네?]


[A 참회는 무슨! 진짜 참회를 할 마음이었으면 진작에 자수했겠지! 3년 동안 아무 죄도 없는 척 뻔뻔하게 살다 지금, 모든 증거가 드러나고 나서야 자살을 하는 걸 봐! 그냥, 자기가 레냐를 성폭행한후 친구들과 같이 죽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날 경우 얻게 될 세상의 비난과 감옥살이, 그리고 사형장이 겁나서 빨리 죽은 것 뿐이야!]


[E 글쎄요.. 유언장을 보면, 그래도 약간은 후회하고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긴 하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늘에 있을 레냐는 충분히 만족할 것 같네요.]


에르제의 말대로, 레냐라면 마지막에라도 참회하고 반성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해할 것 같았다.


이렇게.. 바르크바에서의 마지막 사건은 아련함과 씁쓸함을 남기고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현실에선 법정에 서지 못했지만, 대신 모리슨은 죽고나서 며칠동안 지역 신문에 오르내리면서 사람들의 비난과 저주의 목소리들을 통해 늦게나마 죗값을 치루었다. 이런 점을 보면.. 왜 모리슨이 자살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살아서 죄값을 받고 감옥속에서 충분한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게 맞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을 하늘에서 굽어보시는 마이더리스님이, 하늘에서 충분한 벌과 동시에, 약간의 자비를 내리시지 않을까.. 난 생각한다. 뭐, 천년 받게 될 형벌에서 3,4백년 정도는 줄여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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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1-087: 010525 경찰서 24.07.17 8 0 17쪽
87 1-086: 010525 입장 시도 24.07.17 6 0 18쪽
86 1-085: 010524 허락 24.07.13 9 0 25쪽
85 1-084: 010524 뜻밖의 손님 24.07.13 8 0 23쪽
84 1-083: 010524 체노라비 역사도서관 24.06.30 12 0 27쪽
83 1-082: 010522 사도와의 전투 24.06.30 12 0 30쪽
82 1-081: 010521 게드3중학교 24.06.30 9 0 20쪽
81 1-080: 010521 블레턴 블로슈크 교장선생님 24.06.30 8 0 15쪽
80 1-079: 010520 이곳에 있게 된 이유 24.06.29 5 0 24쪽
79 1-078: 010520 원치 않던 만남 24.06.29 9 0 15쪽
78 1-077: 010520 모스토크 24.06.29 7 0 21쪽
77 1-076: 010518 출발 24.06.29 9 0 17쪽
76 1-075: 010516 정의의 마음 24.06.20 6 0 26쪽
75 1-074: 010516 취조실 24.06.20 6 0 21쪽
74 1-073: 010516 자전거 선물 24.06.20 6 0 22쪽
» 1-072: 010514 사건 종결 24.06.13 7 0 20쪽
72 1-071: 010510 경찰서안의 대소동 24.06.13 8 0 20쪽
71 1-070: 010505 레냐의 마지막 인사 24.06.13 7 0 17쪽
70 1-069: 010505 샤노브의 기억 B 24.06.12 6 0 21쪽
69 1-068: 010505 샤노브의 기억 A 24.06.12 6 0 24쪽
68 1-067: 010505 빅토르 vs 샤노브 24.06.05 8 0 30쪽
67 1-066: 010505 말릭 vs 샤노브 24.06.05 6 0 19쪽
66 1-065: 010505 아버지와 함께 24.06.05 6 0 36쪽
65 1-064: 010502 패배감 24.06.05 7 0 28쪽
64 1-063: 010501 다리에서의 교전 24.06.05 6 0 28쪽
63 1-062: 010501 레냐의 고백 24.06.04 9 0 37쪽
62 1-061: 010501 부둣가에서 작별 인사 24.06.04 5 0 31쪽
61 1-060: 010429 이공간 방문 24.05.29 8 0 29쪽
60 1-059: 010428 제미크와 대화/작전 회의 24.05.29 9 0 35쪽
59 1-058: 010427 작별 통보 24.05.27 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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