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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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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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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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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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카드

DUMMY

“···목말라.”


현관을 슬쩍 바라보았다.

분명 집으로 들어간다면 음식이 있겠지.

몰래 먹고 나온다고 해도 별일은 없을 터였다.

신고할 리는커녕, 알아채지도 못할 테니까.


하지만 금세 발길을 돌렸다.

더는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다시 올라오길 기다렸고, 곧 아파트를 나섰다.


“학교는···.”


습관이라도 되는 걸까?

아이는 쭈뼛대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마침인지 푸른색 차량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놓칠 것만 같다.


원래 시간이 촉박하면, 생각도 잘 돌아가지 않는 법이지.

종종걸음은 창백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얼른 안으로 들어간다.

늘 그렇듯, 버스 기사와 요금 단말기가 보였다.


“하, 학생이요.”


그렇게 말한 후,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는다.

늦긴 했지만, 평소와 같은 일과겠지.

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도 불안해 보였다.

창밖을 본다고 학교가 빨리 다가오는 것도 아니건만, 저 멀리 골목을 훑었다.

혼자만 늘어난 시간을 기다린다.


원하는 정류장이 나왔을까?

도착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굣길, 당연하게도 학생 한 명 없이 텅 빈 채였다.

어른이라면 주변을 오가면서 가끔 볼 풍경이겠지.


“어···.”


하지만 정작 학생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항상 다 같이 오르내리던 길이지.

그걸 혼자서 걸어 올라가는 기분이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은 비일상에 가까웠다.

어딘가 갈 곳도 없는데, 익숙했던 장소마저 얼굴을 바꾼 상황이다.

어쩌면 겁에 질릴지도 모르겠다.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서 몸을 잘게 떠는 걸 보면, 확실하겠지.


“학생? 학교 안 가?”

“아, 네? 그게···.”


누군가 지나가다가 의문을 표했다.

어쩌면 도와주려는 걸지도 몰랐다.

여학생이 곤란한 표정으로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아이는 다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당장 상황을 피하는 게 먼저인 듯했다.

하지만 20, 30초쯤 뛰었을까, 토하듯이 몸을 숙였다.


“웩! 켈록, 켈록!”


항상 책상에만 있던 몸이다.

어젯밤 아파트 복도에서 밤을 지새웠지.

힘이 없을 만도 했다.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보인다.

유동 인구 많은 학교 근처이니 당연한 노릇이겠지.

안으로 들어가 음료수 하나, 망설이다가 샌드위치도 집어 든다.

점심시간도 다 되어가는 중이니 간단하게라도 먹고 싶은 모양이다.


“하아, 계산이요.”


힘없는 목소리로 음식을 내밀었다.

아르바이트생도 별 신경 쓰지 않고 바코드를 찍어댄다.

이내 카드까지 건네받은 다음,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거래가 정지됐는데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 엄마 카···.”


그랬다.

부모님이 준 신용카드다.

못 쓰게 만들려면 언제든지 가능했다.

버스 요금을 확인받고서 정지시켰을 터였다.


“학생, 이거 훔친 카드예요?”

“아, 아니에요! 정말로요!”

“그럼 경찰에 전화해봐도 돼요?”

“경찰···, 이요?”


아이가 한 발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일이 커진 느낌일 테지.


“참나. 도망가지 마요. 그럼 진짜 일 커지니까.”


덜컥 몸이 멈췄다.

그 사이, 아르바이트생은 얼른 112에 신고 전화를 넣었다.


“저쪽에 앉아요.”

“그게···.”

“경찰 올 때까지 기다려요.”


아이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구석에서 기다렸다.

끊임없이 유리문 너머를 살피며 시간이 지나지 않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경찰은 결국 이곳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신고받고 왔는데요.”

“예, 제가 전화 드렸는데요.” “정지된 신용카드 사용 건 맞으시죠?”

“네.”

“학생은 어디 있어요?”


아르바이트생이 몇 마디 이야기하더니, 곧 아이를 향해 손가락을 폈다.

경찰도 곧 시선을 돌리고서 발걸음을 뗐다.


“학생, 그 신용카드 어떻게 구했어요?”

“어, 엄마 카드···.”


우선, 있는 대로 이야기했다.


“왜 여기 있어요? 학교에 있지 않고?” “그게···, 저기···.”

“······.”

“죄송합니다···.”


경찰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평소에 집, 학교, 학원만 왔다갔다 했다, 그죠?”

“네···.”

“그러다가 갑자기 상황이 바뀌니까 당황스럽고요?”


느릿하게 끄덕이는 고개를 보며, 잠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무전을 통해 건너편 사람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아, 별일 아냐.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애야.”

-그래? 괜히 순진한 척하는 게 아니라? 그러는 애들 많잖아?

“아냐. 얼 타서 말을 못하더라고. 학교에만 박혀 있던 학생 같던데?”

-에헤이, 공부만 잘하는 바보구만?


대충 몇 마디 더 떠들고서는 무전기를 집어넣었다.

이내 시선을 다시 아이에게로 돌렸다.


“학생, 우선 신고를 받았으니까 경찰서로 가야 해요.”

“겨, 경찰서까지요?”

“별일 아니에요. 부모님 카드인 거 확인만 받으면 바로 풀려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따지고 보면 불법도 아니다.

이 자체로는 처벌까지 가지도 않는다.


“안 가면 안 될까요?”


하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 경찰서라.

당연히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분실 카드를 주웠다거나, 도둑질이라도 했어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따라오면 되지, 왜 그래요?”


의심이 싹텄다.

떳떳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이로서는 다시 한 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경찰차 뒷자리에 타고는 앞에 앉은 두 경찰을 바라보았다.

점심 메뉴 이야기만 공허하게 들려왔다.

같은 공간에 있건만, 서로 분리라도 된 것 같았다.


“도착했어요. 내려요.”


그러다 파출소에 도착했다.

시키는 대로 주뼛대며 밖으로 나와 경찰관을 따라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술 취한 얼굴이 의자에 앉아있다.


“이게 대낮부터 폭행을···”

“아, 때린 게 아니라 싸웠다니까요!”

“시끄러워,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물어봤으니까 대답하지, 왜 말이 많냐뇨!”


어수선한 분위기.

더욱 움츠러들면서 안으로 향했다.

우선, 손짓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학생, 간단한 조사만 하고 보내줄 거예요. 알겠죠?”

“네···.”

“우선, 이름.”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름과 주소, 부모님 전화번호 등등.

마지막으로 카드 정보까지 확인한다.


“어머니 거라고 했죠? 이제 전화해볼 거예요.”

“잠깐만요! 엄마한테는!”

“어허. 학생, 확인이 끝나야 보내줄 수가 있어요.”


경찰관은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네. 아, 그냥 정지를 시키셨다고요? 그럼 얘는 왜 오늘 학교를 안 갔습니까?”

“······.”

“예? 모르시겠다고요?”


질문 몇 가지가 이어진다.

그와 함께 얼굴에는 이물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위화감을 느꼈을 터였다.

분명 상황은 이상한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아···. 일단 알겠습니다. 자녀분과 추가로 대화해보겠습니다. 곧 다시 전화를 걸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도 불안한 얼굴이 보인다.

죄도 없건만, 겁에 질린 것만 같다.


“학생, 어머니께서는 카드를 그냥 정지했다고 하거든요?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네에.”

“그런데 좀 이상해서요. 자식이 어떻게 쓰던 카드를 끊어버렸을까 해요. 학교에 안 갔다고 하는데 걱정하는 기색도 없고요.”


그냥 보내도 된다.

보호자가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한다.

그게 절차다.


하지만 정말 괜찮기만 한가?

부모라면 학교에 안 갔다고 하면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싸웠건 어떻건 간에 말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어른뿐만이 아닐까?


“학생, 혹시 가정 폭력을 당하는 중인가요?”


아이는 곤란을 겪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게 사소한 일인지 아닌지 모를 뿐.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어요!”

“꼭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에요. 방임이나 해줘야 할 일을 안 해줘도 학대예요.”


안경 안에 두 눈동자가 떨렸다.

집에서 쫓겨나고 카드도 끊겼다.

당장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도 막막하다.

해주던 것을 안 했을 뿐인데.


“이야기를 해줘야 우리도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요?”

“네. 학대하는 부모는 처벌하고, 학생은 보호센터로 가는 거예요.”


일반적인 이야기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받는 상황 말이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면 될 테지.


“처, 처벌이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처벌이라.

그 말이 주는 무게는 남달랐다.

아무리 솜방망이라는 말이 돌아도, 보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요.”

“진짜 괜찮아요! 그냥 엄마랑 좀 싸워서 그런 거라···.”

“정말이에요?”

“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라니.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뚜렷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주던 것을 주지 않았을 뿐이니까.


“다시 한 번 물을게요. 그냥 싸워서 카드 정지시킨 거, 맞아요?”


아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거짓말을 들킬까 싶었겠지.


“알겠어요. 화 많이 나신 것 같은데, 웬만하면 싹싹 빌고 화해해요.”

“네.”

“데려다줘야 해요?”

“아니에요, 저 혼자 갈게요.”


혹시라도 말을 바꿀까, 얼른 고개를 숙이고 일어났다.


“김 순경, 점심 뭐 먹을까?”

“글쎄요, 근처에 부대찌개 집 새로 열었던데. 거기 갈까요?”

“부대찌개? 좋지.”


뒤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른 밖으로 나왔다.


“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이르게 먹던 점심을 아예 놓쳐버리고 말았다.

원래도 느꼈던 갈증은 더욱 심해졌겠지.


우선, 휴대폰을 들었다.

따로 결제 수단을 찾았다.

부모님 카드도 있지만, 자기 명의로 된 계좌도 존재했다.

이를 통한다면 허기는 달랠 수 있다.


“어? 만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 카드만 쓰다 보니, 갱신을 안 한 모양이다.

쓰려면 다시 등록해야 한다.

일련번호를 입력하고 인증을 완료해서···.


“아···.”


만약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면, 난감한 일이다.

돌아가서 번호만 확인하면 된다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을 테니.

창백한 얼굴은 이 사실을 명백히 보여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단 한 푼도 없이 무슨 수로 버틸까?

집에서 쫓겨났다면 언젠가는 올 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그게 첫날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안 됐을 터였다.


“······.”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흐릿했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작가의말

여러가지 고민하다가 어제 넣은 장면이라 머리가 아픕니다.

역시 쌩으로 현대물은 조심해서 손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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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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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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