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와 거울과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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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왕국
작품등록일 :
2023.09.12 13:38
최근연재일 :
2024.09.20 17:12
연재수 :
1,7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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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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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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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5쪽

언어는 사랑을 위장한다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들




DUMMY

한쪽 눈이 자연 그대로의 육신의 눈이 아닌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런 탓에 유난히 더 번쩍거리며 빛나는

남자는 침착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무도 듣는 이도 없고

어떤 박수 소리도 들릴 리 없는

텅 빈 수업실에서

그는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연주하고 수련하던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을지도 모르는

그의 음악을 정성을 들여서 섬세하고 세심하게

그러나 즐겁게 어떤 목적성도 배제하고

단순한 상념과 혹은 모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치고 있었다.

밤의 해변에서 검은 물결의 덧댄 연속으로써만 밀려오는

검고 차가우며 부드러운 액체에

신발을 벗고 두 발을 딛고서 검은 밤바다처럼 침묵을 지키며

물결의 흐름처럼 무심(無心)하게 존재하는 사람처럼

바다의 파도가 해변을 검은 시간의 붓으로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며

적시고 있듯이

그는 음악에 몰두하고 있었다.








차츰 겹쳐지면서 피아노의 음률(音律)은 섬세하고 가녀리게

그리고 선명하고 복잡하고 자꾸만 정교하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작고 자잘한 음(音)들을 덧붙여가면서 다시 또 쌓아가듯이

그는 음계(音階))와 음계(音階) 사이의 연속된 공백이라는 미세한 연결을

흩뜨리고 어질러놓는 것처럼

잠시 멈추고는 그리고 다시 시작하여 더 나아간 회복처럼

불규칙하고 비대칭적인 음(音)들을

밤바다의 끊임없는 조수(潮水)가 어둠 속에서

밀려오듯이 물러가며 다시 반복해서 같은 동작으로 다가와서

고요히 잠든 감수성의 장막을 가로지르는 잠수와 부상의

새로운 흔적으로 세계의 균열을 일정하게 뒤흔들듯이

경건하지만 잔잔하게 담담한 경쾌함처럼

무표정한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소를 띠고 연주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대칭이거나 비대칭이듯이

과거의 사라진 음(音)들과 지금의 남아있는 음(音)들이

대칭이거나 비대칭이듯이.






두 눈을 감은 탓에

한낮임에도 그에겐 밤과 낮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이미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치켜들어 천장을 무의미하게 쳐다보면서

자신만의 의식 속으로 잠기듯 빠져들어간 그에겐

순간이 사라진 지금의 그 순간, 이 순간만이

자신과 더불어서 함께 있을 뿐이었다.



그의 손가락들은 그의 단정하고 예의 바른 행동거지처럼

희고 깨끗한 그리고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두 손이었다.

귀족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교양을

충실하게 제대로 익혔으므로

그는 흠잡을 곳이 없는 원만한 사람이었다.

과거에 전쟁터에도 몇 번이나 나갔었고

악령들이 대규모의 범람처럼 사람들을 물어죽이며

다시 그 사람들을 또 다른 악령들로 변하게 만드는

블라스펙트 러페이케이스의 성난 파도 같은 창궐이 있었을 때,

그때에도 퇴치를 위한 국가적 규모의 기사단(騎士團)에

소집을 받아서 기꺼이 참전했었던 군인이자 기사(騎士)였으나

이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음악계의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가 피아노 건반에 몸을 깊이 숙였다가

다시 원래대로 펴가면서

두 눈을 감고 피아노에만 몰두하고 있는 교실에는

텅 빈 고요만이 활동하던 모든 것들의 지나간 흔적처럼

다시 채우고 있었다.

장식천처럼 음(音)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서

검은색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서

연주하는 피아노 음향(音響)들의 윤곽이

선명하게 도드라진 무색채의

섬세하고 투명한 촉각이 되도록

어느 누구도 없는 교실에서

엷고 맑은 장중(莊重)함이 넓고 편안하게 배어있는 적막(寂寞)이

공간의 곳곳을 부드럽게 스치듯 흐르고 있어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무음(無音) 속에서

어디에선가 스며들어 내리고 있는 긴 빛줄기들이

그와 그의 음악을 음악의 물결이 자꾸만 퍼져나가는 적적한 방인데도

어렴풋한 햇살 속의 풍경으로

희미하고 아련한 나머지 비현실적인 추억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천천히 띄엄띄엄 울려퍼졌다.

단조롭고 느린 소리의 음향들이

정상적으로 이어지는 속도가 아니라서

진심으로 치는 것이 아닌 박수처럼 들렸으나

뒤를 돌아본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크게 지으며

피아노에서 두 손을 떼고

등받이가 없는 가로로 길고 낮은 검은색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 오셨군요.


네. 오셨군요.

그녀는 차분하게 그러나 놀랍도록 싱싱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로

애써 긴장을 가득 억눌러가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물상자를 가지세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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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회: 연금술의 비밀 23.11.06 4 0 5쪽
13 13회: 나는 누구인가 23.11.05 5 0 5쪽
12 12회: 블라스펙트 러페이케이퍼스와 소년 23.11.04 7 0 7쪽
11 11회: 한낮의 음악 학교 23.11.03 46 0 5쪽
10 10회: 블라스펙트 러페이케이퍼스 23.11.01 6 0 12쪽
9 9회: 노인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23.10.30 9 0 9쪽
8 8회: 연금술에 대하여 23.10.27 13 0 15쪽
7 7회: 칼 판매상의 마지막 이야기 23.10.26 16 0 9쪽
6 6회: 내게는 뭔가가 없었다네 23.10.25 18 0 12쪽
5 5회: 칼 판매상과 도시 23.10.23 29 1 15쪽
4 4회 : 내 이름은 엔티레이미크 23.09.19 47 1 4쪽
3 3회 : 금지된 마법서 +1 23.09.18 50 2 10쪽
2 2회 : 세상에서의 처세 +1 23.09.13 95 3 10쪽
1 1회 : 시장에서 +2 23.09.12 268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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