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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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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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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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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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방탕함

DUMMY

***


교회.

새하얀 공간에 기다란 의자가 줄줄이 섰다.

신도는 이미 자리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다만,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을 바라본다


낯선 일은 아니다.

덩치가 큰 집단에서는 가끔 교양 활동을 하는 법이다.

물론, 한 가지 특이점도 있었다.

가령 화면에서 천선이 나오고 있다든가 하는.


“아이고, 여자애가 딱하네.”

“저 잘생긴 총각이 구해주는 거야?”

“좋은 일 하네.”

“국회의원 저저저, 썩을 놈!”

“저게 천청해인가 그놈이지? 어휴, 이래서 국개들은!”


연령대가 있는 사람들은 중얼대면서 맞장구를 친다.

그만큼 몰입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동시에 젊은 연령대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와, 진짜 잘생겼다.”

“여기 다니다 보면 저 오빠도 오려나?”

“유명인이면 종교랑 엮이기 힘들지 않나? 다른 사람들도 우리 교회 욕하는 편이고.”

“목사님이랑 같은 사람으로 친다며? 한 번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오, 그럴 수도 있겠다!”


바바바바박.

천선이 여우처럼 웃을 때마다, 몇몇이 발을 동동 굴러댄다.

화면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잘생긴 얼굴은 보기만 해도 재밌었다.


“아, 끝났네.”

“노래 남았어. 화장실 조금 이따가 가.”

“10분까지 휴식 시간 가질게요.”


웹 드라마 특성상, 한 화 길이가 짧았다.

다 모아서 보면 장편 영화 한 편 정도 분량이겠지.

메이킹 필름을 마지막으로, 감정의 여운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잔잔한 발라드와 함께 감상을 곱씹는다.


다 봤으니 서로 소감을 말하고 헤어지겠지.

풀어진 표정으로 굳은 몸을 풀었다.

귀가할 준비였다.

한 사람이 들어오기 전까진 그랬다.


“모두 즐겁게 보았는가?”

“어? 목사님?”


예현이 등장했다.


“어떻게 오셨···!”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목사님!”


다들 놀라서 일어났다.

이렇게 방문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

이곳을 담당하던 목사 역시도 얼굴이 창백해져서 달려왔다.


“김예현 목사님!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왜 그런가? 껄끄럽기라도 한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얼른 손사래를 쳤다.

당연한 노릇이다.

구세주에게 감히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을까?


“미리 온다고 얘기하셨으면 맞이할 준비라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조용히 이렇게 온 걸세. 다들 괜한 고생을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누추해서는, 저희가 면이 살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좋은 법이지. 그 고생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낫다네. 당혹스러움이란, 찰나인 법이니.”


다들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지라, 민망하겠지.

하지만 부산을 떨었다면 분명 피곤했을 터였다.

어쩌면 황송함이 아니라 떨떠름함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곧 있으면 방학이라네.”


예현이 문득 그런 말을 뱉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큰 상관이 있을까?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테이 역시도 시간이 생겼지. 외부 활동도 할 수 있을 걸세.”

“어? 정말요?”

“그럼 막 팬 사인회 같은 것도···.”

“가능하겠지.”


다들 화색이 돌았다.

영상에서 본 여자아이와 직접 만나볼 수 있다니.

분명 기다려질 만한 일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없다네. 다만, 교통편 문제나 인원수 제한은 교회 차원에서 어느 정도 확보해둠세. 어렵지 않은 일이지.”


어려울 리가 없다.

결국, 세 신분은 한 명일 뿐이니까.

우선권 정도는 직접 마련하면 될 일이다.


“혹시 궁금한 사항이 있는가?”

“아, 저···.”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예현은 말해보라는 듯이 손짓을 해 보였다.


“대략이라도 뭘 할지 알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팬 사인회 같은 활동이 많을 걸세. 노래를 한 곡 냈다고 한들, 콘서트를 벌이긴 힘들지 않은가.”

“하긴···.”

“음반이 하나 더 나올 수 있겠지. 방송가에서도 관심이 많고 말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 정도라면 만족할 만하지.


“또 궁금한 사항이 있는가?”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도 되나요?”

“말해보게.”


예현을 향한 질문이라.

어떤 것일까?


“천동죽 아시죠? 목사님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시면, 같이 부산 가서 골수 이식을 하면 되지 않나요? 아니면 이미 하고 있다거나···.”


어두침침한 눈빛이다.

충성심이 낮고 눈치가 없는 편일 듯했다.

오죽했으면 주변에 있는 몇 명은 인상을 찌푸려댄다.


“부산이라?”


하지만 도플갱어가 주목한 점이 다른 곳이었다.

갑작스레 나온 지역이 뭔가 낯이 익다.


“그쪽에 백혈병 어린이 센터 같은 게 있어서, 이사 갔다고 하던데요?”

“그런 일이 있었나?”

“며칠 전에요.”


예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내 작은 헛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집을 아들 명의로 샀나.”


청해의 재산 내역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겠지.

하지만 가족까지 가면 일부 사항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길어야 한 달 내로는 소식을 찾아내겠지만.


“아, 질문에 대답해줘야지. 혹시 사업가가 세상에 가장 도움이 될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야, 돈 많이 벌어서 기부하는 편이 좋지 않나요?”

“맞는 말일세. 봉사활동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일은 따로 있다네. 떨떠름한 사실이지.”

“아니, 그래도···.”


예현은 편안한 기색으로 이유를 내밀었다.


“교회에서 진행 중인 사업을 찾아보게.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될 걸세. 환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따로 있다네.”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터였다.

변명이거나 합리적인 얘기거나.

‘도플갱어에 관해 어떤 진실을 믿고 있는가’, 이에 따라 반응이 갈리겠지.


“할 말이 있는가?”

“으음, 아니요. 죄송합니다.”

그 말은 한 가지 진실을 품고 있기도 했다.

답변을 반박하자니, 딱히 꼬집을 점이 없었다.

그저 음모론만 가슴 속에 품고 있겠지.


“이제 그럼 가보겠네. 바쁜 일이 생겨서 말일세.”


예현은 인자하게 웃어 보이며 발길을 옮겼다.

들어온 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옆에서 당연하게도 서주가 말을 걸어온다.


“인사는 잘 끝나셨나요?”

“그래. 간혹 이렇게 얼굴을 비춰야지. 상이라도 되듯이.”


걸음이 빨랐다.

지금 신분을 생각한다면,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항상 여유롭고 점잖아야 하건만.


“바쁜 일이라도 있으세요?”

서주는 이 점을 꿰뚫어 보았다.

도플갱어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진하게 웃으며 엉뚱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조카에게 그렇게 전해주게. 준비하라고 했던 물건 슬슬 챙기라고.”


그리고 인영과 함께 무언가를 언급했다.



***


햇빛이 쏟아지는 바닷가.

적잖은 사람들이 모래사장 위를 오간다.

휴가철 초입인 탓이겠지.

그러한 발걸음은 한 곳에서 드문드문 멈췄다.


“경치 좋네.”


한 남자가 누워서 해변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근육만으로 빚어두면 이럴까?

윤곽선이 거대하고 뚜렷한 직선으로 가득했다.

숨을 쉴 때마다 광배와 복근이 살아서 움직이기까지 한다.


피녹호.

말 그대로 빚어낸 육체라 그런지, 남녀 가릴 것 없이 감탄했다.

몇 명은 반쯤 멈춰서서 구경까지 할 정도다.

사나운 입가는 짜증이라도 난다는 듯이 툭 쏘아냈다.


“뭐야? 구경났어?”


대부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멀어졌다.

그런데 한 여자 무리가 겁도 없이 다가섰다.


“저기요, 오빠! 혼자 오셨어요?”

“아니, 우르르.”

“꺄하하! 재밌다! 혹시 다른 오빠들도 있으면 저희랑 같이 놀아요!”


확실한 개성과 분위기는 그 자체로 매력이다.

이해가 가는 호기심이다.


“남자는 안 끌고 다니는데.”

“아. 아깝다.”

“그래도 여자는 끌고 다닐 생각 있어. 어때? 관심 있어?”


사나운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걸렸다.

진한 장난기가 느껴진다.

여자들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깔끔하게 끝날 느낌은 아니겠지.

혹 지저분한, 더 나아갈 불법적인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어때?”

“가면 재밌을 것 같기야 한데···.”

“그치?”

“궁금하긴 해.”


하지만 호기심이란 무서웠다.

위험 따위는 잊고 몸을 움직이게 한다.

하긴, 충동적인 유전자가 자손을 남기는 법이겠지.


“오빠, 어디서 놀 거예요?”


반쯤 마음을 굳혔다.

금세 다 같이 놀러 갈 듯했다.

해가 지고 밤이 온다면, 짐승의 성생활을 볼지도 모르겠다.

지금 오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 인간, 오늘 내 품에서 놀 거예요. 관심 있어요?”


쭉 뻗은 다리가 뒤에서 나타난다.

갸름한 얼굴은 척 봐도 한기가 풀풀 풍겨온다.

그러자 말을 걸었던 여자들은 서로 속닥대기 시작한다.


“뭐야, 애인이 있었네.”

“그래도 상관없지 않아? 그냥 다 같이 놀자며?”

“평소에도 그렇게 지낼 것 같은데···.”


당장 떠나가지 않았다.

여기에 인영은 결국 반쯤 화를 내다시피 했다.


“내 남자한테 침 바를 생각 안 했으면 좋겠는데.”


대놓고 축객령이다.

이 정도까지 하면 알아들으라는 듯했다.

결국, 다들 투덜대면서 녹호를 떠나갔다.


“왜? 질투라도 났나 봐?”


도플갱어는 재밌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야, 이 쓰레기야. 감히 유교 국가에서 이따위 짓을 해? 제정신이야?”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때도 그 난리를 쳤는데, 괜찮을 줄 알아? 생각이 그렇게 짧아?”


반박도 못할 만큼 힐난을 쏟아낸다.

그런데도 웃음은 사라질 줄 몰랐다.

오히려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 씨.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인영은 포기하고 말았다.

이건 화내면 지는 싸움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듣는 사람 기분만 좋아질 테니.


“뭐, 여러 가지 궁금해서 말이야. 유흥은 어떨까 싶어서.”

“하. 그래서 여자 끼고 놀려고 하셨다? 지금도 넘치면서?”

“그 넘치는 여자분께서 준비물을 제대로 안 챙기셨더라고.”


갸름한 얼굴에 잠시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그러다 이내 당당하다는 듯이 팔을 쫙 펼쳤다.


“뭐가? 맞잖아, 수영복.”


‘모노키니’.

여성형 일체형 수영복이다.

옆구리를 노출하긴 하지만, 레이스가 가슴을 가리는 덕에 일반 의류 같았다.

여기에 핫팬츠와 가디건까지 착용했지.

해변용 의상이지만, 서울 한복판을 돌아다녀도 곧바로 위화감을 느끼진 못할 듯했다.


“내가 말했을 텐데? 비키니 챙기라고.”


도플갱어는 이 점이 불만스러웠다.


“참나. 이 정도면 됐지.”

“나는 유흥을 확실히 겪고 싶었거든. 내가 하는 일이 그거라서.”


업무의 일환이기도 했다.

유흥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가 산업을 논할 수 있을까?

그런 이유로 방탕함을 겪어볼 요량이었던 듯했다.


“아, 마침 오네.”


녹호는 그렇게 말하며 저쪽으로 턱 짓을 했다.

동시에 인영은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가디건을 여미기까지 한다.


“녹호 씨!”


서주가 새하얀 비키니를 입은 채 다가오는 중이다.

천조각은 너무나도 작았다.

거대한 방탕함을 가리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넘치게 두었다.


“미친, 너 내 이모한테 도대체 무슨 부탁을···.”

“왜 그래? 다 큰 성인끼리.”


투닥거리는 와중, 서주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방탕함은 해변 위를 요동쳐댔다.

바다가 유난히도 출렁댄다.

마치 핵무기가 땅에 꽂히고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작가의말

8.15 광복입니다.

국권 회복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기나긴 암흑기, 광명을 찾아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귀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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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10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 138화. 방탕함 24.08.15 12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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