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강 특) 격투기 피지컬로 함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9.18 16:36
최근연재일 :
2024.01.02 13:2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43,123
추천수 :
751
글자수 :
239,870

작성
23.12.13 18:20
조회
1,183
추천
18
글자
18쪽

투우양성소

DUMMY

미팅 시간이 되어 나는 팀장과 함께 안양으로 회사 차를 몰고 갔다.

이번에 같이 합방을 하게 된 크리에이터는 운동 관련 정보성 콘텐츠를 주력으로 삼는 너튜버였다.

MCN팀에서 준비한 브리핑 자료엔 운동 너튜버들의 운동 너튜버라 불릴 정도라고 되어 있었다.

그만큼 전문적이라는 뜻이겠지.

운동은 내 평소 관심사가 아니라서 난 이번에 처음 본 너튜브 채널이었다.

채널명 ‘투우양성소’.

구독자가 무려 37만이었다.

다만 영상 조회수는 평균 20만 수준으로, 몸집이 작은 한펀치TV보다 조금 적은 정도였다.

그나마 최근 영상들의 조회수가 높은 덕분에 평균치가 올라간 것이었다.

이에 대해 팀장은 말을 덧붙였다.


“원래 주먹구구식으로 혼자 채널 운영하던 양반인데, 얼마 전에 우리 회사로 들어와서 상황이 나아졌지. 합방 콘텐츠도 내가 MCN팀에 팁을 줘서 시작한 거라니까? 이렇게 다른 팀에서도 와서 나한테 조언을 구해요.”


언제나와 같이 자기 자랑을 섞어서.

하지만 이번엔 자부심을 가질만했던 것 같다.

운동 쪽으론 문외한에 가까운 나조차 이름을 들어본 대형 채널들과 합방을 자주 했으니까.

아마 운동 너튜버들의 운동 너튜버라는 포지션을 잘 활용한 거겠지.

덕분에 채널도 쭉쭉 컸고.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합방을 하게 되어서 급이 좀 확 낮아진 경향이 있긴 했다.

나로선 무척이나 이득이었으나, 투우양성소 쪽엔 도움이 되긴 되는 건가?

이런 걱정도 박철호 팀장이 날려주었다.


“곧 추석이잖아요. 연휴가 엄청 길더만. 왜 강용 씨도 올 설에 콘텐츠 미리 기획하고 제작하느라 피똥 싸봤으면서 그래? 합방할 만한 큰 채널들이 다 자기네 콘텐츠 찍느라 바쁘니까 우리가 땜빵 해주는 거지. 또 우리 불도저가 운동이랑 아주 무관하진 않잖아?”


대중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휴일은 좋기만 한 게 아니었다.

직원들은 쉬어야 하고, 콘텐츠는 멈출 수 없으니 그 전에 일정에 맞춰 콘텐츠를 몰아서 뽑아놔야 하는 거다.

그런 사정 때문에 고작 구독자 3800짜리인 내가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너튜브 면에서도 좋은 일이지만, 내가 진짜 기대하는 건....


“어우, 저기 투우양성소 분 나와 계신 거 아니에요? 와.... 저분은 진짜구나.”


운전을 하던 나는 목적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를 넋 놓고 보았다.

힘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표현하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바람막이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어 전신이 다 가려져 있는데도 힘이 옷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적당한 살집과 어마어마한 근육.

저녁이라 그런지 턱 전반에 까슬까슬 자라난 수염마저 장사의 이미지를 완성시켜주었다.

저 거구를 가지고 100m 달리기가 13초대에 턱걸이도 스무 개씩 한다고...?

이번 합방이 내게 좋은 기회일 거라 생각한 이유는, 투우양성소에서 보디빌딩식 운동만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퍼포먼스 향상과 기능성 운동 방면에서 최신 트렌드와 논문 기반의 정보를 제공해줬다.

그러면서 실제로 훈련에 적용해 성과를 보여주기까지 하니, 지금 체육관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됐다.

오영웅 관장님은 배밀기만 하면 상체 근력에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끼익


투우양성소의 채널 주인인 김선호씨가 미리 나와서 안내해주어 간단하게 주차를 했다.

내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김선호씨는 제법 놀랐다.


“어이고, 직접 운전해서 오셨네요? 듣기로는 PD님이랑 동행하신다고....”


“...아, 맞아요. 박철호 팀장님!”


내 부름에 뒷좌석에서 팀장이 황급히 내렸다.

아마 김선호씨가 마중 나올 거라 생각 못해서 속으로 당황하고 있겠지.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하하, 대표는 좀 너무 무겁고요. 투우양성소니까 그냥 소장이라고 불러주세요. 몸도 무거운데 호칭은 좀 가벼운 게 좋잖아요?”


김선호 소장이 호쾌하게 말했다.

목소리 톤부터가 굉장히 호감형인 사람이었다.

김선호 소장은 투우양성소라고 말하면서 뒤쪽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는데,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외벽에도 투우양성소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여기가 바로 촬영 장소이자 김선호 소장의 일터였다.

건물 앞으로 러닝 트랙과 잔디밭이 있고, 개방된 1층 내부에는 각종 운동 기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오직 피지컬 훈련을 위한 센터였다.


“자, 들어가서 미팅 진행하시죠. 그런데 보통은 PD님들이 운전을 하시거나 보조석에서 촬영을 하시던데, 불도저 채널은 좀 다르네요?”


통상적으로 크리에이터가 갑, MCN회사가 을의 관계를 맺었다.

그렇다 보니 MCN 소속의 PD가 크리에이터의 비위를 맞추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습관적으로 상석에 앉은 팀장의 행태가 이상해 보일만했다.

김선호 소장의 질문에 팀장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당장 변명이 떠오르지 않는 거겠지.

난 당황한 팀장을 대신해서 나섰다.


“제가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이따가 돌아갈 땐 어차피 팀장님이 차 끌고 가서 반납해야 하거든요. 서로 한 번씩 움직일 때 쉬기로요. 그쵸, 팀장님?”


“아~ 서로 배려해주셨구나? 보기 좋네요. 미팅 끝나면 피곤할 테니까 그땐 여기 팀장님이 운전해주시고.”


엄지를 치켜드는 김선호 소장에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팀장.


“아... 예. 하하, 그런 거죠. 불도저...님 덕분에 편하게 왔으니까요.”


팀장은 복귀할 때도 당연하게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나온 이상 돌아갈 땐 팀장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지.

난 아예 미리 차 키를 팀장에게 넘겨주었다.


“이따 깜빡하고 차 반납 못하면 큰일이니까 지금 드릴게요. 흐흐.”


“....”


이에 팀장은 말없이 열쇠를 받아들었다.

두 눈으로 강렬한 욕을 쏟아내는 것 같았지만, 난 싱긋 웃어주고 건물로 들어갔다.

투우양성소 안에는 온갖 운동 기구들이 즐비했다.

헬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부터 쇠로 만든 썰매 같은 도구나 거대한 DDR 게임기처럼 생긴 것까지.

나는 박물관에 놀러온 아이가 된 듯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그 모습을 본 김선호 소장은 뿌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시설 나쁘지 않죠? 제가 장비에는 욕심이 좀 있어서 빚잔치 해가면서 해외에서 들여왔어요.”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이런 곳은 처음 봤는데요? 밖에도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요.”


말 그대로 헬스장조차 다녀보지 못한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내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김선호 소장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꽃폈다.


“하하하! 뭘, 그렇게까지 칭찬할 정도는 아니에요. 후후, 나중에 시간되시면 부담 없이 운동하러 오세요.”


“정말요? 이야, 감사합니다. 여기 영업시간이 어떻게 되죠? 혹시 운동하면서 촬영도 해도 될까요?”


기분이 좋아진 김선호 소장이 예의상 한 말에 난 눈치 없는 척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 된 김선호 소장.


“어... 예, 예. 그, 잠시만요.”


“여기서 운동하면 진짜 몸 금방 좋아지겠네요! 운동 쪽으론 거의 뭐 못하는 게 없는 정도 아니에요? 어우, 이런 데에서 운동 시작하면 눈이 너무 높아질 거 같기도 하고....”


내가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자 김선호 소장은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직 오픈 초기라 사람 별로 없으니 미리 연락만 주고 오세요. 제가 외부 강의나 촬영 같은 거 있는 날 빼곤 늘 상주하고 있으니까요.”


김선호 소장은 덩치만큼이나 대인배였다.


“이거 뭐 죽을 때 관짝에 넣어 갈 것도 아니고, 도구는 어떻게든 써줘야 제 몫 하는 거잖아요? 불도저님 같은 분들이 센터 이용해주면 저도 기분 좋죠.”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다음에 꼭 연락드리고 올게요.”


“좋죠, 하하하! 대신 촬영할 때 최대한 센터 때깔 좋아 보이게 찍어주셔야 합니다?”


김선호 소장은 센터 홍보에 도움을 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제 구독자 4천이 좀 안 되는 내 채널에 노출된다고 홍보가 되면 얼마나 될까.

그냥 내가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겠지.

나 같은 사람이 이용해주면 좋다고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운동에 대한 내 열의를 좋게 평가한 것 같았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더니, 운 좋게 전문적인 피지컬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 이용권이 생겼다.

호의를 받았으니까 나도 센터 홍보가 될 수 있게끔 잘 해야지.

확실히 이런 것도 해볼수록 느는구나.

예전에는 뭐 부탁하거나 요구하는 말 진짜 못했는데, 한펀치TV 때 팀장이랑 협상해본 이후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네.

난 조금 전의 대화를 자평하며, 김선호 소장과 팀장을 따라 1층 구석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엔 우리 회사 MCN팀의 PD도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오며가며 얼굴을 마주친 적 있는 직원이었지만 서로 말을 맞춰놓은 대로 초면인 척 인사하고 미팅을 시작했다.


“브리핑 자료 읽어보니까 여기 소장님 주관 하에 제 3대 운동 무게를 측정하는 기획이더라고요? 맞죠?”


“예, 맞아요. 불도저님 혹시 3대 몇 정도 치세요?”


김선호 소장은 거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3대 운동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하면 척추반사로 던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난 그 물음에 원하는 답을 줄 수 없었다.


“어.... 제가 3대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이게 콘텐츠가 제대로 진행이 될지 모르겠네요.”


“아~ 그럼 보통 맨몸운동 쪽을 하셨어요?”


“아뇨, 그런 근력운동은 군대에 있을 때 푸쉬업 같은 거만 좀 했고요. 최근에는.... 지난주에 종합격투기 체육관 등록해서 며칠 나간 게 전부예요.”


대학교 1, 2학년 때 댄스 동아리 활동하면서 기초적인 체력 운동을 하긴 했지만 벌써 8~9년 전이라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내 말에 김선호 소장이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닌데.... 제가 지금까지 운동한 사람들 몸을 얼마나 많이 본 줄 아세요? 불도저님 근육 잡힌 거 보면 분명히 뭔가 했는데.... 평소에 몸 쓰는 일이라도 하시죠?”


이젠 거의 취조를 하는 듯한 말투.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냥 사무직이에요. 진짜로 제가 뭐 이런 걸로 거짓말할 이유가 있겠어요?”


“하긴, 그것도 그렇죠. 말씀하신 게 정말이면, 직종을 바꾸든지 하셔야겠는데요.”


“예...?”


“제가 옛날엔 씨름 선수였거든요. 그때도 같이 운동하던 애들 중에 이런 타입이 있었어요. 밥만 잘 먹어도 근육이 턱턱 붙는 호랑이 같은 놈들. 제가 그런 부류들한테 피지컬로 밀려서 트레이닝 공부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호쾌하던 김선호 소장이 농담하듯 말하면서도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쓰라린 사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선호 소장은 굉장히 성숙한 태도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그렇게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보통 공부는 잘 안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불도저님은 제가 미리 습득해놓은 지식으로 운동만 하면 됩니다. 하하, 어쩌면 전설의 시작을 함께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제가 잘 준비해볼게요!”


타고난 능력이 부족해 경쟁에서 밀렸다면 열등감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도 유쾌하게 말하며 오히려 날 치켜세워주는 게 몹시 인상적이었다.

김선호 소장이 말한 것처럼 내가 대단한 재능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서 방송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유, 집에 가서 3대 운동 공부라도 해서 와야겠네요.”


“아니에요. 오히려 초심자한테 자세를 알려주는 내용까지 담을 수 있으니까 아예 백지 상태로 오시는 게 좋겠어요. 내일 촬영 현장에서도 궁금하거나 이해 안 가는 부분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하시고요. 제가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을 물어봐주시면 영상이 더 풍부해질 거예요.”


김선호 소장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미팅에 임했다.

단순히 콘텐츠로 이익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운동 얘기만 해도 신이 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한테 직접 트레이닝 받으면 좋겠네.

당장은 여유가 없으니까 안면몰수하고 운동 기구들이나 공짜로 좀 쓰고, 나중에 돈 좀 벌면 피지컬 훈련 받아봐야겠다.

내가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김선호 소장은 3대 운동 측정 순서나 오기 전 식사 메뉴 같은 걸 얘기하고 있었다.


“...한 3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쳐주시는 게 좋아요. 직전에 뭐 먹으면 오히려 수행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거든요. 혹시 내일 촬영 관련해서 추가 의견 있으세요?”


“음, 아무래도 제가 관심을 받게 된 계기가 한펀치TV 영상이라서요. 아마 격투기 팬 분들이 많이 보시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래서, 3대 운동을 격투기 쪽이랑 연결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뭐, 변형 동작이나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 또 도전의식 불러일으키는 아이디어네요. 3대가 아무래도 스포츠에 전이효과가 좋은 운동이라, 그냥 해도 격투기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도 게스트에 맞는 특색을 넣으면 좋겠죠. 제가 이번 기회에 한번 그쪽으로도 공부해보겠습니다. 하하. 불도저님 굉장히 발상이 좋은데요? 저는 생각도 못한 접근이었어요.”


내게 엄지를 치켜드는 김선호 소장.

난 그 칭찬에 낯이 뜨거워졌다.

사실 내가 의견을 낸 건 합방 콘텐츠를 위한 것보단, 내 개인 욕심을 채우려는 속셈이었다.

어차피 전문가한테 운동을 배울 거라면, 좀 더 나한테 필요한 방향으로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걸 김선호 소장이 잘 포장해준 거였다.

이후 미팅은 별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어차피 기본 틀은 스쿼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라는 3대 운동의 기록을 측정하는 간단한 포맷.

더하거나 뺄 요소가 많지는 않았다.

그나마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조금 색깔이 강화됐지만, 덕분에 김선호 소장은 내일까지 연구를 해야 했다.

이젠 미팅을 빨리 끝내주는 게 김선호 소장을 돕는 일이었다.

나랑 팀장은 김선호 소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왔다.


“팀장님, 저는 올라가다가 사당에서 내려주시면 됩니다.”


마치 택시를 타는 것처럼 목적지를 말하며 뒷좌석에 몸을 실은 나.

그리고 보는 눈이 있어서 반발하지 못하는 팀장.


“을긌습느드....”


팀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

내가 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보는 날이 다 오네.

언제나 날 운전기사처럼 쓰면서 뒷좌석에서 자거나 핸드폰이나 보던 양반인데.

역시 사람은 갑이 돼야 해.


-부릉...!


내가 넓은 뒷좌석에 편히 앉아있는 사이, 팀장은 김선호 소장에게 인사하며 차 시동을 켰다.

룸미러로 보이는 팀장의 눈에선 하이빔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모르는 척 창문을 열어 김선호 소장에게 인사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촬영 때 봬요!”


그렇게 차는 투우양성소에서 떠났다.

출발을 하자마자 일단 차의 창문을 싹 닫은 팀장.

그러고는 꽤 성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강용 주ㅇ....”


“이야, 팀장님 연기 잘하시네요! 혹시라도 제가 저희 회사 직원인 거 들키면 어쩌나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그래도 저기 김선호 소장님도 저희 회사에 불안 생기지 않게 잘 넘어간 거 같죠?”


한 마디 하려던 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김선호 소장이 우리 회사의 크리에이터 대우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있었을 거라 판단했겠지.

팀장의 행동이 MCN팀 계약에 재를 뿌리면 회사 내 입지도 약해질 거고.

차라리 부하직원인 내 운전기사 노릇 한 번 하는 게 싸게 먹히는 길이란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끄응....”


팀장은 뭐라고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앓는 소리를 내면서 운전만 했다.

그런 팀장의 뒷모습에 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 * *


내가 집 근처가 아니라 사당으로 온 이유는 촬영 전에 눈 위 상처의 실밥을 풀기 위해서였다.

무규칙 격투기 경기가 끝난 뒤, 안내원이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병원 목록을 전해주었다.

미리 연락만 하면 목록에 있는 병원 중 어디서나 언제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든이라는 말에 미팅이 끝나고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당에 위치한 외과병원에 방문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꽤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나 하나를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박강용님이시죠?”


“아, 예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따로 대기 시간 같은 것도 없이 일사천리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음, 상처 예후가 좋네요.”


“아, 그런가요?”


의사는 꽤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다.


“관리에 신경을 잘 쓰셨나 봅니다.”


“아... 뭐, 그랬죠.”


비록 상처를 꿰매고 나서 채 이틀이 지나기 전에 BJ빡꾸랑 맞짱을 떴지만, 상처 부위를 맞진 않았으니까 잘 관리한 셈이지.

싸움이 길어지지도 않아서 땀도 많이 안 났고.

근데, 의사가 칭찬할 정도로 신경을 쓰진 않은 거 같은데...?

혹시 돌팔인가?

내가 의사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순간, 의사가 농담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상처가 정말 빨리 아물었어요. 뭐 처방 받은 약 외에 추가적으로 처치하신 게 있나요? 특히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연고 같은 건 꼭 얘기해주셔야 합니다.”


의사는 정말로 의학적인 관점에서 묻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로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자연치유 되게 뒀을 뿐이었으니까.


“어.... 그냥 몸이 튼튼한 편이에요.”


내 대답에 이번엔 의사도 내게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왜 사람을 저렇게 보지?

야심한 시각, 생각지도 못하게 난 의사와 기묘한 눈빛 교환을 하게 됐다.


작가의말

너무 건강한 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자강 특) 격투기 피지컬로 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드립니다 +3 24.01.04 267 0 -
37 역대급 데뷔 +1 24.01.02 531 23 13쪽
36 김희승 +2 24.01.01 548 23 15쪽
35 첫 계체량 +2 23.12.31 597 20 12쪽
34 지나치게 +2 23.12.30 669 23 13쪽
33 기회 23.12.29 706 15 14쪽
32 통했다 +2 23.12.28 731 16 13쪽
31 23.12.27 750 15 12쪽
30 혹시 쉬운가...? 23.12.26 800 14 14쪽
29 이제는 더 이상 안 참아 23.12.25 831 17 15쪽
28 나쁘지 않게 했구나 +1 23.12.24 845 19 16쪽
27 실행에 옮길 날 23.12.23 851 16 11쪽
26 한상헌 23.12.22 873 13 11쪽
25 치명적인 +1 23.12.21 892 16 12쪽
24 뭐하는 놈이야, 이거 23.12.20 962 17 14쪽
23 이런 게 행복이지 23.12.19 961 16 13쪽
22 너무 치사하다 +1 23.12.19 995 17 13쪽
21 세상 더럽게 불공평하네 23.12.18 1,014 20 12쪽
20 꿈만 같았다 +3 23.12.17 1,048 18 13쪽
19 무기 23.12.16 1,058 17 16쪽
18 누구 말이 맞는 거지? 23.12.16 1,092 16 17쪽
17 소싸움 23.12.15 1,115 19 11쪽
16 난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23.12.14 1,122 20 15쪽
» 투우양성소 23.12.13 1,184 18 18쪽
14 사고 쳤다...! +1 23.12.13 1,222 19 14쪽
13 BJ빡꾸 23.12.12 1,187 22 14쪽
12 복싱이 뭐냐 23.12.11 1,194 21 16쪽
11 생각이 없었다 23.12.10 1,237 21 20쪽
10 스위치 23.12.09 1,305 22 15쪽
9 하고 싶은 이유 23.12.09 1,383 16 17쪽
8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1 23.12.08 1,518 22 14쪽
7 아까워서 그래요 +1 23.12.08 1,593 21 11쪽
6 이게 되네? +2 23.12.07 1,685 29 18쪽
5 재능충 23.12.06 1,734 24 16쪽
4 처음 +2 23.12.05 1,801 30 17쪽
3 불씨 +1 23.12.04 1,966 27 13쪽
2 제 무덤을 팠구나 +4 23.12.03 2,212 28 15쪽
1 재능이 있는지도...? +13 23.12.02 2,901 4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