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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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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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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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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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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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포기

DUMMY

비전문가의 눈에도 상황은 어둡기만 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는 오죽할까?

그저 참고 침묵할 뿐이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을 테니.


“아버지.”

“경선에도 돈이 들어가. 그래도 홍보는 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답을 해줘야만 했다.

동죽은 지금 보좌관으로서 물어보고 있으니 말이다.


“거의 5000만 원 전후.”

“선거 비용은 선관위가···”

“아니, 경선은 포함 안 돼. 그냥 증발하는 거야,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정치는 그 자체로 돈을 잡아먹는 활동이다.

든든한 후원이 없다면 진입조차 힘들다.


“5000만 원···. 그 정도는 저도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작 당선되면 부담은 더 커져.”

“예?”

“경선을 넘기고 총선에 나서면, 정말 돈이 녹아버려. 지역구마다 다른데, 보통 4억 이상은 투자해야 하니까.”


총선.

정당에서 경선에서 누가 뽑히든, 여기서 이겨야 국회의원이 된다.

당연하게도 이때 소모되는 돈은 어마어마했다.


“그럼 거의 5억···.”

“큰돈이지. 그게 한두 달 사이에 사라지는 거야. 나를 뽑아달라고 홍보하는 데에.”

“그 외에는 없는데도요?”

“그래.”


어떤 생산성도 없다.

짧은 시간 동안 좁은 지역에 이름과 정당을 알리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선관위에서 제한하기에 그 정도지.

인지도에 투자하는 비용은, 그만큼이나 높기만 했다.


“굳이···, 국회의원을 계속해야겠어요?”


말도 안 되는 허들.

오죽했으면 동죽이 그렇게 물어볼 정도였다.

차라리 포기했다면 무난하고 평탄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청해도 곧장 답하지는 않았다.

잠시 두 눈을 감고 고민했고 또, 망설였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포기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젓고서 입술을 달싹였다.


“네가 세상에 진솔하게 나선 이유랑 같은 거야.”

“······.”

“대한민국의 법은 낡았어. 구조를 고치고 제도를 세워야 하는데, 아무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


누구나 말하는 이야기다.

이 나라의 법은 잘못됐다고.

피해자를 지켜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고치려고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라도 나서야 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청해는 그래서 대중 앞으로 나섰다.

고쳐야 할 법은 고쳐보자며.

이렇게 살면 힘들지 않냐며, 모두에게 물었다.

언젠가 불길 앞에서 싸웠듯, 이번엔 불의 앞에 당당히 나섰다.


그 말에 동죽도 눈을 감았다.

자신도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한 일을 했지만, 아버지도 본인의 숙업을 위해 움직였다.

다른 점이라곤 한 가지겠지.

아버지는 이를 온전히 홀로 감당했지만, 아들은 사방으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아버···, 의원님.”


그러니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앞으로 장천선에 대해서는 입을 닫을게요.”


포기할 건 포기해야 했다.


“소란을 일으켰지만, 그 어떤 증거도 내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기 홍보에 이용했죠.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동죽아.”

“그래도 이길 방법은 있어요. 사회가 승리하면 돼요. 정의를 실현하면, 도플갱어도 날뛸 수 없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대립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녹호가, 예현이, 천선은 세상이 붕괴하길 원하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겠지.”

“네.”

“다만, 저쪽에서 우릴 놓아주지 않을 거야.”


청해는 그 말과 함께 휴대폰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천선의 SNS 페이지가 떠오른 상태다.

어제 계속 시청한 모양이다.


“저쪽도 총선이 다가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도 벌써 이렇게 터뜨려대는 중이야.”


그랬다.

도플갱어는 순진하지 않았다.

동죽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까지 적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테지.

분명 총선에도 시선을 보낼 터였다.


“준비한 일이 많겠지. 숨돌린다 싶으면 압박할 테고, 선거철에는 쐐기를 박을 거야.”

“그럼···.”

“이겨낼 수 없어. 더군다나 이렇게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을 때에는, 무슨 짓을 해도 대조가 되니까.”


천선은 대놓고 악연을 이야기했다.

대중은 그 이야기에 감화되었다.

오죽했으면 청해에게도 계란을 던졌을까?


심지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웹 드라마는 계속 방영될 테고, 유행을 이끌어가겠지.

그럴 때마다 동죽에게도 날카로운 시선이 흘러갈 터였다.

지금처럼 대립하는 이미지가 남은 상황에서는 그 자체로도 부담이다.


“그럼···.”

“그러니까 다음을 노려야 해.”

“다음이요?”


청해도 포기할 부분은 포기했다.


“그렇지만 출마도 안 하려고요? 정치인한테는 돈보다 인지도가 더 중요할 텐데···.”


당선은 다음으로 미뤄둔다.

그렇지만 모든 걸 포기할 것인가?


“아니, 총선에는 나갈 거야.”

“네? 떨어질 텐데도요?”

“기억에 남는 게 더 중요하니까.”


출마는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존재한다.



***


먼지 쌓인 집.

창문 너머 캄캄한 밤하늘에는 달만 덩그러니 떠올랐다.

달빛 아래엔 한 중년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가만히 있었다.

꼭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안경을 쓴 여자아이가 안으로 들어왔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상황이 낯선 모양이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이내 마음이 쓰이는지 입을 열었다.


“안 주무셨어요?”


평소엔 이 시간쯤 자고 있었겠지.

그럴 만도 했다.

고등학생은 보통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오니.

직장에 다니는 부모는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겠지.


“너, 어디 다녀오는 거야.”

“네?”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냐고.”


돌아오는 목소리는 차가웠다.

늦게 귀가하는 딸을 기다렸다기엔, 무언가 이상했다.


“학교···.”


분위기를 읽었을까?

잔뜩 움츠러든 상태로 중얼댔다.

너무 작게 말하는 터라, 들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똑바로 말 안 해?”

“정말 학교 다녀왔는데요···.”

“너 요즘 우리 집안 풍비박산 낸 인간들이랑 어울린다며. 제정신이야?”


하지만 중년 여자는 차갑게 되물었다.


“테이네 삼촌은···”

“얘기 못 들었어? 그 남자가 다 기획한 거라잖아. 그런데도 달라붙어 있어?”


천선이 무너뜨린 집안이라.

그렇다면 아이가 누구일지는 뻔했다.

더군다나 ‘테이네 삼촌’이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왜? 잘생겨서?”

“진짜 도플갱어일 리는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진실과는 별개로, 증거는 없었다.

기껏해야 유송이 남긴 제보가 있겠지만, 그마저도 익명으로 투고했지.

지금으로서는 동죽이 착각했다고 판단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설령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게 천선을 진범으로 만들어주진 않으니까.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런 논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상황, 이를 벗어날 구멍이라고 하나뿐이다.

천선이 정말 도플갱어인 것, 그게 사실이어야 한다.


“···엄마?”


중년 여자가 핏발 선 눈으로 딸에게 다가갔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건만, 애정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몸이라도 대줬어? 그러니까 좋아하디?”

“그게 무슨···”


짜악, 높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러운 년.”


주름진 손바닥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작은 머리가 홱 돌아갔다.

안경은 어디론가 날아갔고, 몸은 크게 휘청였다.

눈동자는 차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차게 흔들렸다.


“어, 엄마?”

“나가.”

“아니, 나는···.”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냇가에 박힌 돌이라도 된 듯, 완전히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걸지도 몰랐다.


“안 들려?! 나가란 말이야···!”


하지만 현실은 물살처럼 흘렀다.

여자는 문을 벌컥 열고선 딸을 밖으로 밀어냈다.

생판 남에게도 못할 만큼 분노를 쏟아냈다.

그제야 작은 아이는 무너지듯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나가! 나가라고···!”

“제발···!”


거친 손길은 교복 셔츠를 끌어당기며 문밖으로 밀어냈다.

아파트 복도를 나뒹구는 몸, 그 사이 현관은 쾅 하고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이는 뒤늦게야 문고리를 붙잡았다.

작은 손은 자물쇠를 잊기라도 했는지, 눈앞을 두드리기 바빴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


쾅쾅쾅, 쾅쾅쾅.

얇은 문짝이 소리를 내뱉었다.

다시 열고 들어갈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저 용서해주길 바랄 뿐이다.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그땐 정말 죽여버릴 테니까.”


목소리는 몇 번이나 ‘엄마’를 되뇌었다.

주먹은 몇십 번이나 문을 두드렸다.

울먹거림은 복도를 메웠고 멀리서 이웃이 화를 낼 무렵, 아이는 결국 애원을 멈췄다.


벌을 주는 걸까?

기다리면 용서해줄까?

아이는 멍하니 문을 바라보다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언젠가는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


시간이 흘렀다.

아파트 복도가 깜깜해지고, 다시 환해졌다.

해가 떠올랐다.

평소라면 학교에 갈 시간이겠지.


하지만 오늘도 그래도 될까?

학교란, 결국 어른이 보내는 곳인데?

평소 같지 않은 지금, 평소처럼 행동해도 되는 노릇일까?


“엄마···.”


그 답을 줄지도 모를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온다.

아이가 겁에 질린 듯, 동시에 희망을 품은 채로 불렀다.

하룻밤을 밖에서 기다렸지.

어쩌면 마음이 풀렸을지도 몰랐다.

그러길 바랄 터였다.


“···엄마?”


하지만 중년 여자는 보지도 못했다는 듯, 아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른 채로 잠시간 기다렸다.

자신을 부르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12층. 문이 열립니다.’


기계음이 울렸다.

어미는 지금까지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이 좌우로 벌어질 때쯤, 드디어 한 마디를 뱉었다.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데,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마. 이제부터 너는 내 딸 아니니까.”


그 말만을 남기고 홀로 떠나고 말았다.


“아···.”


아이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예 절연당하고 말았다.

그저 덩그러니, 세상에 자국처럼 남았다.


-♩♪~♬


그러다 노랫소리가 울렸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친구로 보이는 이름이 떠올랐다.

진작 등교했어야 할 시간이니 당연하겠지.

우선, 걸려왔으니 받아는 봐야 했다.


-야, 너 왜 학교 안 와?

대뜸 그것부터 물어온다.

당연했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니까.


“그게···,”


다만, 이걸 말해도 될까?

치부나 다름없는 사정을?


“몸이 아파서···.”

-진짜? 많이?

“으, 응.”


어설픈 변명을 내뱉었다.

전화 건너편에서 다소 요란한 침묵이 느껴졌다.

꼭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하듯이.


-담임 쌤이 이따가 올 때 진단서 끊어서 오래.


건너편에는 아무런 의심조차 없어 보였다.

아이는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조심히 전화기 너머로 되물었다.


“너는 아무 일도 없어?”

-응? 뭐가?

“아니야, 그냥. 끊을게.”


다른 친구는 어떨까 했겠지.

혹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지는 않을까 싶을 테지.

보아하니, 아직 별일 없는 모양이지만.


아이는 전화를 끊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학교도 가지 않으면?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작가의말

이번 화는 주인공이 없네요.

원래 줄거리도 쓰다보면 조정해야 해서 참 머리가 아픕니다.
얼른 완결 났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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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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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화. 후원 24.08.24 10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9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8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2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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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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