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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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츠
작품등록일 :
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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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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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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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 010524 체노라비 역사도서관

DUMMY

다음날


사도와 싸운 후엔 늘 그렇듯이 하루 이상 푹 쉬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관에서 푹 쉬거나 주변 산책만 했다. 바르크바과고까진 자전거를 타도 20분이 걸리기 때문에, 오늘은 도무지 안톤을 만나러 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일 낮에 가보지, 뭐. 라고 생각하고 푹 쉬고 있었던 나는, 저녁 7시 찾아온 안톤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N 안톤.. 너 공부 안하니? 왜 여기 온 거야?]


[A 걱정되서. 맨날 오더니, 왜 오늘은 안 온 거야?]


[N 안톤.. 니 고등학교랑 여기간의 거리가 자전거를 타도 20분 이상이야.. 어떻게 맨날 갈 수 있겠어? 귀찮아 죽겠는데?]


[A 20분이면 길지 않잖아.. 서운하다, 진짜! 이렇게 오랜만에 봤는데 고작 두번 보고 질린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안톤은 눈을 내리깔고 매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에휴.. 갑자기 대학교도 휴학해.. 혼자서 따로 지내야돼..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온 게 나름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모양이다.


[N 그럴 리가 있겠니.. 야, 우리들 다 오늘 엄청 힘들었어.. 도무지 너희 고등학교로 갈 상태가 아니었다구..]


[A 그래? 왜? ..아! 그 마법사님의 첩보임무를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이야?]


[N 그래! 어제 새벽에 도와주고 쉬느라고 차마 너희 기숙사로 가지 못했던 거야. 야, 앞으로 갑자기 니 기숙사로 안오면, 아.. 우리 친구들이 마법사 누나 도와주느라 오늘은 쉬나보다.. 라고 생각해. 알겠지?]


[A 응, 알겠어.. 그러고보니, 빅토르는 어디 있어?]


[N 자기 방에서 쉬고 있어.]


[A 그래? 봐도 돼?]


[N 아니? 쉬고 있다니까 그러네? 야, 오늘은 이만하고 가. 오늘 다 엄청 피곤한 상태라구. 내일 낮에 갈거니까 집에 가, 좀.]


[A 나틸리, 여기까지 왔으니까 인사만 하고 갈게.]


[N 안된다니까? 이 자식아?]


안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곧바로 빅토르 방으로 다가가 노크도 하지 않고 열었다. 하필이면 닫혀 있지 않어서 곧바로 열렸고, 침대에 누운 빅토르 옆에 에르제가 치료를 해주는 걸 보고 제대로 착각을 하고는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다.


[A 미, 미안! 빅토르!]


[V 어.. 안톤! 언제 왔..]


[A 나틸리, 저 마법사님이랑 빅토르.. 혹시 사귀는 사이야?]


[N 하하하! 뭐.. 외관상으론 어울리긴 하지만 아니야. 그냥 치료해주는 거야. 빅토르는 좀 마음에 있는 것 같은데, 에르제는 어림도 없어하는 눈치더라구.]


[E 밖에 있지 말고 들어와요.]


에르제가 문을 열고 우리 둘을 들어오게 했다. 방금전 얼핏 봤을 때와는 다르게, 제대로 빅토르의 상태를 보게 된 안톤은 힘없는 숨소리를 내는 빅토르를 보고 피로한 게 아니라 어딘가를 다쳤다는 걸 곧바로 눈치를 챘다.


[A 빅토르, 다친 거야? 설마?]


[V 으.. 계단에서 좀 굴렀어.]


[A 어떤 계단?]


[V 음.. 어떤 중학교의 학교 계단에서.]


[A 왜?]


[V 뭐.. 그런 일이 있었어, 안톤.]


[A 얼마나 굴렀는데?]


[V 한.. 50계단을 굴렀을걸?]


[A 헉! 어쩌다가 그랬어! 설마 싸웠어?]


[V 으.. 괜찮아.. 진짜 신체가 아니라 영체로 싸워.. 크흠!크흠!]


에르제와 내가 눈치를 주자마자 빅토르는 급하게 이불을 둘러쓰며 고개를 돌렸다.


[A 여.. 영체? 그게 뭐야?]


[V 아.. 에르제, 치료 고마워요. 이제 고통이 하나도 없어요.]


[A 빅토르, 영체가 도대체 뭐야?]


[V 응?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잘못 들었나보지. 아.. 그나저나, 나 이제 너무 배가 고파. 아무나 밥 좀 시켜줘!]


[N 참.. 아침이랑 점심 한끼씩 꼬박꼬박 다 챙겨먹었으면서! 알겠어. 고기 시켜주면 되지?]


[A 애들아.. 영체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왜 내 말을 무시하는 건데!]


아! 이새끼야! 빅토르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우리가 알려주지 않아도 조만간 다 눈치채겠다! 가뜩이나 똑똑한 애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N 안톤.. 어제 말했지? 알면 다친다고. 과학소년이라 호기심 많은 건 이해해. 그렇지만 이런 쓸데없는 덴 호기심 가지지 마. 과학같은 것도 아니니까.]


[A 아, 난 너무 궁금해 죽겠어, 애들아.. 안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해주면 안돼? 애들아, 나 너희들의 비밀은 가족들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제발 좀 말해줘! 너희들이 감추는 게 뭔지 너무 궁금해서 요즘 공부에 집중이 안될 정도란 말이야!]


[N 아! 진짜! 위험한 걸 왜 굳이 알려고 그래? 마약, 문신, 도박 같은 나쁜 것에 호기심을 가져서 하게 되면 인생이 어떻게 되나요? 안톤 게르츠키 군?]


[A 맙소사.. 또 나한테 설교하려는 거야? 나틸리, 제발!]


[N 말해봐! 빨리!]


[A 그 작은 호기심 하나로 전체 인생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N 그래, 맞아. 알아봤자 너한테 도움되는 건 하나도 없어. 인생에 전혀 도움 안되고 해만 잔뜩 끼치게 될 거라구. 제발, 우리 일을 무시해줘, 친구야.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응? 내가 너를 아끼는 마음에 비밀로 하는 거야, 바보야!]


[V 그래.. 안톤. 우리들 하는 일은 제발 좀 모른 척 해줘. 알아서 좋을 게 없다구. 진짜 위험한 일이란 말이야.]


[A 아.. 그렇게 위험한 일을, 그럼 너희들은 왜 하는 거야?]


[N 휴.. 그게.. 나도 모르겠어! 도대체가!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A 너희들이 얼마나 착한 애들인지, 7년넘게 봐와서 난 너무 잘 알아. 그래서 그런 너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도와주고 싶단 말이야. 애들아,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건데, 너희들이 하는 거, 착한 일인 것 같애. 마약, 문신, 도박같은 부류의 유해한 일은 절대 아닌 것 같애.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게. 분명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제발 좀 말좀 해줘봐!]


[N 아니야, 유해해! 겁나 유해하다고! 이 튼튼해서 돌도 씹어먹을 뼈를 가진 빅토르가 오늘 하루종일 골골대는 것좀 봐! 마약보다 유해한 일을 하고 있으니 헛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하러 가! 꺼져! 바보같은 자식아!]


[A 미안한데, 난 너희들이 안 가르쳐줘도 내가 꼭 알아내고 말 거야. 그러니까 피곤해지기 싫으면 빨리 나한테 말해주는 게 좋을걸? 난 가볼게, 안녕! 마법사님, 다음에 봐요!


아.. 똑똑한 애들은 저래서 문제라니까?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문제야.. 내가 상당히 거칠게 말했는데도 아랑곳않고 안톤은 저렇게 똥고집을 부리며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나는 또 마른세수를 연신 하기 시작했고, 빅토르는 방금 전 말실수한 것 때문에 내 눈치를 보는건지 갑자기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에르제가 깊게 한숨을 쉬며, 치료가 다 끝났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아아.. 내가 혼낼 걸 아니 자리를 알아서 비켜주시는 거구나?


[N 야, 이자식아! 너 앞으로 안톤 앞에서 2번 이상 생각하고 말해! 알겠어?]


[V 아.. 나틸리, 그냥 말해주자.. 말해줘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특히나 우리들, 이제 여기서 2개월 넘게 지낼텐데 그동안 똑똑한 저 안톤의 머리와 호기심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N 몰라! 이 자식아! 아.. 저 똥고집이 포기할 것 같진 않은데.. 말해줄 지 말지,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빅토르, 혹시나 알려준다고 해도, 안톤을 이 전투에 끼울 생각은 전혀 하지 마. 알겠지?]


[V 그럼! 안톤은 완전히 일반인인데다가, 남자중에서도 진짜 약한 몸을 가진 앤데, 어떻게 걜 그런 데로 데려가? 절대 그러면 안되지! 오히려 니가 아니라 내가 먼저 반대할거야.]


나도 생각이 똑같았다. 아.. 조금 생각해보고, 일정부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절대 그 이공간엔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너무 당연하다. 안톤은 완전히 일반인인데다가 빅토르 말처럼 남자 중에서도 정말 비실비실한 몸을 가진 아이다. 165센치에 몸무게도 내가 알기론 고작 55센치로 알고 있는데, 어지간한 튼튼한 중학생이랑도 싸우면 질테고, 아마 나랑 싸워도 내가 몇대 때리면 바로 기절할 것이다. 그런 애를, 어떻게 그런 지옥같은 전장으로 데려가겠어? 우리들이 미치광이들이 아닌 이상?


***


다음날 아침


다음날이 되니 빅토르는 완전히 멀쩡해졌고, 오히려 어제 하루종일 먹고 자서 몸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같이 나와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자전거를 타며 방을 알아봤지만.. 에라이, 진짜! 남서쪽 해안가의 큰 공업단지 외엔 죄다 비싸서 결국 오늘도 결정을 하지 못했고, 결국 울며 겨자먹기 느낌으로 공단쪽으로 가 방 몇개를 알아봐야 했다.


그렇게 알아보고 난 후, 정오가 지날 때쯤 우리들은 공단지역을 나와 해안도로의 의자에 앉아 오늘 본 방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E 아무래도.. 오늘 마지막으로 본 방이 괜찮지 않나요?]


[N 그렇긴 하죠. 해안가와 가까워서 전망도 좋고, 공장과 꽤 떨어져 있는 데다가 방도 나름 크고.. 거실이 거의 없다시피한게 흠이긴 하지만, 저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애요.]


[V 으으. 나틸리, 근데 거긴 공원도 없고, 노는 데가 거의 없던데.. 정말 숙박만 하고 주변에 식당에서 밥만 먹을 수 있던데.. 거기서 2개월 이상을 지내야 돼? 진짜? 우리.. 이번에 몇개월 지내면 몇년동안 여기에 못오잖아.. 재밌고 좋은 데서 추억을 쌓고 싶은데..]


빅토르 말대로.. 마지막 보고 나온 방은, 남서쪽 공단의 끝자락에 밀집한 큰 주거지역이었는데, 시설은 나름 괜찮았지만 식당들과 해변이 볼만하다는 게 다였다. 그 식당들마저도 노동자들을 위한 식당이라서 좀 돈을 들여 먹으러 갈만한 식당은 한곳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살기엔 상당히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젊고 놀고 싶은 우리들이 거주하기엔 참 재미없어 보이는 곳이긴 했다.


하지만.. 그럼 어쩌자구! 도서관이 즐비해서 에르제가 책보러 가기 편하고, 공원이랑 맛있는 음식점과 놀곳이 많아 빅토르가 즐겁게 놀 수 있는 남서쪽 상업, 행정지구나, 자전거 타기 정말 이쁜 해안도로와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성 엘지야 성당이 있는 북동쪽 종교, 주거지구는 더럽게 비싼데! 너희들이 돈 다 내줄거야? ..라고 말하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들 일을 그저 정의감으로 도와주는 빅토르와 나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온 에르제한테 그런 말을 하기 너무 미안해졌다. 이 두사람은 공짜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데.. 에이, 안되겠다. 돈을 좀 쓰더라도 내 친구들이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지내게 해야지! 그럼. 아무리 내가 짠순이라도 써야 될 돈을 안 쓸 정도로 소인배는 아니었다.


[N 알겠어.. 나도 공단지역은 도저히 안되겠어. 딱 몇개월만 지낼 거니까, 비싸지만 주변 환경 좋은 데로 가자.]


[V 아.. 정말 그럴 거야? 하하하, 다행이다.]


[E 전 정말 공단지역이라도 상관없어요. 나틸리, 우리 때문에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N 도서관은 여기랑 너무 멀잖아요. 에르제, 맨날 방에서 밤늦게까지 책 몇권을 보다 자는 걸 옆에서 보는 내가 잘 아는데, 책 대출한다고 30분동안 자전거 몰고 가서 힘들게 들고 오게 할 순 없죠.]


[E ..미안해요, 나틸리. 그렇게 해준다면야 저도 너무 고마울 것 같네요.]


참.. 에르제랑 며칠간 같은 방을 써본 나로선, 에르제가 정말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다. 새벽 2시까지 스탠드불빛을 켜놓고 책을 보는데, 여관일한다고 일찍 자는 게 버릇이 된 나로선 2시까지 스탠드불빛이 켜져있는게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방을 잡아서 에르제랑 같은 방을 쓰게 되면, 칸막이 커튼은 필수적으로 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V 아아.. 남쪽에 있는 안톤 기숙사를 쓰면, 이 모든 게 다 해결될텐데.. 교장 선생님, 생각해보니 너무해! 진짜! 우리들 진짜 소란없이 조용히 지낼 수 있는데!]


[N 학교 사정때문이라잖아, 빅토르. 나도 너무 아쉬워! 관리비랑 월세까지 준다는데 거절을 하시니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어. 기숙사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접는 게 좋을 것 같애.]


[V 에르제, 에르제도 정말 아쉽죠?]


[E 그럼요.]


우리들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와.. 대도시긴 대도시인지 엄청 큰 선박 두척이 커다란 상자들을 가득 물고 남쪽 항구로 가고 있었다. 이미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모스토크 남부에는 상당히 큰 제철소가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곳으로 가고 있는 선박 같았다.


[V 와.. 저기 해안가에 지어진 큰 공장들은 도대체 어떤 공장들일까?]


[N 아.. 저거? 저게 바로 모슈크 부사장님의 제볼테르 제철소잖아.]


[V 헉! 그래? 와.. 저런 큰 제철소의 부사장님이라 그렇게 비싼 음식들을 맨날 드실 수 있던 거구나..]


참..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부사장님한테 받은 자전거를 예로 들줄 알았더니.. 하하하! 음식으로 예를 드는 빅토르가 귀엽고 웃겨서 난 크게 웃으며 제철소를 바라보았다. 음.. 하.. 부사장님이라면.. 뭔가 집을 좋은 걸.. 아니, 아니야! 이 염치도 없는 인간아! 일주일간 귀족처럼 대접받고, 이렇게 비싼 자전거를 받아놓고 또 도움을 구하라고? 어림도 없지! 그럼! 또 뭔갈 부탁하면 난 사람도 아니다! 진짜!


[V 음.. 나틸리? 에르제?]


[E 뭘 물어보려는 거에요? 빅토르?]


[V 부사장님한테.. 집 구하는 걸 좀 도와달..]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구나? 빅토르?


[N 야, 염치란 게 좀 있어봐라! 좀! 일주일간 그렇게 왕처럼 대접받고 비싼 자전거까지 받았으면 됐지, 여기서 어떻게 더 뭘 받으라는 거야. 빅토르.. 이건 아니야.. 정말..]


[V 음.. 아무래도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부사장님이면 어떻게든 도와주실 수 있으실 텐데..]


[N ..부사장님 잘 지내고 계실까?]


[V ..다음에 한번 만나러 가 보자.]


정말 그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제볼테르 제철소를 바라보는 걸 보니, 부사장님한테 가서 집좀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게 분명했다. 아니야.. 빅토르.. 우리, 이정도 받았으면 됐어! 계속 뭔가를 요구하는 건 정말 염치없는 짓이야.


그렇게 잠시 침묵속에, 부사장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나는, 빅토르의 배에서 아주 길게 꼬르륵 소리가 난 걸 듣고선 점심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집 보느라 점심을 안먹고 있었구나?


[N 빅토르, 배고픈데 왜 말을 안해?]


[V 1시간 전부터 배고팠긴 배고팠는데 참고 있다가 까먹었어.]


[N 우리, 북동쪽 종교지구에 가서 뭐 맛있는 거 먹을까?]


[V 어? 그럴까? 헤헤, 야, 나틸리. 일년 전에 성 엘지야 축일에 갔을때, 거기 새우 샌드위치가 엄청 맛있더라. 그거 먹을래?]


[N 야, 성 엘지야 성당이 얼마나 먼데! 싫어! 다리 아파!]


[V 자전거가 좋아서 쉽게 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성 엘지야 성당으로 가서 새우 샌드위치 먹자... 응?]


[N 싫어! 임마! 그러지 말고, 가까운 체노라비 도서관에 가 보자.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친구들이랑 가서 음식들을 사먹었었는데, 거기 음식 되게 맛있었던 게 기억나. 에르제, 절 믿고 체노라비로 가볼래요?]


[E 후훗, 네, 알겠어요. 한번 믿어볼게요.]


[N 자, 2대 1이야?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체노라비로 출발!]


[V 아.. 진짜! 맨날 자기 마음대로 해!]


성 엘지야 성당도 한번 가볼까 싶었지만, 그 성당은 종교지구에서도 가장 끝자락, 그러니까 모스토크 최북단에 위치해 있어서 멀어도 너무 멀었다. 외진 곳에 있는 덕분에 주변에 건물이 없어서 경관 하나는 끝내주고 건물 수용인구도 아주 많은 성당이었지만, 지금은 거기까진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아침부터 얼마나 자전거를 몰았는데! 그래서, 새우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빅토르의 제안을 무시하고, 가까운 체노라비 역사도서관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


체노라비라는 모스토크를 고향에 둔 부자가 설립한 이 역사도서관은, 고등학교때 몇번 가본 경험이 있었다. 내가 알기론 도서관이지만 음식과 차를 팔고, 옥상 지역에서 먹을 수 있던 걸로 기억했는데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새우 샌드위치를 먹지 못해 시무룩해졌던 게 무색하게, 빅토르는 행복한 표정으로 튀긴 새우만두를 가득 씹어먹으며 나와 에르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V 아.. 그러니까, 나눠서 올라가자는 거지? 나는 혼자, 너랑 에르제는 같이.]


[N 응. 아무래도 건물 안으로 분산되어서 올라가면, 대포알이 비교적 한 곳으로 쏠리지 않겠어? 그렇게 되면 비교적 폭탄이 길을 덜 막는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 사도를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나랑 에르제가 어젯밤에 토론해서 내놓은 결과는 바로 이것이었다. 대포알은 아무래도 제한이 없이 떨어지는 것 같았고, 우리가 뭉쳐서 함께 잡으면서 올라가려 해도 너무 많은 데다가 진격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 그럴 바에얀, 다른 조가 희생하는 사이에 다른 조가 올라가 사도를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빅토르가 희생을 하고, 그 사이에 나랑 에르제가 올라가 사도를 처리하기로 에르제와는 어제 침대에서 합의를 보았다. 물론, 빅토르는 지금 합의를 봐야 한다.. 빅토르가 과연 승낙해 줄까?


[N 빅토르, 정말 미안한 말인데.. 니가 대포알을 대부분이나 다 유인하면, 그 틈에 우리 둘이 재빨리 옥상으로 올라가 사도를 처리할게.]


[V 맙소사.. 나틸리! 저번처럼 내가 폭탄한테 다 물리고 터지라는 거야? 너무하다, 진짜!]


[N 빅토르.. 미안한데.. 정말 이 방법밖에 없어! 대신, 저번처럼 되지 않게, 이번엔 계단으로 올라가지 말고, 각자 좌우에 있는 비탈진 도로로 올라가는 거야. 그러면 굴러도 계단보단 훨씬 안 아플걸?]


[V 나틸리, 나랑 같이 한조가 되서 대포들을 상대하고, 에르제가 혼자 올라가 폭탄을 상대하면 안돼? 그러면 우리들 다 크게 다치지 않을 수 있잖아.]


[N 빅토르.. 그게 효율적이면 그렇게 하고 싶어, 나도! 하지만, 올라가는 길에 사도가 눈치채고 대포알을 에르제쪽으로만 던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어? 마법사인 에르제가 그걸 어떻게 혼자 다 막아! 저 가녀린 마법사가 폭탄에 두드려 맞아 만신창이가 되는 꼴을 보고 싶어?]


[V 아니..]


[N 그럼 당연히 내가 호위하면서 올라가야겠지?]


[V ..응.. 아니야, 이런 방법도 있잖아. 내가 에르제랑 한 조가 되고 니가 혼자 올라가 사도를 처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틸리, 니 실력이면 작은 손대포 하나만 쓰는 중학생 정돈 쉽게 이길 수 있잖아.]


[E 빅토르 군, 학교 옥상에 올라가 본 적 있죠?]


[V 네.. 과거 이야기긴 한데요.. 중학교 1학년 때 아주 자주 올라가봤어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진 단 한번도 올라간 적 없어요! 정말이에요! 옥상 어떻게 생겼는지도 다 까먹었다구요.]


[N 참.. 누가 뭐라고 했니? 지가 괜히 찔려놓고선..]


아무래도 옥상에 자주 올라갔다는 말을 하면 에르제가 학창시절에 맨날 싸우는 애라고 착각할까봐 저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래.. 중학교 1학년땐 나도 솔직히 말해서 몇번 보긴 했다. 그리고.. 음.. 그리고 일기니까 솔직히 말하면.. 난 중학교 3학년때도 세번정도 올라가 본 경험이 있긴 한데.. 정말 나쁜 짓 한 건 아니다! 정말이야! 그 일은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해 줄 때가 있을 것이다.


[E 휴.. 여러분들과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딴 데로 새는 경우가 참 많네요.. 어쨌든, 옥상에 올라가봤으면 잘 알 거에요. 옥상 입구를 철문으로 막아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V 네.. 그런 경우가 많죠. 특히 방과후엔 옥상은 자물쇠로 닫아놓는 경우가 많아서 갈 수가 없을 때도 있었어요.]


[E 아무래도.. 저 이공간에 있는 사도가 제대로 된 사도라면, 옥상쪽을 문으로 잠궈놓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제 잠금해제 마법이 반드시 필요할 거에요.]


그렇다.. 에르제가 옥상쪽 문을 마법으로 해제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위로 올라가야 되고, 호위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니 나도 올라가야 했다. 결국.. 너무 미안하지만 빅토르 혼자서 폭탄과 놀아야 할 수밖에 없었다. 별 수가 없잖아, 안그래?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면, 희생을 해야지, 뭐..


내 일기장을 보는 여러분 모두,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


[V 아.. 그 이상한 폭탄들한테 또 온몸이 물리고 터지라고? 아.. 나틸리, 나 이거 왠지 중급 사도인 그레고리때보다 훨씬 더 피곤하고 힘든데?]


[N 미안.. 빅토르. 아.. 나도 어이가 없어. 어쩜 하급 사도인데 중급 사도인 그레고리랑 비슷한 것 같냐? 난이도가?]


[V 나틸리, 그땐 보리스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애. 아무리 봐도.]


[N 그렇겠지.. 아무래도? 배 몰아주고, 측면 갑판에서 길 막아주고.. 도움이 많이 됐던 건 사실이야. 안그래도 몇명 안됐는데 거기서 한명이 비니 체감이 확 들긴 하네, 그치?]


[V 응.. 보리스가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됐는데..]


보리스가 두번의 전투에서 배 몰아주고 몸빵해주고 큰 도움이 된 건 잘 알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구! 어머니에 동생 둘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 애한테, 일 그만두고 여기에서 같이 놀자고 할 순 없잖아?


[V 아.. 보리스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N 빅토르, 이제 집안의 가장으로서 열심히 배타면서 돈 차곡차곡 벌어야 되는 애한테 어떻게 돈 한푼 줄수 없고 잔뜩 위험하기만 한 우리들 일을 도와달라고 할 수가 있겠니.. 이제 보리스에 대한 미련은 접어두도록 하자.]


[V 아.. 당장 지금부터 너무 답답해서 그렇지! 아무리 봐도 우리 셋만으론 적어도 너무 적어. 우리 셋으론 하급 사도도 너무 까다롭다구. 에르제도 그렇게 생각하죠?]


[E 동감이에요. 빨리 동료를 영입할 필요성을 이번에 제대로 느끼게 되네요.]


[V 적어도 제가 보기엔 앞으로 5명 이상은 되야 중급 사도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애요. 그것도 좀 제대로 된.]


[E 뭐.. 천천히 찾아보죠.]


[V 마법사님.. 저는 이제 3개월 후에 가봐야 되요.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다구요. 언제 날을 잡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도시내에서 구해보는 게 어떨까요?]


[E 음.. 글쎄요?]


라고 말하며 에르제가 날 옆눈으로 바라보는게, <야, 니가 이 임무의 주인공이니까, 니가 빨리 찾아봐! 언제 찾아볼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걱정마세요. 집만 빨리 구한 다음,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든 찾아볼게요! 아.. 그냥, 사도를 처리하는 건, 일, 이주일 후로 미룰까? 일단 동료부터 좀 구해볼까? 아니야.. 모스토크에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 알 수가 없는데, 빅토르 떠날때까지 사도를 다 처리해야 되는데 어떻게 동료찾는다고 아까운 시간을 시간을 버려!


아!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젠장! 동료 문제에, 집 문제에, 안톤 문제에 정말 미쳐버릴 것 같네! 진짜! 나는 너무 골통이 아프고 속이 답답해서 마른세수를 또 계속 하기 시작했다. 여관에 있을땐 이렇게 마른세수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 들어선 맨날 마른세수를 하게 된다, 정말. 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냐?


내가 불쌍한 신음소리를 내며 마른세수를 하는 게 두 사람 눈에도 참 애잔하고 불쌍해 보였는지, 두 사람 다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V 나, 나틸리.. 난 에르제한테 말한 건데 니가 왜 그래.. 괜찮아?]


[E 나틸리, 시작부터 너무 걱정을 짊어지고 가지 마요. 생각보다 잘될 거에요.]


[V 나, 나틸리! 나 몸 완전히 회복됐고, 이젠 방심 안할거니까, 내일 혼자 열심히 버텨볼게! 너랑 에르제면 충분히 사도를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보기엔 너랑 에르제가 짠 이 전략! 완전히 괜찮은데? 하하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 긍정적으로!]


[N 미안, 빅토르. 이번 전투 끝나고, 방도 구하면 내가 곧바로 모스토크 온 구석구석을 찾아서 좋은 동료를 구해볼게. 앞으로도 계속 너한테 너무 큰 짐을 지게 하진 않을게.]


[V 그래, 이번 전투만 고생하고, 우리들이 함께 열심히 좋은 동료를 찾아보자. 모스토크는 엄청 큰 도시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실력좋은 전사나, 에르제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들이 수백명이 있을 지도 몰라.]


아니야.. 빅토르. 아직 제대로 동료 구한 적도 없지만, 너 정도 되는 실력의 전사는 정말 쉽게 못 구할거란 건 이미 알 수 있어. 아.. 에르제랑 나 이렇게 단 둘이서 왔으면 얼마나 막막했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빅토르가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 없었다. 3개월동안 진짜 보물처럼 잘 챙겨줘야겠다.


이후 1시간 동안 임무와 전혀 관련없는 사소한 잡담과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 옆 도로 옆에 지어진 도서관인 만큼, 옥상에서 바다경치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니 나름 기분이 많이 풀렸다. 아.. 대도시는 이래서 좋구나.. 최악이었던 고등학교1학년때의 기억때문에 모스토크를 억지로 3년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모스토크에 좋은 기억들을 가득 쌓고 그 안좋았던 기억들을 완전히 덮어놓아야지.


[V 음.. 나틸리, 이제 안톤 보러 가자. 벌써 4시야.]


[N 그래야지.. 어제 하루 안 갔는데 잔뜩 삐져가지고선.. 오늘도 안가면 제대로 삐질 거야. 아.. 걔가 원래 그렇게까지 외로움을 타는 애는 아니었는데..]


[E 아무래도.. 부모님과 연락도 못하고 외롭게 외진 기숙사에서 한달넘게 지내다보니.. 많이 외로웠나봐요.]


에르제의 말이 맞았다. 나같아도 그렇게 외진 기숙사에서 한달넘게 혼자 지내면 원래 성격이 어쨌든간에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될 것 같았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집으로 가기 전 잠시 안톤한테 들러야지, 뭐. 공부하느라 당이 부족할 것 같으니까, 여기 도서관에서 파는 딸기 케이크나 한 조각 사가야겠다. 좀 비싸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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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의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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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1-087: 010525 경찰서 24.07.17 8 0 17쪽
87 1-086: 010525 입장 시도 24.07.17 6 0 18쪽
86 1-085: 010524 허락 24.07.13 9 0 25쪽
85 1-084: 010524 뜻밖의 손님 24.07.13 8 0 23쪽
» 1-083: 010524 체노라비 역사도서관 24.06.30 12 0 27쪽
83 1-082: 010522 사도와의 전투 24.06.30 12 0 30쪽
82 1-081: 010521 게드3중학교 24.06.30 8 0 20쪽
81 1-080: 010521 블레턴 블로슈크 교장선생님 24.06.30 8 0 15쪽
80 1-079: 010520 이곳에 있게 된 이유 24.06.29 5 0 24쪽
79 1-078: 010520 원치 않던 만남 24.06.29 9 0 15쪽
78 1-077: 010520 모스토크 24.06.29 7 0 21쪽
77 1-076: 010518 출발 24.06.29 9 0 17쪽
76 1-075: 010516 정의의 마음 24.06.20 6 0 26쪽
75 1-074: 010516 취조실 24.06.20 6 0 21쪽
74 1-073: 010516 자전거 선물 24.06.20 6 0 22쪽
73 1-072: 010514 사건 종결 24.06.13 6 0 20쪽
72 1-071: 010510 경찰서안의 대소동 24.06.13 8 0 20쪽
71 1-070: 010505 레냐의 마지막 인사 24.06.13 7 0 17쪽
70 1-069: 010505 샤노브의 기억 B 24.06.12 6 0 21쪽
69 1-068: 010505 샤노브의 기억 A 24.06.12 6 0 24쪽
68 1-067: 010505 빅토르 vs 샤노브 24.06.05 8 0 30쪽
67 1-066: 010505 말릭 vs 샤노브 24.06.05 6 0 19쪽
66 1-065: 010505 아버지와 함께 24.06.05 6 0 36쪽
65 1-064: 010502 패배감 24.06.05 7 0 28쪽
64 1-063: 010501 다리에서의 교전 24.06.05 6 0 28쪽
63 1-062: 010501 레냐의 고백 24.06.04 8 0 37쪽
62 1-061: 010501 부둣가에서 작별 인사 24.06.04 5 0 31쪽
61 1-060: 010429 이공간 방문 24.05.29 7 0 29쪽
60 1-059: 010428 제미크와 대화/작전 회의 24.05.29 8 0 35쪽
59 1-058: 010427 작별 통보 24.05.27 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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