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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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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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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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새겨진 글귀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다 같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 같은 세상 속에서

다 함께 살아가고 있다지만

어쩌면 각자가 다 다른

저마다의 개별적인 세상 속에서

홀로, 따로, 외떨어져서,

서로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이 어느 쪽이든

세상은 혼재되어 있듯 개별적인 세상들이

다층적으로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에 함께 공존하면서,

횡적인 측면에서 수평적으로 연대를 가장한

혼잡한 군집이든

종적인 측면에서 수직적으로

억압적인 지배구조로서 층층이 쌓여있든.

말하자면 가장 극단적인 비유로는,

자신의 내면 속에 갇힌

감정적 지옥 혹은 감정적인 천국

그 자체가,

오직 정서적인 상태와 정신적인 상황에 불구한데도

광대하고도 극소한, 그래서 한 개의

자체적인 완결성을 갖춘

개별적인 독자적 세계가 될 수 있었다.

그것도 완벽한 의미에서 성립이 가능했다.

인간은 자신의 껍질을 뚫고 나오지 못하므로

그만큼 취약하지만 또한 반면에 그만큼

독자적인 보존성을 보장받았다.

세상은 언제나 지옥 아니면 천국,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따분하고 답답한 현실일 뿐이었다.

언제 보아도 멋없고 평범하고 밋밋하고 아무 특징도 없는

들판과 산야와 계곡의 풍경이 매일매일인 현실이었다.

이런 선택지들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피 흘리는 세계가 갈라지고 균열이 생기면서

욕망의 선연한 즙액은 고이고 고이다가 흘러내렸다.

욕망들은 계속 방황하듯 갈구하면서

이렇게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을 대결하면서

인간을 생명이라는 활동으로

온갖 갖가지 모습 속에서 작동하게 했다.

세계와 더불어 인간은 현실을 극복하면서

간신히 의미를 찾고 또 간신히 의미를 얻었다.

세상에 적응을 하면서 그렇든

세상에 적응을 못하면서 그렇든.

그렇다면 길은 하나였다.

비록 욕망의 갯수만큼 세상은 다양하게 많았지만.

세상이 가끔 균열을 내면서 그 벌어진 세계의 틈으로

신들이 마시던 약수(藥水)인 황금빛 샘물을 흘려보낼 때

그 물줄기를 간취하고 획득하느냐,

획득하지 못하느냐,

그 차이가 각자의 모든 인생을 갈라버렸다.

그때의 세상이 1개이든 몇 개든 몇 십 개든,

그 갯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세계의 균열된 틈이 발생하고 또 그뿐만이 아니라

그 틈에서 생명의 황금빛 물줄기들이

반드시 흘러나와야만 했다.

그렇다면 어지러이 세상들이 그토록

무질서하게 난적하고 중첩되어서

아무렇게나 막 쌓여있어도 좋았다.

그 하중이 무게감을 가지고 짓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명의 물줄기들이 흐르지 않고

때로는 아예 세상이 몇 개든 단 한 개든

균열된 틈이 자비롭게 열리지 않을 때는,

절망과 고난이 찾아왔다.

세상이 닫힌 것이었다.

세계는 생명의 물줄기들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생명의 물이 달라붙어 폭포와 석벽 절벽과 계곡에

흐르지 않을 때

우수(憂愁) 어린 황혼은

고대의 공포 어린 그늘이 가득했었다던

저녁의 황혼이라는

까마득하게 먼 옛 신화를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그 황혼은 환상이었는지도 몰랐다.

각자에게 모두 조금씩이라도 다른 황혼이었으므로

각자에게 모두 약간이라도 다른,

그러나 같은 환상이었을 것이다.

우수(憂愁)는 모두에게 슬픔이었으나

그 우수(憂愁)의 종류는 아무리 조금씩은 달라도

모두에게 각자가 다 달랐다.

어쩌면 그때마다의 제각각 겪고 있는 황혼은

곧 각자의 영혼이었는지도 몰랐다.

제각각의 황혼과 제각각 각자의 영혼.




기적의 나무 밑에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서 있었다.

나무는 변함 없는 모습으로 마치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는 듯이

낯선 방문객인 레이피엘페이셔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묵묵히 맞아주었다.

말없이 나무를 올려다보던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제 위치로 내렸다.

눈 높이 부근의 나무 줄기를 고요히 그리고 느리게

더듬듯 그녀의 시선은 아주 겸허하고 무척 느리게

떠돌았다.

그녀의 시선에서 그 무엇도 쉽게 읽을 수 없었으므로

그녀가 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무도 그녀도.

그녀가 찬찬히 어루만지듯 나무를 물끄러미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무의 크고 우람하며 거대한 줄기에

글귀가 새겨져있었다.

"이곳에 온 자여,

너의 인생이 아름답다면

너는 그것을 그냥 즐기면 되었을 터,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고대에서부터 이 시대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서 공용어처럼

모두가 다 어느 정도는 구사했었던

디켈란트어로 깊이 깊이

껍질을 뚫고 새겨져 있었다.

레이피엘페이셔스는 그 글귀를 보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서글픈 미소도 아니고

재미있다는 듯이 기뻐하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기묘하고 괴상한 웃음이었다.

껍질마다 갈라진 틈에 곰팡이와 이끼가

피었다가 죽고 다시 피고 다시 사라지다가

희미한 푸르스름한 얼룩들이 남아서

그 틈새에 끼이듯 메우고서 무늬처럼 변해있었다.

그 희미한 무수한 세월의 흔적들처럼

나무는 짐작하기 어려운, 세계와 그 섭리의

상징과 경험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별로 불쌍하게 여길 필요조차도 있기나 할까?

레이피엘페이셔스는 왠지 착잡하지만 달콤한 음성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가 물끄러미 그 나무 줄기와 그 글귀를 더 쳐다보더니

오른손을 이윽고 천천히 뻗었다.

두 겨드랑이가 매끄럽게 드러난 끈으로 매달려 있는

긴 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의 팔은

이른 아침인 숲의 공기를 반사시켜서

더욱 신선하고 차갑게 순백색으로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녀의 오른손에서 차츰 선명하고 기이한 섬광들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뿜어져나와서

나무까지 같은 빛들의 색채들로 물들어갔다.

파랗고 진한 색채와 연한 초록색과 점점 더 신비하게

출몰하는 연보라색까지 온갖 빛들이

그녀의 오른손에서 점점 더 그리고 끝없이 흘러나왔다.

이제 나무는 점점 더 빛들로 물들어서

투명하게 속이 비칠 것만 같은 착각으로

점점 더 색깔이 연해졌다.

기이하고도 신령한 모습과 색채로 변해버린

나무의 색이 완연한 걷껍질 부분을 향해서

그녀가 서서히 걸어들어갔다.

그녀의 오른팔부터 그녀의 어깨와 상반신과

그리고 오른쪽 다리와 그 치맛자락까지.

그때였다.

그런 그녀를 홱, 갑자기 놀랄 만큼 강한 힘으로

몹시 사납게 누가 뒤에서 잡아챘다.

데미모레페이게스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그녀를 있는 힘껏,

모든 완력을 동원해서 잡아당기고 있는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지렁이들처럼 몇 개가 팽팽하게 이마의 피부로 튀어나왔다.

그녀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소리 없는 비명처럼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

경악스러운 분노가 터져서 폭발하고 있었다.

당황한 그녀가 갑자기 오른팔 전체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들을 폭사시키면서

오히려 그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양쪽 모두 팽팽하게 그 상태로 정지하듯이

어느 쪽도 더 밀리거나 더 잡아당기지도 못하고

그저 붙잡고서 대치만 강렬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긴장 속에서 지속하고 있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레이피엘페이셔스의 오른쪽 어깨를

쥔 그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오른손이 붉고 선명한 진홍색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레이피엘페이셔스의 얼굴이 경직되어서

험악하고 딱딱한 인상으로 변해버렸다.

레이피엘페이셔스가 오른팔에 마법을 더욱 증가시켜서

레이피엘의 오른팔에서 나오는 빛들이 양들이

더욱 많아졌고 색깔들도 완전히 진한 마치

깊은 바다 해저의 심연처럼 파란색으로

변해버렸다.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양쪽 턱이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꽉 다물어졌다.

데이모레페이게스의 뒤쪽에서 누가 나타난 것이

레이피엘페이셔스의 두 눈에 포착이 되었다.

외이겐테르델핀이었다.

다짜고짜 난데없이 나타난 외이겐테르델핀은

역시 마찬가지로 다짜고짜 무조건 공격부터

데이모레페이게스에게 돌풍처럼 폭풍우처럼 퍼부었다.

그러나 등을 돌리고 있었던 데이모레페이게스는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를 더듬더니

등 뒤로 왼손을 다시 힘차고 거세게

무척 빠르게 뻗었다.

떨쳐진 데이모레페이게스의 왼손에서는

채찍들 같은 어렴풋한 빛살의 줄기들이

무수히 많이 외이겐테르델핀에게로 날아갔다.

외이겐테르델핀이 쥐고 있던 화려함의 극치로 만든

장창과 외이겐테르델핀에게 날아간

그 빛줄기들은 다시 불길하고 무시무시한 불길들로 변해서

차례차례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거리며 불길이 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이상하게 외이겐테르델핀의 몸에서는

불길이 타오르지 않았다.

외이겐테르델핀이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 불길들을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회색과 파란색이 뒤섞인 빛들이 새어나오는

그의 오른손이 옮겨다닐 때마다

그 불길들은 계속 그의 오른손으로 흡수되어

곧 사라졌다.

이 모든 광경들을 데이모레페이게스의 맞은편에서

또 데이모레페이게스와 바늘 한 개도 들어갈 틈도

주지 않으면서 레이피엘페이셔스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

곧 모든 불길들이 외이겐테르델핀의 몸에서 사라졌다.

외이겐테르델핀이 의기양양하게 이상하게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서려던 때였다.

외이겐테르델핀의 비스듬히 왼쪽 뒤

어디쯤에서 외이겐테르델핀에게

급강하하는 매보다 더 빠르게 낙하하면서

공격과 착지를 동시에 시도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크레뮐켑테이톤이었다.

경악한 외이겐테르델핀이 깜짝 놀랄 만큼

큰 비명을 질렀다.

욕처럼 맹렬한 고함 소리였다.

너, 넌? 또... 너냐? 그건 그렇고, 여기를 도대체 어떻게...?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다 더듬으면서

외이겐테르델핀은 터무니 없이 커진 두 눈동자로

크레뮐켑테이톤에게 물었다.

그러나 돌기둥이나 나무처럼 말없이

그러나 불타오르는 비웃음으로

크레뮐켑테이톤은 가만히 서 있었다.

신속하게 놀랄 정도로 잘 피한 외이겐테르델핀은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이 놈을 공격을 해야 하나,

아니면 저 나무로 들어가기 위해서 시도를 해야 하나,

그렇게 두 저 남녀를 먼저 해치우고

이 비열한 놈이 내 뒤를 공격하건 말건 그냥

나무 속으로 일찌감치 들어가기나 할까.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누구에게 그리고 뭘 딱히 할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여러 가지가 다 막연하고 다 모호한

질문을 그리고 누구에게 한 것이지도 모르겠지만

난데없이 그가 던졌다.

레이피엘페이셔스가 한 번, 차갑게 비웃고 나더니

순식간에 뭔가 터지고 폭발한 것처럼

그곳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어떤 미세한 소음마저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삽시간에 쥐고 있던 오른손에서 어떤 물체도 없어지고 만

데이모레페이게스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이제 외이겐테르델핀과 크레뮐켑테이톤이 있는 곳으로

그는 성큼성큼 거칠 것도 없이 기세등등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외이겐테르델핀의 얼굴이 주춤하면서 굳어졌다.

흐려진 얼굴의 외이겐테르델핀이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나더니

장창을 놀라울 정도의 순식간에 갑자기 작게 줄이고는

자신의 왼팔 속에 집어넣었다.

잠깐 데이모레페이게스를 이를 악물고 노려보고 난 후에

다시 잠자코 묵묵히 침묵만 지키고 있는 크레뮐켑테이톤을

원수처럼 적개심이 어린 시선으로 응시한

외이겐테르델핀은 오른쪽 어깨를 틀어서 등을 돌리며

상의를 확, 공중에 거세고 난폭하게 떨쳤다.

그 다음 순간에 이미 외이겐테르델핀은 그곳에 없었다.

판타지 문피아 나무에.jpg

판타지 문피아 나무에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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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불의 보석 24.07.04 5 0 11쪽
71 얼음의 보석 24.07.03 8 0 14쪽
70 용의 보석 24.07.02 9 0 13쪽
69 이 낙엽들도 언젠가는 타오르는 불길로 24.07.01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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