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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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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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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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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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보복

DUMMY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았다.

동죽이 그토록 증명하려고 했던 사실이기도 했다.


“그럼!”


현묘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상황이 변했다.

어쩌면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들이 도플갱어라고 밝혀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곧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면, 왜 맞은편에 있는 얼굴은 딱딱히 굳었을까?

행색은 왜 또 너저분해졌을까?

이해가 가지 않겠지.


“좋은 일 아닙니까?”

“설명하자면 깁니다. 아마 영상으로 보는 편이 이해하기 좋을 겁니다.”


변호사는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스트리밍 사이트로 들어가, 직접 만들어둔 재생 목록을 눌렀다.

설명하기 쉽게 모아둔 모양이다.


“여론이 어떤지 보십시오.”


잠시 돌아가는 로딩 화면.

곧 멈춘 사진이 움직인다.

현묘 역시 말을 잊은 채, 영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


회의실로 보이는 공간이다

언젠가 그랬듯, PD가 기다리고 있다가 천선을 맞이한다.

여우 같은 얼굴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천선 씨. 그래도 저번보다는 표정이 괜찮아졌네요.”

“역시 병원이 좋더라고요. 힘들 땐 망설이지 말고 찾아가야겠어요.”


병색은 많이 줄어들었다.

계속 아픈 모습으로 동정심을 유도하진 않았다.

그랬다간 꾀병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니까.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PD는 예정된 일을 읊었다.

생방송, 그 연장선이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예. 저쪽 방송국에 한 부씩, 이쪽에 한 부씩 오기로 했죠.”

“맞아요, 혹시 조작이나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제작진 역시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혹 마음의 준비는 되셨는지요?”


천선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예 얼어붙진 않았다.

그저 결과가 나왔구나 싶을 뿐인 표정이지.


“그럼 지금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PD는 종이봉투 세 장을 내밀었다.

각각 다른 회사에서 진행했을, 유전자 검사 결과표였다.

기다란 손가락은 차분히 이를 받아 하나를 개봉했다.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이.


“······.”


찬찬히 읽어보던 문서.

그러다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얼굴이다.

당황스러운 손길로 종이를 내려놓고선, 다음 봉투에 손을 뻗었다.


“천선 씨?”

“잠시만요, 뭔가 이상해서 다른 결과지도 봐야겠어요.”


두 번째 문서를 읽어내려간다.

맑았던 눈동자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숨결이 불규칙하게 변했고, 입술이 잘게 떨렸다.

무언가 상황이 잘못됐다는 듯이.


“무슨 문제라도···.”


하얀 손가락은 느리게 종이를 내려두었다.

문서를 스캔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려운 말은 다 치워두고서, 단어 하나만 크게 확대했다.


‘불일치’


두 사람이 친자 관계가 아니라고 나타났다.


“천선 씨, 이게 무슨 일인지···.”


잠시 화면에 문서를 띄우는 사이, 결과를 확인했을까?

PD는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친아들이 아니라니, 출생의 비밀을 목도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놀라도 당사자만큼은 아니어야 한다.


“하, 하···.”


천선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은 투박한 물감처럼 생기를 잃어갔다.


“이제야 알겠어요. 아버지가 왜 저를 그렇게나 미워하셨는지요.”


뒤이어 뱉은 말은, 나 역시 몰랐다는 소리였다.

얼굴도 나오지 않는 PD는 난감하다는 듯이 침묵을 유지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방송이니까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아, 저도 당황스럽네요. 당연히 부자 관계라고 생각했거든요.”

“하하···, 이러면 안 되는데···.”


메마른 눈에 붉은 기운이 피어났다.

덜덜 떨리는 손은 입가를 막았다.


“죄송합니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더 이상 방송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뜻.

이를 끝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새로운 동영상이 시작됐다.


-······.


깨끗한 건물 안이다.

꼭 몰래 찍기라도 하는 듯 화질조차 나빴다.

스피커엔 잡음마저 가득했다.

그런 조잡한 눈과 귀는 누군가를 찾듯이 이리저리 앞으로 나아간다.

곧 목표를 발견했는지, 조심히 제자리에서 멈춰 선다.


픽셀을 깨지면서까지 화면을 확대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천선이 벽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표정은 멍하기만 하다.

그러다 마른 눈가가 조용히 물줄기를 흘려보냈다.


“···엄마.”


화질이 돌아오며 시선이 멀어졌다.

겹겹이 쌓인 벽이 나타난다.

그랬다, 여긴 납골당이었다.

아마도 제 어머니를 찾아왔겠지.


-······.


다음 동영상으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다소 요란한 목소리로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역시 3분 만에 이슈를 전달해드립니다!”


또 다른 인터넷 개인방송이다.

사건, 사고, 논란만 파고 다니는 채널이겠지.

책상 앞에 한 남녀가 앉아서 만담을 주고받는 식이다.


“장천선 사건 아시죠? 요즘 떠들썩한 일입니다. 자세한 경과는 지금 띄워둔 링크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뒤이어 또 다른 호들갑이 대꾸했다.


“대충 진실이 정리됐다고 하던데? 그걸로 끝 아니었어요?”

“네! 다행히 정의 구현 들어갔습니다.”

“정의 구현이요?”


과정스러운 목소리.

여기에 남자는 자신감에 차서 이야기했다.


“네! 우선, 우리의 큰형님! 자기 건드리는 것도 안 참지만, 동생 괴롭히는 꼴도 못 보십니다!”


그와 함께, 레저 피노키오 건물 사진을 보여준다.

옆에는 한 공지문이 떠올랐다.


‘귀 파주세요 관계자 출입 금지’


대놓고 비난하는 행세였다.

동생을 과보호하는 형이기에, 이러한 모습을 보여도 이상하진 않았다.

영업장소에서 이렇게 행동해도 괜찮나 싶은 것과는 별개로.


“와, 직설적인데요?”

“우리 큰형님, 단단히 빡치셨습니다!”

“하긴, 가족을 건드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겠어요? 의동생 치부를 건드렸잖아요?”

“네! 아무리 케이블 방송사라지만 선을 넘었죠!”


여기는 천선을 편들기로 한 모양이다.

여론을 따라갈 생각이겠지.


“많은 분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요?”

“네! 반응 보시죠!”


캡처한 댓글을 난잡하게 띄웠다.


-우리 형님 빡치셨다!!!!!

-진짜 눈에 띄면 다 죽일 듯ㅋㅋㅋㅋ

-앜ㅋㅋㅋㅋ 너무 매력적이얔ㅋㅋㅋ

-아 씨 형이랑 동생 둘 다 겁나 좋은데???? 동시에 나한테 고백하면 누구 골라야 하지????

-ㄴ잠 깨고 양말 뭐 신을지 골라야지


띄운 사진을 금세 내리고선, 다시 두 사람이 나타났다.

표정은 한결 의기양양한 기색을 띠었다.


“곧 있으면 레저 피노키오 관련 광고도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마케팅에 엄청 투자했다고 하거든요!”

“와, 그래요? 근데 그게 이번 일이랑 상관있나요?”

“하하, 뜬금없죠? 그런데 광고사를 잘 봐야 해요. 그럼 의도가 보이거든요.”

“의도요?”


남자가 빙긋 웃었다.


“여러 곳에서 광고를 맡기면서도, 그 방송사는 피해갔어요. 사실상 ‘앞으로 너는 거른다’라는 의미죠.”


벌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비슷한 방법은 존재했다.

타인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한다면, 차별당하는 대상은 아까움을 느끼고 만다.

혹 방송사 국장이 PD에게 분노를 쏟을지도 모르지.


“여기에 또 화낼 사람이 있죠.”

“어? 누구요? 혹시 팬들?”

“하하. 그건 당연하고요. 또 동일 인물이 있잖아요?”

“동일 인물이요?”


여자가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


대놓고 도플갱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존재했지.

설명 대신 짧은 동영상 하나가 덧씌워진다.


-정도 없는 방송사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남의 인생을 파는 장사, 거부한다! 거부한다!

-거부한다! 거부한다!


현수막까지 걸고 하는 시위.

강한 구호 밑에는 이 낱말이 존재했다.


‘예현교회’


이곳에서 만큼은 세 사람을 한 명이라고 인정하고 있었지.

대놓고 이런 입장을 취해도 괜찮았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교회 신도 무리가 방통위, 방송사 게시판도 점령 중이라고 합니다! 아, 천선 씨 개인 팬들도 있겠지만요!”

“대단하네요!”

“그럼 댓글 반응 보실게요!”


사이비 종교.

그 지도자가 유독 난리를 부리는 상황이다.

제 3자는 어떻게 볼까?


-그 와중에 교주님 근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어쨌든 우린 하나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나 화났음(눈치) 그니까 내 동생인 나를 괴롭혀서 형인 내가 화났음(지도 뭔 말인지 모름)

-ㅋㅋㅋㅋㅋ감히 내 동생인 나를 괴롭혘ㅋㅋㅋㅋㅋㅌ


녹호는 분노했다.

천선은 슬퍼서 지쳐 버렸지.

여기에 예현만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취하는 중이다.

오직 신도만 화를 내는 식으로.


“난장판이 따로 없네요!”

“그쵸?”

“네, 아무튼 방송사는 곤욕 좀 치르겠네요.”


남녀는 가볍게 상황을 정리했다.


“어쨌거나 오늘 준비한 이슈는 여기까지입니다! 유익했나요?”

“저는 재밌었어요.”

“그럼 시청자 여러분도 즐겁게 감상하셨길 바라며, 많은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릴게요! 그럼 안녕!”


손을 흔들다가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재생 목록 마지막 영상이었던 듯, 댓글 창이 위로 올라왔다.

아마 총평쯤 되겠지.


-우리 오빠 어떡해요ㅠㅠㅠㅠ 불쌍해ㅠㅠㅠㅠㅠ

-좀 이상하게 흐른다 싶었는데 속사정이 다 있었네

-그니까. 근데 방송국 놈들 돈 좀 빨아먹겠다고 사람 인생을 갈아버리네.

-걔네 뭐랬더랔ㅋㅋㅋㅋ 양손잡잌ㅋㅋㅋㅋㅋㅋㅋ

-이러고 국민의 알 권리, 이 지!@#$ 할 듯


현묘 역시 이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변호사는 조심히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침묵을 유지했다.


“······.”


그저 조용히 반응을 기다렸다.

면회 시간이 길지 않은데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묘가 입을 열었다.

상대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떤 대답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똑똑한 사람들 아니십니까, 변호사님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떻습니까?”


타인의 시선.

인간에게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판결이 외부 상황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애당초 여론으로 재판을 이끄려는 행동이 잘못되었습니다.”

“······.”

“기존 증거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수사에 구멍이 없었는지 더 조사할 계획입니다. 혹 겪으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현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야윈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말았다.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운을 뗐다.


“찝찝한 부분이 있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예.”

“이제 그 이상한 점까지 해결하셨잖습니까. 가정사 뒷부분이 더러울 뿐이라고, 그렇게 추측하고 끝낼 일 아닙니까.”


도플갱어가 유전자 검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이유.

그건 여기에 있었다.

대중에게 타당한 흐름을 쥐여줬고, 명쾌한 결말로 유도했다.

마지막 화를 감상했으니, 이제 다들 떠나기 시작하겠지.

늘 그렇듯.


작가의말

저는 직업이라는 관념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의뢰인이 누군가에 따라 변호사를 비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언론인의 자유도 이해합니다.


다만, 그래서 보도 윤리나 변호사 윤리 강령도 중시하는 편입니다.

존중과 책임이 동시에 커져야 한다고 봅니다.

직업 윤리가 무너지면, 시스템을 향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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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필독] 입산 주의 표지판 +3 24.01.03 125 0 -
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7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9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8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9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9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4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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