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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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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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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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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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DUMMY

“합리성을 묻자면, 그 말도 틀리진 않을 겁니다.”


변호사가 조심히 운을 뗐다.


“수많은 사람이 한 판단입니다. 틀렸을 확률 또한 극히 낮을 테니까요.”


천선은 분명히 ‘당한’ 입장을 표했다.

분명 당황하는 기색이었지.

흑막이라고 외치는 건 억지에 가깝다.

도플갱어라는 이야기도 현재로선 근거 없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변호인은 의뢰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변호사는 여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입장은 오직 의뢰인에 맞춰서 정한다.

그게 자신의 역할이었다.


“···누가 봐도 오답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묘는 이에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자식을 팔아넘긴 쓰레기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큼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학하지 마십시오.”

“자학이 아닙니다. 그저 사실입니다. 나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방화 정도는, 저지를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속담이 있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저지르는 행동이기도 했다.

의심이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모릅니다. 그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아니요, 그 누구도 아는 일입니다.”

“법은 가장 최악의 인간이라도 한 명의 변호인을 제공합니다. 의뢰인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며, 여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예. 결국, 직업이니까 보이는 위선이겠지요.”


대중이 보내는 시선은 당연하다.

불행하고 아름다운 청년과 추악하고 잔혹했던 중년, 이 둘 중 의심을 보낼 사람은 명확했다.

변호사 역시 쉽게 답하지 못했다.

짧게 숨을 들이 삼키고선, 몇 번 입술을 달싹였다.


현묘도 이를 힐난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요구했던 반응이다.

불평을 내뱉을 상황은 아니었다.


“가십시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먼저 등을 돌렸다.

억울함을 품은 채, 감옥에서 썩어가기를 택했다.

이대로 끝나는 편이 더 서로에게 더 좋을 터였다.


“···우리는 범죄 혐의자를 대변합니다.”


하지만 변호인은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너무나 많은 오답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기에 겪는 고충.

동시에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고통이다.

어느 누가 저 자리에 서고 싶을까?

확실하고 안전한 곳을 두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해야 합니다. 편견만으로 누명을 씌우는 일은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누명이 아니라면 끝이겠죠.”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돌멩이 세례가 쏟아진다면, 인간은 자신을 포기하고 맙니다. 심지어 스스로 파괴하기까지 합니다.”

“······.”

“재판은 그런 폭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판결이라는 과정은 누군가를 상처입히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변호사는 법을 말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법은 말한다.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그러니 매번 굴뚝을 살피며,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확인한다.

의심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내뱉어선 안 됐다.


“‘세상 모두가 누군가에게 돌을 던진다고 해도, 단 한 명만큼은 편견 없이 그를 바라보아라.’ 이것이 변호사의 직업윤리이며, 법치가 말하는 선의입니다.”


더러워진 행색.

하지만 눈빛만은 유난히도 맑았다.

밀가루 묻은 입은 흔들리지 않고 입장을 밝혔다.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하나의 물음이 있다.

‘세상에서 단 한 명만큼은 오답에 서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당당히 나설 수 있는가?’


“직업이니까 보이는 위선이 아닙니다. 직업이기에 내거는 최우선입니다.”


여기 발걸음으로 답한 자만이 변호사라고 불릴 자격을 가진다.

동시에 어떠한 진실은 이들만이 다다를 수 있다.

감정도 이성도 아닌, 책임을 내걸었기에.


“현묘 씨. 억울하시면 돌아서십시오.”

“······.”

“저는 언제나 의뢰인에 편에 있습니다.”


현묘가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호흡이 불규칙하게 종종걸음을 쳤고, 입술은 몇 번이나 달싹였다.

겨우 몇 걸음 다시 변호사에게로 간다.


느릿하게.

다시 돌아왔다.

지난한 싸움이겠지만, 부탁만 한다면 얼마든 힘내줄 터였다.

찢어진 입술은 고개를 푹 숙이고서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제 됐습니다.”


진실은 스스로 물러섰다.


“현묘 씨.”

“끝까지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니요, 저는 저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 죄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현묘가 표정을 가다듬지 못했다.

이를 쓴웃음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서글픔이라고 봐야 할까?

지금껏 본 적 없는 감정이 흘러나왔다.


“저는 그 아이에게 변호사님 같은 아버지가 되어주질 못했습니다.”


어쩌면 후회라고 부를지도 몰랐다.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스무 살 언저리, 망나니였을 뿐입니다.”


현묘도 어렸다.

어른 역시도 어렸다.

그랬으면 안 됐건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었다.


변호사도 침묵을 유지했다.

겪지는 못했지만, 겪었을 일이다.

어른이란, 그런 법이니.

하지만 멈추지 않고 현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억울하시다면 주장을 굽히지 마십시오. 방화 사건과 아동학대는 다른 사안입니다.”

“변호사님.”

“‘좋은 게 좋은 일인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뺨만 방향을 잃어도 우리는 잘못된 곳으로 가고 맙니다.”


머나먼 길일수록 그럴 수밖에.

목표점과 도착지는 서로 아득히도 낯설겠지.


“‘좋은 게 좋은 일인가.’ 그건 저도 변호사님도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럼···.”

“세상 사람들이 결정할 겁니다.”


그럼에도 현묘는 단호했다.

도플갱어가 그랬듯, 조용히 결론을 읊었다.

우리의 하늘은 민중이 정할 뿐이라고.



***


녹호가 거실에서 번잡스럽게 전자기기를 늘어놓았다.

TV에선 뉴스가 흘러나왔고, 스마트폰에서는 이슈 유튜버가 제멋대로 떠들어댄다.

마지막으로 노트북으로는 어떤 기사를 끊임없이 찾아간다.

그러다 끝났다는 듯 몸을 뒤로 기댔다.


“후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 듯했다.

그때, 인영이 오늘 일정을 끝냈는지 안으로 들어온다.


“얼씨구? 보는 눈 없을 땐 대놓고 모범생이시네?”

“왜 별관으로 안 가고 여기로 들어왔어?”

“이젠 내쫓기까지? 공부하는 데에 방해라도 되나 봐?”


늘 그렇듯 비아냥으로 시작했다.

하루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 같았다.


“그나저나 뭐 하는 중이야? 요새 유독 뉴스를 자주 보는 것 같던데.”


문득 호기심이 일었겠지.

직접 정보 수집에 열중하다니.


“대충 끝난 일이라.”

“뭔데?”

“신경 쓰지 마.”

“말하라니까?”

“별일 아니라서.”

“나 욕하는 꼴 볼래?”


일상이었다.

녹호도 헛웃음을 흘리고서는 입을 열었다.


“방화 사건 법률 구조, 끝난 것 같거든.”


승전보였다.


“아, 맞다! 너 엄마 팔아먹었지!”


동시에 인영이 기겁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난 상상도 못 했어! 어떻게 어머님을 불륜녀로 만들 생각을!”

“맞아. 설마 의심도 못 하겠지.”

“어쩌면 이렇게 악마 같은 놈이 다 있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아남자고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어머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만약 유송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더욱 당황했겠지.

도플갱어가 어머니에게 보이는 애정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억울하면 오래 살아남았어야지.”

“그딴 말을 뭔 자기 엄마한테 하고 있어!”

“난 해도 돼. 다 이해할 걸?”


어린아이 투정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다만, 그만큼 진심일 터였다.

왜 벌써 갔냐고, 심술이라도 부리고 싶겠지.


“하, 이딴 게 아들이라니. 말리지 못한 나도 죽어서 얼굴 볼 낯이 없어. 알아?”


과한 힐난이다.

그 말에 도플갱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우리 엄마가 지옥을 왜 가?”

“뭐?”

“걱정하지 마. 넌 얼굴 볼 일 없어.”


인영이 잠시 무슨 뜻인지 고민했다.

죽어서 마주하려면, 어머니가 지옥에 와야 한다니.

그 말은 즉···,


“야!”


악마의 효심 깊은 한 마디였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녹호는 찢어질 듯한 웃음과 함께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어쨌거나 이번엔 진짜 뒈질 뻔했어.”


이번엔 정말 위기감이라도 느꼈던 듯했다.

그러니 이렇게 파격적인 수를 뒀겠지.


“이제 다 끝난 거야?”


인영은 옆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도.”

“뭐야, 그 애매한 대답은?”

“정황상 끝났다는 뜻이지. ‘사건이 발생했다’는 시끄러워도, ‘그 일을 해결했다’는 조용한 법이거든.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아, 씨.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해?”

“아는 일은 다 대비해놨어. 문제는 항상 모르거나 신경 쓰지 못한 곳에서 생기지.”


도플갱어는 자신의 한계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생각이 닿는 곳은 예측해도, 갑자기 벌어지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벌고서 임기응변을 짤 뿐이다.


“세무조사였나? 그것도 있다고 안 했어?”


인영은 당장 떠올리는 일을 내뱉었다.


“아, 그래. 그것도 있었지.”

“까먹었나 봐?”

“꽤 오래 여기에만 집중해야 해서.”

“뭐야, 문제 생긴 거 아냐?”

“미리 대비는 해뒀어.”


서주에게 지시를 내렸지.

장부를 정리하고 당분간 거래를 받지 말라고.

적절한 대처였다.


“아, 마침 알 만한 사람이 전화하네.”


녹호는 주머니에서 투박한 휴대전화를 꺼낸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른 후 스피커 폰으로 전환했다.


“말해.”

-지금 자유롭게 통화 괜찮나요?

“그래.”


인영은 목소리를 듣고 혼자 중얼댔다.


“이모네?”


서주가 통화를 걸어왔다.

살다 보면, 묘할 정도로 때마침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번 역시도 그랬다.


-목사님··· 아니, 녹호 씨? 세무조사 왔다는 문자 보셨나요?

“어. 준비는 다 끝내놓지 않았나?”

-네. 그 부분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도플갱어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은근한 거슬림을 느낀 모양이다.


“왜 전화까지 했지?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나 봐?”


전화는 대놓고 목소리가 오가는 일이다.

그러니 중요한 사항이 아니면 조심해왔을 터였다.

더군다나 ‘그 부분은’이라.

말에 은근히 사족이 붙었다.


-세무조사는 문제없는데, 기자가 달라붙었어요.

“기자? 물어뜯을 만한 일이 없을 텐데? 세금 조정을 탈세라고 쓰기라도 한대?”

-세금 관련이 아니에요.


서주는 뒤이어서 뜬금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아이들을 발견했어요.


무슨 의미일까?

녹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곧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가출한 애들?”

-네. 일단 해명하긴 했는데, 어떻게 흐를지 모르겠어요.


교회에 머물도록 한 아이들.

여기서 꼬리가 밟힌 모양이다.


작가의말

사실 의심이나 편견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세상은 바쁘고 우리는 행동해야 하니까요.

이조차 하지 않는다면, 항상 누워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다만,  그래도 조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언제나 만약은 존재하며, 머릿속 생각을 내뱉는 건 행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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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6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7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9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8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9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9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4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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