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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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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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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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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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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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 010524 뜻밖의 손님

DUMMY

16:32 기숙사

그렇게 오늘도 아무 소득 없이 돌아다니기만 열심히 돌아다니다 기숙사로 간 우리는, 우리들이 오자마자 어디서 들고왔는지 모를 시원한 주스까지 따라주는 안톤을 보며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N 하하하! 돈도 없으면서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고마워, 안톤!]


[A 애들아,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나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아?.]


[V 하루종일 집을 알아보느라.. 아.. 다리 아파 죽겠어! 침대에 잠시 앉아도 되지?]


[A 집은 그래서 구했어?]


[N ···]


[N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 주변 환경이 괜찮으면 집이 겁나 비싸고, 집이 싸면 주변 환경이 거지같고! 집 구하는데 몇주일이 걸릴지 모르겠어.]


[A 잘 될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원래 좋은 집은 쉽게 구하기 힘든 법이거든.]


안톤이 내가 사온 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웃었다. 짜식.. 그래도, 한번씩 친구를 만날 수 있으니까 좋긴 좋지? 처음에 왔을 때는 뭔가 말라비틀어지고 생기 하나 없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초록빛의 생글생글한 모습까진 아니긴 해도 어느정도 생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V 안톤.. 그런데.. 너 정말 부모님한텐 이야기 안할거야?]


[A 응.. 사실을 알면 부모님께서 엄청 마음아파하실 거야.. 가뜩이나 나때문에 늘 걱정이신데, 돈이 없어서 기숙사를 못 구해서 1학기를 못 보내고 휴학했다는 말까지 해서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아.. 애들아, 미안하지만 좀 도와줘.]


[N 아으! 이 자식! 기숙사비가 없으면 나한테 빌리면 될 걸! 너도 참.. 너 정말 똑똑한 거 맞아? 이 나라 최고 과학대학교를 가는 애가 하는 행동이 어쩜 이렇게 바보같을 수가 있어!]


[A 미안.. 나틸리.]


[V 에이, 나틸리. 이미 지난 일인데 왜 그래? 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만나서 놀수도 있고 오히려 좋잖아.]


[N 좋긴 뭐가 좋아! 이 자식아! 친구가 다녀야 할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고등학교 기숙사 구석에 짱박혀서 시간 죽이고 있는데!]


[V 음.. 난 떠나기 전에 볼 수 있어서 참 좋은데..]


글로만 적은 걸 보면 내가 크게 화낸 것처럼 보이겠지만, 가벼운 투로, 장난스럽게 말한 거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나도 나름 싫진 않았다. 차마 못보고 떠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몇개월이나 보고 떠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당장 2학기때 다시 복학해야 하는 애한테 방해거리가 되선 안된다. 우리들때문에 공부 제대로 못하고 2학기 복학해서 고생하는 꼴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 난 안톤을 절대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E 안톤, 대학 전공이 뭐라고 했죠?]


[A 전 마법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E 마법물리학이라.. 마법도 좀 배우겠네요? 그럼?]


[A 기본 이론은 다 알고 있어요.]


[E 오오.. 그럼, 마법도 좀 쓸 수 있나요?]


[A 아니요. 마법이란게요.. 이론을 다 이해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론은 이해하지만, 도저히 발현해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 그 이론을 실제 현상으로 발현시키는 에르제같은 마법사들이 정말 신기하고 부러워요. 저도 마법을 쓸 수만 있었다면 과학자가 아니라 마법사가 되고 싶었는데..]


[N 아니야, 안톤. 부러워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마법물리학에 대해서 제대로는 모르겠지만, 니가 보는 그 책의 수준을 보면 어지간한 마법사들보다 너가 더 훨씬 더 똑똑하고 대단해 보이는데?]


[A 하하, 아니야. 나틸리..]


[N 마법물리학으로 무기나 실용품을 만들면 어지간한 마법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대단하다며? 그래서 요즘같은 시대에 너같은 과학자들이 얼마나 중요한데! 안톤, 마법사들을 부러워 할 필요 없어. 지금도 넌 충분히 대단해.]


[A 아.. 나틸리, 부끄럽게 왜 그래. 그만해.]


볼이 빨개지는 걸 보니 에르제 앞에서 너무 띄워주는게 좋으면서도 너무 부담스러운것 같아서, 난 그만하기로 했다. 이후 사소한 잡담을 30분 정도 나누다가, 바깥이 땅거미가 지는 것 같아서 우리들은 이만 가보기로 했다.


[A 애들아, 벌써?]


[V 오늘은 너무 늦었잖아. 우리 밥먹어야 돼.]


[A 너희들, 내일 마법사님과 일하러 가야 된다며.. 그럼 또 며칠 못보는 거야?]


[N 응, 미안, 안톤. 아마 3일 후에나 여기로 올 수 있을 것 같애.]


[A 아.. 그럼, 내가 여관으로 갈게.]


[N 내일은 안돼. 이틀 후에 와.]


[A 아.. 왠지 나 너희들한테 따돌림 당하는 느낌이야. 나도 좀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줄 거 없어?]


안톤의 요청은 간절했지만, 이번에도 난 방긋 웃으며 손인사를 한 후 바로 방을 빠져나왔다. 우리들이 밖으로 나오자 안톤도 괜히 같이 밖에 나와서는 그 헐어빠진 그네에 앉아 떠날 때까지 우리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왜 동정심 작전을 펼치는거야? 저렇게 하니 괜히 우리들이 미안해지잖아. 너 그렇게 한다고 내가 알려줄 것 같애? 꿈깨는 게 좋을걸?


어쨌든, 그렇게 기숙사를 빠져나와 산책로를 지나던 우리는, 신관을 지나, 학교 주변의 자전거를 주차하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옆을 누군가가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깜짝아! 누가 교내에서 위험하게 저렇게 자전거를 빠르게 몰아! 사람 치려고 그래? 짜증이 나서 고개를 빠르게 돌려 지나간 쪽을 바라본 나는, 그 자전거가 왠지 모르게 매우매우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 왜.. 우리가 가진 자전거랑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지? 아니야! 저건.. 우리들 자전거와 똑같은 자전거잖아!


[V 어? 저 자전거, 우리 자전거랑 엄청 비슷하게 생겼다! 에르제, 그렇지 않아요?]


[E 얼핏 본 거지만 그랬던 것 같네요.]


[N 뒤에 마법 부스터 달렸었던 것 같은데.. 맞지? 빅토르?]


[V 응!]


[N 설마.. 그 자전거 타고 있던 사람, 키가 엄청 크지 않았어?]


[V 어, 그랬었어! 다리랑 앉은키가 엄청 큰 남자애였어.]


[N 에이.. 설마!]


[V 왜?]


[N 저거.. 보리스 아니야?]


[V 에이.. 고향에 있어야할 애가 왜 여기에..]


[E 보리스가 맞는 것 같네요. 저도 뒤통수가 너무 낯이 익었어요.]


[V 어어? 나틸리!]


난 곧바로 비밀번호로 된 자물쇠를 풀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그 자전거를 뒤쫓았다. 에이.. 아닐 거야. 귀찮아서 성 엘지야 축일에도 절대 오지 않겠다던 애가 올 리가 없다구! 난 고개를 연신 저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빠르게 자전거를 몰고 안톤이 있는 기숙사 구관으로 갔다. 그리고.. 그네쪽에서, 누가 보면 깡패가 어린애 하나 잡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큰 키의 사납게 생긴 성인 남자가 아주 작은 어린 남자애의 멱살을 잡고 격렬하게 흔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리스 맞구나.. 쟤가 왜 갑자기 여기에 있는 거야? 도대체?


[B 이 미친놈아! 너 자퇴한 거야? 응!? 말해봐, 빨리! 왜 자퇴한 거야! 임마! 너 돌았어? 이새끼야! 거길 어떻게 들어갔는데 그 좋은 대학교를 자퇴해! 임마!]


[A 쿠헥! 쿠헥! 보리스.. 갑자기 나타나서 왜 이러는 거야!]


[B 왜 자퇴했어! 임마! 빨리 말해봐! 별 그지같은 이유대면 바로 꽁꽁 묶어서 너희 부모님한테 데려가버린다!]


[A 아아, 그러면 안돼는데! 보리스, 나 진짜 자퇴 안했어! 신께 맹세하고 진짜 안했다구!]


[B 진짜야?]


[A 응.. 자퇴한거 아니니까 좀 놔줘..]


보리스가 그제서야 멱살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짜식.. 안톤이랑 중학교때 제일 친하게 지내서, 우정이 깊긴 한가봐? 오자마자 대학 자퇴한 게 아닌지 걱정되서 이렇게 꽁지빠지게 달려와 물어보는 걸 보면?


[A 하하하.. 보리스, 어쩜 나틸리랑 만나자마자 하는 행동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어? 하하하!]


[B 뭐? 나틸리도 여기에 왔었어? 그 자식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N 니 바로 뒤에 있는 거 안보여?]


[B 뭐야? 너희들, 뒤에서 뭐하고 있냐?]


[N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참.. 갑자기 여기까지 와서는 다짜고짜 안톤의 멱살부터 잡고 뭐하는 거니? 인사 참 과격하게도 하네!]


[B 얘 말을 들어보니 너도 만나자마자 나처럼 멱살 잡았다면서! 사돈 남말하긴!]


뒤늦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빅토르가 활짝 웃으며 보리스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내심 매우 반가운 모양이었다.


[V 하하하! 보리스, 너 왜 갑자기 여기로 온 거야?]


[B 다 큰 성인인 내가 어딜 가든 말든 뭔 상관이야?]


[N 참.. 까칠하긴. 이렇게 금방 다시 만날 줄 알았으면 뺨에 뽀뽀는 절대 안했을 텐데! 연안어선 타고 돌아와서 잠시 쉬러 여기에 온거야? 모스토크엔 절대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나 말지..]


[B 아니야, 나틸리. 잠시 쉬러 온 게 아니라, 계속 지낼려고 여기에 온 거라구!]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깜짝 놀라 보리스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뭔가 눈빛과 입매에서 결연한 다짐같은 게 느껴졌다. 설마.. 에이.. 설마.. 그러려는 건 아니지?


[B 에르제, 저도 좀 끼워주세요.]


[N 뭐라고? 이 자식아,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B 니가 무슨 상관이야? 제3자는 빠지셔! 난 마법사님한테 부탁하기 위해 여기로 온 거라구. 에르제, 제발요! 나 손톱발톱 다 빠질때까지 존나, 아니 신심을 다해 열심히 할테니까 제발 저좀 끼워주세요! 부탁입니다! 사람 한명 살려준다 치고 좀 받아주세요! 저 거기 들어가 진짜 열심히 싸울게요!]


갑자기 놀이터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보리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셋, 아니지, 안톤까지 다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야.. 얘, 도대체 고향에서 뭔 일이 있었길래 완전히 생각이 달라져서 여기와서 합류시켜달라고 싹싹 빌고 있는 거야? 고향에선 저 지옥같은 이공간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했었잖아!


***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의 멱살을 잡던 애가, 이젠 놀이터 바닥에 무릎꿇고 죄인처럼 에르제 앞에서 싹싹 빌고 있는 기괴한 꼴을 묵묵히 바라보던 안톤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똑똑한 머리로도 도무지 이 상황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는지 안톤은 동그란 안경태 안에 있는 동그란 눈을 계속 깜빡이며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A 보리스, 널 받아달라니? 거기 가서 열심히 싸운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B 뭐야? 얘네들이 너한테 말 안했어?]


[A 무슨 말? 아아! 저 마법사님이랑 같이 무슨 첩보활동 한다는 얘기는 들었어.]


[B 첩보활동? 하하하! 야,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너희들! 하하하! 첩보활동은 개풀뜯어먹는 소리야! 안톤! 전혀 그런 게 아니라구!]


보리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빅토르와, 인자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에르제를 지나쳐 눈빛으로 살벌하게 눈치를 주는 나를 바라보게 되자 그제서야 눈치를 챘는지 움찔하며 아무 말도 없이 쩝쩝 입을 다셨다.


[A 어? 나틸리가 피아체 스파이인 저 마법사님이랑 무슨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고 나한테 분명히 말했는데?]


[B 안톤,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무슨 첩보야! 그게 아니라! 우리, 그냥 사도 잡.. 읍!읍!]


[A 사도? 사도라니? 보리스? 나틸리, 왜 보리스의 입을 갑자기 틀어막는 거야? 왜이렇게 나한테 숨기는 게 많은 거야!]


이 새끼가 진짜! 우리 착하고 연약한 일반인인 내 소꿉친구는 일부러 이런 괴상하고 위험한 일에 안 연루되게 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잔뜩 쳐놨는데, 이새끼가 진짜 오늘 다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봐! 난 억지웃음을 지음과 동시에 보리스에게 귓속말로 단단히 협박을 해놓았다.


[N 하하하.. 보리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니? 으응? (야, 너 여기 나간 후에 제대로 이야기하자, 응?)]


[B 아, 그, 그게! 하하하! 사기꾼 잡고 있었다구. 피아체에서 크게 사기치고 톨트림으로 도주한 사기꾼 집단들을 잡고 있다는 말이었어. 어.. 애들아, 그 사기꾼들은 어때? 잘 추적하고 있어?]


[N 잘 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A 애들아.. 날 너무 바보처럼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나 분명히 사기꾼으로 듣지 않았어. 사도? 사신? 이렇게 들은 것 같다구! 도대체 그게 뭐야, 왜 나한테 말을 안해주는 건데!]


[N 아니야! 진짜야! 우리, 진짜 해외로 도망친 사기꾼들 잡고 있는 거야!]


[A 정말이야?]


[B 그럼! 임마, 우리들이 너한테 거짓말을 왜하겠냐? 니가 얼마나 입이 무거운 지 얼마나 잘 아는데.]


하긴.. 안톤은 정말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자기가 손해볼 수 있는 일마저도 친구들이 끼여있으면 그냥 감당하는 성격이었다. 중학교때 보리스가 몰래 학교에서 건네준 야한 잡지를 선생님한테 들켜서 망신을 당했을 때에도 그 잡지를 건네준 보리스의 이름은 절대 말하지 않고 자기가 산 거라고 말했었으니까.. 덕분에 주변 여자애들한테서 한동안 야한 잡지 사서 모으는 변태 모범생이라고 놀림을 받았어야 했다. 뭐.. 근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거 진짜 안톤이 보긴 봤거든.


[A 아니야.. 너희들, 분명히 나한테 뭔가를 감추고 있어. 도대체 뭐야, 응? 나한테도 말해줘! 너희들.. 날 그렇게도 믿지 못하는 거야?]


[B 아니라니까 그러네! 참! 말해줄 수 있는 건 다 말해준 거야! 설령 안 말해준 게 있다 해도 보안상 절대 말해줄 수 없는 부분밖에 없다구. 우리 셋이야 에르제의 일을 직접적으로 도우는 당사자니까 알아도 된다 쳐도, 넌 이 일과 아무 상관없잖아. 그런데 니가 왜 다 알아야 되냐?]


[N 보리스, 너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본데.. 우리 아직 너 합류시킬지 말지 전혀 안 정한 상태야, 알겠어?]


[B 참 나, 저번에 부둣가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뺨에 뽀뽀를 할때를 봐선, 오자마자 두팔을 벌리며 입냄새나게 키스까지 하며 환영해줄줄 알았더니, 뭐? 합류시켜줄지 말지 아직 안 정했으니 설레발 치지 말라고? 참 반응 한번 서운하네! 진짜!]


[N 와서 대뜸 받아달라고 말하면, 우리들이 바로 허락해줄 줄 알았어? 이 일이 그렇게 쉽게 합류할 수 있는 간단한 일처럼 보여? 넌?]


[B 참.. 깐깐하긴! 됐어! 니가 반대해도 아무 문제 없어. 어차피 이 임무, 니 임무가 아니라 에르제 임무 아니야? 니가 거절하더라도, 에르제한테만 허락 받으면 장땡이지, 뭐!]


[N 뭐라구? 이게 진짜?]


[B 맞잖아! 아무리 귀찮아서 너한테 일을 죄다 떠맡겼다 해도 결국엔 이 임무는 에르제의 임무잖아. 그러니 에르제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지. 게다가, 내가 배 타고 떠나기 전에 에르제가 다시 날 끼워 넣기 위해 구워삶으려고 했던 말을 생각해봐. 에르제가 날 다시 영입하려고 그렇게나 잔뜩 유혹의 말로 떡밥을 던져놨는데, 그 떡밥을 물려고 온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다시 돌려보낸다는 거야? 이 정없는 자식아?]


그래, 맞아. 보리스가 배 타고 떠나기 직전, 에르제가 마치 생각 바뀌면 다시 돌아오라는 뉘앙스로 들리는 말을 하긴 했다! 아, 진짜!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초반만 해도 보리스는 자격 없다고 절대 넣지 않을 거라고 생고집을 피우던 사람이? 안그래도 배타기 싫지만 돈 벌려고 억지로 탔던 애인데, 에르제가 그런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다가 때려치우고 여기로 돌아온 게 분명했다. 에르제.. 항해사로 새 인생을 시작하려는 내 친구를 응원은 못해줄 망정 왜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들어버린 거에요! 난 잠시 도대체 왜 그랬냐는 투의 눈빛으로 힘없이 에르제를 바라봤지만, 말릭씨한테도 눌리지 않던 에르제가 내 눈빛 따위에 흔들릴 리가 없었다.


[N 설마.. 고작 에르제가 한 그 마지막 말 몇마디때문에 여기로 온 거야?]


[B 그럴 리가 있냐? 내가 고작 그 말 좀 들은 정도로 마음이 바뀔 만큼 줏대없는 성격인 줄 알아? 그게 아니야, 나틸리. 그때 들었을 당시엔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고 일주일 동안은 그 말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 내가 여기로 온 이유는 절대 에르제의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구.]


[N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주일 배 잘타고 돌아오자마자 다 때려치우고 여기로 오게 된 거야? 설마.. 일이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응? 그런 철없는 소리 하면 당장 돌려보낼 줄 알아?]


남의 일해서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데! 뱃일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다 힘들다구! 보리스! 설마 진짜 그냥 뱃일이 힘들어서 편하게 이거 하려 왔다고 말하면, 위에서 말한 대로 곧바로 한소리 하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걸 듣다보니 난, 보리스가 왜 여기로 올 결정을 했는지 서서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름.. 사연이 있었구나.


[B 야, 나 빅토르 아버지한테 3년동안이나 그 힘든 훈련을 받아왔던 사람이야. 니가 같이 옆에서 토나올 정도로 같이 훈련해봐서 잘 알잖아. 나 어지간한 육체적 고통은 다 감내할 자신이 있어. 이번 뱃일만해도.. 얘 아버지한테 훈련받는 거보다 힘든 것도 없었다구. 하지만 말이야.. 애들아, 난 육체적 고통은 참아도.. 도저히 좆같은 새끼들한테서 받는 정신적 고통은 참을 수가 없겠더라구!


이주일동안 저 좆같은 선원 개새끼들이 텃세부린다고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아들뻘 되는 나를 격려해주진 못할망정 트집잡아서 욕하고, 잔뜩 모멸감을 주고, 한번씩 대가리나 어디 한군데 기분나쁘게 때리고 그러는데, 와.. 나 진짜.. 참다참다 10일차때엔 완전히 폭발해서 들고 있던 식칼로 제일 괴롭히던 좆같은 새끼 한명 찌르고 나도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까지 들더라구! 그래도 출퇴근이라도 하면, 너희들 얼굴 보고, 가족들 얼굴 보며 밤에라도 맘 편히 지낼 수야 있지, 연안어선 타면 전혀 그러지도 못해! 이주일 내내 그 좁은 배 안에서 그런 좆같은 아저씨 새끼들이랑 같이 지내면서 잠도 같은 방에서 자야 되는데, 잘때도 위안을 얻지 못하는 그 느낌.. 너희들은 정말 겪어보지 않아서 모를 거야. 진짜 이주일 내내 지옥 그 자체였다구!


애들아.. 나 진짜 저런 쓰레기같은 놈들이랑 계속 일하다가는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거나 정신병걸려 정신병원에 가게 될 것 같애! 와.. 나 어른들이 사회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게, 일때문에 힘든 것보다 사람때문에 힘든 거라고 말했을땐,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이번 이주일 뱃일하면서 완전히 제대로 깨달았어! 애들아, 나 다시는 그 좆같은 선원 아저씨들한테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가 죽거나 정신병원에 갇히는 꼴을 보고 싶은 거야? 응? 나틸리, 빅토르, 말해봐봐. 내가 그 꼴이 나는 걸 보면 너희들의 마음이 편하겠어?]


[V 아니.. 보리스.. 당연히 니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진 않지.]


[B 그렇지? 나 진짜 그 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러니 제발 나 좀 살려주라! 마이더리스님께 맹세코, 나 진짜 열심히 할게! 제발 좀 받아줘!]


[N 보리스, 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처음부터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원래 그런 곳은 처음에는 기 좀 잡는다고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아. 왜냐구? 일이 험한 일이다 보니 조금 하다 참지 못하고 나가는 젊은애들이 너무 많다보니까 쉽게 정을 주지 못하시는거야. 참으면서 선원들이랑 친해지며 인정받게 되면 서서히 나아지게 될 거야.]


[B 아니야, 나틸리. 이새끼들이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으로 날 괴롭히더라구! 전혀 동업자 정신이 느껴지지 않았어. 나 나름 내 성격 다 죽이고 참고 또 참으며 순종적으로 일했다구. 하지만 이 인간들.. 자기보다 훨씬 어린 나같은 애한테 괜히 자기들 인생 망한 분풀이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몸이 힘든 스트레스를 날 괴롭히며 풀려는 건지 이주일 내내 날 괴롭혔다구! 아니야.. 나틸리. 계속 한다 해도 그놈들은 절대 달라질 새끼들이 아니야.


이 개새끼들이, 자기들만 힘든 줄 알아? 항해사일뿐만 아니라 선원일도 같이 도와야 되고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한 난 그놈들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다구! 내가 수습항해사 일만 하며 쉽게 일하면 그놈들이 지랄병을 떠는 게 이해가 가겠지만, 자기들 일까지 도와주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말도 안되지! 그럼! 나틸리.. 아무리 봐도 저 아저씨들 니 말대로 그냥 초반에 내 기 꺾어놓으려고 그런 것 같지가 않아.. 그냥 그 새끼들은 힘든 선원일 분풀이 대상으로 새파랗게 젊고 만만만 날 사용한 거고, 앞으로도 계속 날 그런 화풀이 도구로 쓸 게 분명하다구.]


[N 그럼, 그 배 말고 모스토크의 다른 배의 항해사에 지원해보는 건 어때? 니가 아무래도 운이 좋지 않게 안좋은 선원들이 많은 배를 선택한 건지도 모르잖아.]


[B 나틸리, 아니야.. 나쁜 사람이 많고 적고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야. 단 한사람이라도 나쁜 사람이 걸리면 그 나쁜 사람 하나때문에 몇주 내내 뱃일이라 기본적으로 깔리는 막대한 육체적 고통에 어마어마한 정신적 고통까지 추가된다구! 출퇴근도 하지 못하고 잘때까지 내내 좆같은 새끼들이랑 같은 방에서 지내야 하는 고통을 너희들은 정말 모를 거야.. 난 이제 뱃일은 도저히 못하겠어.]


잘때까지 내내 좆같은 새끼들이랑 같은 곳에서 지내야 하는 고통이라.. 고등학교때,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내가 겪었던 고통중의 하나가 그것이다. 아.. 모스토크에 오다 보니까 그 잊고 싶었던 1학년때의 기억을 한번씩 회상하게 될 수밖에 없다. 보리스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내가 실제적으로 그 고통을 제대로 한번 겪어봤기에, 보리스의 말이 너무도 호소력있게 피부로 와닿았다.


[N 아니야, 보리스. 그 고통, 나도 한번 겪어봐서 잘 알아. 너무 잘 알지.]


[B 아, 맞아! 그렇지? 그 대가리가 다른 사람 1.5배라는 그 눈빛 좆같고 성격 뒤틀린 년이랑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었었지? 그러고보니! 나틸리, 너 그 년 찢어죽이고 싶다고 말했었잖아.. 나도 그랬어.. 같은 고통을 느껴봤으니 나 좀 받아주라, 응? 아무리 힘들어도 맘 편한 친구들끼리 지내면 정신병은 걸릴 일 없을 것 같아서 여기로 온 거란 말이야.]


[V 나틸리, 보리스가 하는 말 들으니 짠하지 않아?]


[A 그래, 나틸리. 너희들이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진 아직 알 수 없지만.. 보리스도 받아줘. 응?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 불쌍해 보여.. 저렇게까지 비는데 다시 뱃일하라고 돌려보내는 건 너무 잔인한 행동일 것 같애. 내 얼굴을 봐서라도 받아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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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의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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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1-087: 010525 경찰서 24.07.17 8 0 17쪽
87 1-086: 010525 입장 시도 24.07.17 6 0 18쪽
86 1-085: 010524 허락 24.07.13 9 0 25쪽
» 1-084: 010524 뜻밖의 손님 24.07.13 9 0 23쪽
84 1-083: 010524 체노라비 역사도서관 24.06.30 12 0 27쪽
83 1-082: 010522 사도와의 전투 24.06.30 12 0 30쪽
82 1-081: 010521 게드3중학교 24.06.30 9 0 20쪽
81 1-080: 010521 블레턴 블로슈크 교장선생님 24.06.30 8 0 15쪽
80 1-079: 010520 이곳에 있게 된 이유 24.06.29 5 0 24쪽
79 1-078: 010520 원치 않던 만남 24.06.29 9 0 15쪽
78 1-077: 010520 모스토크 24.06.29 7 0 21쪽
77 1-076: 010518 출발 24.06.29 9 0 17쪽
76 1-075: 010516 정의의 마음 24.06.20 6 0 26쪽
75 1-074: 010516 취조실 24.06.20 6 0 21쪽
74 1-073: 010516 자전거 선물 24.06.20 7 0 22쪽
73 1-072: 010514 사건 종결 24.06.13 7 0 20쪽
72 1-071: 010510 경찰서안의 대소동 24.06.13 8 0 20쪽
71 1-070: 010505 레냐의 마지막 인사 24.06.13 8 0 17쪽
70 1-069: 010505 샤노브의 기억 B 24.06.12 6 0 21쪽
69 1-068: 010505 샤노브의 기억 A 24.06.12 6 0 24쪽
68 1-067: 010505 빅토르 vs 샤노브 24.06.05 8 0 30쪽
67 1-066: 010505 말릭 vs 샤노브 24.06.05 6 0 19쪽
66 1-065: 010505 아버지와 함께 24.06.05 6 0 36쪽
65 1-064: 010502 패배감 24.06.05 7 0 28쪽
64 1-063: 010501 다리에서의 교전 24.06.05 6 0 28쪽
63 1-062: 010501 레냐의 고백 24.06.04 9 0 37쪽
62 1-061: 010501 부둣가에서 작별 인사 24.06.04 5 0 31쪽
61 1-060: 010429 이공간 방문 24.05.29 8 0 29쪽
60 1-059: 010428 제미크와 대화/작전 회의 24.05.29 9 0 35쪽
59 1-058: 010427 작별 통보 24.05.27 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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