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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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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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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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재연

DUMMY

***


녹호가 거실에서 TV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중요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모양이다.


화면 속.

방송국 스튜디오가 깔끔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나운서 출신 MC는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처음 인사드립니다! 수요일 밤, 당신이 궁금할 귀한 이야기를 파드립니다! ‘귀 파주세요’!”


요란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프로그램으로 입힌 효과음이겠지.

케이블에서, 첫 방송에 방청객을 투입할 리 없었으니.


“오늘부터 저를 도와줄 식구들을 소개합니다!”


시야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한 번쯤 봤을까 싶은 연예인이 고개를 숙여댄다.

MC는 시끄럽게 누구인지 설명해댔다.

아이돌, 개그맨, 인터넷 방송인···, 참 여러 분야에서도 데려왔다.


“그런데 이거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옆에서 갑작스레 질문을 해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반응이다.


“마침 질문 잘해주셨습니다. 저희 ‘귀 파주세요’는 시청자 여러분이 궁금할 ‘귀’한 이야기를 ‘파주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 그래서!”

“와!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빨리해주세요! 어떻게 하면 돼요?”


흔한 호들갑이다.

다 알고 있지만, 대본에 적혔기에 보이는 반응이지.


“그럼 첫 번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거기 귀이개 보이시죠?”

“귀이개요? 이거에요?”


귀이개라.

그 조그마한 물건이 카메라에 잘 보일 리 없지.

커다랗게 만든 모형을 준비해뒀다.

오죽했으면 양손으로 들어올려야 할 정도였다.


“귀이개 맞아요?”

“그냥 밥주걱인데요?”

“혹시 놀부 아내신가요?”

“뺨 대세요.”


출연자들은 화기애애하게 웃고는 다시 주제를 잇는다.


“그곳에 첫 번째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움푹 파인 곳에 스티커가 달라붙어 있었다.


“오, 떼봐도 될까요?”

“그래요, 궁금하다, 궁금해.”

“뗄게요?”


찌이익 소리가 울렸다.

그곳에서 키워드가 짤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도플갱어와 아버지?”


녹호가 기다렸을 이야기겠지.

동죽이 준비한 공격이기도 할 테고.


“그럼 그분 아닌가요? 국회의원 아드님?”

“네. 요즘 좋은 일 많이 하시잖아요? 죽어가던 애들도 살렸다던데요?”

“맞아요, 저번에 인터뷰한 거 봤어요.”


역시나 대본에 있을 대사를 다들 읊어댄다.


“하하. 오늘 다룰 이야기는 그분이 아니고요, 또 다른 도플갱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네?”

“도플갱어가 또 있나요?”

“와, 우리나라에만 둘이나!”

“다들 궁금하시죠? 자,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귀 파주세요!”


그와 함께, 화면이 뒤바뀌었다.

캄캄한 네모는 곧 옆으로 움직이더니, 한 중년 부부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화목하게 식사하는 중이며, 옆에는 아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한 번의 결혼, 한 번의 실패, 그리고 재혼. 이제는 행복을 손에 넣었다.


행복한 분위기.

네모난 창에 남자의 얼굴이 가득 차올랐다.

이렇게 끝난다면 이야기가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색감은 순식간에 명암을 낮췄다.


-그때, 그놈이 나타났다.


장소는 학교를 가리켰다.

중년 남자, 현묘 역의 배우가 복도를 걸었다.

주변에는 여학생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주말은 어땠어? 괜찮았니?”

“네! 선생님도 잘 지내셨어요?”

“그럼! 당연하지!”


누가 봐도, 이상적인 교사였다.

평범한 풍경이었고 또, 평화로웠다.

그러다 문득 등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뛰쳐나왔다.


“와, 밖에 누구야?”

“잘생겼다!”

“오빠, 멋져요···!”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함성이다.

현묘 역할은 자연스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지?”


이름 모를 젊은 남자.

여학생에게 손을 흔들며 인기를 관리했다.

그러다 문득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


이상한 일이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두 눈에는 증오가 가득 차올랐다.


“어? 방금 나를···.”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묘 역할이 고개를 갸웃하기를 잠시, 화면은 넓은 공간으로 변했다.

아마도 강당이겠지.

젊은 남자는 그 무대에서 강연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 학교가 그런 느낌을 받아요. 독을 품은 짐승을 한 군데에 몰아넣은 항아리요.”

“와아아!”

“이 항아리 속, 많이 괴로우실 거예요. 가끔은 화풀이를 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눈앞에 거슬리는 누군가가 있다면요. 그래도 여러분은 최대한 사이좋게 지내야 해요.”


웃는 눈은 여전히 드문드문 날카로운 기색을 보인다.

실제와는 퍽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의도한 바이기도 하겠지.


“여러분께 드릴 부탁은 그뿐이에요.”


간추린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아, 참. 선물도 준비했어요.”

“선물이요.”

“네, 최신형 테블릿 PC요. 디자인도 예쁘고, 성능도 최고예요.”


그와 함께, 수많은 사람이 등 뒤에서 박스를 들고 나섰다.

국산 전자제품 로고가 아주 선명히 자기 자신을 뽐냈다.


“와! 갖고 싶었던 건데!”

“진짜 주는 거예요?”

“대박! 필기감 완전 좋아!”


카메라는 호들갑 떠는 학생을 모조리 담았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꼭 부모님들에게 보여주는 모양새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배우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멋진 사람이라도 되는 양.


“어때요? 다들 마음에 드시나요?”

“네에···!”

“정말 좋아요!”

“그럼 다행이네요.”


맥락 없는 연출.

그 위를 다시 중년 남자가 나레이션으로 덮었다.


-그저 행운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좋을 일이니, 마냥 괜찮다고 여겼지.


이상적인 선생님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며칠 뒤에 출근하고서, 나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모습을 담고 싶었을까?

현묘 역할 배우는 가만히 서 있는 채로, 주변 환경만 빠르게 변했다.

학교에서, 집에서, 학교, 이제는 경찰서로.

주변에는 고성이 울려 퍼진다.


“너야, 그 방화범이?!”

“교육청에 불을 질러? 거기 죄 없는 여자애도 있었어!”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모두가 손가락질해대기 시작했다.

오래된 경찰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일이다.

강압수사가 판쳤을 시대가 멀지 않았으니.


“안 그랬어요! 정말 안 그랬다고요!”


현묘 역할을 한 배우는 그렇게 소리쳐댔다.


“저기를 보고 말해, 임마!”


손가락이 가리킨 곳, 작은 TV에서는 마침 뉴스 화면이 흘러나오는 중이다.


-어제 저녁, 교육청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현장을 도망쳤던 범인이 검거됐습니다. 피의자는 현재 한 여고에 재직인 장모 씨로 밝혀졌습니다. 현재 경찰 조사 중에 있으며···


참고용 자료가 나온다.

활활 타오르는 건물, 그 위에 현묘가 보였다.

검은색 옷을 벗어 던진 모습은 언뜻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떡 벌어진 어깨 때문에 더욱 그랬지.


“···어?”


중년 배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세요! 어제 일어난 일인데, 제 몸이랑 너무 차이가 큽니다! 저건 제가 아닙니다! 아니란 말입니다!”


합리적인 이유였다.

평범한 사람은 하루 만에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을 순 없었다.


“뭐가, 임마!”

“이게 또 빠져나가려고!”

“조서 작성해야 하니까 지금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해!”

“뉴스를 보세요! 저기 화면에 지금···!”


하지만 방금 장면은 이미 지나간 후였다.

외침은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아악···!”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이야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와 함께,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이 영상은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되었으며, 실제와는 다소 상이할 수 있습니다.


1, 2초 정도 깜빡이는 수준.

다 읽기도 전에 스튜디오 화면으로 넘어갔다.


“네, 잘 봤습니다!”

“와, 저런 경우라면 되게 억울하겠어요!”

“진짜 저럴 수가 있나요?”


메인 MC는 대본을 힐끗 보더니 다시 대사를 읊어댔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의문점이 존재합니다. 화면 보시죠!”


가장 큰 전광판에 여러 CCTV 장면이 떠올랐다.

얼굴이 하나가 아니다.

다들 제각기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어? 피해자가 아니네요?”

“누구예요?”


그 반응에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나왔다.


“바로, 공범으로 지목된 학부모들입니다.”


모두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역시 대본에 있을 터였다.


“지금부터 한 번 틀어줄 텐데요, 이상한 점을 찾아보세요.”

“이상한 점이요?”

“네.”


그 말이 끝나자 CCTV 영상이 다 함께 움직였다.

누군가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고, 또 다른 사람은 가방을 바꿔서 쥔다.

각자 평이한 행동을 할 뿐이다.


“찾으셨나요?”

“아니요.”

“뭐가 있었어요?”

“전부 다 평범하던데요?”


메인 MC가 미소를 씨익 지어 보였다.


“이제 손을 잘 주목해보세요.”


영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이상하다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다만, 그 탓에 언뜻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양손을 쓰네요?”


별생각 없이 툭 나온 말.

이에 메인 MC는 크게 소리쳤다.


“네, 정답입니다!”

“오, 뭐야!”

“진짜요? 와, 신기하다!”

“이걸 맞추네!”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했다.

정작 정답을 말한 사람은 두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벌렸다.


“근데 뭐가 이상한 거예요?”


장내에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맞췄는데 뭔지도 모른다니.


“다들 양손을 쓴다니까요?”

“설마 양손잡이에요?”


그러다 다시 정답으로 향했다.


“왼손잡이도 드물죠? 그런데 그것보다 보기 힘든 게 양손잡이에요.”

“아, 그럼!”

“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한두 사람이면 모를까, 다들 양손을 자유롭게 쓴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동죽이 찾아냈을 모순점.

미세행동이라고 말했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실제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다 오른손잡이거나 왼손잡이죠?”

“네, 확인해봤습니다. 그리고 이 외 영상에서도 한 사람인 것처럼 작은 습관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직접 설명하진 않았다.

그 대신 화면은 빠르게 지나가며, 여러 가지 사진과 설명을 덧붙였다.

자주 쓰는 소근육에 따라 자세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이렇듯 정황상 이상한 점은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진행되는 중인 건가요? 계속 조사 중인가요?”

“아니요, 벌써 유죄로 확정이 난 상태입니다.”

“아···.”


사방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얼굴에는 의아함도 서렸다.


“도대체 왜요?”


국민이 공분했던 일이다.

모두가 돌을 던졌지.

하지만 이제는 의문을 뱉는다.


“현재 피해자께서 끝까지 부정하셨습니다. 반성문 제출도 거부하셨고요.”

“아, 반성문!”

“그럼 괘씸죄로 강력처벌을 받으신 거예요?”

“그렇죠!”


다들 눈동자에 경멸을 품었다.

반성문을 향해 가지는 이미지는 뻔했다.

가해자에게는 감형을, 무고한 자에게는 괘씸죄를 내린다고 생각하지.


“다만, 법률구조공단에서 도움을 주기로 하셨습니다.”

“와, 다행이네요!”

“꼭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네요.”

“네, 피해자를 위해서라도요.”


모두가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도했다.

가장 평범한 선의는 그런 법이지.

그리고 도플갱어는 이 위에 비웃음을 덧붙였다.


“피해자라···. 너희가 벌써 그런 말을 써도 돼? 자기 차례가 됐을 때, 감당할 자신 있지?”


분명 악행은 진실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증명 없이 단정해도 되는가?

아무래도 좋은 일은 정말 좋기만 한가?

사나운 입가는 그 누구도 듣지 않는 질문을 내뱉었다.


작가의말

'피해자'라는 어휘에 대해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 반댓말은 분명 '가해자'라서, 그저 용의자를 저도 모르게 적대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순간, 마녀사냥이 될지도 모르는데요.


피고 혹은 원고 같은 법정 용어는 아닐지라도, 대체할 어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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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9 0 12쪽
»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0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8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0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9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2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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