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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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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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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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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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소영암향무(疎影暗香舞) (1)

DUMMY

좀이 쑤시는 표정으로 벽을 쳐다 보다 입을 쩍, 벌리고 하품하던 득구는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제갈민의 시선에 움찔, 몸을 사렸다.


-잘 나가다 그럴 거예요, 진짜?


수화까지 써가며 화를 내는 제갈민에게 득구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품 좀 한 게 죕니까?

-뭐라구요?

-사람이 졸리면 하품할 수도 있는 거지!

-왜애? 글케 졸리면 드러눕고 잠이나 쳐 자지! 코까지 드렁드렁 골아가면서!

-에이, 진짜!


수화로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도종인이었지만, 느낌표까지 전달하는 두 사람의 격한 수화 덕에 내용까지 몰라볼 수는 없었다. 골머리를 짚고서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도종인이 끼어들려는 찰나였다.


“···후후.”


건너편에서 들려온 웃음소리에 세 사람의 움직임이 딱, 굳고 말았다.


“당신들··· 무슨 계획이라도 있긴 한 건가요?”


속으로만이 아니라 겉으로까지 쾌재를 부르려는 득구를 제치고, 제갈민이 나섰다.


“여기 한 소협에게는 없지만, 나에겐 있어요. 나는 제갈세가의···.”

“제갈세가의 신산이라, 그건가요?”


대사를 빼앗긴 제갈민이 뾰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요.”

“무슨 계획이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질문에, 제갈민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도종인을 쳐다보았다. 도종인은 고개를 저으려다가 득구에게로 눈을 돌렸다. 도종인의 시선을 받은 득구는 곧장 수화를 날렸다.


-뭐라도 해봅시다!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죽는 거잖수!


그런 득구를 보고 잠시 머뭇거리던 제갈민이 입을 열었다.


“계획도 좋지만···. 우선 현재 상황부터 좀 짚고 넘어갈까요?”


잠시 말미를 두고 진채염의 대답이 돌아왔다.


“···덜렁 계획부터 늘어놓는 것보다는 신뢰가 가는군요. 좋아요.”

“진목월은 우리를 죽이지 않았어요. 즉, 살아있는 화검과 연화신산, 한 소협에게 아직 볼 일이 남았다는 뜻이에요.”


제갈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포로로 잡아뒀다고 보기도 좀 어려워요. 거래든, 교섭이든, 포로라면 언젠가는 돌려보내야 하니까. 그런 포로를 이런 식으로 대접한다는 건 문제가 있죠. 화산과 제갈세가를 상대로 그런 짓을 했다간 그 뒷감당이 위험해질 테니까요.”


제갈민은 검지로 턱을 톡톡 두드렸다.


“그럼 살려는 뒀지만,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는 뜻인데··· 그 점에서 보자면, 무공을 폐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죠.”


제갈민의 말에 득구는 오싹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득구와 도종인이 독 때문에 기절했을 때, 두 사람은 완전히 무력한 상태였다. 그때 무공을 폐쇄해버렸다면, 두 사람 모두 아주 평범한 폐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목월에게는 살아있는, 그리고 무공까지 포함해서 모든 신상이 온전한 화검과 연화신산, 그리고 한 소협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제갈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득구가 투덜거렸다.


“대체 뭐에다 쓰려고 그런대요? 참, 내.”

“진목월은 마약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원이죠. 그것도 본인 실력에 자부심이 아주 뛰어난, 의원. 그런 자가 ‘무공이 고강한 산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 그건 실험이겠죠. 인체실험이라고 할까?”

“···이, 인체실험이라고요?”


득구는 속이 메스껍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에요. 가능성은 육할 내지, 칠할 정도로 봐요.”

“그렇게나···.”


제갈민이 검지를 세워 들었다.


“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죠. 여기서 하나 묻겠어요. 괜찮나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받은 기분이지만···. 어차피 지금은 달리 패를 걸 곳이 없으니까요. 마음껏 물어보시죠.”


뭔가 의지보단 체념이 느껴지는 답변이었지만, 제갈민은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로 물었다.


“실종자들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실종자?”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이도를 처음으로 방문했던 세 명의 배신자가 실종되었다고.”

“아아··· 그랬죠.”

“그 실종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계시냐고요. 그 세 명 말고도 추가로 있는지? 있다면 몇 명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또 사라진 이들이 어떻게 됐는가에 대한 소문 같은 거라도.”

“소문···이라.”

“뭐든 좋으니까요, 뭐든.”

“굉장히 특이한 방식으로 정보를 모으시는군요.”

“소문에는 의외의 진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뒤틀린 채로 실제와는 결이 다르게 변하기도 하지만, 아닌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는 법이죠.”


피식, 웃음소리가 들리고 잠시 대화가 멎었다. 바람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할 정도로 고요해진 동굴에서, 지루해진 득구가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할 무렵에 진채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제가 아는 바로, 이도에서 실종된 사람은 총 넷이에요. 물론, 제가 모르는 실종자가 더 있겠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요.”

“무슨 연유로 이도에 보내졌는지도 아시나요?”

“처음 셋은 배신이고, 나머지 하나는 거래예요.”


제갈민은 날름,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축이고서 득구의 등짝을 두드렸다. 깜짝 놀란 득구가 제갈민을 쳐다보자, 제갈민은 검지를 펴더니 바닥에 글씨를 쓰는 시늉을 했다. 받아 적으란 이야기다. 득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기저기서 주섬주섬 흙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거래? 무슨 거래였죠?”

“저와 같아요. 거래에 실패했죠. 큰 건이었는데···. 실패했어요.”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는···.”


제갈민이 득구의 등짝을 두드렸다. 멍하니 긁어모은 흙을 만지작거리던 득구는 재빨리 흙을 넓고 얇게 펼쳐 글씨를 쓸 수 있게 만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어요. 거래에 실패하거나, 정보를 누설한 것도 아닌데.”


제갈민의 눈이 매우 반짝이기 시작했다.


“짐작 가는 이유는 없나요?”

“···안타깝지만 없어요. 그는 실패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아니, 실패라고 여겨질 만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큰 거래에 성공한 사람이었죠. 당시만 해도 군웅칠세의 필두였던 당문과의 거래에 성공했으니까. 그것도 직계와의 거래요.”


제갈민도, 받아 적던 득구도, 득구의 꼬부랑글씨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도종인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시? 당문이 군웅칠세의 필두였던 때라면···.”

“물론, 9년 전의 일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네 명의 실종자 모두 그때 나왔죠.”

“혹시 그 거래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고 계시나요?”

“아뇨.”


제갈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벽을 쳐다보았다. 방금 당문의 직계와의 거래에 성공했다고 했는데 모른다니? 말이 안 맞잖아? 그러나 그녀의 의문은 곧 해소되었다.


“누군지는 몰라요.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짐작은 상당한 근거가 뒷받침되어 있고.”

“···그래서 그게 누군데요?”

“두 명이었어요. 남자와 여자였고, 두 남녀 모두 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죠. 약관 언저리의 아주 젊은 남녀였죠.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나이에 비해서 상당한 경험과 관록을 갖춘 노련한 강호인으로 보였어요. 아마도 실제로 그랬겠죠. 제 짐작에 따르면···.”


진채염이 잠시 말을 멈춘 탓에, 감옥 안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때문에 이어 말하는 음성이 매우 명료하게 들려왔다.


“남녀 중 젊은 여인은··· 바로 사독파파였으니까요.”

“!”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득구는 깔아놓은 모래 위로 빠르게 ‘사독’이란 두 글자를 적어놓았다.


“‘당문의 직계’일 거란 건 그런 뜻이었군요.”

“맞아요. 뭐, 당시엔 이미 당문의 ‘사천제일화 당교옥’이란 인물은 사라지고, 오로지 무림공적 사독파파만 남았을 때니까··· 엄밀히 말하면 당문 사람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으흠···.”


가벼운 농담이 섞인 첨언에도 제갈민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득구가 모래 위에 적어놓은 글자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정리하듯 단어를 중얼거렸다.


“창영회. 사독파파. 의뭉스러운 거래··· 그리고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는 결과···라.”

“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남자 쪽은요?”

“···남자?”


잠시 침묵이 있다가 다시 대답이 들려왔다.


“남자 쪽에 대한 정보는 없어요. 지금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건··· 백련교 쪽의 인물일 것이라는 단순한 짐작뿐이죠.”

“아뇨, 제 말은··· 뭐,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신체적인 특징이라든가─ 예를 들어, 얼굴에 흉터가 있거나, 손가락이 좀 모자라든가. 아주 단순한 거라도 좋아요.”

“단순한··· 흠. 글쎄요. 생긴 건··· 잘생기긴 했지만, 아주 뛰어난 미남은 아니었어요. 그 밖의 외적인 특징은 기억나는 게 없군요. 단지··· 아!”

“뭐죠?”

“특징이랄지··· 특이한 장면이 하나, 기억에 있군요.”

“특이한 장면?”

“관을··· 관을 매고 왔던 걸로 기억해요. 아주 커다란 관이었고, 나무가 아니라 철로 된 물건이었어요. 아무리 봐도 평범한 물건은 아니어서 기억에 남았죠.”


제갈민은 검지로 턱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그때의 상황이 도화지 위의 그림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이 직접 겪었던 거래 과정 역시. 두 개의 그림이 마치 틀린 그림 찾기 놀이라도 하듯, 동일한 속도, 동일한 장면으로 흘러갔다. 두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만 다를 뿐.


처음 이도에 도착해 백무원을 만나고, 진목월을 만나러 구룡성으로 간다. 구룡성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생활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거래자와 백무원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창영회의 일원이며, 곧 백무원이 될 자들, 혹은 백무원이었던 자들이니까.


그렇게 감시 아닌 감시 속에서 진목월을 만난다. 진목월이 직접 나서야 할 정도의 큰 건이다. 진목월은 자신이 직접 조리한 염국계로 상대방을 대접해준다. 예상보다 추레하고, 격식 없는 진목월의 모습에 상대방은 방심 아닌 방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래’가 시작된다. 진목월은 보통 원하는 바를 먼저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쪽이지, 사람들을 찾아가는 쪽이 아니니까. 심지어 그 상대가 화산의 화검이든, 제갈세가의 신산이든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9년 전의 거래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짐작해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약왕전’이다.


진목월은 창영회의 주인이자,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거부이며, 광동성에선 절대적인 권력자이지만, 그의 본질은 의원이다. 그가 스스로 의원이라 칭하고, 그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창영회를 의가(醫家)라 칭하는 걸 보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진목월이 목표로 하는 건, 약왕전의 지식이다. 그리고 사독파파는 현시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약왕전주 서동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득구와 성채조차도 약왕전주를 보긴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기묘한 공간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 아닌가?


반면, 사독파파는 그의 아들이 치유를 받았고, 또 그에게서 직접 ‘약왕서’라는 서책까지 전달받았다고 했다. 물론, 정확히는 그 책의 절반뿐이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독파파는 진목월이 원하는 걸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거래는 실패한 것이 아니군요.”

“실패한 게··· 아니라고요?”

“네.”


제갈민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거래는 성공했어요. 단, 거래의 주체가 달랐겠죠.”

“거래의 주체가 달랐다고요?”

“지금까지 진목월을 찾아온 이들은 모두··· 그에게서 무언가를 바란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진목월이 원하는 무언가를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죠. 하지만, 사독파파는 달라요. 그녀는 진목월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게 뭐죠?”

“약왕전주에 대한 단서··· 그리고 지식.”

“···!!”

“그리고 그렇기에, 그때의 거래는 평소와 달리, 사독파파가 요구한 것을 진목월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태였겠죠. 그리고, 진목월 또한 그것을 원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으로써는 그들의 거래는··· 이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군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제갈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벽 너머로도 숨을 죽이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해진 상태에서, 제갈민은 단언했다.


“진목월은··· 실혼인을 연구하고 있어요.”



* * *



“‘그걸’ 깨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백무원은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로 조금 전에 평정심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는데, 여기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아마도 진목월이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쯤은 놀라도 괜찮지 않겠나? 이 사람도 나름 회심의 한 수로 준비한 것인데.”

“···어째서인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후후···.”


진목월은 턱을 긁적였다. 손칼로 대충 끊어 까슬까슬하게 다듬은 수염이 뒤덮은 턱을 긁던 진목월은 검고 짧게 닳은 손톱을 들어 살피며 말했다.


“한번 맞춰보시게.”


백무원은 답을 하는 대신 도리어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신중함 외에는 기댈 것이 없는 법이다.


“모르겠습니다.”

“오호!”


진목월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박수를 쳤다.


“후후후, 자네가 오늘 이 사람을 크게 놀라게 하는구먼그래.”


진목월은 턱의 긁던 부분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후후, 하긴 사내의 성장이란 언제나 한순간의 일이라지. 대오각성(大悟覺醒)이란 말이 괜히 있겠나? 후후후···.”


비웃음을 기대했는데, 진목월의 웃음에는 깔보는 기색이 그다지 담겨 있지 않았다. 백무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책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 사람이, 자네를? 어째서?”

“답을 드리지 못했잖습니까.”

“자네가 어찌 답을 알겠나? 이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닐진대 말이야?”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백무원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멍청한 소리를 늘어놓기 보다는 설명을 기다리는 편이 나은 선택이니까.


“다른 이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힘을 오래 다루다 보면, 사람은 착각하게 된다네. 스스로가 전지전능하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런 착각 속에 오래 빠져있다 보면···.”


진목월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네.”

“···그렇군요.”

“중요한 점이라네, 아주 중요한 점이야. 자네가 구룡성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네.”


진목월은 검지를 들어 백무원의 가슴을 가리켰다.


“자네도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을 말일세.”

“명심하겠습니다.”

“후후···.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맞춰보게나. 틀려도 상관없다네.”


백무원은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머릿속의 맷돌을 굴렸다. 역시 생각이란 놈은 든 게 많을수록, 그리고 매인 게 많을수록 잘 안 굴러가는 법이다. 부담감이 덜하니, 그럴싸한 이유들이 많이 떠올랐다.


“화검과 노비 소년은 사독파파와 겨뤄 그녀를 패퇴시킬 정도의 무위를 소유한 자들이니만큼··· 역시 지금의 대법으로는 감당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후후후···.”


진목월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저 웃으며 백무원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그가 민망함을 감추기 어려울 때까지 한참이나 그를 쳐다보던 진목월은 얼굴의 웃음기를 싹, 지우고서 말했다.


“전혀 아닐세.”

“···송구합니다.”

“틀려도 된다고 해서, 그렇게 막 지어내면 이 사람이 조금 서글퍼지지 않겠나?”

“···소, 송구합니다.”


쯧쯧, 혀를 차던 진목월은 못마땅함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칼은, 너무 오래 묵혀두면 녹이 스는 법이라네.”


진목월의 말에, 백무원은 감히 대꾸는 못 하고 의아함만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주눅이 들어 되묻지도 못하는 백무원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진목월은 말을 이었다.


“칼은 무언가를 베어야만 칼인 거라네. 검집에 담아 장식장에 걸어두기만 할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칼이라는 형태로 빚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 그보다 나은 장식이야 얼마든지 있을 터.”


진목월의 눈이 날카로운 칼처럼 가늘어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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