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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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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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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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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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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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DUMMY

“정신 차려. 분명 무언가 있다.”


동죽이 혼잣말로 중얼댔다.

자신을 향한 의심을 억지로 눌러두었다.


“어이쿠, 우리 방송이 생사람을 잡았나?”

“아닙니다. 제가 들은 증언, 저 사람과의 해왔던 대화는 분명 기묘한 구석이 존재합니다.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제가 모르는 부분이라···.”

“아무래도 얼굴을 직접 봐야겠습니다. 모니터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황 증거가 선명했다.

하늘이 그렇게 말했으며, 유송이 그렇게 말했고, 이제껏 겪었던 상황이 그렇게 말했다.

오직 지금의 천선만이 거짓이라고 외칠 뿐이다.

직접 관찰한다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어디 가십니까! 경호원이 쫙 깔린 마당에!”


이에 PD가 다급히 붙잡았다.


“당연히···”

“나갔다가 걸리면 동죽 씨만 위험해지는 게 아닙니다! 저희도 감당이 안 된단 말입니다!”


동죽이 얽혔다.

당연히도 청해, 그 배경인 정당에도 피해가 간다.

방송국 역시 곤혹을 치르겠지.

단순히 스태프만 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너무 위험했다.


“···이런.”


단정한 얼굴을 와락 구겼다.

마른 숨을 짧게 헐떡였다.


“왜 그러십니까?”

“장천선은 행동에 단 하나의 목적만을 두지 않습니다. 노련한 체스 기사처럼, 움직임 하나로 판 전체를 압박하고 맙니다.”


눈가에 주름이 생겨났다.

뼈아픈 고통이라도 겪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모니터를 떠날 줄 몰랐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동생을 보호하는 척하며, 세 번째 증명만 치워버린 게 아니었습니다. 경호원을 보내 제 발을 묶고 시야마저 제한해 버렸습니다. 이 공간에 나서는 순간, 바디 캠에 찍히고 말 테니.”


도플갱어는 그저 폰을 한 발자국 움직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탓에 동죽의 기물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

퀸을 내빼면 체크 메이트가 울려 퍼졌고, 가만히 있자니 하나씩 먹혀갈 판이다.

그저 깎여나가면서 최대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아직 식사가 남지 않았습니까?”

“동죽 씨, 계속 먹는 것만 찍을 수는 없어요. 이제 유전자 검사 건으로 넘어가야죠.”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여러 각도에서 카메라를 전환하면서 볼 수 있겠습니까?”

“예, 그건 지시해보겠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 상황은 계속 흘러갔다.

또 다른 증명 역시 존재했다.

새로운 정보가 차례를 기다린다.


“이 역시 쉽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원본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가를 복사했기에.”


눈을 뜨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할 때, 부모님으로 처음 변해봤겠지.

같은 일을 겪었기에, 특이점을 공유했다.


“천선 씨, 이제 유전자를 채취할 시간입니다.”

“머리카락을 뽑아서 드리면 될까요?”

“먼저 입을 헹구시고, 상피 세포와 모근을 채취해야 합니다. 여러 곳에 보낼 계획이라, 표본 세 쌍 부탁드립니다.”


사회자도 이 과정을 진행하는 중이다.

우선, 물병 먼저 천선에게 내밀었다.

가벼운 친절이다.


“······.”


테이는 확 낚아채 자신 먼저 마셔버렸다.

그 와중에 짧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하하.”

“MC 아저씨, 조심해주세요.”

“네, 미안해요.”


작은 손은 천선에게 물병을 쥐여주었다.

면봉 역시 먼저 받아들더니, 직접 입 안을 긁어낼 준비를 했다.


“사이가 좋네요.”


키다리 아저씨와 어린 소녀 이미지.

여기에 딴지를 걸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회자만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새다.


“이게 절차가 있어서···. 그래도 머리카락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그래도 꾸역꾸역 역할을 끝냈다.

천선은 편안히 절차를 진행했다.

옆에서 알아서 받아주니, 머리카락만 뽑고 끝이 났다.

동죽도 이를 유심히 봤지만, 속임수는 찾아내지 못했다.


“···저도 신생아 때 사진을 보정한 뒤, 변신해봤습니다. 하지만 거의 실패나 다름없었습니다. 육체를 그 정도로 변형하면 몸에 무리가 오고 맙니다.”


미성숙한 육체를 강제로 성인처럼 만들면, 그만큼 반작용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골밀도, 장기, 근육은 그대로인 탓이겠지.

하긴, 변신이라고 해도 암 환자의 육체는 회춘시키지 못했었다.


“방법이 있다면 기관에서 직접 조작하는 정도입니다.”

“예. 그래서 세 군데에 나눠서 보내는 것 아닙니까? 혹여 중간에 오류라도 있을까 봐.”

“하지만 도플갱어라면···. 아니, 아닙니다.”


과한 불안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세상 전부를 의심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법인데.


“저는 처음부터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속임수를 썼는지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계속 바뀌는 화면을 보며 중얼댔다.

요구대로 카메라 각도를 계속 바꿔주고 있었다.

어차피 시청이나 관찰이나, 본질은 같았다.


“···잠깐, 다시. 시야를 전체로 해서 봅시다.”


그러다 동죽은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무언가를 확인한 모양이다.

모니터는 금세 스튜디오를 넓게 비추기 시작했다.


“뭐 찾으시기라도 하셨습니까?”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야가···, 맞지 않습니다.”


모든 증명이 끝났다.

큰 짐을 덜었다는 듯, 천선과 사회자는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동죽이 한 말대로 시선이 어긋났다.

여우 같은 눈가는 눈보다 약간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림짐작이라도 하듯이.


“렌즈 돌아갔나 보네요. 그럼 조금 뿌옇게 보일 수도 있죠.”

“···아닙니다. 그런 사고가 아닙니다!”


속임수를 알아챘다.


“써클 렌즈 주문 제작! 애당초 동공 부분을 막아두고 입장했습니다! 테이 양도 그래서!”


동공은 까맣게 비어있는 공간이다.

렌즈로 이 부분만 막아버린다면, 앞을 볼 수가 없다.


“PD님! 당장 렌즈를 확인하라고 전달해주십시오!”

“아니, 지금은···”

“확실합니다! 새까만 가운데 부분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능글맞던 얼굴이 난처한 빛을 띠었다.

그래도 이어셋을 집고는 한 마디를 건넸다.


“혹시 써클 렌즈 꼈나 확인할 수 있겠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재량껏 판단해.”


다소 조심스러운 말.

동죽은 무슨 이야기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중요한 일입니다!”

“동죽 씨, 이제 2분 남았습니다. 클로징은 또 어떻게 합니까? 잘못하면 방송 사고입니다.”

“그러니까 재빨리 확인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형태만 보지 말고, 분위기도 살피십시오. 지금 어떤가.”


답답한 듯한 기색이다.

그제야 다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사회자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천선과 대화하는 중이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생 많으셨습니다만···”

“꽤 길었네요. TV 생방송은 처음이라 긴장 많이 했네요.”

“저도 빨리 삼촌이랑 쉬고 싶어요. 아픈 사람 불러서는, 너무하지 않아요?”

“···네, 죄송합니다.”


초췌한 행색을 보인 이유 역시 몇 가지나 존재했다.

테이와 동행하기 위해.

느릿한 움직임을 합리화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지금 사회자를 압박하기 위해.


너무나 큰 부담이다.

예고도 없었던 검증 절차를 몇 번이나 부탁해왔다.

이미지 걱정도 있겠지만, 이젠 양심이 못 버틸 터였다.

지금 확인하라는 것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


“그런데 혹시 렌즈···.”

“병원 예약이 있는데, 아직도 뭐가 남았나요?”

“하아. 아닙니다. 제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시간도 얼마 안 남은 판국이다.

새로운 사건을 조명할 순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10초 정도 소감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빠르게 진행했다.

테이가 카메라 방향으로 소매를 당겼고, 천선은 자연스럽게 정면을 바라보았다.

동공은 평소보다 유독 까맣게 느껴졌다.


“장천선, 당신은 설마 이것까지···.”


보지 못하는 눈동자와 볼 수 있는 눈동자가 교차한다.

한 사람은 두 눈을 부릅뜨고 모든 상황을 관찰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예 눈을 가린 채로 흐름을 통찰했다.


그랬다.

최후에 관찰과 통찰의 싸움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런 전쟁이었고, 각자 치열하게 움직여왔다.

다만, 둘 중 한 명만이 이를 명확히 꿰뚫어 보았다.


“시청자 여러분. 진실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방송은 허망하게 마무리로 향한다.

대중에게 도플갱어의 거짓을 폭로하는 데에 실패했다.


“PD님! 방송이 끝나고 렌즈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니, 다 끝난 마당에···”

“이 자리에서 밝혀야 합니다! 이대로 돌려보내면 진실은 영영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최선의 기회는 놓쳤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소 파급력은 약하겠지만, 어쨌거나 다수에게 속임수를 증명할 수 있었다.

애당초 싸움은 여기서 나가기 전까지였다.


“MC! 방송 끝나자마자 천선 씨 잡아둬! 써클 렌즈 확인해야 해!”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머리를 숙였다가 들어 올렸다.

생방송이 끝났다.

그리고 얼른 몸을 돌려 지시 사항을 실시하려고 했다.


“장천선 씨, 저기···”


하지만 그 손길은 닿지 못했다.


“비켜주십시오!”

“의뢰인의 안전을 확보하겠습니다!”

“다들 물러나 주십시오!”

“다칠 수 있습니다!”


검은 양복이 요란스럽게 천선과 테이를 감쌌다.

단 한 순간도 내어줄 수 없다는 태도다.

이 단단한 벽은 사명이라도 되는 듯, 두 사람을 보호했다.


“아아···.”


동죽이 허망한 눈빛으로 검은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 틈으로 여우 같은 시선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싱긋 웃어 버린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


교도소 앞.

변호사가 택시에서 내린 뒤, 옷매무새를 다잡았다.

누구를 만나러 왔을지 뻔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직업 특성상 일상이라고 봐야 할 터였다.

특별한 일이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분명 얼마 전까진 그랬겠지.


“저 사람 맞지? 그 변호사?”


방문객이라기엔 지나치게 수가 많았다.

더군다나 분명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꼭 볼일이라도 있는 듯했다.

혹시 무슨 문제인지 입이 열릴 찰나, 얄팍한 소리가 양복 위에서 깨져나갔다.


“···아.”


동그란 껍질에서 멀겋고 노란 액체가 흘러나온다.

부패한 정치인에게나 할 만한 일이지.


“할 짓이 없어서 범죄자를 변호하냐!”

“어휴, 내 세금이 아까워서!”

“나가 죽어라!”


계란은 몇 개나 더 날아왔다.

바닥에 서너 개쯤 떨어지고, 몸에 두엇 부딪혔다.

어쩌다 머리에서 깨져나갔을 땐 멀리서 환호성이 들렸다.


“워후!”


꼭 높은 점수라도 맞은 것 같았다.

변호사는 이에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 이제 사람들은 더욱 그 수를 불렸다.

등 뒤에서는 욕설이 계속 들려왔다.


반응이라도 했다간 더더욱 심해지겠지.

애써 무시하며 교도관을 바라보았다.

뒤쪽엔 아무도 없다는 듯이.


“변호사님, 신분 확인 끝났습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십···, 잠깐! 조심하십시오!”


교도관이 소리친 순간, 머리 위에 새하얀 가루가 쏟아져 나왔다.


“예에···!”


이내 빡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어이 뒤통수를 한 대 쳐버렸다.

그러고선 잡힐까 두려웠는지, 저 멀리 도망간다.

자기 일행이 기념 삼아 동영상을 찍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이쿠! 일단 안으로 들어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변호사는 안내대로 발길을 옮겼다.

다만,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최대한 벽에 묻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불편하게 발걸음은 면회실로 향했다.

유리창 너머, 당연하게도 현묘가 안으로 들어왔다.


“면회 시간 30분. 초과할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상.”


늘 들어왔을 이야기.

하지만 지금은 다소 상황이 달랐다.

여러모로 요란스러운 일에 얽혀있지.


“변호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

“유전자 확인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지저분한 머리가 느릿하게 위아래를 움직였다.

입술이 무겁게 달싹였다.


“검사 결과, 장현묘 씨와 장천선 씨는···”


그날 이후 있었던 일.

충혈된 눈동자가 진실만을 기다렸다.


“···친자 관계가 아닙니다.”


작가의말

동공만 막으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렌즈와 검은색 잉크면 충분합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만든 렌즈는 눈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제조 공법이 프린트 식, 샌드위치식 나뉜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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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9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9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4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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